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37화 (537/609)

00537  하늘의 눈동자  =========================================================================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은 한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람의 행위를 관찰한다. 말 그대로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눈동자가 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찰 영역이 꼭 한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전역을 관찰할 수도 있다.

사실 이미 타르타로스 3의 메인 감시 시스템이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권을 포함한 지구 전역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의 눈동자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무차별 수집하지만, 한서진이 그것을 모두 확인하는 것은 아니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24시간 일상을 어떻게 그 혼자서 매일 관찰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다.

그래서 한서진은 하늘의 눈동자 프로그램이 자동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의미를 깨우치고 스스로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입은 시스템 오류가 일어났을 경우에만 한정하도록 했으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일단 멈추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오류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시스템의 자의적 판단 기능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기계의 정확함과 사람의 융통성만을 합쳐 놓은 듯이, 아주 약간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만족스러워.”

그래서 한서진은 연일 흐뭇해했다.

범죄에 대한 포괄적인 강제 중단을 이만큼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아마 자신이 아닌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거 폭력 범죄 예방에만 쓰기에는 조금 아까운 느낌인데. 다른 데도 활용할 순 없나?”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별로 좋은 발상이 떠오르진 않았다.

단일 대상에 가할 수 있는 물리적 에너지가 지극히 적다 보니, 사람 외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람의 경우는 약간의 신경 자극만으로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으니까.

“결국 사람 때려눕히는 것밖에는 못하잖아.”

신의 힘을 손에 넣었다고 우쭐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하늘에서 벼락을 부르고, 천재지변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어야 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살검이란 이름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치네.”

그렇게 혀를 차고 있는데, 문득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 대통령이 웬일로?”

그는 언제든지 미국 대통령과 직통 전화를 할 수 있는 위치이지만, 반대로 미국 대통령이 그에게 먼저 직통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

대부분은 아랫사람들을 통해서 먼저 의사타진을 한 후에 대화가 이뤄지는 식이다.

“네, 한서진입니다.”

「대통령입니다.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실까요.」

“물론입니다. 말씀하세요.”

「저, 사실은 박사님께 정중히 논의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래요? 어떤 거죠?”

정중한 논의. 한서진도 기꺼워서 열린 마음으로 귀담아 들을 준비를 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미국은 총기 범죄 사건이 워낙 많습니다. 아무래도 총기 소지가 허용된 국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데요. 총기 특성상 범죄에 연루되면 그 인명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네. 그런데요?”

한서진은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미 대통령이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설마…….

「박사님께서 한국에 시범적으로 구축하신 범죄 금지 시스템을 우리 미국에도 적용해 주십사 하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적어도 총기가 동원되는 범죄만이라도…….」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 왜 그러십니까?」

“제가 한국에 구축한 범죄 무슨 시스템이라니요?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신 거죠?”

조금 전 받은 이상한 느낌이 이것 때문이었나?

한서진은 미국이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연락을 왔는지,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박사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무슨 보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희가 그 시스템의 존재를 알아냈다는 걸 박사님도 이미 인지하고 계실 거라고. 박사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알아내실 수 있다고요.」

“…….”

한서진은 할 말을 잊은 채 길게 침묵했다. 전파 사이에서는 어색한 정적만 흘렀다.

한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미국은 어디까지 알아, 아니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강력 범죄를 시도한 이들이 범행 도중 하나같이 기절해서 실패했다, 이런 일이 한국 전체에서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것 자체가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필이면 그 순간에 지병 발작을 일으켰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에 딱 한 명이 있죠. 바로 박사님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한서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나름 자신만만하게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것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미국이 알아버리다니. 그것도 아무 증거도 없이, 그저 사회에 선보인 결과만으로.

“허탈하네요. 그렇게 쉽게 알려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한국 정부도 보고가 들어온 것으로 압니다만…… 설마 모르셨던 겁니까?」

앉은 자리에서 무엇이든 내다볼 수 있으면서, 정작 그 사실을 몰랐다고? 미 대통령도 그 점은 많이 의외였는지 목소리에 놀란 감정이 묻어났다.

「한국과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도 지금쯤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있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한순간에 강력 범죄가 뚝 끊어지는 게, 그것도 범죄자의 다발적 기절이 원인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요.」

“앞으로 무슨 일만 일어나면 제가 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겠네요.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하면 그것도 제가 했다고 받아들이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소행성이 오고 있는 중입니까?」

케인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한서진은 농담도 못하겠다며 속으로 쓴웃음만 지었다.

“아무튼 미국에도 하늘의 눈동자를 구축해달라는 겁니까?”

