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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32화 (532/609)

00532  하늘의 눈동자  =========================================================================

타르타로스 3를 통해 지구를 관조하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을 본다.

그 무수한 불행에 직접 일일이 개입하여 도와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물리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삶의 시작, 과정, 그리고 끝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서진도 처음에는 도우려 했었다. 그리고 몇 번 의미 있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는 좌절을 느꼈다.

하나는 힘의 한계에 부딪쳐서 오는 좌절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회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지구에서 하루에 죽어나가는 사람의 전체 수만 해도 십 수만 명이다.

아무리 자신이 애를 써서 거든다 해도, 물리적인 한계가 명백하다. 그렇게 몇 십, 몇 백 명을 구한다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 규모의 차이에서 오는, 내가 무의미한 일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좌절감이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닌 한, 성공적으로 다른 이들의 비극을 막을 방도도 없었다.

그래서 한서진은 포기했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바로 자선사업, 그리고 구호사업이었다.

구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힘을 빼느니, 차라리 그런 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게 효율적이고 낫다고 판단했다.

그 뒤로 그의 태도는 변했다.

지구 전체를 관조하기는 해도, 세세하게 벌어지는 불행이나 비극에 개입하지 않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느 시골의 산골짜기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누가 절벽 추락 사고로 죽어간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119에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자신이 하루 종일 타르타로스 3가 보여주는 지구의 실시간 모습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앉은 자리에서 내다보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비극을 해결하는 물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러나 지금 같은 경우는 달랐다.

“아직 살아 있어.”

범행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는 바로 집 앞, 그리고 아직 피해자는 살아 있는 상태였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한서진은 재빨리 해당 지역을 확대했다. 투영되는 3차원 영상에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였으나, 곧 말끔하고 투명하게 변했다.

그곳은 민간 주택 지역이었다.

한서진이 편의상 ‘집 앞 근처’라고 표현했지만, 그보다는 좀 거리감이 있었다. 경호구역을 완전히 벗어난 곳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치 현장에 직접 와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이었다.

범행 장소는 어느 한적한 빌라였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씨발! 그러니까 진작 돈 내놨으면 좋았잖아!

―119, 제발 119에 연락을…….

―닥쳐! 너 때문에 내가, 내가…….

피해자는 칼에 찔린 채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강도로 보이는 가해자는 칼을 손에 쥔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범행이 처음이었는지 가해자는 반쯤 패닉 상태였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맛이 간 듯이 보였다.

‘어리다. 미성년자?’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남자였고, 가해자는 아무리 높게 봐줘도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청소년이었다.

한서진은 BII 공간 속에 머무른 채, 현실 세계로 지시를 내렸다. 서두른다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시를 받은 경호원들은 당황했으나, 곧장 정문을 뛰쳐나가 범행 장소로 향했다. 그 동안에게 한서진은 그들에게 세세한 지시를 멈추지 않고 내렸다.

만약 잘못해서 범인을 자극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흥분으로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타르타로스 3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관조할 때마다 느꼈던 무기력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타들어가는 심정을 안고, 경호원들이 범행 장소로 잠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범인은 마침내 칼을 떨어뜨린 채 웅크리고 앉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냥 자수해!’

한서진은 애가 탔다. 범인에게 목소리를 전달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에테르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동요하는 범인을 자극하게 될까 봐 엄두가 안 났다.

만약 범인이 놀란 나머지 더 큰일을 벌인다면,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것 같았다.

경호원들은 조금 열린 문을 살짝 열고 안에 들어섰다. 한서진이 내리는 지시를 따른 것이다.

이제 범인과 경호원들 간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 아직 서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각도였다. 무엇보다 범인은 경호원들이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한서진은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을 안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누구야!”

범인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칼을 쥐어들며 외쳤다.

경호원들 잘못이 아니었다. 재수 없게도 하필이면 그때 기울어져 있던 가구가 넘어지며 작은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범인이 지레 놀란 것이다.

“숨지 말고 어서 나와!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범인은 벌벌 떨며 칼을 피해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호흡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고, 눈에는 초점이 사라졌다.

‘여기서 지혈은 안 되나?’

한서진은 급히 생각을 해보았다. 에테르를 이용해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 치료 작용을 할 수는 없을까?

수십, 수백만 명의 뇌신경을 조작해 단숨에 인격 자체를 바꿔놓기도 했는데, 단 한 명의 상처를 지혈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에 곧바로 명령을 입력했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료, 혹은 지혈할 것.’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길이 수십 미터 젓가락을 이용해 접시 위의 콩을 들어 올리는 것 이상으로, 매우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러나 이미 타르타로스는 시리아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 뇌신경을 건드려 인격 자체를 바꿔놨는데, 사람의 상처를 지혈하는 것쯤이야.

그가 입력한 명령이 곧바로 실행되었다.

