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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59화 (559/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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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트러스트는 신효진을 위해 급히 만든 투자회사였다. 그녀가 떠나고 싶다는 말에 서둘러 설립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유치 고객은 신효진 한 명뿐이었다. 회사를 관리하는 직원도 없이, 모든 것은 자동 프로그램이 알아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인원이라고는 대표인 한서진 혼자가 전부였다.

한서진은 신효진 명의로 된 100억AU(약 10조 원)의 위탁금 외에, 따로 전용기도 그녀에게 선물해주었다. A380 다음으로 크다는 B747기종이었다.

“박사님, 이건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이 정도는 되어야 세계 여행 다니기 편하죠. 전 세계 어디든 직항할 수 있는 모델이니 편안할 겁니다.”

“…….”

전용기 외에도 한서진은 하와이, 괌, 마이애미, 시드니, 런던 등 세계 각지에 고급 주택을 하나씩 선물했다.

“이것들은 별장으로 쓰시면 됩니다.”

“30채씩이나 주실 필요는…….”

“이 정도는 받아도 됩니다. 아니, 효진 씨 덕분에 제가 얻은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수천 억 원이 넘어가는 초대형 크루즈선까지 선물하고 난 뒤, 한서진은 어디 또 줄 게 없나 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컴퓨터 화면에 뜬 자산 내역을 훑어보며 뭘 줄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신효진은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스캔들 나기 딱 좋겠는데요. 제가 박사님 내연녀라고요.”

“그런 소문 안 나요. 하나와 친한 걸 누구나 다 아는데.”

“재벌 회장님들 중에 와이프 친구하고 정분 나는 분들도 제법 많던데.”

“…….”

“농담이에요. 저도 다른 마음 없어요. 그냥 괜히 그런 소문 날까 봐 그런 거죠.”

“그런 소문에 흔들리기에는 제가 너무 커져 버렸죠.”

“맞아요. 그렇긴 하네요.”

신효진은 조용히 웃었다.

“너무 많은 것을 주셨어요. 저는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오히려 너무 적게 드려서 미안할 뿐입니다.”

그녀는 입안이 조금 말랐다.

미안하다는 그의 말, 그것이 이번 생에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사죄라 믿고 싶었다.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효진 씨도 건강하세요.”

“박사님…… 아니, 서진 씨도 잘 지내요.”

그녀가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자 한서진은 흠칫 했다. 그녀 역시 어색한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거리는 힐 소리가 옆을 스치며 뒤를 향해 멀어진다. 한서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왠지 돌아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문 앞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한서진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문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로 그녀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감정이 쏟아질 것 같은 눈동자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막대한 현금과 부동산, 전용기, 크루즈선 등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주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느낌이다.

“갈게요.”

심호흡을 한 뒤 신효진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미쉘 부인이 공손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미쉘은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가시죠, 미스 신.”

잠시 미쉘을 바라보던 신효진은 가볍게 끄덕이고는 앞장섰다.

빌딩 정문에는 두 대의 경호 차량을 거느린 고급 세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미쉘이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리라.

그녀가 차에 오르자 미쉘도 조수석에 올랐다.

“먼저 무엇이 하고 싶으신가요?”

미쉘이 묻자 신효진은 잠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짧지만 추억이 담긴 곳, 떳떳하게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던 장소다.

그러나 이제는 떠나야 한다.

그의 옆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주인은 따로 있기에.

“미쉘 부인, 혹시 박사님께 제가 뭘 받았는지 그 내역을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요즘은 전산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요.”

미쉘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고, 신효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일단 괌으로 가요. 거기부터 시작해서 차례차례 별장들을 투어해볼래요.”

한서진은 창가에 선 채, 신효진을 태운 차량이 멀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주시했다. 차량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그는 창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나지막이 그녀를 불러 보았다.

‘스칼린…….’

그녀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다.

물론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하면 티끌이나 다름없지만, 그녀의 인생을 호화랍게 치장하는 데에는 조금도 무리가 없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받은 모든 것을 탕진한다면 또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녀 덕분에 얻은 게 많다. 앞으로 재정적인 부분만큼은 평생 그녀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무거운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또다시 고개를 든 번뇌, 만약 신효진을 먼저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떠날 사람은 가는 거지.”

다시 자리에 앉는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는 조금 어두운 기색이 걷혀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꺼내, 송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그녀가 전화를 받는다.

“하나야, 우리 오늘 외식할까?”

잠시 아파트를 들린 신효진은 처음에는 짐을 정리할까 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아니에요, 그냥 놔둘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추억은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저택을 처분하지 않으실 거라면 굳이 짐을 정리할 필요가 없겠네요. 사람을 시켜서 주기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겠어요.”

신효진은 거실에 서서 우두커니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꽤 오래 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본 호화로운 주택이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곳이었다.

미쉘의 말대로 집을 팔 게 아니라면 자신이 살던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놔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훗날 이곳에서 살았던 순간을 그리워할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뭐, 그리고 가끔 돌아올 수도 있는 거니까.’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미쉘이 조용히 불렀다.

