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35화 (535/609)

00535  하늘의 눈동자  =========================================================================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23일부터 나흘 간 강력 범죄로 사망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니.

통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에, 박시우는 혼란에 빠졌다.

“말도 안 돼.”

그는 퇴근도 마다한 채, 하루빨리 집계 데이터가 쌓이기만을 기다렸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나흘 이후의 데이터가 드디어 도착했다.

데이터 집계를 마친 그는 거의 기절할 듯한 충격에 사로잡혀야만 했다.

“나흘이 일주일로 늘어났어.”

무려 일주일 간, 강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수치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박시우는 패닉에 빠졌다.

관련 사실을 보고 받은 부서장은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가, 박시우가 진지하게 설명하자 태도를 바꿨다.

“이게 그 정도로 놀라운 일인가?”

“예, 일단 일주일 간 살인 피해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무척 놀랍습니다. 그렇다고 범행 시도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아니고요.”

“흠, 피해자들이 운 좋게 자기 자신을 잘 방어했다고 생각하면…….”

“개별적으로는 그렇겠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큰 그림을 증명하는 지표입니다. 국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음…….”

“그뿐만이 아닙니다.”

박시우는 잔뜩 흥분을 띤 채, 마치 검사가 용의자를 몰아붙이듯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살인미수 사건 외의 다른 범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건이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무슨 뜻인가?”

“살인 외에도 폭행, 상해, 강도, 강간, 일단 이 정도만 집계를 내봤습니다. 결과가 어떤지 아십니까? 모두 미수로 끝났습니다. 기수가 단 하나도 없어요.”

“뭐?”

부서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시우는 이제야 말이 통하겠구나 싶어 조금 풀어진 얼굴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들을 다 합치면 발생 건수가 몇 건인지 아십니까? 그런 일이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일어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확률인지는 국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다 불러 모아. 이거부터 확인해야겠다.”

급히 사람을 불러 모은 부서장은 이틀을 꼬박 세워가며 수치 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경찰과 검찰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하며, 좀 더 많은 데이터를 쌓아 나갔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번 달 23일부터 일어났던 모든 강력 범죄가 실패로 끝났어.”

“원인 또한 하나같이 동일합니다. 범행을 시도하던 범인이 기절해서 실패로 끝났죠.”

“아직 실패 원인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지만…… 그건 아직 확인 작업이 덜 되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만약 그것들도 같은 원인에서라면…….”

박시우를 비롯해 통계 분석을 위해 모인 이들은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정수리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짜르르했다.

강력범죄를 시도한 이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원인불명의 기절을 당했고, 그래서 범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장에는 아무런 이상 조짐이 없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피해자 또한 왜 범인이 기절했는지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것을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어떤 놀라운 힘이 개입하여, 범인이 죄를 짓지 못하도록 중간에 제지를 한 게 아닐까?

“세연동…….”

박시우가 무심코 중얼거리자 부서장은 화들짝 놀라서 그를 다그치듯이 몰아세웠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갑자기 세연동이 여기서 왜 나와?”

“아니,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이 세상에서 그분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허, 이 친구 보게! 어디서 지금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국장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한서진 박사가 어떤 범죄 감시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래서 실시간으로 우리나라 전체를 확인하면서 범죄가 일어나겠다 싶으면 범인에게 전기 충격을 주어 미연에 방지하는 거다, 차라리 이게 납득이 가지 않나요?”

“그래도 이 친구가……!”

“그럼 그 많은 범죄자들이 죄다 몸에 지병이 있어서 하필 범행을 딱 저지르려는 순간에 그 스트레스로 발작을 일으켜 기절을 했다, 그래서 모든 범죄가 미수로 끝났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으신 건가요?”

“…….”

부서장은 마침내 말문을 잃었다.

박시우의 주장에 어떤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정황을 보면 자신도 그의 말을 믿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이것은 분명히 무언가 인위적인 조작이 개입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을 지닌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만이 존재한다.

시리아 사건…….

미국은 국방부에서 개발한 제압 약물을 이용한 결과라 주장하지만, 깨어 있는 지식인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설령 제압 약물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한날한시에 전 세계에서 효과를 발휘하게 한다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항간에 떠도는 추측대로 시리아 사건이 한서진 혼자서 벌인 일이라면, 지난달부터 벌어진 이 놀라운 일도 설명이 되지 않는가.

“아무리 에테르가 대단하다 해도……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대체 어떤 원리로?”

“알지 못하는 영역의 과학 기술을 예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이리 없지요. 에테르로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오로지 한서진 박사님만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국장님. HAMC를 생각해보세요. 우주에서 떠도는 소행성 중 원하는 희토류 운석만 정확히 골라서 지구의 정확한 좌표에 떨어뜨리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거기서 이미 다 끝난 이야기에요. 에테르는 사기입니다, 사기! 그냥 사기나 마찬가지인 에너지라고요. 우리 지식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가 없어요.”

“범죄가 일어나려는 것을 미리 포착해서 범죄자를 기절시키는 것쯤이야 껌이겠죠. 한서진 박사님한테는 그런 빅브라더 시스템 구축하는 건 우습지도 않을 겁니다.”

