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5 눈을 더 크게 =========================================================================
미국 명예시민이 된 이후, 한서진은 사람들이 자신을 몹시 어렵게 대하는 것을 느꼈다.
당시에는 그런 태도의 변화가 낯설게 느껴졌다. 거리감 없이 대하던 이들마저 조금씩 공손하게 태도가 바뀌어가는 것에 씁쓸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한서진은 사람들이 자신을 몹시 어려워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그런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것은 거만이나 권위적인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변화에 익숙해진 것이고,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전체를 쓸어버릴 수도, 지배할 수도 있는 인물이 바로 자신이었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소행성 채취, 금 소행성 소환, 의약품 H시리즈 개발, 그리고 웜홀 공개 등의 업적을 쌓으면서부터는, 주변 시선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을 정도다.
그래도 가끔은 평범하게 사람들과 부대끼고 지냈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H반도체에 갓 입사했을 때가 정말 재미있었던 때였어.’
통찰안 외에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시절.
아니, 즉석복권 당첨금으로 오피스텔을 샀으니, 그래도 든든한 내 집 한 채는 있었다고 해야 하나?
반도체 설계 능력을 인정받고, 반도체공학기사 시험을 무난하게 패스하고, 그리고 맥플의 AP 반도체를 개량하여 회사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시절이, 마치 까마득한 과거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때는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재미가 있었는데.’
야금야금 통장 잔고를 늘리고, 실력을 축적하고, 설계 회사를 설립해서 백철중의 인정을 받고.
그렇게 성장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재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미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고, 또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지거나 이룰 수 있는 입장 아닌가.
‘치트키 쓰고 게임하는 기분이네.’
처음에는 압도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어서 재미있지만, 금방 모든 게 시들해진다.
아직 눈이 남아 있는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송하나, 한서진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러 가까이 당겼다.
“검진은 받았어? 의사는 뭐래?”
“아주 건강하대요. 그리고 딸이래요.”
“아, 정말? 꼭 자기를 닮아야 할 텐데.”
“근데 원래 첫 딸은 아빠를 닮는다던데.”
“안 돼. 무조건 자기를 닮아야 해.”
“아이, 오빠도 잘생겼는데 왜 그래요?”
“그래도 내 유전자가 자기 유전자를 때려눕혀서 딸이 내 얼굴 갖고 태어나면 엄청 미안할 것 같단 말이야.”
한서진은 유명한 모 프로레슬러 선수와 그 딸을 떠올리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엄마는 하나도 닮지 않고 우락부락한 아버지의 잘생김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 딸을 생각하면,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럼 얼굴은 저 닮고, 머리는 오빠 닮는 걸로?”
“하나 더. 몸매도 자기 닮아야 해.”
“조합이 잘 됐겠죠?”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기댔다.
둘은 정원을 거닐며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즐거운 미래를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아직 쌀쌀하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네, 저도 조금 춥네요.”
한서진은 송하나를 데리고 본채로 들어왔다.
최수한이 시간을 맞춰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둘이 자리에 앉자 요리사들이 차례차례 들어와서 음식을 날랐다. 곧 특급호텔 코스 같은 화려한 음식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식사를 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갈비탕이 없네요?”
전속 요리사 중 한 명이 자신만의 비법으로 만드는 갈비탕은 그 맛이 무척이나 뛰어나면서도 담백해서, 한식 코스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게 빠져 있었다.
최수한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성지연 요리사가 결근 중이라서 오늘은 메뉴에서 빠졌습니다.”
“결근이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아쉽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인데.”
최수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났다. 한서진은 그의 미소가 왠지 마음에 걸려, 수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최 집사님.”
“예, 박사님.”
물러가려던 최수한이 멈칫해서 한서진을 향해 목례했다.
“집사님 표정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성지연 요리사한테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본인 문제는 아니고 가족 문제 때문에 출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문제인가요?”
“그것이…….”
“만약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군요. 이래봬도 제가 고용주 아닙니까? 그것도 힘 쎈 고용주잖아요.”
최수한은 말을 해도 되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정을 내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지연 요리사한테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이틀 전에 그만 잃어버렸답니다.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 중이었는데 물건을 잠시 고르는 사이에 누가 안고 갔다고 합니다.”
“저런. 아직 못 찾았나요?”
“경찰에 신고도 했고 CCTV에도 찍히긴 했는데, 어느 순간 CCTV 화면에서 추적이 끊어진 터라…… 그래도 열심히 수사 중이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성지연 요리사가 충격이 워낙 커서…….”
“이해합니다.”
한서진은 조용히 혀를 찼다.
어린 딸을 잃어버렸으니 그 어미의 심정이 오죽할까. 일이고 뭐고 세상이 다 무너진 기분일 것이다.
‘왜 하늘의 눈동자가 반응하지 않았…… 하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어.’
