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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55화 (555/609)

00555  진입  =========================================================================

“…….”

신효진은 우두커니 굳어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날아간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평범한 도시의 거리가 걷히며,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풍경이 차곡차곡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활한 초원, 그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가로지르는 강.

그림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한 채 펼쳐져 있는 넓고 아름다운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서너 마리의 용이 기사를 태우고 달아다니고 있었다.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옷은 어느덧 바뀌어 있었다.

강화 가죽으로 만들어져 몸에 기분 좋게 착 달라붙는 갑옷, 그리고 등에 매인 한 자루의 거대한 검.

“……!”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에 조금씩 속도가 붙었다.

어느덧 그녀는 한 마리 암표범처럼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몸이 가볍고, 온몸의 근육에서 힘이 끓어넘친다.

야트막한 언덕을 질주하고, 그 끝에 이르러 힘차게 도움닫기를 하며 발을 굴렀다. 순식간에 몸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허공을 나는 듯이 강을 건너 반대쪽 언덕에 착지했다.

체감상 성인 키의 80배는 족히 넘는 거리를 도움닫기 한 번으로 가볍게 뛰어 건넌 것이다.

그녀의 눈에 벅찬 기쁨이 차올랐다.

가상의 시드니에서 느꼈던 조잡한 현실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의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 그것을 타고 온 풀 냄새마저 분명하게 감각을 타고 흘렀다.

모든 것이 진짜처럼 또렷하게 보이고, 느껴진다.

신효진, 아니 스칼린은 등에 맨 대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강을 따라 있는 힘껏 질주했다.

그녀가 달린 길을 따라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났다.

절벽 끝에 오른 그녀는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적어도 수십km는 될 것 같은데, 전혀 숨이 차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움직일수록 더욱 힘이 솟구친다.

그녀는 대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바위산을 노려보았다.

“하앗!”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검에 집중하고, 바위산을 향해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순간 검에서 거대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바위산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콰르릉!

정상부위가 깔끔하게 잘린 바위산은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암석과 모래가 만들어낸 산사태를 내려다보며, 스칼린은 흥분으로 가쁜 호흡을 골랐다.

“다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됐어.”

흥분을 가라앉힌 후, 스칼린은 조용히 레노지안을 탐색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도서관 같은 곳을 찾아 기록물을 읽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은 펍에 자리를 잡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리온이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지금 초룡을 찾아서 비밀 유람 중이라고?”

자신이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바로 그 시기와 거의 타이밍이 일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날 수 있어, 리온을…….’

이것은 그저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깨고 나면 허상에 불과한 것.

‘상관없어, 그런 것은.’

자신이 느끼고, 겪고, 받아들이는 이 현실 자체가 이처럼 생생하지 않은가.

현실과 꿈, 그것을 굳이 칼같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리온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꿈이든 허상이든 상관없어.”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는 곧바로 포렌 산악지대로 향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그 덕에 좋은 점도 있었다. 첫 꿈에서 수련을 하면서 쌓게 된, 힘을 다루는 법을 고스란히 깨우친 상태였던 것이다.

첫 꿈에서 그녀는 자신의 잠재력의 1%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하드웨어는 막강한 힘을 품고 있으되, 그것을 다루는 소프트웨어가 서툴렀던 것이다.

하지만 리온이 마력을 다루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훈련을 도와주면서 그녀는 수백 배 이상으로 강해졌었다. 그저 내면의 힘을 올바르게 쓸 줄 알게 되었을 뿐인데, 그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던 것이다.

“아…….”

산악지대를 탐험하던 중 그녀는 문득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을 본 순간 말로 설명하기 벅찬 감회에 젖어야 했다.

바로 첫 꿈에서 함께 여행을 했던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순간, 잃어버렸던 오랜 추억의 사진을 찾은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서 인사라도 할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때 특별했던 인연이지만 이제는 지난 과거일 뿐이다. 저들은 자신을 알지 못하며, 그렇다고 저들과 다시 추억을 쌓을 여유도 없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온통 리온에 대한 그리움, 빨리 그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잔뜩 젖어 있었기에.

‘리온…….’

그녀는 눈을 감고, 감각을 널리 퍼트리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포렌 산악지대의 풍경이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가 되어 그녀의 의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깡충거리며 뛰어다니는 토끼, 한가롭게 풀을 뜯는 사슴, 그리고 먹이를 사냥하러 날아다니는 마수들의 기척…….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리온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척은 잡히지 않았다.

‘아직 여기에 오지 않은 걸까?’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이 리온을 만난 것은 포렌 산악지대에서 마수 클로비의 습격을 받았을 때였다. 거대 박쥐의 형상을 한 클로비는 군집을 이뤄 생활하는 습성을 갖고 있으며, 공격을 받거나 위협을 감지하면 떼로 나서서 대응한다.

‘마수 클로비를 자극하면 리온이 나타날까?’