부서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직원들의 항의와도 같은 주장을 묵묵히 듣고 넘겼다.

한참 후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생각은 그러니까…… 한서진 박사가 실시간으로 한국사람 전체를 지켜보고 있다 이거지?”

“정확히는 그런 관찰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봐야겠죠. 그 바쁜 분이 쓸데없이 종일 그러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관찰 시스템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행동을 매순간 분석할 만한 판단 능력을 가졌다고 봐야겠죠. 그 사람의 행동이 범죄인지 아닌지, 상황과 동기, 패턴, 그 밖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 사고 능력을 가졌을 겁니다.”

“마치 사람처럼?”

“네, 사람처럼.”

“그리고 사람보다 더 정확하고 실수 없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완벽하게 문제없이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증거는 존재하지 않지만, 정황은 존재한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행위가 불법인지 아닌지, 그런 법리적인 고리를 따져볼 겨를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힘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그 무한한 가능성에 신을 영접한 것처럼 침묵할 뿐이었다.

“보고…… 해야 할까요?”

“공식 보고서에 쓸 수 있는 내용만.”

한서진에 관한 추론은 일절 빼라는 뜻이다.

실제로 존재하고 집계된 사실, 23일부터 단 한 명의 강력 범죄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은 하나같이 범행 시도 직후 범인이 기절한 것에 있다는 것.

이것들만 적으라는 뜻이었다.

하늘의 눈동자를 가동한 후, 한서진은 어린 참새 새끼를 돌보듯이 세심하게 살폈다. 프로그램은 완벽하지만 가동 중에 혹시라도 모를 오작동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명령과 조건도 세심하게 짰다. 무엇보다 인명에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설정했다.

혹여 당장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위급한 상황일 경우에는 하늘의 눈동자가 직접 119에 신고를 넣도록 했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신체와 건강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겼다거나 하는 경우.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다.

“좋군. 아주 좋아.”

한서진은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지난 시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만족스러워 했다. 하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황홀한 감동이 묻어났다.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모든 강력 범죄가 하늘의 눈동자 가동 이후 완벽하게 소멸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하늘의 눈동자는 수천만 개가 넘어가는 표적 대상들을 정확하게 감시했으며, 그들의 행동이 띄는 의미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판별했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개입하여, 참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

예를 들어, 한적하고 어두운 골목길에 어떤 사람이 혼자 걷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그를 향해 다가가며, 걸음걸이를 빠르게 한다거나 이유 없이 흥분해서 숨결이 거칠어지거나 하면, 하늘의 눈동자는 경계 상태로 그를 관찰한다.

만약 그가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면 경계 위험도는 더욱 올라간다.

그리고 그가 갑자기 벽돌이나 칼을 꺼내 앞서 가는 행인을 뒤에서 덮치려고 하면, 즉시 전기 충격을 가해 기절시킨다.

범행을 시도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완벽한 타이밍에 제압하여 불상사도 막고 증거도 확보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사냥꾼이 총을 들고 산속에서 멧돼지를 향해 사격 자세를 취하면,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내버려둔다. 사격 그 자체만으로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적 행위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냥꾼이 등산객을 멧돼지로 오인하여 사격 자세를 취할 경우, 즉각 제지하여 사격을 막는다.

이때에는 그가 범죄 의도가 전혀 없으므로 기절시키지는 않고, 손에 가벼운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사격을 하지 못하게 제지하는 선에서 끝낸다.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메스로 환자의 배를 가르는 것은 상해 행위지만, 범죄가 아니기에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내버려둔다. 물론 만약 그 의사가 살인범으로 돌변한다면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한다.

성공적으로 막은 범죄 건수만 천 건이 훌쩍 넘었다.

강력 범죄로 인한 피해자가 없어졌다는 것에 한서진은 큰일을 해낸 것처럼 흐뭇했다.

무엇보다 그가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은 학교 폭력이었다.

“이게 이렇게도 해결이 되는구나.”

우습게도, 하늘의 눈동자는 학교 폭력에서도 큰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타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즉시 기절시켰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소위 말하는 날라리 학생들은 미신적인 두려움에 떨며 다른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게 되었다.

폭력의 선을 넘지 않는, 교묘한 선에서 급우를 괴롭히는 이들에게도 일정한 효과를 발휘했다. 툭툭 건드리거나 몰래 발로 차거나 하는 애매한 행위를 할 경우, 즉각적으로 충격을 주어 고통을 느끼게 한 것이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마찬가지로 ‘은따 당해서 죽은 귀신이 복수하나 봐.’라는 두려움이 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가며, 어느 정도 진정되는 효과가 있었다.

“확 세상에 공개하고 싶다.”

물론 마음만 그렇다.

하늘의 눈동자가 공개되면 사람을 감시한다는 반론이 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사람들의 사생활을 일일이 엿보는 것도 아닌데.

“미국은 지금쯤 눈치 챘으려나?”

============================ 작품 후기 ============================

오늘도 미 대통령은 서쪽을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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