하늘의 눈동자는 폭력 행위가 포함된 강력 범죄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저항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그저 안고 움직이는 것에까지 반응하진 않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폭행, 상해, 강간, 강도, 살인 등의 강력 범죄에만 적용했었기에 발생한 맹점이었다. 한서진은 입맛이 썼다.
“성지연 요리사님 요리는 저도 좋아하는데, 진짜 안 좋은 일을 당했네요. 혹시 오빠가 찾는 거 도와주면 안 돼요?”
“내가?”
한서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곧 끄덕였다.
“그래, 내가 직접 도와주면 더 빨리 끝날 수도 있겠네.”
최수한의 안색도 환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제가 경찰에 연락을 해서 수사 자료를…….”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한서진이 잘라서 거절하자 최수한은 조금 당황했다. 도와준다고 했으면서 수사 자료가 필요 없다니?
“그것보다는 지금 성지연 요리사한테 연락해서 딸 수색 작업에 필요하니 당신의 유전 정보를 활용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해주세요.”
“유전…… 정보 말씀이십니까? 양해를 구하라고요?”
“네, 그거면 됩니다.”
최수한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서진은 곧장 그 자리에서 곧장 BII로 접속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소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요식 행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있어야지요. 바로 전화해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최수한이 급히 한쪽으로 달려가서 전화를 거는 동안, 한서진은 이미 수색 작업을 위한 밑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성지연 씨가…… 여기 있군.’
그는 하늘의 눈동자를 통해 어렵지 않게 성지연의 위치를 찾았다. 그녀는 얼굴이 온통 눈물로 얼룩진 채 경찰을 상대로 열심히 호소하는 중이었다.
최수한 때문에 전화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느끼지 못한 채 울며불며 사정 중이었다.
‘일단 성지연 씨 유전 정보는 채집했고.’
타르타로스 3는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는 에테르를 조율하여, 그녀의 세포에 담긴 유전 정보를 정확히 스캔했다.
‘다음으로는 국내에서 친자 일치가 성립하는 유전 정보를 찾아보면 되겠지.’
타르타로스 3는 곧 국내 전체의 모든 인간들의 유전 정보를 스캔해서, 성지연과 친자 일치가 성립하는지 하나하나 대조했다.
수천 만 명이 넘는 인간을 대상으로, 그것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원격으로 유전 정보를 채집하여 비교하는 막대한 작업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일을 마치는 데는 고작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친자 일치가 성립하는 반응이 하나 나왔다. 바로 충청도의 어느 도시였다.
그러나 한서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성지연 씨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 성지연 씨 모친인가 보네.’
유전 정보가 일치하는 반응은 성지연의 모친, 딱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설마 벌써 국외로 나갔나?’
유괴범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한서진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곧장 스캔 범위를 국외로 확대했다.
타르타로스 3를 중심으로 반경 5,000km까지 1차적으로 확대해서 일치하는 유전 정보를 지닌 대상을 찾았다.
‘없어?’
반경 5,000km면 충분히 먼 거리다.
이틀 전에 잃어버렸다고 했으니, 넉넉히 48시간을 잡는다 해도 그 안에서 나와야 정상이다. 유괴범이 항공기를 타고 나갔어도 그 사이에 5,000km 밖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조급해진 한서진은 급히 관찰 영역을 지구 전체로 확대했다.
소용없는 짓인 건 알고 있었다. 이틀 전에 유괴한 범인이 그 사이에 한국에서 5,000km 밖을 벗어나려면 전투기라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없다…….’
정수리에 한기가 내려앉는다.
그는 눈을 돌려 성지연이 최수한과 통화하는 것을 관조했다. 한서진이 도와준다는 말에 그녀는 큰 희망을 찾은 것처럼 울먹이며 연신 고맙다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가슴이 무거워진다. 마치 아이가 납치된 게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박사님, 성지연 씨와 통화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으니 제발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생기에 찬 최수한의 목소리. 그러나 비극적인 대답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에, 한서진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그의 안색을 알아차린 송하나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오빠, 설마…….”
한서진은 대답 대신 타르타로스 3를 제어하는데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검색 조건을 다시 수정했다.
성지연과 유전 정보가 일치하는 대상을 찾을 것.
생명 활동을 정지한 세포도 대조 대상에 포함할 것.
검색 조건이 수정되자 타르타로스 3는 즉각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 위치는 바로 서울 어느 외곽 지역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생명 활동을 정지한 조그마한 개체는 성지연과 일치하는 유전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 옆에 죽은 성인 여자의 반응이 잡혔다.
“서울 외곽 A동 XXX번지에 있는 한적한 연못…… 아마 범인이 아이를 안고 지나가다가 실수로 물에 빠진 것 같습니다.”
살해 의도가 없었던 사고사. 아마 서둘러 도망쳐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쫓겨서 발생한 참사일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눈동자가 관여하지 않았다.
평소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최수한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한서진은 씁쓸한 목소리로 통보했다.
“유감입니다.”
============================ 작품 후기 ============================
한 살 더 먹기 전에 완결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