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6 눈을 더 크게 =========================================================================
한적한 어느 못 주변에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졌다. 여러 대의 경찰 차량이 인근까지 진입해 있고, 주변 곳곳에서 경찰들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예, 피의자 모친이 진술한 복장과 일치합니다. 용의자 복장도 CCTV에서 확인된 것과 일치하고요. 정확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유괴당한 조세희 양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진 촬영을 비롯한 현장 보존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난 뒤, 두 시신은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올랐다. 현장팀은 차량 두 대를 동원해서, 각기 다른 차에 실리도록 배려했다.
“더 수색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실족으로 인한 익사인데요.”
“용의자 신원은 확인됐나?”
“지금 조회 중입니다. 소지품에 신분증이 있어서 다행이죠. 쓸데없이 시간 끌 일 없으니까요.”
정황은 의외로 단순했다.
용의자는 피해 아동을 안고 다급히 못을 건너다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고, 그대로 물에 빠져서 익사했다. 몸을 거동하지 못하는 피해 아동 역시 용의자의 몸에 눌린 채로 물에 빠진 채로 사망했다.
‘하긴, 유괴해서 살인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타인을 해하려는 자는 즉시 전기 충격을 받고 움직임을 봉쇄당한다.
적어도 경찰들 세상에서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아닌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상파 언론이나 메이저 포탈 등에서는 여전히 철저하게 배격되고 있었다. 정부가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무언가 조치를 취한다, 그런 이야기가 공론화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무섭게 삭제된다.
‘어린 아이를 몰래 안고 가는 것까지는 제지하지 못하나.’
미지의 강력범죄 예방 시스템은 폭력이 수반된 가해 행위에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반장님, 용의자 집을 찾았습니다!”
“그래? 어딘데?”
수사반장은 질문을 하면서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멀지 않습니다. 바로 이 근처랍니다. 지금 수색대원들이 그 집을 찾으러 갔습니다.”
“바로 가지. 자네가 안내 해.”
“예!”
“여기 수색도 빨리 마무리 지으라고 해.”
반장은 즉시 차를 타고 용의자의 집으로 이동했다. 용의자의 집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전원주택이었다.
집은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반장은 폴리스 라인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색대원들이 한창 빈집을 뒤지며 범행에 관련된 증거가 없는지 찾고 있는 중이었다.
“별다른 게 없는데…….”
반장은 어느 방에서 문득 멈췄다.
그곳은 온갖 아기 용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방이었다. 최근까지 사용했었던 듯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있었나?’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부하 직원이 숨이 차도록 달려와서 그를 찾았다.
“반장님! 알아냈습니다!”
“뭔데?”
“용의자 말인데요, 2년 넘게 극심한 우울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울증? 조현병?”
“네,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어버렸는데 그 뒤로 우울증과 조현병이 심하게 도져서 엄청 고생했다고…… 남편도 견디다 못해서 별거한지 제법 됐다고 합니다. 아직 이혼을 한 건 아니었고요.”
“…….”
너무 손쉽게 그려지는 그림에, 반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바람에 가만히 흔들리는 딸랑이를 조용히 주시했다.
어린 딸이 돌아왔다. 싸늘한 시신이 된 채.
범행 동기와 죽음까지의 과정은 성지연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 어떤 이유라 해도 딸의 죽음이라는 그 사실 앞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겠지만.
딸의 시신을 확인한 성지연은 통곡을 쏟아내다가 그만 의식을 잃었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흰 천장이 보이는 병실 침대 위였다.
차라리 모든 게 꿈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물에 빠져 죽은 처참한 딸의 모습이 생각난 순간 또다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저벅거리는 구두소리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울음소리를 냈다.
“……성지연 씨.”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힘들게 눈을 돌린 성지연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상대는 바로 한서진이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조이는 것 같았던 그녀의 고용주.
“바, 박사님……. 감사합니다. 저희 딸을 찾아주셔서…….”
그 와중에도 성지연은 용케 한서진이 힘을 써주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흐느낌 섞인 감사를 전했다. 이제 막 딸의 죽음과 부딪친 그녀로서는 기적 같은 이성 유지였다.
“유감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흐윽, 흑…….”
진심이 느껴지는 위로에 성지연은 또다시 오열만 쏟았다.
그가 왜 직접 병실까지 자신을 찾아와서 위로를 건네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딸아이의 처참한 모습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저는 성지연 씨 요리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성지연 씨가 하루빨리 복귀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성지연은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딸을 잃은 어미 앞에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슬픔에 비례한 분노가 순간적으로 터져 나올 뻔했으나, 기적처럼 이성이 그것을 억눌렀다.
“아시겠습니까? 이제부터 제가 해드리려는 것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부담도 가질 필요 없습니다.”
