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40화 (540/609)

00540  새 터전  =========================================================================

“오빠, 겨울에 아빠 된대요.”

한서진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남자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뛸 듯이 좋아하던데, 한서진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기쁘고 좋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어색한 감정이 더 컸다.

지금으로서는 현실이 아닌 듯한, 얼떨떨한 느낌이 더 강했다.

“실감이 안 나. 우리가 부모가 된다니…….”

“저도 그래요. 이 나이에 벌써 엄마가 되다니. 애 낳고 뱃살 늘어지면 어쩌죠? 몸매 안 돌아오면 큰일 나는데.”

“하나 너는 전에 H-3를 먹었으니까 괜찮아. 여기서 몸매가 더 망가지거나 할 일은 없을 거야.”

“그거 먹은 지 한참 됐는데, 아직도 효과가 남아 있을까요?”

“그렇게 쉽게 안 사라져. 또 사라지면 어때. 한 개 더 만들어서 먹으면 되지.”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위로 뻗었다. 그의 뺨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아들일까요, 딸일까요?”

“너는 어느 쪽이 좋은데?”

“저는 오빠 닮은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너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아들 하나 딸 하나씩 가질까요?”

“그럴까?”

그녀에게 무릎베개를 해준 채 가만히 끌어안아 본다. 품안에 갇히는 따스한 느낌이 기분 좋게 마음을 적셔 왔다.

‘아이한테 들려줄 자랑스러운 이야기라…….’

훗날 아이가 성장했을 때, 아버지를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세계에서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는 최고 권력자를 친부로 두고, 풍요가 넘치는 환경에서 성장하게 될 아이. 어떤 창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 한서진은 기대가 되고, 동시에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커서 뭐가 되려나. 갑자기 궁금하네.”

“그야 우리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렸죠. 오빠는 어떤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거야 많지. 어떻게 하나만 골라.”

“그래도 딱 하나만 집어 봐요.”

한서진은 잠시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책임…….”

“자기가 한 것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질 줄 알고, 그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네.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사교성 좋고, 그런 건 사실 다 필요 없고.”

“공부는 어차피 잘할 거 같아요. 오빠 닮아서.”

“그럼 운동은 하나 너 닮아서 잘하려나?”

“사교성이야 알아서 길러지겠죠. 환경부터가 이런데. 안 그래요?”

“아, 진짜 우리 아이 얼굴 빨리 보고 싶다. 겨울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출산까진 막상 금방이래요. 시간 빨리 가요.”

둘은 손을 꼭 잡은 채, 밤이 새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 부동산 시세는 변함없는 하락률을 그리고 있었다.

정부의 웜홀 구축망 정책 자체가 서울 제외를 저격하고 있음이 알려진 이후, 서울에 대한 부정적인 청사진이 짙어지고 있었다.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결정된 ‘서울웜홀망설치 촉진위원회’는 서울에도 웜홀을 유치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정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하고,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는 처참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어느덧 서울을 제외한 대도시들은 도시 간 웜홀로 이미 연결을 마치고 개장만을 앞둔 상태였다.

마지막 안전성 검증을 거치고 나면 도시 간 웜홀들이 일제히 개방될 거라고 했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대도시들이 하나로 엮이게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전에서 부산, 대구에서 제주도를 오고 갈 수 있는 현실이 열린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서울만 빠져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발바닥에 불이 난 듯이 초조할 수밖에.

“대체 왜 서울만 차별하는 겁니까? 한서진 박사님도 서울 시민 아닙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웜홀 설치를 담당하는 SJ게이트는 하루에도 수백 건씩 쏟아지는 서울 시민들의 항의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웜홀망 사업은 민간사업입니다. 정부의 지원은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가 특정한 분야에 사업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지탄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국 최고의 도시에 웜홀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서울을 웜홀망에 편입시키면 전국 모든 상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통합되고 말 겁니다. 도시 간의 균등 발전을 위해서라도 서울이 비정상적인 상업도시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거야 법률을 제정해서 막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의 탐욕을 법률 제정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이군요. 아무튼 서울은 당분간 웜홀망에 편입될 계획이 없습니다.”

웜홀망 구축은 엄밀히 말해서 사기업이 벌이는 투자 사업. 공공정책성을 띠고 있으나 공공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의 항의나 민원이 아무 소용없었다.

“SJ게이트는 서울을 말려죽일 셈이다! 서울 땅값이 바닥을 치고 나서야 웜홀을 설치하려는 것이다! 그전에 폭락한 서울 부동산과 건물들을 쓸어 담겠지!”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울의 반 웜홀 정서는 한동안 사회 분위기를 시끄럽게 만들 것으로 보였다.

한편 철도와 공항, 선박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형 운송업계는 구체적인 정책이 발표되며 어느 정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SJ게이트, 웜홀 이용 요금 발표!」

「거리에 따른 편의성을 요금에 합산해.」

「서민들 입장에서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요금!」

웜홀 이용비용이 일반인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고가로 책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일반 여객이 대전에서 부산을 갈 때 KTX 일반실 기준으로 36,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치자. 만약 웜홀을 이용하게 된다면 그 요금은 무려 10배인 360,000원으로 책정되었다.

약 2시간 20분의 시간을 절약하는 대가로 운임요금의 10배를 지불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화물 운송도 입장은 비슷했다. 만약 화물이 웜홀을 이용할 경우 거리에 비례하여 추가 요금이 붙는다. 일반 여객의 경우와 그 비율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통과세’가 있는 셈이다.

