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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34화 (534/609)

00534  하늘의 눈동자  =========================================================================

「도와주세요. 지금 모르는 사람한테 끌려와서 묶여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늦은 저녁에 걸려온 전화에 A경찰서 상황실에는 긴장감이 짙게 깔렸다.

전화를 받은 당직자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제대로 초동 조치를 못해 피해자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 떠올랐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수룩하게 대응하다가 결국 피해만 더 키운 것이다.

그 덕분에 꽤나 많은 경찰 고위직이 옷을 벗었고, 국민들의 냉랭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일단 침착하세요. 범인이 근처에 있습니까? 이 전화를 들을 수 있나요?”

「모르겠어요. 지금은 안 보여요.」

“지금 선생님의 위치를 추적 중입니다. 하지만 정확도 향상을 위해서 주변에 보이는 큰 간판이나 건물 같은 것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술에 반쯤 취한 상태로 끌려왔…… 꺅!」

「뭐하는 거야!」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고, 곧이어 전화가 꺼졌다.

상황실은 곧장 추적한 위치 인근 지역을 순찰 중인 경찰들에게 지령을 보냈다.

다만 위치 추적 시스템의 오차 덕분에, 정확한 범행 장소를 특정할 수는 없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안 보입니다.」

순찰 경찰들은 열심히 의심 지역을 뒤졌으나, 별 소득 없이 벌써 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덕분에 상황실은 피가 마르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5분, 어떻게 보면 짧지만 반대로 흥분한 범인이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르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다.

게다가 범인은 피해자가 신고를 했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 사이에 무슨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였다.

“피해자 전화입니다!”

같은 번호로 다시 한 번 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을 자극할까 봐 이쪽에서 다시 전화를 걸 수 없는 상황에서 걸려온 전화, 상황실의 분위기는 극도로 얼어붙었다.

과연 피해자가 안전한 상황에서 몰래 건 것일까, 아니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전조일까?

「아, 아까 묶였다는 사람인데요…….」

“예, 말씀하세요.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위험한가요?”

「모르겠어요. 전 여전히 묶여 있고, 절 묶은 남자가 갑자기 기절했어요.」

“기절을 했단 말인가요? 갑자기?”

「네, 그리고 몇 분 넘게 일어날 생각을 안 해요. 그래서 몰래 전화를 걸었어요. 빨리 와주세요. 언제 일어날지 무서워요.」

“알겠습니다. 혹시 근처에 보이는 게 있나요?”

「제 오른쪽에 창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노란색 간판 불빛이 보여요.」

상황실은 피해자로부터 들은 주변 지리 사항을 순찰팀에게 전달했고, 머지않아 순찰팀은 무사히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이 문을 뜯고 들어올 때까지 범인은 깨지 않았다.

순찰팀은 범인을 완전히 결박한 뒤 피해자를 풀어주었고, 상황실에는 안도의 한숨이 돌았다.

“다들 수고했어. 서장님도 기뻐하실 거야.”

당직 책임자는 그제야 얼굴이 활짝 펴서, 근무자들에게 칭찬의 말을 돌렸다.

하필 관할 구역에서 끔찍한 강력범죄가 발생할 뻔했는데, 다행히 어렵지 않게 범인을 검거하고 피해자도 무사히 구출해냈다.

“무엇보다 초동 대처가 완벽했어.”

“그건 좀…… 사실 범인이 타이밍 좋게 기절해서 그런 거지, 만약 기절하지 않았으면 피해자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겨우 5분 가지고 뭘? 전화 갑자기 끊어진 상황에서 그럼 뭘 더 할 수 있어?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까 다 좋은 거지.”

“…….”

“아무튼 서장님과 통화해봤는데 조만간 회식 크게 할 것 같으니까 다들 기대하라고.”

초동대처가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가 매우 좋았다.

안 그래도 최근 긴급상황에 대한 경찰의 대응 능력이 미적거린다는 비판 여론이 강세인 분위기였다. 최근 112 상황실 직원이 머뭇거리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화를 키운 것도 컸다.

그런 분위기에서 피해자를 무사히 구출하고 범인도 검거했으니, 자연히 여론은 A경찰서를 띄워주기 시작했다.

범인이 기절 상태였다는 것은 두각 되지 않았다. 상황실 직원의 적절한 조치와 현장 순찰팀의 민첩한 대응으로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포장되었다.

당시 피해자는 술에 취한 채로 귀가 중이었고, 범인은 강간을 목적으로 그녀를 몰래 뒤따르다가 한적한 곳에서 납치,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 것으로 판명이 났다.

피해자를 묶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그는 몰래 신고 중인 것을 발견했고, 분노해서 야구 배트를 들고 피해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기절하면서 넘어졌다고 한다.

“근데 범인 몸에는 아무 이상 없었다던데, 왜 하필 그때 갑자기 기절한 거지?”

“지병이라도 있었던 거 아니야?”

“그런 거 전혀 없대.”

관계자들 사이에 그런 의문이 잠시 돌기는 했으나, 금세 사그라져버렸다.

어쨌든 피해자는 무사했고, 범인을 잡았으며, 경찰은 장관 및 국민들의 칭찬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시작이었다.

「수원 살인범! 3차 범행 시도에서 검거! 피해자는 다행히 무사해.」

「서울 xx동 강도, 초범 시도 실패에 그쳐. 다행히 피해자는 다친 데 없어.」

「부산 어느 술집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칼부림, 천운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나. 가해자는 알코올 과다 섭취로 기절한 것으로 추정.」

매스컴은 최근에 일어난 강력 범죄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을 조금씩 늘려서 내보내고 있었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범죄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계획적인 범죄든, 우발적인 범죄든 가리지 않았다.