“박사님, 어떻게 저에게 그러실 수…….”
“다행히 따님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순간 성지연은 둔탁한 무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껴야 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잘못 들은 건 아니지?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던 슬픔이 마치 거짓말의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운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희망과 기대감뿐이었다.
어느새 눈물이 멎었다. 성지연은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한서진은 가만히 그녀의 팔뚝을 잡으며 제지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아…….”
성지연은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 이게 꿈일 가능성, 그런 일체의 의심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서진, 그라면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제한 없는 기대감. 그것만이 가슴을 불태우고 있었다.
조건?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평생 노예가 되라고 해도 기꺼이 따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와 평생 내기 하나를 하는 겁니다. 딸이 죽었다가 살아난 걸 주변에 숨기세요. 이미 알고 있는 가족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고 평생 감추세요. 당연히 가족들도 이 내기에 영원히 참가해야 합니다.”
“아…….”
“만약 내기에 지면 따님은 다시 죽게 됩니다. 정말 어렵지 않은 대가죠?”
성지연은 온화한 그의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협박하거나 겁을 주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켜주기 위해서 그런 제안을 덧붙인 것이다.
“따님의 기존 주민등록은 사망 처리하고 새로운 주민등록을 만들 겁니다. 물론 아무 이상도 없는 완벽한 신원 창조 작업을 거칠 테니 안심하세요. 싱글맘이죠? 성지연 씨만 비밀 누출을 조심한다면,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을 겁니다.”
한서진은 성지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그녀의 의사를 확인했다.
“받아들이겠어요?”
성지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은 한서진을 가장한 천사나 신의 제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받아들일게요. 고맙, 고맙습니다. 박사님…….”
한서진은 가만히 끄덕인 후 작게 손뼉을 쳤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들어온 남자를 보자 성지연은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집사님…….”
“지연 씨.”
집사 최수한은 조그마한 이동 침대를 밀고 들어왔다. 침대 위를 덮은 흰 시트가 조그맣게 볼록 솟아 있었다. 성지연은 그 아래 뭐가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시트를 걷어내자 죽은 딸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지연은 그것을 보고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건 어쩔 수 없이 몸에 각인된 반사작용이었다.
“시작합니다.”
한서진은 덤덤히 말한 후,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작은 앰플을 하나 꺼냈다. 뚜껑을 연 뒤, 죽은 아이의 입을 벌리고 그 안에 가만히 흘려 넣는다.
신기하게도 앰플에 담긴 액체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고 입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액체 그 자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때였다.
파랗게 경직된 아이의 피부에 어떤 변화가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육안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변색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중심으로 불그스름한 혈색이 돌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곧 천천히 가슴으로, 배로, 어깨로, 손으로, 다리로, 발가락으로 뻗어나갔다.
피부 아래에서 요동치는 생명의 고동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듯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적에 성지연은 그만 입을 틀어막은 채 굳어버렸다.
그것은 감동이라는 시시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었다.
그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막대한 축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곧이어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졌다. 눈을 뜬 아이가 시끄럽게 울며 엄마를 찾는다.
성지연은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쏟았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샘 어디에 또 그게 남아 있었는지. 가까스로 일어난 그녀는 울며 보채는 아이를 안고, 소중히 품에 안았다.
한서진은 등을 돌리고 병실을 나섰다.
그때 조용한 흐느낌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사님. 약속, 약속은 제가 꼭 지킬게요.”
한서진은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죠? 성지연 씨 요리를 못 먹었더니 입맛이 영 없어서요.”
“네! 네!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사님!”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려냈는지, 그 액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서진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런 세속적인 질문을 떠올릴 겨를은 없었다.
무참히 깨졌던 희망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흉터 하나 없이 아물어서 돌아왔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조용히 한서진의 뒤를 따르던 최수한이 물었다.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반문했다.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알려지면 세상이 뒤집어질 겁니다. 아무리 박사님이라 해도…….”
“아무리 저라 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
최수한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사자부활의 권능, 누구라도 탐욕을 낼 놀라운 기적의 보물.
그 존재가 알려진다 해도, 과연 한서진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을까?
“엘릭서는 어차피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못합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미국이, 러시아가, 그리고 한국 정부와 여러 권력자들이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을 겁니다.”
“…….”
“그들 역시 저에게 엘릭서를 요구하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엘릭서를 숨겼던 것은 그저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걸 방지하고자 함이지, 지킬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니, 지킬 힘을 운운하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최수한은 힘들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요, 미스터 카린스?”
“…….”
“CIA 요원 리스트에서도 오래 전에 영구 삭제 된 최고의 첩보원. 오랜만에 본명으로 불리니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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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이 지나치게 완벽한 집사는 반드시 의심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