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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28화 (528/609)

00528  한 걸음  =========================================================================

에테르 개량 처리한 석유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지만, 늘 그렇듯 한서진에게는 보고서 몇 줄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래요? 국제 여론이 그렇게 호의적이라는 거군요.”

“네, 박사님께서 석유 환경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하나같이 반응이 좋습니다. 더군다나 개량 처리로 받는 비용을 구호사업에 모두 쏟겠다고 하신 게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국제 여론 동향을 보고하는 비서실장의 목소리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한서진에게 쏟아지는 칭찬과 존경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에테르 학회 정회원 수가 드디어 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벌써요?”

에테르 학회는 저명한 물리학자들을 주축으로 해서 최근에 만들어진 모임을 말한다. 현재 학회장은 공석이며 니트론 교수가 대행 역할을 맡고 있었다.

회원들은 한서진이 협회장을 맡아줄 것을 원했지만, 자신이 원해서 만들어진 협회도 아닌지라, 그는 그저 고문으로 이름만 올려두고 있었다.

현재 전 세계 과학자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에테르를 연구하고 배우는데 열성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에테르학 초기에는 주로 물리학자, 그리고 전자전기 공학자들 위주로만 관심을 보였다. 화학자나 생명공학자들은 깊이 있는 흥미를 보이진 않았다.

의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타학문에 대한 가벼운 흥미 정도로만 대했었다. 에테르와 의학,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랬던 학계 분위기가 대번에 바뀐 것은 에테르를 반도체 외의 영역에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재해를 예측하고, 놀라운 신약을 개발하며, 우주 공간의 소행성을 선별하여 지구로 불러들인다.

에테르가 모든 학문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학자들의 태도는 변했다.

전공 분야에 상관없이, 학자들은 에테르를 배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 열풍은 학회에 등록된 회원 수가 잘 말해준다.

자그마치 천만 명.

“잠깐, 근데 정회원이 되면 회비가 있지 않아요?”

“최소한의 운영비 수준으로만 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회원은 연간 100달러 정도 될 겁니다. 등급에 상관없이 모든 회원이 동일한 금액을 내고 있습니다.”

“100달러…….”

언뜻 보기에는 많은 게 아니다.

그러나 정회원이 자그마치 천만 명이 넘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 인구가 대충 80억 명 정도이니, 전 세계에서 800명 당 1명 꼴로 모조리 학회에 가입을 했다는 것이다. 비단 학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공계는 모두 가입을 했다고 봐도 좋은 수치다.

“그럼 연간 총 회비가 10억 달러라는 건가요?”

“네, 그렇게 되는군요.”

“이건 무슨 학회가 아니라 일개 지자체 수준이군요. 10억 달러면 웬만한 대도시 예산 아닙니까?”

“예, 그래서 니트론 교수님이 좀 신이 나신 모양입니다.”

“신이 나요? 골치가 아픈 게 아니라?”

10억 불의 회비를 주무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에 걸맞는 책임 역시 따른다. 평생을 연구만 해온 니트론에게는 힘겨운 책무가 아닌가?

“연구 예산 10억 불 생겼다고 아주 좋아하시던데요? 회비 가지고 에테르 연구를 위한 학회 전용 연구소를 지을 거라며 잔뜩 꿈에 부풀어 계십니다.”

연간 10억 불의 회비를 걷는다면 전용 연구소 짓는 것쯤 일도 아닐 것이다. 한서진은 새삼 ‘군중’의 무시무시함을 느꼈다.

“그리고 학회에서 몇 가지 질의가 있었습니다.”

“저한테요?”

“예, 에테르 그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지 가능성을 알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여기 박사님께 온 정식 공문이 있습니다.”

한서진은 비서가 건넨 서류를 받아들고 자세히 살폈다.

공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한서진이 한국인이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정중한 문체에 담긴 질의는 비서실장이 고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테르 그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느냐라…….’

한서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만 먹으면 에테르를 에너지원으로 도입하는 것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몇 달 안에 상용화 준비까지 모조리 끝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큰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석유 시장의 붕괴로 인한 혼란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경제적 패닉에 빠져 고통에 허우적거릴 것이다. 그런 지옥을 굳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에테르 에너지를 도입하게 되더라도, 서서히 연착륙을 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레노지안은 태양을 탐내다가 멸망했다.’

