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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39화 (539/609)

00539  새 터전  =========================================================================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도원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사님께서 원하시면 그대로 하시면 될 텐데요, 굳이 정부와 협의를 이루실 필요가 있으신지…….”

“강력범죄에는 이미 개인 독단으로 적용해놓고, 왜 그보다 덜 중요한 것에는 굳이 정부의 양해를 구하려는지 이상한 겁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도원패는 재빨리 부정했고, 조금 거북한 침묵이 흘렀다.

“강력범죄는 그 수단에 약간의 위법성이 있어도 강제로 금지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생활 침해 문제가 없진 않지만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졸음운전과 음주운전은 그보다는 조금 강도가 낮다고 생각되더군요.”

“그러시다면, 혹시……?”

“예, 제 개인적 양심의 문제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도 적극적으로 박사님의 뜻을 돕겠습니다. 미국처럼 준비하면 될까요?”

미국은 하늘의 눈동자가 지니는 사생활 침해 논란을 법률 제정을 통해 합법화하고자 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하늘의 눈동자를 세상에 직접 공개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한서진 개인의 양심을 위한 명분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의 눈동자 구축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음주운전과 졸음운전 방지를 위해서 경찰의 단속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제도를 만들겠습니다. 해석에 따라서 하늘의 눈동자로 인한 감시도 합법화하도록 내용을 구성하면 될 겁니다. 하는 김에 강력범죄와 얽힌 문제도 묶어서 처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논의가 끝나자 한서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급히 그를 붙잡았다.

“한서진 박사님, 그런데 북쪽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실 계획이신지 물어도 될까요?”

“북쪽 지역이요?”

한서진은 의아해서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앉았다. 대통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급히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북한 재건 사업은 한서진 박사님을 주축으로 해서 이뤄지고 있죠. 정부와 민간 기업은 보조적으로 도울, 아니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박사님께서 일찍이 특별 채권 구매로 3조 달러가 넘는 거금을 내놓기도 하셨고요. 당연히 박사님께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하지요.”

도원패는 나름 필사적이었다.

한서진과 서먹했던 과거를 직접 대화로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그래야 노후가 훨씬 더 안락할 테니.

“글쎄요. 그건 H컨설턴트가 알아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라.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본 적은 없군요.”

“저는 이 나라 대통령입니다. 박사님께서 어느 정도 의중을 가지고 계신지 직접 말씀해주시면, 그 뜻하신 바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불법유착이 아닙니까?”

“재건 기금으로 무려 3조 달러를 내놓으셨고 지금도 추가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 계신데, 이 정도는 불법 특혜가 아니라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입니다.”

정당한 거래 관계에서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 저울이 기울어져 있으면, 그것을 맞춰주는 게 상도의다. 국가와 개인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한서진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원패는 지루해하지 않고 침착히 기다렸다.

그의 사색이 길면 길수록 좋았다. 그만큼 신중한 의사표시를 들을 수 있을 테니.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실은 제가 한 가지 만들어보고 싶은 사회가 있긴 합니다.”

“어떤 사회입니까?”

“아직은 단편적으로 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 굳이 표현하자면 완벽한 행복을 추구하고 보장하는 사회라고 할까요.”

“완벽한 행복…….”

대통령은 무언가 어려운 말을 들은 것처럼 그 말을 입안에서 되뇌었다.

“박사님께서 그런 이상향을 꿈꾸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거 아닌가요? 단지 실행에 옮길 힘이 부족할 뿐이죠.”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까?”

“글쎄요. 일단은 3조 달러 만큼에 달하는 토지 권리를 보장해주시면 좋겠군요. 꼭 소유권을 달라는 것은 아니고 토지 이용 권리를 보장해주시면 됩니다. 일단 구역이 있어야 제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보던가 하지요.”

“알겠습니다.”

도원패는 현재 정치권에서 한창 씨름 중인, 북한 토지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논의 내용을 떠올렸다.

일단 북한 땅 전체를 국유화하되, 필요에 따라 일정 지역을 민간에 불하하는 방식이 가장 유력했다. 물론 당장은 아니고 시간이 흐를 때마다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그 가운데에서 한서진이 가장 큰 우선권을 갖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 외에는 감히 북한 땅에 대한 권리를 탐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민간은 한 마음으로 숨을 죽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서진이 줄자를 들고 북한 지도에 자신의 영역 표시를 끝내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그가 일단 영역 설정을 하고 물러나야 다른 이들이 나서서 투쟁을 하든 갈라먹기를 하든 할 것 아닌가.

‘3,000조 원이면…… 지금 북한 공시지가가 평당 8만 원 정도니까, 땅 전체를 다 합쳐도 안 되겠군.’

도원패는 참으로 바람직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 그리고 완전 자동화 도시 촉진을 위한 제도를 갖춰주시면 좋겠습니다.”

“완전 자동화 도시요?”

“네, 아직 큰 그림이 다 나온 건 아닙니다만, 일단 평성 지역을 중심으로 그렇게 한 번 꾸며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대통령은 완전 자동화라는 말에 다소 의아했다. 혹시 한서진은 고도로 발달한 미래 도시를 꿈꾸고 있는 것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제도를 갖춰 달라는 요구,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네, 그리고…….”