「그 시스템의 이름이 하늘의 눈동자입니까? 과연,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구축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휘두르는 겁니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고요. 미국은 특히 그런 부분에서 민감하지 않습니까?”

「관련 법안을 만들어서 법리적으로 아무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총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의회와 여론도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 두 손을 들어 환영하겠지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다만 하늘의 눈동자의 존재는 가능한 숨겼으면 좋겠습니다.”

「총기범죄 예방을 위해 FBI에 비밀 감시 권한을 더욱 폭넓게 보장하고, 나아가 사생활 침해에 면책을 부여하면 됩니다. 하늘의 눈동자를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서진은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늘의 눈동자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할 거라 생각되는 민심도 낯선 조짐을 감지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인터넷에 음모론이 돌기 시작했다.

―그거 아냐? 지난 한 달 간 우리나라에서 강력 범죄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던 거?

―뭐? 그게 사실이야?

―가집계한 통계 자료 봤음. 한 달 동안 살인 피해자, 강간 피해자, 강도 피해자, 암튼 그런 강력 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음. 전부 미수로 끝났음.

―헐, 그게 말이 되나?

―더 놀라운 건 범죄를 시도한 애들이 하나같이 도중에 기절했다더라. 그것도 아무 이유 없이 말이야.

―이거 뭔가 수상한데.

―아무리 봐도 우연은 아닌데.

―뭐지? 정부가 감시 시스템이라도 만들어서 전 국민을 지켜보고 있나?

―정부가 어디 그럴 능력이 되나. 그런 건 미국도 힘들 거다.

―가능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지.

―아 세연동 그분…….

―쉿! 그게 사실이라면 절대로 그 분의 이름을 언급해선 안 돼!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

각종 SNS 사이트에서는 지난 범죄 사건을 집계한 통계 자료가 떠돌아다니며 그럴싸한 음모론을 퍼트리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음모론을 믿은 건 아니었다.

―다들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고 있네. 그럼 니들 주장은 한서진 박사가 무슨 빅 브라더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전 국민을 상시 감시하고 있고,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다 싶으면 기절시켜서 제압한다, 뭐 이런 소리냐? 아무리 한서진 박사라 해도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엄밀히 따지면 사생활 침해 아니야? 나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있다는 소리인데, 그건 좀 무섭다.

물론 반발 여론은 무척 적은 편이었다.

SNS를 애용하는 젊은 층은 단 한 건의 기수도 없다는 점, 그리고 범인이 모두 기절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말 누군가가 국민 전체를 상시 지켜보고 있는 거라면…….

―기분이 나쁘긴 한데, 범죄 예방을 위한 목적이라면 용납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해. 살인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왜 세연동에서는 아무런 코멘트도 없지? 정부는 대체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물밑에서 여론이 요란하게 물장구를 치고 있지만, 그 움직임이 수면 위까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공공기관 및 언론은 철저하게 음모론을 외면했다. 지상파나 공식 포털에서 다루는 일은 없었다.

―어제일자 범죄 통계 나옴. 역시 강력 범죄 중에서 기수로 끝난 건 하나도 없다.

―보란 듯이 범죄자들 죄다 기절했네.

―어제 신촌에서 술 먹는데 마석동 같이 생긴 어떤 아재가 취해서 옆 테이블에 앉은 예쁘장한 여자한테 수작 부리더라. 남친 새끼는 병신같이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보고만 있고. 여자가 기가 쎄서 아재한테 받아치는데, 아재가 화가 나서 술병 집어 드는 순간 거짓말처럼 기절해서 쓰러지더라. 실제로 보고 엄청 놀랐다.

―절대로 이상한 마음 먹지 마라. 한서진 박사님께서 지켜보고 계셔.

어느덧 음모론은 사이버 여론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순간 기절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 우후죽순처럼 몰려왔다. 통계청은 매일같이 역대 최고 트래픽을 달성하고 있었다.

―만약 빅브라더 Made by 한서진이 사실이라면 분명한 사생활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거지만…… 그래도 이거 결과가 너무 좋지 않냐? 두 달 가까이 우리나라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싫어! 그래도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면 끔찍해! 차라리 범죄 피해자가 쏟아져도 좋으니까, 아니 내가 범죄를 당해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날 지켜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느덧 음모론의 진위 판별보다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거부감이 주된 불씨가 되었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없다는 결과에 환호하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다.

그에 맞서듯 다른 음모론이 조용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거,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관찰하는 거라던데. 범죄 관련성 없으면 바로바로 필터링해서 데이터 폐기한다더라.

============================ 작품 후기 ============================

“알파고님께서 지켜봐주시는 거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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