“미스 신, 실례지만 신체 치수를 재봐도 될까요?”

“치수요?”

“미스 신의 옷을 준비하려면 치수가 필요해서요. 지금 디자이너가 대기 중입니다.”

“아, 그럴게요.”

잠시 후 미쉘의 안내를 받아 세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 중 세련된 정장 패션을 갖춘 중년 여성이 줄자를 들고 그녀 앞에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디자이너 윤지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파리 출신으로, 청담에서 제법 유명한 디자이너입니다. 앞으로 미스 신의 의류 제작을 맡길 분이에요.”

“아, 잘 부탁해요.”

신효진은 선선히 인사를 받았고, 미쉘의 눈동자에 잠시 묘한 빛이 스쳤다.

윤지현 디자이너는 꼼꼼하게 신효진의 치수를 쟀다. 사이즈를 재는 그녀의 손길에는 세심함과 정갈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고급 세단의 가죽 의자에 편안히 앉아 가로수 풍경을 즐기는 듯한 안락한 기분이었다.

“제가 모셨던 분들 중 가장 완벽한 라인을 지니셨군요. 참 영광입니다.”

내내 차분하던 윤지현은 치수를 모두 잰 뒤 딱 그렇게 짧게 칭찬을 건넸다. 그녀가 귀중한 고객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조심스럽게 꺼낸 칭찬이었다.

신효진도 짤막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디자이너들이 물러간 후, 신효진은 곧장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전용기는 이미 이륙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B747은 점보기라는 위상에 걸맞게 무지막지하게 컸다. 신효진은 기체의 웅장함을 바라보며 문득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저게 클까, 새끼 초룡이 클까?’

Table A가 보관 중인 오리할콘 뼈의 크기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B747이 훨씬 작을 것 같다. 두개골의 크기만 200미터가 넘어가는데…….

“미스 신, 어서 오르시지요.”

“아, 그래요.”

신효진은 VIP 전용 게이트를 통과해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항공 보안 수색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이미 그녀는 VIP였으니까.

“그런데 전용기가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원래 박사님께서 보유하던 모델 중 하나를 양도한 거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것입니다.”

“아, 그래요?”

“이런 전용기를 처음부터 주문해서 제작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걸리니까요.”

전용기는 2층 구조였는데, 상층은 오너를 위한 전용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침실과 응접실, 회의실, 심지어 간이 수영장과 욕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이쯤 되면 하늘 위의 특급 호텔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속 기장인 패리트 휠이라고 합니다.”

“부기장인 존 스노우입니다.”

두 명의 전속 파일럿이 그녀를 찾아와서 인사했다. 그 외에도 전속 승무원이 열 명이나 되었다.

“미스 신, 출발 전에 잠시 쇼핑을 하시겠어요? 아직 이륙까지는 시간이 충분합니다만.”

“쇼핑이요? 어디서요?”

“하층 회의실에 마련해두었습니다. 가시죠.”

신효진은 의아했다. 전용기 안에서 쇼핑을 한다고?

미쉘을 따라 하층으로 내려온 신효진은 곧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널찍한 회의실이 하나의 종합 명품관처럼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도 알고 있는 초고가 브랜드 다수가 각자 진열을 갖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십여 명의 매니저들이 그녀를 보자마자 공손히 인사했다. 말은 없이, 정중히 머리와 허리를 숙이는 태도에는 최고급 고객만 상대해본 정갈함이 묻어났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신효진은 미쉘의 눈웃음을 보며,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최고급 상류층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삶을 누리는지를.

고급 그 자체를 표방하는 초고가 명품 브랜드가 수고를 아랑곳않고 전용기로 찾아와 매장을 꾸민다. 이륙을 앞둔 수천억짜리 전용기 안에서 즐기는 혼자만의 쇼핑, 지구에서도 매우 특별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호화로움 아닌가.

신효진은 자신만을 위한 간이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가 관심을 보인다 싶으면 매니저가 공손한 태도로 제품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조금이라도 귀찮은 기색을 드러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물러나,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기분이 이상해.’

신효진은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공장의 근로자로 하루하루 비루하게 살았던 나날들.

예쁘장한 신입 직원이라고 소문나서 온갖 남자 직원들의 추파에 시달렸던 과거. 무능한 알콜중독자 아버지한테 생활비를 뜯기며 고통에 시달렸던 일상.

그 모든 것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마치 잠시 낮잠을 잔 사이 꾸었던 짧은 먼지와도 같은 꿈.

레노지안의 스칼린, 그리고 지금의 자신.

이 두 가지 모습만이 처음부터 옳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다 살게요.”

“미스 신.”

“별로인 것도 몇 개 있는데, 지금은 눈에 안 들어와도 나중에 마음에 들 수도 있겠죠. 일단 별장에 갖다 두죠.”

미쉘의 눈이 조금 커진다 싶더니 곧 웃음을 머금었다.

“알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내 생활비 월 1,666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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