대다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일선에서 뛰는 강력계 형사나 경찰들은 조금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긴 했다.

“요즘 이렇다 할 사건이 별로 안 일어나는 거 같은데.”

“최근에 강력범죄 8명 검거한 거, 죄다 현장에서 미수범으로 붙잡혔지 아마?”

수배 중인 용의자를 잡기 위해 자동차 안에서 잠복근무 중이던 강력계 형사는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던데? 적어도 우리 서 관할 지역에서 죽거나 다친 피해자는 한 명도 없다더라.”

“지금이 2주째인가? 그냥 일 년이 지금 같았으면 좋겠네.”

“그럼 아주 꿈이지. 아무도 안 다치고 안 죽고, 범인은 멀쩡히 잡히고. 캬, 일 년이 지금 같다면 굉장히 살 맛 나겠어.”

동료는 피식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 서에서 붙잡은 그 8명, 죄다 현장에서 기절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랬던 것 같아.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증언했다던데.”

“뭔가 우연치고는 좀 이상하지 않아?”

“뭐 범행을 저지른다는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기절할 수도 있으니까…… 잠깐.”

형사는 목소리를 낮추고, 정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금 떨어진 곳에,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가 낡은 빌라의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놈 맞지?”

“맞아. 확실해.”

“가자. 놓치면 안 돼.”

두 형사는 천천히 차에서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다. 용의자는 아직 그들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빌라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거리가 5미터 이내로 가까워졌을 무렵, 갑자기 용의자가 멈칫했다.

‘젠장!’

눈치 챘구나! 두 형사는 이를 갈며 용의자를 향해 재빨리 뛰어들었다.

용의자는 번개처럼 몸을 돌린 채 그들의 습격을 피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쥐고, 날을 앞으로 향했다.

험악스러운 표정이 두 형사를 노려봤다.

“가까이 오지 마! 죽는다!”

“이재복 씨, 당신 이러면 안 돼. 이거 더 큰 죄 짓는 거야.”

“꺼져!”

용의자는 눈알을 부라리며 두 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힘차게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용의자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동시에 손에서 떨어뜨린 칼이 쨍강거리며 나뒹굴었다.

형사 하나가 잽싸게 칼을 멀리 발로 찼고, 다른 형사가 뒤에서 용의자를 덮치고 몸으로 깔고 눌렀다. 그리고 수갑을 꺼내 용의자의 손목을 뒤로 돌려 결박했다.

“이재복 씨, 당신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응?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놈, 기절했는데?”

“뭐?”

“기절했어. 봐봐.”

동료의 말에 용의자의 상태를 확인한 형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를 돌아봤다. 수갑을 채운 동료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보지 마. 나도 당황스러워.”

“아니, 방금 전까지 우리를 죽일 듯이 달려들던 놈이 갑자기 기절한다는 게 말이 돼?”

“원래 지병이 있는 놈이었나?”

“지병이 있다 쳐도 그렇지, 무슨 기면증 환자도 아니고 그 순간 딱 의식을 잃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어쨌든 잘 됐네. 잡았으니까 일단 데려가자.”

“잠깐만, 미란다 고지 좀 하고…….”

“기절한 놈한테 그거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듣지도 못할 걸.”

“그래도 나중에 문제 안 생기게 하려면 고지는 해야지. 변호사 놈들이 물고 늘어지면 골치 아파. 자네가 거기서 녹화 좀 해줘.”

“뭐하는 짓인지.”

수갑을 채운 형사는 기절한 용의자의 등에 대고 마저 고지를 했고, 동료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폰으로 녹화했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감지한 것은, 다름 아닌 통계청이었다.

통계청에 근무하는 박시우는 입사 10년 차의 베테랑으로, 주로 범죄 관련 집계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게 저번 달 23일 집계라고? 뭔가 이상한데?”

집계 결과가 대단히 이상하게 나왔다. 국내에서 일어난 모든 강력 범죄가 ‘미수’에 그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범인이 목적한 바를 전혀 이루지 못했다.

살인을 시도한 이, 강도나 강간을 시도한 이, 심지어 폭행을 시도한 이도 모두 원했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가리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필 운 좋게 그날따라 범죄 발생 수가 매우 적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범죄 발생 빈도는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하지만 한 건의 예외 없이, 모든 범죄가 실패했다니.

“내가 이 일을 10년 넘게 해왔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23일, 그날 하루에 벌어진 집계 결과에 그는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 이거 A경찰서가 장관상 받았던 그 사건이 일어났던 날 아니야?”

정말 운이 좋게 범인이 기절하는 바람에 피해자도, 경찰도, 국민도 모두가 해피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던 그날. 물론 범인이 기절해서 좋게 끝났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뭔가 이상한데…….”

박시우는 퇴근도 마다한 채 집계 작업을 서둘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결과를 알게 되었다.

“23일부터 나흘 간…… 강력 범죄로 사망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 작품 후기 ============================

고대의 지하신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한서진을 인간에서 현대의 지상신으로 승급시켜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절대로 현대배경 신 놀음 에피소드를 한 번쯤 구체적으로 써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도 맞습니다.

고대의 지하신과 현대의 지상신, 그 둘이 마지막으로 벌일 숙명적인 최후의 전투를 기대해주세요!

―실탄프로덕션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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