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53화 (553/609)

00553  T1입니다  =========================================================================

한서진은 집에 10대의 BII 장치를 설치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보급형 장치와는 생김새와 크기부터 모든 게 달랐다.

고급 가죽 시트로 된 좌석은 사람 한 명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공간감을 자랑했고, 30개가 넘는 근육 이완 모듈이 주기적으로 움직이며 사용자의 관절을 강제로 움직이게 한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다 보면 근육이 뭉치기 마련인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참고로 보급형 모델에는 겨우 10개 밖에 장착되지 않았다.

“이거예요?”

송하나가 신기한 듯이 BII 장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딱딱한 금속 표면을 어루만지는 손길에는 호기심이 잔뜩 묻어났다.

“제가 봤던 것과는 좀 다르게 생겼어요. 다른 것들은 훨씬 작고 무슨 관처럼 생겼던데.”

“고급형이라서 그래. 가격도 다섯 배는 더 비싸.”

“고급형이면 뭐가 다른가요?”

“접속 성능 자체는 다르지 않은데, 대신 신체가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보급형 모델은 한두 시간만 사용해도 좀이 쑤셔서 강제로 쉬어줘야 할 걸?”

실제로 BII 센터는 이용자들이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 두 시간으로 정해놓았다. 근육 이완 모듈이 있다지만, 두 시간에 한 번씩은 캡슐을 나와서 휴식을 취해야 신체에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월드투어VR는 SJ엔터테인먼트에서 최초로 내놓은 가상현실 컨텐츠였다. 그래서 한서진도 나름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자, 들어가자.”

“네, 오빠.”

송하나도 어지간히 즐거운 얼굴이었다.

둘은 나란히 BII 장치에 앉은 뒤, 안전장치를 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접속을 실행했다.

세상이 한순간에 암전하는가 싶더니, 한서진은 어느새 집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아늑한 호텔 스위트룸, 웬만한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에 버금가는 규모에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 정도 객실이라면 하룻밤 숙박에만 천만 원은 훌쩍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간당 2만 원이면 되지.’

한서진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시스템을 통해서 송하나를 찾았다.

“하나 ID가…… 여기 있군. 계정 동기화.”

한서진은 송하나에게 계정 동기화 요청을 보냈다.

월드투어VR는 관광이라는 특성상 기본적으로 싱글 플레이지만, 멀티 플레이 기능도 지원하고 있었다.

함께 여행 및 관광을 하는 친구에게 동기화 요청을 보내는 것이다. 그럼 친구들은 같은 공간으로 묶여,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잠시 후 송하나가 요청을 수락하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빠. 이거 되게 신기해요. 마치 진짜 호텔 스위트룸에 온 것 같아요.”

“가상현실 구현은 제법 잘 해놨어. 시각은 완벽해.”

“어색한 느낌이 아주 없진 않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 자체는 위화감이 전혀 없어요.”

시각적으로는 거의 완벽했다.

다만 사물을 만졌을 때 전해지는 촉각의 구현도는 아직 썩 높지 않았다.

원래 나무와 플라스틱, 가죽 쇼파 등은 제각각 그 느낌이 다른 법이다. 그러나 월드투어VR가 그 차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않은 탓에, 눈을 감고 만지면 이게 무엇인지 구분이 제대로 가지 않았다.

가죽 쇼파에 앉아보아도 푹신한 느낌 대신 마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듯한 느낌이 난다.

“나가자.”

“네.”

둘은 호텔을 나섰다. 호텔 정문에는 검은 리무진이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 부드럽게 출발한다.

파리의 시내 풍경이 차창 밖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활기 가득한 패션의 거리가 상큼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파리의 거리를 달리고 있는 것 같아요. 풍경이 하나도 위화감이 없어요. 사람들의 모습도 엄청 자연스럽구요.”

송하나는 신기한 듯 차창 밖에서 연신 눈을 떼지 못했다.

파리라면 그녀도 지겹게 여행을 가본 도시다. 하지만 이곳은 진짜 파리가 아닌, 0과 1로 구현되는 전자 세계. 눈에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가 별거 아닐지라도, 새롭고 신비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촉감의 구현은 미흡하지만, 시각적 구현도는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파리를 시작으로 알프스 산맥, 에베레스트 산악지대, 극지방, 아마존의 밀림 등 다양한 곳을 둘러보았다.

‘신경 많이 썼네. 열심히 만들었구나.’

한서진은 괜히 자신이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진짜 BII의 성능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못 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이나 높은 완성도를 이뤘다는 게 대견했다.

“오빠, 근데 여기 월드투어VR 관련 SNS를 보면 카지노를 꼭 가보라고 돼 있는데요?”

“카지노?”

“네, 월드투어VR의 진짜배기는 관광명소가 아니라 바로 카지노라고……. 별도 컨텐츠인가 봐요. 시간당 50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대요.”

“카지노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들 많나 보네. 어떤지 한 번 가볼까?”

“네, 저도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둘은 손을 잡고 카지노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경직되었다. 자신들이 알던 카지노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비키니를 입은 늘씬한 장신의 미녀 둘이 좌우에서 웃으면서 맞이한다. 머리를 숙이자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며 남자의 시선을 빼앗는다.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송하나에게 돌렸다.

“……이게 무슨 카지노야.”

카지노? 맞긴 했다. 곳곳에서 룰렛과 슬롯머신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룰렛과 슬롯머신 앞에서 웃음을 터트리며 도박의 향취에 몸을 던진 손님들도 제법 보인다.