한서진이 말을 흐리자 대통령은 눈에 띄게 긴장했다. 왠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대답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지금처럼만 하신다면, 은퇴 후에 무탈하게 여생을 보내실 수 있을 것 같군요.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조금 고민이 됩니다만.”

대통령의 안색은 곧장 환해졌다. 드디어 자신이 바라고 바랐던 대답이 나왔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박사님께서 그리 격려해주시니 그저 기쁘고 흡족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민망합니다. 사인인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누가 감히 박사님을 평범한 사인으로 보겠습니까. 사실상 이 나라의 리더이자 보스 아닙니까.”

대통령은 충성 서약을 하듯 굳은 눈빛으로 쐐기를 박았다.

“사실 수십 년 정치를 하면서 평생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공보다는 과가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5년 남짓한 임기 동안에 그 모든 과를 다 덮어버릴 공을 세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말씀하실 것까지야…….”

“제가 무언가를 새로 쌓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잘못 쌓인 것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제 임기 내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겁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대통령과의 독대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한서진은 모처럼 마음을 열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이 예전에 알던 그 권위적인 국회의원이 아닌 듯했다.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역시 돈의 힘이란…….’

무려 3조 원.

그저 깨끗하고 당당하게 임기를 마치기만 하면 퇴직금으로 보장되는 돈이다. 설령 그 존재가 알려지더라도 세상에 거리낄 게 없다. 이미 임기 기간 동안 쌓은 업적이 있으니.

깨끗한 거액이 보장된다는 사실은, 이처럼 정치인 하나를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말았다.

세연동 저택으로 돌아오자 송하나가 침실에서 슬립 차림으로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대통령 만나고 오셨어요?”

“응.”

“생각보다 늦게 오셨네요. 전 금방 끝내고 오실 줄 알았는데. 오빠는 대통령하고 별로 안 친하잖아요.”

“이야기가 좀 길어졌어. 별로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어.”

“대통령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나요? 그거 말고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지 않아요?”

“생각보다 공손해서 좀 놀라긴 했어. 내가 원하는 거라면 내일 저녁에 뭘 먹고 싶은지까지 궁금한 눈치였어.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고.”

“오빠가 원하는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수십 억 명은 될 걸요?”

송하나는 아직 하늘의 눈동자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있으니 대강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재계에서 떠도는 고급 정보는 당연히 접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에서 하늘의 눈동자의 합법화 작업을 도와주기로 했어.”

“하늘의 눈동자요?”

“내가 얼마 전에 만든, 강력범죄 제압 시스템. 하늘의 눈동자라고 이름 붙였거든.”

송하나는 순간 멈칫했으나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옆에 기대듯이 앉으며, 늘씬한 다리를 길게 뻗는다.

“오빠, 그럼 혹시 저도 24시간 지켜보고 있어요?”

“지켜보는 건 내가 아니야. 시스템이지. 범죄와 관련이 없는 행위는 자동적으로 필터링하는 방식이야. 내가 일일이 명령을 내리거나 판단하지 않고 시스템이 혼자 알아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해.”

“그래도 오빠가 마음만 먹으면 저 지켜볼 수 있죠?”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 하지만 걱정 마. 난 의처증 환자가 아니거든. 안 훔쳐볼게.”

“저 진짜 조심해야겠어요. 만약 바람이라도 피우면 단번에 걸릴 테니까요.”

“근데 너 바람 안 피울 거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눈이 마주친 자세 그대로,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손등을 쓸어주기만 했다.

“하늘의 눈동자를 음주 운전하고 졸음 운전에도 확대 적용하기로 했어. 사실 그것들도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잖아.”

“술 먹고 운전대 잡으면 그럼 바로 기절하는 거예요?”

“그렇지. 조는 사람들은 그냥 잠이 깨도록 적당한 자극만 줄 생각이야. 기절시키는 게 더 위험하니까.”

“진짜 앞으로 범죄 없는 세상이 될까요? 전 사실 잘 믿어지지가 않아요.”

“지난 두 달 간 단 한 명도 다른 사람에게 맞거나 상해를 입거나 죽지 않았어. 성범죄도 안 당했고.”

한서진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늘의 눈동자가 지켜보는 한, 앞으로 범죄자가 판을 칠 수 없을 거야.”

“그럼 사기 같은 경제범죄는요?”

“그런 건 하늘의 눈동자로 커버 못하지. 어디까지나 사람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외부 행동만 보고 판단하니까.”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폭력 범죄 같은 건 사라진 세상이라서 좋아요. 올 겨울에 우리 아이한테 자랑스럽게 들려줄 이야기거리도 되구요. 아, 근데 그때는 말해줘도 못 알아듣겠구나.”

“그렇지. 우리 아이한테…… 응? 올 겨울?”

무심코 넘기던 한서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채,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를 가리켰다.

“진짜야?”

“네, 겨울에 태어난대요.”

============================ 작품 후기 ============================

아이야……. 네가 태어난 날, 온 세상이 네 수저는 무슨 재질이냐고 속삭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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