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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48화 (548/609)

00548  눈을 더 크게  =========================================================================

최수한은 큰 충격에 빠진 채 굳어 있었다.

한서진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게 아니었다.

오래 전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긴 했지만, 한서진이라면 CIA의 모든 기밀 자료를 손에 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CIA에서 철저하게 폐기한 정보조차도, 그에게는 복원 가능한 데이터에 지나지 않으리라.

다만 그동안 그가 철저하게 모른 체 일관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금도 느끼지 몰랐던 것은 스스로를 질책할 일이었다.

‘내가 늙긴 늙었구나. 그 정도도 깨닫지 못하다니.’

한서진이 자신의 눈앞에서 엘릭서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때 이미 알아차렸다. 바로 그가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사자 부활의 기적을 보여준 의미를 깨달아야 할 때였다.

“본부와 마음 놓고 통신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저는 전 직장 동료들과 소통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 권장하고 싶습니다. CIA는 평소에도 저와 밀접하게 얽혀 있으니, 최 집사님 같은 분이 적극 나서주시는 게 저도 편하지요.”

지금 분명히 말했다. ‘전 직장’이라고.

자신이 CIA 요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봉을 500억 원(심지어 실수령액)으로 올려준 것.

당당하게 사자 부활의 기적을 보여주고, 그것을 보조하게끔 시킨 것.

그리고 ‘전 직장’이라는 단호한 언급.

“요원 워렌 카린스는 이제 잊으세요. 남은 인생은 집사 최수한으로만 살아 주십시오.”

“박사님, 저는…….”

자격이 없다, 어쨌거나 당신을 지켜보기 위해 속이고 그간 곁에 머무르지 않았느냐, 그런 인간적인 양심이 섞인 대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연봉은 두 배로 올려드리죠. 물론 실수령액 기준입니다.”

그러나 한서진은 그가 대답을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최수한으로서도 숨이 떨릴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아무리 한서진이 지구 역사상 다시없을 자산가라 하지만, 일개 총집사에게 연봉 천억 원(심지어 실수령액)을 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천억 원…… 1억 달러…… 실수령……’

요원 워렌 카린스로서 수십 년 간 필드에서 활약했던 지난 날.

조국과 자유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채,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치열한 첩보계를 질주했던 시간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원동력인 그 뿌듯한 과거가, 지금 머릿속에서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그리고 무수한 지폐다발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돈에 넘어가서 국가를 저버린 배반자들을 경멸했었다. 아무리 큰돈이라 해도 애국심을 겨우 물질적인 것에 팔아넘길 수 있느냐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국을 팔아넘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요원 카린스에서 집사 최수한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 아닌가.

오히려 CIA 상부에서도 박수를 치며 반길 것이다. 부국장은 CIA 전체 차원에서 화려한 은퇴식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부족하지만 진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총집사님.”

그가 부르는 호칭이 최 집사에서 총집사로 칭호가 바뀌었다.

이때만 해도 최수한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굳이 성지연 씨에게 그런 기적을 베풀어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총집사님은 성지연 씨와 친하지 않던가요?”

“물론 친합니다. 하지만 이건 박사님께 고용인으로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엘릭서 때문에 박사님을 귀찮게 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세상에 드러날 만한 위험을 감수하신다는 것은…….”

“그냥 내일부터 성지연 씨가 만든 갈비탕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253명.

작년 한해, 끝내 찾지 못한 실종 미아의 숫자였다.

성지연 같은 부모가 한 해에 수백 명 넘게 발생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늘의 눈동자를 더 확장할 마음이 없던 한서진은 성지연 사건을 계기로 다른 영역에도 눈을 돌렸다.

“범죄 억제 확장에는 무리가 있어요. 하지만 미아 찾기라면 상관이 없겠죠.”

최수한은 말끔한 나비넥타이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총집사의 모습, 하지만 그는 지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서진은 그의 얼굴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하늘의 눈동자는 응용하기에 따라서 일정 범위 내의 모든 사람들의 유전 정보까지 개별적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 기능을 실종 미아 찾기에 활용하면 유용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총집사님이 듣기에는 어떤가요? 괜찮은 발상 같나요?”

“아, 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실종 미아, 나아가서 실종자 해결에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최수한은 당연히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한서진은 성지연의 유전 정보 대조를 통해 이미 죽었던 그녀의 딸을 정확히 찾아냈다.

한국에 존재하는 유기물 전체를 동시에 스캔 및 추적할 수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범죄 행위를 상시 추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람의 개별 유전 정보까지 앉은 자리에서 스캔할 수 있다니.

이것이 정녕 과학이기는 한 건지, 최수한은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그것이 최수한이 느끼는 의문점이었다.

내가 왜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미아를 찾는 과정을 공개할 필요도 없습니다. 미아 탐색 서비스를 개설하고, 미아 부모들로부터 형식적으로 면담을 갖고 자료를 수집하겠어요. 물론 진짜 수색은 부모의 유전 정보를 채취한 뒤 하늘의 눈동자를 이용해 일치하는 대상을 찾는 식으로 하면 되겠죠.”

