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36화 (536/609)

00536  하늘의 눈동자  =========================================================================

미국의 눈은 언제나 한국을 향해 있다.

CIA 한국지부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포괄적으로 무차별 수집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일단 닥치고 기록부터 하고 본다.

특히 한국지부의 위세는 CIA 내부에서도 막강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CIA 국장과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실권자가 지부장으로 오는 지부였으니.

지부의 임무는 궁극적으로 한서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선 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을 선별하고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한서진의 경호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 말리는 첩보전을 벌인다.

두 번째로는 한서진이 한국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연구나 사업 등을 분석하고, 그 영향력을 파악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어찌 보면 첫 번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열심히 매달리는 임무라 할 수 있었다.

한국 내에서 한서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이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한서진의 이름, 그리고 영향력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CIA의 관찰 대상이다. 감시가 아닌 관찰, 그 임무는 마치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의 것과 유사했다.

그동안 CIA 한국지부는 참 많은 일을 해왔다.

자선사업과 그로 인한 여론, 북한 재건 산업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갈등 구조 파악, 한서진의 행보에 따른 정재계의 움직임의 변화 감시 등등.

최근에는 H컨설턴트가 벌이는 국내 재벌 기업 흡수 사태를 분석하고, 그에 반발하는 자들의 동향을 감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던 중 지부장은 이상한 보고를 받았다.

“저, 지부장님. 확인하셔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시티즌과 관련된 일인가?”

시티즌, 해외 시민을 짧게 줄인 단어로 한서진을 뜻하는 고유명사 같은 것이다. 대통령을 스페셜 원, 혹은 VVIP라고 칭하는 것과 유사하다.

“시티즌과 관련된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래도 일단 자세한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

“됐어. 우리 지부의 임무가 뭔지 잊었나? 시티즌과 관련된 것만 파헤친다는 것 아닌가? 그건 접어두게.”

지부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CIA는 포괄적인 해외 첩보 수집 및 공작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다소 다르다. 오로지 한서진을 중심으로 모든 첩보 작전을 수행하고 있으니.

하지만 요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 시티즌과 직접 관련된 접점을 못 찾은 것뿐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유착성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한 번 확인이나 해주시죠.”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지부장은 가볍게 툴툴거리면서 보고서를 확인했다.

보고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그의 표정이 점점 변했다. 심지어 중간에 자세를 똑바로 고쳐서 앉기까지 했다.

보고서를 다 읽은 뒤 지부장의 표정은 아까와는 전혀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심각한 의문이 눈빛에 가득했다.

그는 보고서를 가져온 직원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우연은 아닙니다.”

“우연이 아니면?”

“절대로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 인위적인 작용이 개입한 게 틀림없습니다. 4일 동안 강력 범죄를 시도한 이들이 범행 행동 후에 곧바로 기절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었고,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에 기절을 시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합니다. 한두 번이어야 지병이니 우연이니 밀어붙일 수 있지, 이렇게 연달아 일어나는 게 어디 말이 됩니까?”

“자네 생각에는 그 인위적인 개입을 한 주체가 바로 시티즌이라는 말이지?”

“시티즌 외에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이 지구상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음.”

절대 우연이 아니다. 어떤 외부 작용이 개입한 게 틀림없는 상황이다.

“시티즌이라고 가정하면, 대체 어떤 식으로 한 거라고 생각하나?”

“아마 한국 전체를 지켜보는 감시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가 범죄를 저지를 조짐이 포착되면 자동으로 개입하는 겁니다.”

“프로그램이다?”

“시티즌이 설마 24시간 직접 지켜보고 있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설마 그 프로그램이 지금 우리도?”

지부장은 자신이 내뱉어 놓고도 오싹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원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미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죠.”

“…….”

“그런 게 아니고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겁니다. 그럼 의심할 여지없이 시티즌이 행한 일로 봐도 됩니다.”

그리고 그 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4일이 5일이 되고, 6일이 되고, 7일이 넘어가면서부터, 지부 내의 누구도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모두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시티즌이 범죄에 대한 엄벌을 시작했다!

범죄자에 대한 엄벌이 아닌, 범죄에 대한 엄벌. 그 뉘앙스는 분명히 차이가 크다.

‘프로그램’은 범죄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가 시도하려는 범죄 행위 그 자체를 공격할 뿐이다.

