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3 새 터전 =========================================================================
SJ게이트.
지주회사인 에스코너 산하 계열사로, 웜홀 설치와 관리, 운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각 나라의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상대로 교섭을 벌여 웜홀망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또한 이권을 얻는 사업을 전반적으로 담당한다.
SJ게이트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현재까지 해외지사는 ‘SJ게이트코리아’ 하나뿐이다. 아직 미국과 한국도 설치가 덜 끝났는데, 타국에까지 웜홀을 설치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 모든 웜홀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회사, 그 막강한 회사의 경영권을 크리스 전 대통령이 쥐게 되었다.
안타까운 타이밍으로 사임을 해야 했던 크리스 대통령의 화려한 부활에, 미국 사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동안 정가에서 모습을 안 보여서 무슨 일을 하나 했더니…… 이런 놀라운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SJ게이트 최고경영자면 어떤 면에서는 미국 대통령보다 더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거 아닌가?”
하물며 그 최고경영자가 전직 미 대통령이고, 현직 미 대통령이 그의 오른팔 아닌가.
이 절묘한 조합이 미국의 위상을 어디까지 빛내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국 시민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크리스 대통령은 전미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서 화려한 취임식을 치렀다. 수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그의 취임식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웜홀 사업은 인류의 삶의 질을 몇 십 배 이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줄 보배입니다. 저는 SJ게이트의 최고경영자로서 미국, 나아가 전 세계 인류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이 한 몸 이바지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비운의 대통령으로 반 조롱까지 당했던 크리스는 그렇게 화려한 복귀전을 마쳤다. 그를 잊고 있던 수많은 권력자, 자본가들이 앞을 다투어 찾았다.
미국 각 주의 주지사 및 주의원들은 자신들의 주에 웜홀 설치 우선권을 가져오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녔다.
그 모든 전권을 행사하는 크리스의 위상은 당연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앞으로 SJ게이트를 잘 부탁합니다.”
“환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마음 편히 반도체 회사로 돌아갈 수 있겠군요. 사실 회사 두 개를 책임지느라 그동안 좀 힘들었습니다.”
SJ게이트의 CEO 대행을 맡고 있던 정지원은 미련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SJ게이트의 미래 위상이 대단하긴 하나 SJ인더스트리 역시 이미 완성된 제국이다.
그리고 자신은 SJ인더스트리의 주주이자 최고경영자였다. 크리스가 휘두르게 될 전권이 막대하긴 하나, 따지고 보면 지분 한 조각 없는 월급 사장 아닌가.
‘크리스야말로 SJ게이트의 최고경영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지. 그 이상 가는 적임자는 없어.’
정지원은 내심 그렇게 인정하고 있었다.
자수성가한 금융 재벌 기업가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세계 국정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인물. SJ게이트의 사업 특성을 생각하면 크리스 이상 가는 인물은 없으리라.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크리스는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한서진이 가지는 SJ게이트의 경영 철학은 실로 간단했다.
‘인류 절대다수의 풍요와 편의를 증진시키는 데 목적을 둘 것.’
돈을 벌어서 이익을 남긴다는 목적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웜홀망을 인류의 행복 증진을 위해 쓰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익 창출을 굳이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SJ게이트는 결국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웜홀을 지배한다는 것은 전 세계 유통을 독점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반독점법 따위로 우리 회사를 제어할 순 없지.”
유럽 등 선진국들은 독점적 상업행위를 매우 경계하며, 막대한 징벌을 부과한다.
하지만 웜홀처럼 대체 불가능한 영역에도 과연 그렇게 처신할 수 있을까?
“미국 내 웜홀 설치에만 몰두하는 것은 회사의 역량을 낭비하는 짓이다. 앞으로는 회사의 역량을 둘로 나누어 20% 정도는 국내에, 그리고 80%는 해외에 쏟아 붓는다.”
크리스는 경영 방침에 있어 파격적인 전환을 꾀했다.
“이미 정말 중요한 도시들 사이에는 웜홀 설치 작업이 끝났다. 미국 내에 촘촘한 웜홀망 구축은 훗날로 미뤄도 된다. 이제부터는 미국과 평성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하나로 이을 때다.”
미국 내 모든 도시 간에 웜홀을 설치하고, 그 도시 내부에 또 다시 지하철과 택시, 자동차가 필요 없을 만큼 촘촘히 웜홀을 설치하는 것.
미국 어느 지역이든 걸어서 갈 수 있게끔 만든다는 계획은 대단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렇게 무수한 웜홀망을 구축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크리스는 그보다는 주요 도시끼리만 연결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한편, 동시에 세계 중심 도시 간에 연결을 추진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보았다.
“미국 내부만 먼저 완성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게 기염을 토한 크리스는 먼저 뉴욕―런던 웜홀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에 유럽은 물론이고, 좀 산다 싶은 전 세계 부유국들이 모두 술렁거렸다.
“나라 간 웜홀을 설치한다고? 벌써?”
“한국과 미국 내부 웜홀망부터 다 완성되고 나서야 해외에 진출을 할 줄 알았더니……. 크리스 전 대통령이 과감한 결정을 내렸네.”
“사실 이게 맞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를 자유롭게 오가는 정도면 됐지, 캘리포니아 몇 번지에 있는 커피숍까지 웜홀만 타고 가려는 건 현재로서는 조금 비효율적이야. 그보다는 해외 다른 도시들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수준으로 갖춰나가는 게 훨씬 낫지.”
“수익 면에서도 그렇지. 역시 기업가 출신이라 그런지 뭐가 중요한지 잘 안단 말이야.”