“많은 미아와 그 부모들이 빛을 찾을 수 있겠군요.”

“총집사님이 듣기에도 괜찮은 생각 같나요?”

“예, 괜찮은 생각입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대중에 하늘의 눈동자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실종 미아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총집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종자 탐색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그런데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한 번 거쳐 듣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사실 그동안은 딱히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신효진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와는 거의 레노지안에 한정돼서 이야기를 나눈다. 심도 있는 조언을 기대하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첩보 세계에서 수십 년 이상 활약한 엘리트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거 좋은 건가?’

한서진이 자신을 덮어놓고 믿어준다는 뜻일까? 최수한은 그의 신뢰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편으로는 발목이 아래로 잠기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굳이 실종 미아에만 한정하지 않고 실종자 수색이라는 컨셉으로 나가면 적당할 듯합니다. 외부에 보이는 시선도 필요하니 규모도 일정 이상 갖춰야겠지요. 투자, 아니 지원하는 예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박사님께서 진심으로 재능 기부를 한다고 여길 겁니다.”

“예산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적어도 연간 1조 원 이상은 해야 사람들이 진심으로 알고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일이라 전 백억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사람들의 대대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슈거리가 필요합니다. 박사님의 이름값과 조 단위 예산, 이 정도면 충분한 홍보가 됩니다.”

한서진은 신중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고, 최수한은 쉬지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박사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수색 서비스 제공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 시스템이 빠른 시일 내에 자리 잡을 수 있기 위한 하이패스 비용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그 돈을 다 지출할 방도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럽니다.”

“회계 조작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정 뭐하면 다른 목적으로 자선사업이라도 하면 됩니다. 어차피 정부에서 문제 삼지도 않을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한서진은 마음을 굳힌 듯이 보였다.

최수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하늘의 눈동자 운용에 있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감히 여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질문하셔도 됩니다. 대답하기 난감하면 제가 알아서 커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장했는지 목을 잠시 풀고 난 뒤, 최수한은 말을 이었다.

“범죄 억제 시스템…… 사실 하늘의 눈동자 작동 원리와 운용 규모를 보면, 꼭 폭력 행위와 연관된 범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시리아 사건을 보면, 저는 박사님이 전 인류의 인격에 내재된 폭력성 그 자체를 제거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죠.”

한서진은 덤덤히 대답했고, 최수한은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시리아 사건, 그 경이로운 결과를 보면 자신이 방금 말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테니까.

“그런데 왜 실행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하늘의 눈동자보다 훨씬 효율적일 텐데요.”

“인간, 아니 인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요.”

“…….”

“그리고 그것은 인류 전체에 대한 또 다른 독재이자 탄압이며, 테러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 최소한으로 규범과 절차를 무시한 개입이었어요. 그 이상의 무단 개입은 저의 양심상 아직 힘듭니다.”

최수한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동시에 한서진이 가진 신중함을 느꼈다.

그는 거대한 힘을 쥐고 있으면서, 그 힘을 안전하고 최소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서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리아 사건은 사실 제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기동 테스트 중에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죠.”

“기동 테스트요?”

“네, 타르타로스 3의 기동 테스트였죠.”

“타르타로스 3?”

처음 듣는 명칭에 최수한은 잠시 흠칫했고, 한서진은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제가 독자적으로 만들어서 운용하는 개인 수퍼컴퓨터를 타르타로스 시리즈라고 합니다. 1과 2는 같은 1세대 모델로, 케르베로스라는 종합 CPU를 탑재해서 제작했습니다. 2의 경우에는 그 수가 훨씬 많지요.”

“…….”

“1은 얼마 전까지 재해 예측 모듈을 돌리다가 지금은 SJ엔터테인먼트에서 BII 가상현실 개발 작업에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는 크게 재해 예측 모듈과 재정 감시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지요. 그밖에도 남아도는 리소스로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습니다. 둘 다 에테르를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요.”

“그럼 3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물질로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의 수퍼컴퓨터…… 아니, 이미 컴퓨터라고 부르기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 버린 녀석이죠. 그 녀석이 바로 하늘의 눈동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실례지만 하늘의 눈동자를 가동하는데 들어가는 시스템 점유율은 얼마나 됩니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해놓고 최수한은 곧바로 후회했다. 왠지 자신이 알아서는 안 될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시리아 사건을 작업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스템 가동률은 1% 미만으로 훨씬 밑돌았고요.”

왠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에, 최수한은 대화를 계속 이어가도 되는지 고민했다.

‘박사님이 원하는 바람직한 총집사란 대체 어떤 역할이지?’

============================ 작품 후기 ============================

나와 계약해서

가문의 충실한 집사로‘만’

영원히 대대손손 남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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