기절, 혹은 간단한 제압을 통해 그저 범죄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끊을 뿐이었다. 상대방은 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아서 좋고, 가해자 또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강제로 중지 당한다.

지부의 요원들은 기적적인 과정과 결과에 그저 전율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시티즌, 혹은 시티즌이 만든 감시 프로그램은 한국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아마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 그의 눈동자 아래 있을 겁니다.”

“대체 어떤 원리로 한국 전체를 지켜보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질 않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CCTV나 IP 카메라 등을 이용한 디지털적 감시망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흔적이나 조짐 없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24시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첩보의 프로였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가지고 한서진이 펼치는 감시망의 스펙 일부분을 정확히 추론해냈다.

“기절시키는 거야 간단한 전기 충격을 신경계에 가하면 그만이니 어렵지 않은 일이고……. 그런데 이걸 잘 이용하면 대량 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쉿,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자네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몰라?”

“앗,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대량 살상 이야기를 꺼낸 요원은 얼굴이 두려움으로 빨개진 채, 하늘을 향해 정신없이 사죄를 올렸다. 마치 누군가가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분이 지켜보고 계신다. 섣불리 실언하지 말게.”

“예.”

어쩌면 한서진이 자신들도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으니, 단어와 억양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에테르는 참으로 전능한 힘이군요. 이런 것까지 가능할 줄이야…….”

“정말 시티즌은 신과 다름없군요. 아니, 이미 신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시티즌은 처음 세상에 힘을 드러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얼굴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사진들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고 난 뒤, 요원들은 더욱 몸을 떨었다.

논의를 이어나갈수록 점점 두려움이 몸을 엄습해온다. 지금 이 회의, 계속 이어 나가도 되는 걸까?

지부장이 엄숙히 말했다.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은 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의 행동을 막을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안 그런가?”

“…….”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그리고 가만히 내버려두신다. 그분이 우리의 움직임을 불쾌하게 여기셨다면 진작 조치를 취하셨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정부를 움직여 부서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이상 이런 논의가 나오지 못하게끔 엄중한 경고를 전달할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범죄자들에게 그러했듯이 원격 충격으로 자신들을 위협할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히 지켜보고 있을 텐데, 아무런 제지도 가하지 않는다. 지부장은 그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분도 우리가 알아낸 사실을 본토에 전달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맞습니다. 그분이 범죄에 대한 무차별 응징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미국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확실한 것은 그분이 원하는 것은 범죄에 대한 응징이지, 모든 인간들을 자신의 발 아래 두고 노예로 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입증은 끝났습니다. 그분이 범죄 응징에 사용하는 힘……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러지 않으시지.”

지난 시간 동안 알아낸 일들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프로그램’은 범죄적 행동과 비범죄적 행동을 완벽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경찰이 현행범을 체포하기 위해 휘두르는 무력 행위와, 취객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시비가 붙어 휘두르는 주먹을 완벽하게 구분할 줄 안다.

행위가 가지는 관념을 완벽하게 해석할 줄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는 점.

대규모 감시 및 제압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그 무위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행동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체제를 구현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해야겠다.”

지부장은 CIA 국장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보고서를 보냈다. 한국 지부장이라면 응당 그렇게 해도 되었다.

물론 국장에게도 따로 보고서 내용을 보냈다. 대통령에게만 보고하고 국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에 국장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통 보고를 올린 것뿐이다.

보고서를 올리고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에게서 직통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은 다짜고짜 물었다.

「보고 내용이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신이시여!」

대통령의 부르짖음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한참 후 겨우 진정이 된 대통령이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한서진 박사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실시간 지켜볼 수 있다는 겁니까?」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한국 내에서만 직접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만.”

「테스트인 걸까요?」

“테스트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 일에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직접 물어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지저스…….」

“시티즌의 인품이라면 미국에도 그 제압 시스템을 도입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도입만 된다면, 총기로 인한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사실상 총기폐지국가가 되는 겁니다.”

「한서진 박사는 지금 우리 대화도 지켜볼 수 있겠죠?」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할 겁니다. 지구 전체를 지켜본다, 그분이 구현한 범죄 제압 시스템은 이런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럼 왜 지금 그분에게서 연락이 안 오는 겁니까? 지켜보고 있다면…….」

“절실하지 않은 기도의 목소리는 신에게까지 닿지 않는 법입니다.”

============================ 작품 후기 ============================

네 기도에는 절실함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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