“흠…… 크리스 대통령은 어쩌면 미국 대통령보다는 SJ게이트 CEO가 훨씬 적성에 맞는 걸지도.”
크리스는 뉴욕―런던 웜홀 설치를 위해 직접 영국까지 날아가서 수상과 협상을 벌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통령이었던 인물이니만큼, 영국 수상으로서도 일개 기업가로 그를 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은 오랜 혈맹, 협상은 당연히 크리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사흘에 걸친 협상 끝에 영국과 SJ게이트는 파격적인 내용의 MOU를 발표했다.
―SJ게이트 영국지사를 별도로 설립하거나 운용하지 않는다. 영국에 설치되는 모든 웜홀 게이트는 어디까지나 미국 SJ게이트 본사가 소유권을 가지고 운영한다.
―영국 내에서 웜홀 이용시, 영국민들이 직접 SJ게이트 본사에 요금을 지불해서 이동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본다. 고로 지불 요금에 관해서 영국은 소득세를 부과하지 못한다.
파격적인 협상 내용에 유럽을 비롯하여 웜홀 설치 순위만 손꼽아 기다리던 국가들은 크게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리야 대체?”
“그러니까 SJ게이트 영국 지사를 두지 않겠다, 그리고 미국 본사에서 모든 걸 직접 운영하겠다, 지불 요금은 영국이 미국 측에 지불하는 무역 대금이다…… 한 마디로 웜홀 서비스 자체를 미국이 영국에 판매하는 무역 사업으로 보겠다는 소리네?”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미국 기업이 영국 내에서 사업이나 소득 활동을 벌이는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셈이 되는 거지. 그럼 영국 정부에 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어지잖아.”
“한 마디로 영국에서 웜홀 사업으로 소득이 생겨도 그걸 미국 내에서 발생한 소득으로 보겠다는 소리잖아. 그럼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겠네.”
논란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엄연히 말해서 웜홀 사업은 타국 내에서 벌이는 소득 활동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인정치 않겠다는 것 아닌가.
당연히 영국을 제외한 여러 나라에서 온갖 항의가 들어왔다. 어떤 나라는 이런 식이면 자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에 대한 SJ게이트의 답변은 간단했다.
“귀국에서 웜홀 서비스를 운영할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럼 누가 더 큰 손해일 것 같습니까?”
“…….”
“어차피 웜홀 설치 속도는 한계가 있고, 설치해달라고 줄을 선 국가는 많아요.”
대체 불가능성과 절대적인 필요성.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웜홀 앞에서, 다른 국가들의 반발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몸짓일 뿐이었다. 하물며 SJ게이트 본사가 있는 거주국은 세계 최강국 아닌가.
덕분에 크리스는 미국의 국익을 높이 끌어올린 영웅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 크리스 대통령이다! 가차 없지!”
“기업가 출신으로 세계 국정까지 운영해본 경험이 어디 가지 않네.”
“혈맹인 영국부터 공략한 건 참 잘한 결정이었어. 다른 나라들은 이제 눈치 게임을 할 수밖에 없으니.”
유럽 측에서는 담합을 통해 영국―SJ게이트 간 MOU에 담긴 내용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개의 국가만 이탈해도 그 담합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만다.
오히려 크리스는 강수를 두었다.
“왜 우리 독일에는 오지 않는 겁니까?”
“당분간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와는 협상 테이블을 열 계획이 없습니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있습니다.”
담합을 주도했던 국가들은 아예 협상 순위에서 제외시켜버림으로써 국제 사회에 엄중한 경고를 주었다.
‘허튼 짓 하면 무조건 순위에서 밀려날 줄 알아!’
결국 담합을 통해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하던 움직임은 없던 것처럼 흐지부지되었다.
뉴욕―런던 웜홀 설치에 관한 협상을 마친 뒤, 크리스는 러시아로 날아갔다.
그는 국가수반에 준하는 영전을 받으며, 모스크바에 화려하게 들어섰다.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듯이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그런 화려한 영전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미국 시민들은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누가 보면 전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방러한 줄 알겠네.
―지금 러시아 영전 등급이 최고 수준이라는데? 미국 대통령 맞이하듯이 대우하고 있는 게 맞아.
―전직 대통령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지금은 기업인인데…… 러시아 대통령이 작정을 했구나.
러시아와 SJ게이트의 협상은 그렇게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치러졌다.
협상은 불과 이틀 만에 끝났고, 러시아 대통령과 크리스는 환한 미소를 띤 채 동반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SJ게이트와 러시아는 캘리포니아―블라디보스톡을 잇는 웜홀을 즉각 설치하기로 협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협상 내용은 영국의 경우와 똑같았다.
웜홀 서비스는 미국이 러시아에 판매하는 무역 물품으로 간주하여, 이용 요금을 미국에 지불하는 식으로 협의한 것이다.
영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SJ게이트의 편이 된 마당에, 더 이상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두 강대국을 상대로 성공적인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크리스는 미국 시민들의 열렬하고 뜨거운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대단하다, 크리스! 멋지다!”
“진짜 일 잘한다! 역시 크리스밖에 없다!”
“대통령 시절보다 지금이 더 미국을 위해서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예 SJ게이트 종신회장 했으면 좋겠다!”
수십만 명이 넘는 환영 인파 사이를 퍼레이드하며, 크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띤 채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작품 후기 ============================
자수성가한 미국 월가 재벌.
전직 미 대통령.
현직 미 대통령은 평생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오른팔.
한서진의 최측근.
웜홀 사업 최고경영자.
이런 스펙으로 못할 게 뭐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