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60화 (560/609)

00560  보스가 되다  =========================================================================

Table A, 2차대전 시절에 설립된 미국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특무기관으로, 대통령조차 감히 터치할 수 없던 성역이다.

2차대전 당시 바다에서 떠오른 아카식 블레이드를 연구하던 부서가 시초가 되어 설립된 기관으로, 지금껏 미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Table A의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은 외계인을 납치해서 고문하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기술을 실용화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미 의회가 여성, 아이, 이민자, 그리고 로봇의 인권에 관한 법률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외계인 인권에 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는 게 바로 그 증거지. 왜냐? 외계인을 고문해서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뜯어내야 하니까.

그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만큼 미국이 압도적인 과학 발전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Table A의 공이었다.

아카식 블레이드를 연구하여 얻은 지식을 실용화하는 것만으로도 현대과학은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Table A는 순수한 과학 연구만 하는 기관, 무력이나 첩보 등의 힘은 일절 가지고 있지 않다. 때문에 다른 특무기관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독자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재임 기간 내내 Table A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대통령도 있었을 정도니, 그 비밀성과 독자성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강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Table A의 존재 의의는 근래 들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아카식 블레이드의 행방은 대체 언제쯤 꼬리라도 잡을 수 있는 겁니까?”

구프게니는 케인 대통령의 호된 비난을 꿋꿋이 듣고 있었다.

그는 Table A의 최고 보스가 아니지만, 실무총책임자로서 정치권과의 대관을 담당할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즉 예산을 타내거나 혹은 정치적 공세를 받아내는 방패라는 뜻이다.

“지금 CIA가 여러 정보기관의 협력을 받아 꾸준히 수색 작업 중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흔적이라도 찾아냈습니까? 아니잖습니까. 누가 가져갔는지, 어디로 가져갔는지 사소한 증거 하나 잡지 못한 상황 아닙니까?”

크리스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승계한 케인 대통령은 아카식 블레이드의 존재를 잘 모른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의 과학 발전에 지대한, 아니 절대적인 공헌을 한 보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귀중한 보물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군다나 높이가 4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하고 육중한 금속 구조물인데?

미군이 철통같이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하루빨리 찾아내세요. 아니, 증거라도 잡아내세요.”

“알겠습니다.”

구프게니는 묵묵히 대통령의 비난을 받아난 후, Table A 본부로 돌아왔다. 7인 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위로를 건넸다.

“고생했어요.”

“대통령이 많이 뭐라고 하던가요? 얼굴이 너무 안 좋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Table A의 설립 목적은 아카식 블레이드를 연구하여 그 지식을 인류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카식 블레이드가 없어진 지금, Table A는 존재 의의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바다에서 건져올린 오리할콘 뼈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한서진에게 연구를 위탁하여, Table A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기존 Table A에 소속된 과학자들은 모두 한서진 쪽으로 넘어가서 오리할콘 뼈를 비롯한 에테르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즉 지금의 Table A는 경영자와 관리자만 남은 껍데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니트론 교수님이 총보스로서 자리를 더욱 굳건히 지켜주셔야 하는데…….”

누군가가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지만, 구프게니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니트론 교수님은 원래 학자파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Table A의 수장을 맡았을 뿐,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는 걸맞는 분이 아니시죠.”

“그건 맞아요.”

로스차일드 출신, 카를린 위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구프게니의 말에 동조를 나타냈다.

“전 솔직히 아카식 블레이드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카를린! 그건!”

“생각해봐요. 철통같은 미군의 감시를 뚫고 그 거대한 금속 구조물을 누군가 가져갔어요. 이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전 차라리 어떤 원인에 의해서 아카식 블레이드가 저절로 소멸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아요. 아니면 한서진 박사가 우리가 추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몰래 빼돌려서 독점하고 있다던가.”

“그 분이 그럴 리가 없소.”

“가능성은 그 두 가지뿐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어느 쪽이든 간에 우리가 아카식 블레이드를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죠.”

카를린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카식 블레이드를 다시 찾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아카식 블레이드가 사라진 당시부터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수백 번 넘게 검토했지만, 결론은 역시나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였다.

일단 그 거대한 철제 구조물을 연구함에서 꺼내기 위해서는 선박에 큰 구멍을 뚫거나, 혹은 선박의 개방부를 완전히 열어야만 한다.

하지만 외부 CCTV 기록을 모두 분석한 결과, 선박의 개방부가 열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선박에는 자그마한 구멍 하나 발생하지 않았다.

완전히 밀폐된 금고 안의 돈이, 금고가 열린 적도 없는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카를린의 말대로 이런 도난 행위가 가능한 인간이나 조직,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면 오로지 한 명, 한서진을 꼽아볼 수 있을 뿐이다.

