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33화 (533/609)

00533  하늘의 눈동자  =========================================================================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무사히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둘 다 건강합니다. H-5 덕분에 더 악화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현장에서도 혀를 내둘렀습니다. 특히 가해자는 탄환에 팔다리가 뚫려 불구가 될 뻔한 부상이었는데, H-5를 투여하자 근육 조직이 정상적으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후유증은 아마 안 남을 겁니다.”

“의료진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대만 하고 있나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앞으로 H-5 때문에 의료계 밥그릇도 대폭적으로 줄어들 거라고 들어서요. 그들에게는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닐 텐데요. 아닙니까?”

“…….”

한서진이 보이는 묘한 냉소에 박현준 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다.

처음 의료계는 H-5의 등장을 뛸 듯이 반겼다. H-5는 실로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장기간 꾸준히 투여하는 것만으로 거의 모든 질환이 완치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가 보인 반색은 잠시였다. 그들은 곧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이러면 다른 제약회사들은 다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내과 의사들도 다 옷 벗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어떤 병이든 간에 H-5만 투여하면 다 낫는데, 의사가 뭐가 필요해?’

‘그 많은 의료 종사자들…… 전부 한순간에 쓸모가 없어지게 되는 거잖아?’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기존 의료진은 병환 진단이나 외과적 수술 외에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었다. 많은 의료인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벌써부터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다른 의약품 공급 요청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들은 H-5를 처방받고 싶어하지, 기존의 다른 약으로 치료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재래식 약보다 H-5가 효과에서도 월등했기에, 의료인들도 그런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정식 시판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은 분명했다.

각국 정부는 부랴부랴 사태 수습을 위해 나섰다.

“국내 의료계를 지켜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그런 구호에 맞춰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H-5가 아무런 견제 없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 국내 의료 시장은 붕괴되고 만다.

의료 종사자들은 그런 처참한 몰락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H-5의 도입에는 찬성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의료계의 여론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유럽 정치인들도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야!”

“H-5의 조속한 도입은 찬성, 근데 의료 시장 몰락은 반대.”

“그 약이 들어오면 시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니까! 지금 상황을 이해 못해?”

여기에 무조건적인 H-5 도입을 원하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가세하면서, 실로 유럽 의료 분야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결국 유럽은 절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기존 약으로도 효과를 볼 수 없거나 그 기대치가 미미할 경우에 한해 H-5를 투여할 것.」

쉽게 말해 H-5를 보조적인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기존 약을 써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쓰지 못하게 유도했다. 아예 금지를 한 것은 아니고, 국고 보조비 지원을 줄인다던가 하는 조절을 통해, 금전적인 문제로 H-5를 피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H-5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분야에 한해서만.

그리고 프랑스 같은 경우는 여기에 한 술을 더 보탰다.

―프랑스에서는 향후 개발될 신약도 H-5에 우선하여 사용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H-5의 놀라운 효능은 인정하나, 제약시장의 다양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일 뿐이다. 제약산업의 과도한 일원성과 집중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의 약으로만 통일된 제약 시장은 위험하다. 다양한 제약회사들이 번성할 수 있는 생태계를 꾸려야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H-5의 시장 잠식에 일정 이상 제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H-5를 적대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제약 생태계의 장기적인 번창을 위한 대승적인 결정일 뿐이다.

프랑스 정부의 주장은 제법 그럴듯하게 시장에 먹혔다. 물론 H-5가 절실한 환자들에게는 뻘소리일 뿐이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진지하게 제약업계의 생태계 보존을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박사님, 저희 측에서 적극 대응을 해야 할까요?”

“회장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시죠?”

“저는 굳이 저들의 저항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는가 싶습니다. 자국 의료 시장을 지키겠다는 걸 굳이 못 하게 막을 이유도 없고요. 결국 저들도 먹고 살고자 하는 짓 아닙니까.”

한서진은 조용히 들었고, 박현준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말을 계속했다.

“H-5를 아예 배척했다면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H-5 말고 다른 약이나 의료 서비스로도 충분한 분야만큼은 자기들이 우선권을 갖고 싶다는 거지요.”

“어쨌든 영원그룹의 이익에는 큰 방해가 되겠군요.”

“괜찮습니다. 박사님께서 H-5를 세상에 내놓으신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니까요.”

“그럼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의료 쪽에서 더 이상 박사님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가 아닙니까?”

정곡을 찔리니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물론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한 마음도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H-5가 천문학적인 돈을 벌 것인지 더 천문학적인 돈을 벌 것인지는, 박사님께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십니까?”

박현준은 정확히 보았다.

한서진은 H-5를 놓고 패닉에 빠진 선진국들이 자국 의료 시장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개의치 않았다.