타르타로스 3는 곧바로 지구 전체를 뒤덮은 에테르를 파동 에너지로 뒤흔들며, 피해자를 향해 접근했다. 그리고 벌어진 상처를 막고, 조직 세포의 융합을 자극하며 치유에 나섰다.

수많은 테러 조직원들의 인격을 한순간에 고친 적도 있는데, 한 명의 상처를 보듬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이봐, 진정해!”

“피해자를 봐! 피를 흘리고 있어! 만약 그 사람이 죽는다면 넌 살인범이 되는 거야!”

“우리가 그 사람을 데려가게 해줘!”

이미 들켜버린지라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피해자가 위험해지기에 적극적인 설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저,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마! 오기만 해봐! 내가 이놈을 그냥 콱 죽여 버릴 거야!”

어린 범인은 벌벌 떨면서도 끝내 칼을 놓지 않았다.

한서진은 잠시 범인에게서 눈을 뗀 채, 피해자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예상과 달리, 한순간에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어려웠다.

시리아 사건은 뇌신경을 조작하여 피와 싸움에 대한 공포감만을 끼워 넣은 것이었다.

반면 피를 지혈하고 세포의 상처 수복을 돕는 것은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많은 에너지 투사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뇌신경 조작처럼 정밀하고 섬세한 작업은 아니지만, 반대로 투박한 작업이기에 에너지 조절에 더욱 신경 써야 했다.

‘됐다!’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완전히 상처를 낫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주요 혈관의 지혈 등을 비롯한 응급처치가 완전히 끝났다. 이대로 빠른 시간 안에 병원에 호송되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자수해! 아직 나이도 어린데 이런 식으로 인생 망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그 사람 아직 살아 있어! 너도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어!”

경호원들이 다시 한 번 간곡히 설득했다. 때마침 한서진은 저격수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했다. 바로 자신의 저택을 경호하던 저격수들이었다.

한서진을 위해 배치한 저격수들이 흔한 소년강도범을 경계하러 움직이지는 않지만, 한서진이 직접 내린 구조 지시였기에 그들까지 합류한 것이다.

―이 위치라면 팔과 다리를 동시에 사격해서 제압할 수 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팔과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되는 지독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었다. 저격수들이 가진 장비는 제압이 아니라 완전한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고성능 저격총이니까.

그러나 그런 후유증이라면 희석 엘릭서인 H-5로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즉시 제압하세요.’

―알겠습니다.

한서진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아서일까. 저격분대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들떠 있었다.

한서진의 의식은 범인 바로 앞에 선 채, 저 멀리서 예열 중인 실탄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지만, 총구 안에서 금방이라도 박차고 뛰어나올 듯이 준비 중인 탄환이 똑똑히 보인다.

두 명의 저격수가 호흡을 맞춘 채, 동시에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고 있었다. 마치 영겁의 시간이 흐르듯이, 그 모습이 천천히 눈동자에 각인된다.

격철이 천천히 뛰어올라 탄환의 후면을 때리고, 뇌관이 격발하며 화약이 터진다. 그 폭발력을 딛고, 두 발의 탄환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그 시간차는 불과 0.05초 미만, 두 저격수의 호흡은 실로 완벽했다.

한서진의 의식은 그 자리에 선 채, 두 발의 탄환이 천천히 날아오는 것을 주시했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물의 시간이 꽁꽁 얼어붙은 듯이 느리게 지나갔다.

느릿하게 허공을 유영하던 두 탄환은 각각 소년범의 오른팔, 그리고 오른다리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유유히 뚫고 나와 실내 바닥까지 파고들어갔다.

“아아악!”

단말마와도 같은 범인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 순간 얼어붙어 있던 시간이 일제히 해동되었다.

범인은 칼을 놓친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나뒹굴었고, 경호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뛰쳐나갔다.

“119는?”

“아직 오고 있어! 그냥 저택에 있는 구조차 불러! 그게 훨씬 빨라!”

“하지만 그건 박사님을 위한 비상…….”

“박사님이 어떤 자원이든 가져다가 쓰라고 하셨으니까 괜찮아! 박사님 지시라고!”

“알았어! 지금 바로 부를게!”

세연동 저택에서 24시간 대기 중이던 대형 구급차가 재빨리 현장을 향해 출동했다. 움직이는 방공호 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첨단 의료 장비를 갖춘 구급차였다. 심지어 테러에 대비해서 웬만한 폭발물에도 끄떡없도록 만들어졌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각 다른 구급차에 실린 채 병원으로 향했다. 한서진이 보기에는 가해자의 상태가 더 심해 보였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해주지는 않았다.

―상황 종료되었습니다.

한서전이 현장에서 내내 지켜봤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지휘관이 공손히 보고했다.

한서진의 의식은 아무도 없는 범행 현장에 남은 채 우두커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들이닥치며 현장 보존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

그런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한서진은 문득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 해볼 만한데?’

============================ 작품 후기 ============================

신 놀음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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