“아카식 블레이드도 없고, 오리할콘 뼈는 사실상 한서진 박사가 관리하고 있는데, Table A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의의가 있을까요?”

“카를린! 우리는 60년 이상 존속해온 미국 최고의 특무기관이에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죠. 우리는 진리를 연구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에요. 그리고 이제는 그 진리를 연구해야 할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죠.”

“…….”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모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카를린이 총대를 매고 꺼낸 말이지만, 다들 속으로는 어렴풋하게 예감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Table A의 존속이 위태롭다는 것을.

“한서진 박사에게 Table A의 보스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면…….”

“그분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미 혼자서도 Table A를 완전히 뛰어넘었는데?”

“…….”

구프게니는 위원들의 얼굴을 훑어보며, 속으로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만 같았다.

“Table A가 곧 없어질 것 같아요.”

니트론 교수가 아무렇지 않게 꺼낸 말에 한서진은 들고 있던 머그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와는 달리, 정작 말을 꺼낸 본인은 열심히 연구 데이터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교수님? 뭐라고 하셨죠?”

“아, 못 들었소? Table A가 곧 없어질 것 같다고요.”

“아니, 왜요?”

“왜긴, 아카식 블레이드가 없어졌으니까 연구할 대상이 사라졌고, 당연히 청산 절차를 밟아야지요. 어휴, 나도 이제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네.”

“하지만 Table A는 우주의 진리를 밝혀 인류를 이롭게 한다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아, 어차피 우주의 진리는 한박사 혼자서도 열심히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지 않소? 굳이 Table A 같은 구태의 상징이 존속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요?”

“구태의 상징이라니요…….”

그래도 자신이 평생 몸 담은 기관, 심지어 최고 보스로 있는 곳인데 구태의 상징이라고 한 것은 너무했다.

“그래도 아까운데요. Table A는 오랫동안 독자적인 기관으로서 진리 탐구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것도 미국의 기관이면서 미국의 국익만을 추구한 게 아닌, 인류 전체의 이익을 배려하는 방향으로요.”

그제야 니트론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한서진을 바라보았다. 한서진은 그의 눈빛에 떠오른 일말의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그의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소? Table A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조직이에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퇴진하는 게 순서가 맞지요.”

“그래도 그 정신은 아깝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한서진은 진심으로 아까웠다.

지식을 밝혀내고 연구하는 것? 그것은 자신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막말로 타르타로스 3만 있어도 이루지 못할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류의 이익 전체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그것이 수십 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져온 조직 정신은 자신 혼자서 구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제가 Table A의 보스가 되겠습니다.”

“뭐라고요!”

니트론 교수는 뛸 듯이 놀랐다.

원래 Table A 내부에서는 한서진을 차기 보스로 내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Table A가 그보다 우위에 있다는 전제 하에 추진하는 ‘고급 스카우트’ 정책이었다.

지금 Table A는 한서진의 위명 앞에서 감히 명함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먼저 Table A의 보스가 되겠다니?

“기존의 조직 체계는 모두 그대로 승계하겠습니다. 조직의 국적도…… 그냥 미국으로 남겨두죠. 어차피 저도 미국인이니 상관없을 테지요.”

“상관이 없는 정도가 아니지요. 명예시민이니까요. 그나저나 다른 위원들이 정말 좋아할 거요. 아, 케인 대통령은 아주 입이 찢어지겠군.”

한서진이 Table A의 최고 보스가 된다는 것은 미국과의 유대관계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정치권에서는 미친 듯이 환호할 것이다.

“대신에 조건, 아니 개편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한 박사가 Table A의 보스입니다. 보스가 지시하면 당연히 따라야지요. 뭡니까?”

“Table A는 평성 과학도시로 본부를 옮겨야 합니다. 7인 위원들도 당연히 마찬가지고요.”

“웜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니 그 정도야 아무 문제도 아니지요. 그리고 또 없습니까?”

“총의장으로 니트론 교수님을 선임합니다.”

“……뭐라고요?”

“알다시피 저는 뼛속까지 공돌이 아닙니까? 조직을 이끌고 관리하는 것은 잘 못합니다. 하지만 니트론 교수님처럼 관록과 경험이 풍부하신 분은 다르죠.”

니트론 교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이 사람아. 내가 그 머리 아픈 게 싫어서 구프게니한테 다 떠넘기고 스탠포드에서 전임교수 노릇에 열중한 건데…….

“그러니까 지금 한 박사 말은 Table A를 존속하는데 자기 이름만 걸어두겠다는…….”

“잘 부탁합니다, 니트론 의장님.”

Table A는 한서진이 보스를 맡는다는 사실에 다들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니트론이 의장을 맡았다는 소식에 구프게니는 남몰래 화장실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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