그녀는 자신의 힘을 점검했다.

지금 같아서는 클로비가 수천, 수만 마리가 동시에 습격해도 멀쩡히 물리칠 자신이 있다. 그리고 클로비는 위협 외의 요소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 인구 거주 지역은 이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즉 마수 클로비를 자극해도 위험해질 사람은 없다는 소리다.

“좋아.”

그녀는 감각을 널리 퍼트렸다. 머릿속에서 이미지화된 포렌 산악지대, 그 거대한 지도 캔버스에서 수백 마리가 넘는 마수들이 뭉쳐 있는 게 잡혔다.

“찾았다.”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그리고 그쪽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모든 풍경이 꺼졌다.

“……어?”

갑자기 눈부신 빛이 감긴 눈꺼풀을 두드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자극에 그녀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효진 씨, 괜찮아요?”

누군가가 어깨를 흔드는 게 느껴진다. 눈을 뜨자 시력이 서서히 회복되며, 익숙한 풍경이 들어온다.

“아…….”

그제야 신효진은 깨달았다.

자신이 꿈에서 튕겨져 나와 현실로 되돌아왔음을. 그녀가 있는 곳은 바로 월드투어VR에 접속했던 세연동 저택의 BII 전용실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신효진이 묻자 송하나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회사에서 서비스를 갑자기 종료시켜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BII 장치들도 접속이 끊겼구요. 아마 서버 문제인 것 같은데.”

“……그래요.”

신효진은 아쉽기 그지없었다.

조금만 더 진행하면 리온을 다시 만날 수도 있었는데, 그게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다음을 기약해야지.’

무심코 시간을 확인한 신효진의 안색이 굳어졌다.

‘말도 안 돼.’

놀랍게도 접속을 하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송하나와 시드니를 돌아다닌 것을 고려하면, 레노지안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은 분명 그 안에서 꼬박 하루 이상을 보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시간이 거의 지나지 않았다니.

‘첫 꿈을 꿀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무래도 자세히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신효진의 공식적인 신분은 한서진의 개인 비서다. 그리고 그의 부인인 송하나와 절친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녀는 가벼운 회사 기밀이나 사업 정보에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임원회의에 사용되는 사업 자료 같은 것 말이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신분을 적극 활용해서, SJ엔터테인먼트 내부 자료를 검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자료에 근접했다.

‘순간 점유율이 99%까지 치솟았다고?’

짜릿한 감각이 등줄기에 흘렀다. 그녀는 서둘러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를 확인했다. 예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내가 레노지안에 들어간 바로 그때야.’

그녀는 강한 확신을 품을 수 있었다.

자신이 다시 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BII 서버가 어떤 역할을 한 게 틀림없다고.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그녀는 정확한 추론을 내릴 수 없었다.

BII 서버의 힘을 이용하면 레노지안 꿈을 다시 꿀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었다.

그 순간 다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에 그런 게 아니라면…….’

BII 서버, T1을 이용하면 레노지안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반대라면?

자신이 꿈을 꾸는데, T1이 강제로 딸려오는 것이라면?

‘시험해봐서 나쁠 건 없어.’

그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은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조차 아깝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회사 수면실로 향했다.

잠이 들었다고 느낀 순간, 익숙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온다.

천천히 눈을 뜬 그녀는 허리를 펴고 몸을 일으켰다. 드넓은 포렌 산악지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거대한 힘의 파동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저 먼 곳에 수면을 취하고 있는 수백 마리의 괴수 클로비의 기척이 잡힌다. 그리고 클로부 무리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진, 옛 동료들의 기척도 잡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다시 되찾은 왕비의 웃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를 반려로 두고, 또 막강한 힘을 스스로 갖춘 여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확실해.”

이 꿈은 틀림없이 진짜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이 꿈을 꿀 수 있게 된 현실 역시 진짜다.

T1과 자신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시 예전처럼 자유 의지로 레노지안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다시 만날 수 있어. 리온을…… 다시 만날 수 있어.”

한서진과 현생에서의 인연은 어긋나버렸다. 이미 그에게는 송하나라는 둘도 없는 반려가 있다.

아마 자신이 먼저 그를 만났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이곳에서는 전혀 품을 필요가 없다.

이곳은 자신만의 꿈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니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

“팀장님, 점유율이 이유없이 치솟았습니다. 접속자 수는 변함이 없는데 갑자기 5% 올랐습니다.”

“저번에 한 번 리셋했는데도 또 그러네. 대체 어떤 코드가 시스템 자원을 잡아먹는 거야.”

“어떡할까요?”

팀장은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어떡하긴. 5% 정도 가지고 리셋하긴 그러니까 서비스 그대로 진행하고, 다들 야근 준비해. 원인은 찾아야 할 거 아니야.”

============================ 작품 후기 ============================

신효진은 그렇게 2회차를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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