이에 웜홀 이용을 기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항의했다.

“이런 거면 부자들이나 웜홀을 이용하란 말이나 다름없잖아! SJ게이트는 웜홀을 장사 도구로 이용해 먹을 셈이냐!”

“대전에서 부산 가는데 누가 36만원이나 내고 가냐? 그럴 거면 차라리 KTX를 타겠다!”

“웜홀 이용 요금 너무 비싸다! 우우!”

가중요금은 화물의 종류나 무게, 그리고 거리에 따라서 달리 적용되게끔 되어 있었다. 그 계산식이 아주 복잡해서 일반인은 봐도 뭐가 뭔지 모를 정도였다.

기본 규칙은 사실 간단하다.

거리가 멀수록 요금이 가중된다. 화물의 종류나 무게에 따라 가중치가 각각 다르며, 목적지로 가기 위한 이동 수단에 따라 가중치가 달리 적용된다.

예를 들어 같은 거리를 이동한다 해도,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한 강원도와 부산은 서로 가중 요금이 다르다.

「웜홀은 부자들만의 전유물?」

「SJ게이트는 그들만의 전용 시설을 만들고자 함인가?」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이 집중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한서진이 이 나라를 꽉 쥐고 있다고 해도, 요금이 너무 말도 안 됐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영웅 취급 받는 그에 대한 믿음, 잘못된 것을 따진다 해서 그가 불이익을 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 덕분에, 양심 있는 기자들은 더욱 열심히 펜을 휘둘렀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4기의 웜홀 설치 장비가 가동 중입니다. 그 덕분에 전국 대도시 간 웜홀 설치를 이처럼 빠르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웜홀 설치 장비는 생산원가만 대당 20조 원에 달합니다.”

“…….”

웜홀 이용 요금이 비싸다는 비난은 그렇게 SJ게이트의 발표 한 방에 쏙 들어갔다.

시작부터 SJ게이트가 일단 80조를 투자하고 하는 일인데, 초기 자금 회수를 위해서 높은 요금을 받는 것은 정당한 명분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SJ게이트가 되게 양심적으로 요금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최대 가중치도 20배로 딱 상한선을 그어놓았잖아. 충분히 더 받아도 될 텐데 말이야.”

비싸다며 거품을 물던 여론은 급히 반전했다. 여기에 SJ게이트의 추가 발표가 쐐기를 박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금을 차차 떨어뜨려서, 최종적으로 늦어도 7년 안에는 기존 운임비 시세와 동일한 요금 체계를 갖출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무리 늦어도 7년 안에는 기존 운임비로 맞춰주겠다.

그런 공식 약속에 국민들은 더 이상 비난을 할 수 없었다. 막말로 7년 동안 20배의 운임비를 받아먹는다 해도, 초기 투자비용을 전부 회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으니까.

“50배를 받아도 좋으니까 제발 서울에도 웜홀 설치를 해주세요! 우리는 운임비 보조도 해줄 수 있습니다!”

서울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오늘도 묻힌 채 지나갔다.

“치핵 4기입니다.”

“그게 뭔가요? 심한 건가요?”

“우리가 보통 치질이라고 말하는 병이죠. 외치핵인데, 엄청 심한 상태네요. 수술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중년 의사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그러게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병원에 안 오신 겁니까?”

젊은 여환자는 창피해서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의사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치질, 그 수치스러움 때문에 참고 참다 병원을 뒤늦게 찾는 환자가 어디 한둘인가. 심지어 젊고 예쁜 여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저어…… 수술하면 많이 아프겠죠?”

“수술 자체는 안 아프죠. 회복이 좀 고통스러울 겁니다. 특히 수술 직후 화장실에 가실 때마다…….”

환자의 얼굴이 더욱 수척해졌다. 상상만으로도 창피함과 고통이 가슴이 뒤범벅되는 모양이었다.

“선생님, 약으로는 어떻게 안 되나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이미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습니다. 하루빨리 수술하셔야 합니다.”

“맞아요! H-5! 그거 만병통치약이라면서요? 그걸로는 어떻게 안 될까요?”

“H-5요?”

의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치질 질환에 H-5를 쓴다는 시도 자체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영원그룹이 밝힌 500개의 보장 효능에 치질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있었고, 둘째로 H-5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H-5는 대체약이나 대체치료가 없는 질환에 한해서 저렴하게 공급된다. 기존 의료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물며 치질은 수술을 하면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다. 그 비싼 H-5로 굳이 효능 실험을 할 이유가 있을까?

“H-5를 10회 정도 투여한다고 가정했을 때, 환자분께서 부담하셔야 할 약값이 500만 원입니다. 이런 경우는 보조 지원이 안 돼서 매우 비싸요.”

“……할래요! 그래도 해볼래요! 적금 깨면 돼요!”

“……알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의사는 곧장 H-5를 투여할 준비를 했다. 간호사가 용액을 가져왔고, 주사기에 옮겨 담은 뒤 의사의 처치에 따라 팔뚝 정맥에 주사를 놓았다.

그렇게 보름에 걸쳐 총 5회를 투여했다. 그러나…….

“왜 별로 차도가 없지?”

============================ 작품 후기 ============================

팔이 아니라 엉덩이에 놨어야지!

약효가 늦게 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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