문제는 카지노에 존재하는 모든 딜러와 손님들이 여자라는 것. 그리고 하나같이 아찔한 미인들이며,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곳곳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는 여러 명의 무희들이 코스튬 의상을 입고 춤을 추거나, 매혹적인 폴댄스를 선보이는 미녀들이 있었다.

“……카지노가 맞긴 하네요. 남자들이 엄청 좋아하겠어요.”

“에이, 남자라고 다 이런 거 좋아하진 않아.”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세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런 걸 싫어한다면 남자가 아니거나, 동성애자거나, 불구겠지.”

“시간당 50달러를 추가로 받는 이유가 있었네요. 이 아방궁을 사용자가 자기 혼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거잖아요.”

송하나는 팔짱을 낀 채 흐음흐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낱낱이 살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히 탐색하는 태도에 한서진은 괜히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식은땀이 났다.

“이거 설마 성 관계도 가능한 건 아니겠죠?”

“그, 글쎄?”

한서진은 얼른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촉감 구현 수준을 생각하면 그건 불가능할 거야. 가능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겠지.”

가죽 쇼파의 부드러움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데 여자 살결의 질감을 완벽하게 표현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만 나가요.”

“그래, 그러자.”

한서진은 얼른 송하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많이 삐진 게 눈에 보였다.

월드투어VR의 이용 요금은 시간당 20달러, 한국돈으로는 2만 원 정도 된다. 전 세계 2,000개의 BII센터에서 이용 요금으로 벌어들이는 일일 매출은 무려 14억 달러를 넘어선다.

그리고 카지노 컨텐츠가 있다. 카지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50달러의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 별도 컨텐츠로 벌어들이는 일일 매출이 무려 평균 6억 달러에 달했다. 이용 요금으로 벌어들이는 매출의 42%에 달했던 것이다.

“계산을 하자면 전체 이용 시간의 1/6은 카지노에서만 보낸다는 거지. 즉 6시간 이용을 하면 그 중 1시간은 카지노에만 있다는 뜻이야.”

“6시간 중 5시간은 관광을 하고 1시간은 카지노에 간다? 그런 사람은 없다에 내 손을 건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카지노에서 죽치고 있는 남자들이야.”

“아직도 월드투어VR 카지노에 안 들어가봤단 말이야? 거긴 진짜 남자들을 위한 천국이야. 석유 재벌이라 해도 그렇게 호화스럽게 놀기는 힘들걸. 수백 명의 미녀들을 마음껏 독점하는데 겨우 시간당 50달러 밖에 안 든다고!”

어느덧 월드투어VR는 여행과 관광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카지노로 더 유명해져 버렸다. 어떤 이들은 카지노VR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부르기도 했다.

평생 한 번 만나보기도 힘든 미녀들이 직원, 딜러, 손님으로 카지노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안에서 남자라고는 오롯이 접속 유저 혼자. 남자의 욕망을 남김없이 불태울 수 있는 곳이다.

남자들은 미녀들의 교태와 자태, 쇼를 마음껏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 황홀한 행복을 누리는데 드는 돈은 겨우 시간당 50달러.

카지노는 각 지역마다 반드시 존재했다. 그리고 미녀들의 생김새나 복장도 지역마다 전혀 달랐다.

그런 관광지가 무려 수백 개가 넘게 존재하니, 카지노 투어를 하는 데만도 시간이 모자랐던 것이다.

“알프스 산맥을 보는 것도 좋지만, 카지노 투어를 다 마친 뒤로 미룰란다.”

“지금 한가하게 바이칼 호나 감상하고 있을 때가 어딨어? 무조건 카지노지!”

실제로 통계를 내본 결과 성인 남자 이용자들의 80%가 여행지는 내팽개치고 카지노 투어에만 열을 올린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월드투어VR가 건전한 성 문화를 흐리고 있다며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카지노는 엄연히 인증을 마친 성인만 이용할 수 있는 성인 컨텐츠였고, 그들의 항의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포르노보다 훨씬 약한 카지노 시스템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실제로 유저는 카지노에 있는 여성 아바타의 자태를 감상하는 것만 가능하지, 실제로 스킨쉽을 하거나 성 관계를 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성 관계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그에 비해 스킨쉽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은 그다지 시도하지 않았다.

“만져봤자 사람 피부 같지 않아서…… 그냥 마네킹을 만지는 느낌이라.”

“그냥 보기만 하는 게 낫지. 멋 모르고 한 번 만져봤다가 흥만 깨졌어.”

그렇게 카지노 컨텐츠는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가상현실 컨텐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월드투어VR는 어느덧 여행 그 자체보다 성인 카지노로 더욱 유명해졌다.

물론 카지노를 이용하지 않고 가상 여행을 즐기는 일반 유저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고, 그 매출액이 더 컸다. 하지만 논란이나 이슈 자체로만 보면 이미 카지노 컨텐츠가 압도적으로 넘어섰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처음에는 시간당 50달러에 이런 호화로운 향락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다들 만족해했다. 하지만 하나둘씩 불만의 목소리,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네킹 같은 촉감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살결이 플라스틱 같은 건 너무 심하잖아.”

“뽀뽀만이라도 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 물론 할 수야 있지. 근데 하고 싶지가 않은 촉감이라 그렇지.”

그런 불만은 당연하게도 하나의 마음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요금 더 올려도 괜찮으니까 실제 관계가 가능하게 만들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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