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38화 (538/609)

00538  하늘의 눈동자  =========================================================================

―감시 시스템? 그거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하는 거래.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 많은 모니터를 사람이 앉아서 들여다볼 수 있겠어.

―범죄와 연관성 없으면 바로바로 필터링 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문제는 전혀 없다던데. 아예 저장조차 안 한다더라.

―강력 범죄 피해자가 전무하잖아. 그걸 생각하면 이 정도쯤은 충분히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그런 주장이 은밀하게 SNS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니 괜찮다, 그래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으냐,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새롭게 등장한 음모론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뒤흔들어 놓는데 주력을 잡고 있었다.

범죄 예방도 좋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욕실에서 샤워하는 걸 누군가가 훔쳐보는 게 싫다고? 그 훔쳐보는 게 비누, 바디워시처럼 무생물인데도? 그런 생명 없는 것들 앞에서도 치욕을 느낄 거야?

―보니까 인간처럼 가시광선 영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MRI 비슷하게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로 처리되는 거라더라. 사람은 그걸 봐도 뭐가 뭔지 모른데. 0과 1로 복잡하게 나열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범죄와 관련성이 없으면 바로바로 넘어가고. 무조건 폭력성이 따르는 행위만 골라서 지켜보는 거래. 사실 전부 다 보고 있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SNS를 누비며, 사람들이 가지는 불안함과 꺼림칙함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실체가 없는 음모론이지만, 그 효과는 오히려 톡톡히 발휘되고 있었다.

막연한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런 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라는 식으로 저항감을 해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서진은 그 주장이 어떤 식으로 생겨나고, 퍼져가고, 여론을 잠식하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역시 미국이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으니 그저 피식 웃음만 나온다.

사람들의 불안함을 삭제하기 위해 퍼져나간 음모론은 바로 CIA의 작품이었다.

그들은 인공지능의 필터링 기능, 그리고 0과 1을 통한 영상 변환 등을 강조하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본다는 불안함 자체가 부정당하게 만들었다.

카메라 앞에 서면 수치스럽지만, X레이 촬영장치 앞에 서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런 느낌을 받도록 교묘하게 사람들의 불안함을 틀어놓은 것이다.

덕분에 국내 인터넷 여론에서는 ‘정부의 비밀 감시 촬영’이라는 인식은 거의 지워지고 없었다. 그 대신 토론의 중점이 얼마만큼 강력 범죄를 효과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방향을 두게 되었다.

“역시 박사님은 모든 걸 내다보고 계시는군요.”

자신들의 공작을 설명하기 위해 한서진을 찾은 CIA 화이트 요원, 페이 차일드는 그가 이미 모든 전말을 알고 있자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모든 걸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스템의 눈이 닿은 곳만 확인할 수 있어요.”

“그 시스템의 눈이란 지구 전체에 뻗어 있겠지요?”

“…….”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만, 혹시 심해 바닥이나 깊은 땅속도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한서진은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페이 차일드와 문득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맞습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상태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역시!”

“페이 차일드, 당신의 개인적인 짐작인가요? 아니면 CIA의 공식적인 추정인가요?”

“CIA는 아직 공식적인 추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짐작입니다. 하지만 CIA, 아니 미국에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겠군요.”

“두려움이란 동급의 대상에 대해서 품는 감정이지요. 그 대상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아득한 격차가 벌어지면, 경외의 대상이 됩니다.”

독재자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면 증오의 대상이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는 대자연에 대한 순종과 경외를 낳는다.

“아무튼 CIA 덕분에 여론이 많이 순화됐네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워싱턴의 전언을 가져온 게 있습니다.”

“대강 알고는 있습니다. 총기 범죄 예방에 하늘의 눈동자를 적용해 달라는 말씀이시죠?”

“현재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사생활 침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죠. 그때에 맞춰 시스템을 구축해주시면 미국의 총기 범죄 피해자가 줄어들 겁니다.”

“줄어든다는 건 틀린 표현입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면 총기 범죄 피해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게 되죠.”

“아,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한서진은 잠시 생각을 한 뒤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보다는 차라리 총기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했다면 하늘의 눈동자 없이도 진작 총기 범죄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총기협회의 힘은 막강합니다. 그 어떤 대통령이나 정치인도 총기 그 자체를 금지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화폐 자본가들보다 세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럼 제가 협회를 정리해드릴까요?”

“…….”

페이 차일드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한서진의 눈빛은 ‘왜 쓸데없이 돌아가?’라고 묻고 있었다.

“한국처럼 강력 범죄 그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늘의 눈동자를 펼쳐달라는 거라면 저도 기꺼이 납득하겠습니다만, 총기 범죄에만 한정해달라는 것은 조금 이해가 안 가는군요. 진작 모든 총기를 회수했다면 이미 다 끝났을 텐데요.”