뻔히 H-5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단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방치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저 다른 약이나 서비스로도 치료가 가능한 부분만큼은 빵 조각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그 정도쯤이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오래 전에 잊어버린 동기였으니까.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한서진은 BII의 가상공간 속에 머무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쁘지 않아. 아니, 아주 좋아.’

타르타로스 3의 실시간 지구 재생 시뮬레이션을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것은 매순간 일어나는 인간들의 비극을 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측은지심에 도우려 했다.

그러나 볼 수 있다는 것과,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누군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지역 구조센터에 알려주는 것뿐.

타르타로스 3로 에테르를 움직여, 부상당한 사람을 직접 운반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타르타로스 3가 개별 대상에게 가할 수 있는 에테르 물리력의 출력은, 아직 볼펜 하나도 부서뜨리지 못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뇌신경을 자극하거나 조작하는 등, 초미세 영역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거시적인 영역에서는 종잇장 하나 제대로 찢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 강도 사건을 통해, 한서진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감시카메라, 그리고 제압.’

타르타로스 3가 특정 대상에 강제할 수 있는 에테르의 출력 그 자체는 매우 미미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미세한 출력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뇌를 건드려 인격을 개조했듯이, 그에 버금가는 공격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으니.

‘이건 의미 있지 않을까?’

자동차 추돌 사고, 낙석, 건물 붕괴, 가스 폭발 등의 물리적 비극은 막을 수 없다. 타르타로스 3는 그런 사고를 제압할 수 있는 충분한 물리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한 비극이라면 막을 수 있다.

아주 미세한 에너지 출력이라 해도, 그것을 세포 조직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제압할 수 있으니.

뇌의 신경을 아주 살짝 건드려 일시적으로 온몸을 마비시킬 수도 있고, 의식을 빼앗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상처를 세포 단위로 자극하여 지혈하면서, 한서진은 그 가능성을 보았다.

‘차라리 그 범인을 기절시키는 게 더 나았겠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크게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남을 칼로 찔렀으니, 총알에 팔다리가 관통당하는 고통 정도는 겪어봐야 인과응보 아니겠는가. 저격 라이플이라 해도 어차피 H-5를 투여하면 후유증도 안 남을 텐데.

“좋아. 시범적으로 우선 한국에 적용해보자.”

한서진이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범죄 감시 시스템 구축, 그 초기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정확한 명제와 조건을 설정하면 타르타로스 3는 능동적으로 그것을 이해하여 시스템 환경을 조성했다.

“먼저 에테르 파동망을 짜서 한국 전체를 상시 스캐닝 가시권 영역에 두고.”

이미 타르타로스 3는 지구 관찰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 전체를 24시간 상시 관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관찰 데이터를 따로 저장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설정한 스캐닝 영역은 그 관조 프로그램을 좀 더 구체화하고, 표적을 선별하는 작업이었다.

“감시 대상 행위는…… 일단 폭력 행위로 제한하자.”

그냥 범죄라고 하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역할도 아니다. 법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법이 주먹보다 멀리 있는 상황에서, 그 주먹이 깽판을 치지 못하게 임시로 틀어막는 것이었다.

“폭력으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일단 추적 대상으로 선별되게끔 하고.”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그로 인해 상해를 가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려 하거나, 그런 행위는 남김없이 일단 추적하기로 조건을 설정했다.

‘어디까지나 시범이니까, 쓸데없는 피해가 안 생기도록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엄밀히 법적으로 따지면 불법 감시 행위가 된다.

그러나 피해자의 보호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 위법성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본 한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시험해보고 효력이 있다 싶으면 정식으로 세상에 공표해서 인정받아도 되는 거고. 그건 일단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복잡한 조건을 설정한 끝에 마침내 기본 틀이 완성되었다.

한서진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눈으로, 가상공간 허공에 떠오른 프로그램 씨앗을 주시했다.

이제 실행 명령만 내리면, 타르타로스 3는 가칭 ‘하늘의 눈동자’를 실행할 것이다.

한국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간의 행위를 추적하고 분석하며, 그 중에서 필터링을 통해 폭력적 가해 행위만을 추출해낸다. 폭행, 강도, 강간, 살인 등의 중대한 범죄 행위만 골라내고, 가해자의 신경조직을 자극하여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잘 될까?”

한서진은 프로그램 씨앗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뻗어 최종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황금 원반에 꽂힌 신살검이 파장을 내뿜으며, 한국 전체를 뒤덮었다.

============================ 작품 후기 ============================

돈을 벌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기분을 오래 전에 잊었다... 저도 쓰면서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날이 영원히 오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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