정론이었기에 페이 차일드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한서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총기 범죄에만 한정하든 전체 강력 범죄로 확대하든,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미국 측 준비가 끝나면 말씀해주세요.”

“시스템 구축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됩니다.”

한서진은 물론이고 행정부도 하늘의 눈동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지상파 언론은 일부러 그에 관련된 언급을 하거나 취재하는 것을 삼갔다.

있으면서 모르는 체 하기, 그것이 한서진과 행정부가 선택한 방침이었다.

행정부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으면서, 한서진에게 비밀리에 문의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늘의 눈동자란 명칭 자체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미국이 어느 정도 정보 제공을 하는 터라, 한서진을 통하지 않고서도 하늘의 눈동자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하늘의 눈동자는 에테르 파동을 이용하여 일정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는 시스템입니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MRI로 한국땅 전체를 24시간 촬영 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행안부 장관과 국정원장은 비밀스럽게 열린 한미 간 미팅 자리에서 나온 미국 측 인물의 설명을 열심히 귀담아 들었다.

“그 중에서 인간의 행위를 필터링하고, 또 범죄 연관성이 있는 행위를 따로 추출해냅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선별된 행위자는 범죄를 행동에 옮기는 순간 즉시 신경계에 충격을 받고 기절하게 되는 겁니다.”

“신경계에 가해지는 충격…… 그렇다면 그것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

두 공직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따뜻한 실내 온도에도 불구하고 등줄기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렀다.

미국 측 인물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원격으로 신경계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겁니다. 그 동력원은 에테르지요. 그것을 응용한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뇌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심장마비를 유도할 수 있다. 앉은 자리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것이다.

‘국민 모두의 목숨이, 한서진 박사의 손안에…….’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국정원장은 더욱 소름이 돋았다. 옷 안에 감춰진 팔뚝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백악관은 어떻게 그런 무서운 시스템을 미국에도 구축하겠다는 결정을 했습니까?”

“더 큰 사회적 이익, 총기 범죄 피해자를 제로로 만들기 위한 목적 때문이지요.”

“한서진 박사가 모든 미국인들의 목숨을 손안에 쥐고 흔들 수도 있는데도요?”

“이미 그분에게는 그럴 힘이 넘치지요. 막말로 에테르 스톰을 일으키기만 하면 지도상에서 국가 몇 개를 지우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겁니다.”

끔찍한 가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 인물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무수한 히어로들……. 따지고 보면 사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웅들이 그 힘을 파괴와 살상에 쓰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마찬가지입니다. 한서진 박사님은 시대가 낳은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 막대한 힘을 파괴와 살상이 아닌, 문명의 발전과 인류애를 위해 거리낌 없이 쓰고 계시죠. 그런데 큰 힘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두려워한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짓이지요.”

“……미국의 저력을 조금 알 것 같군요.”

늦은 오후, 청와대는 갑작스러운 연락 하나를 받았다.

‘지금 대통령 시간 있나요?’

다른 이가 그런 연락을 해왔으면 코웃음을 치며 넘겼을 것이다. 감히 청와대를 뭐로 보느냐고 격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락을 취한 이는 한서진, 그것도 본인이었다.

처음 전화를 받았던 홍보실 직원은 한서진인 줄도 모르고 대강대강 응대했다가, 뒤늦게 그가 누구인지 알고 사색이 되었다.

비상이 걸린 청와대는 급히 한서진을 맞이할 준비를 갖췄다. 대통령은 오후 일정을 모조리 취소하고 귀빈실로 향했다.

한서진은 ‘괜찮다’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청와대를 향해 출발했고, 덕분에 직원들은 촉박한 시간 안에 그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오랜만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도원패 대통령은 조금 어색하게 그를 맞이했다.

국회의원이던 시절에는 소원했던 사이, 하지만 지금 자신은 그의 충실한 수족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그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주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하늘의 눈동자에 관한 건 대통령도 대강 들으신 것으로 압니다.”

“미국에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늘의 눈동자를 만든 건 안타까운 마음에서입니다. 억울하게 강력범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죠. 물론 시스템 자체가 시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마음에 걸렸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서 그 정도 양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두 달 가까이 범죄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론 조사 결과 국민들 80% 이상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하늘의 눈동자 적용 범위를 강력범죄 말고 다른 영역에도 확장해도 될까요?”

“예? 다른 영역이라면……?”

“음주운전과 졸음운전에도 적용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래도 정부와 협의를 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돼서요.”

============================ 작품 후기 ============================

“이제 슬슬 미래에서 한서진을 찾아 사이보그가 올 때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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