에테르를 직접 에너지원으로 쓰는 문명 환경.

그것을 조성하는 게, 결국 레노지안이 겪게 된 미래로 가는 출발길을 여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한서진이 에테르 에너지원을 직접 도입하지 않은 것은 이 이유가 가장 컸다.

에테르를 탐닉하게 된 인류가 끝내 태양의 비밀까지 알아내고, 레노지안이 걸었던 전철을 따라 가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당장은 무리지만 자신이 죽고 난 아주 먼 훗날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아직은 그런 미래를 완벽하게 예방할 자신이 없었다.

‘제독…….’

레노지안 대륙의 초대 군주이자, 태양계를 빚은 사람.

그는 어떤 문명에서 왔을까? 그가 살던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미 수십 억 년 전에 일어났던 일, 한서진이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가 타고 온 우주선은 태양의 폭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상부맨틀로 변해 레노지안을 덮는 뚜껑이자, 현 지구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제독, 그는 어디로 갔을까?

‘생체 수명이 다했지만, 연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인물에게 영생이란 불가능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아니, 오히려 밥 먹듯이 쉬울 수도.

‘제독은 정말 죽었을까?’

혹은 레노지안에 실망해서 다른 우주로 다시 떠난 것은 아닐까? 이곳 실패작을 버리고 새로운 태양계를 만들기 위해…….

한서진은 상념을 떨치고 비서실장을 돌아봤다.

“이건 제가 조만간 니트론 교수님을 통해서 직접 답변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한서진으로부터 직접 대답을 듣지 못한 게 꽤 아쉬운 듯이 보였다.

에테르를 에너지원으로 직접 활용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언제부터 가능한지, 그런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귀중한 힘이 되니까.

물론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고급 정보를 사사로이 유용해서는 안 되지만, 남들이 모르는 걸 먼저 안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는 것이다.

비서실장이 나간 후, 한서진은 창가에 서서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았다.

자동차와 인파로 활기찬 빌딩 숲 거리는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을 위태롭게 할 자격은, 자신에게 없다.

‘에테르는 풍요를 주지만, 동시에 위험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무지가 에테르와 만나는 순간, 그 끝은 무를 향한 폭주밖에 남지 않는다.

‘반드시 지켜야 해.’

한서진은 저 멀리 밝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결심을 굳혔다.

한국 정부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에테르 처리’를 하지 않은 일반 석유는 시중에 유통 및 사용되지 못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심지어 그 시한을 올해 말까지로 정해버렸다.

즉 법안이 통과되면, 올 하반기부터는 한서진 석유만이 시중에서 판매될 수 있다. 그 외의 모든 석유는 ‘불법 기름’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법안의 내용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한서진 석유를 도입할 경우 3년 간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고, 정유사가 내야 할 세금을 최대 20%까지 감면하며, 기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환경세를 영구히 폐지했다.

“가만, 그럼 한서진 석유법이 통과되면 휘발유 값이 어디까지 떨어지는 거야?”

“지금 리터당 1,500원 하는 게 거의 600원 대까지 떨어지게 되는 거지.”

“기름 가격을 자그마치 60%나 깎아주는 거잖아!”

“물론 3년 뒤에는 다시 부가가치세가 붙으니까 600원보다는 조금 더 오르게 돼.”

“그래도 지금보다 반값이잖아! 국세청, 이 날강도 같은 놈들! 대체 얼마나 많은 세금을 챙겨먹고 있었던 거야!”

“국회는 한서진 석유법을 통과시켜라! 통과시켜라!”

국민들은 한서진 석유법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다.

그러나 약간의 문제가 있었으니…….

“뭐야, 정족수가 안 된다고?”

“지금 국회의원들이 워낙에 많이 갈려 나가서 법안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울 수 있을까 모르겠네.”

정부와 검찰에서 열심히 사정의 칼날을 휘두른 덕분에 지금 국회에서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선거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재보궐선거 때문에 무척 바빴고, 유력한 후보들이 정부가 휘두른 사정의 칼날을 맞고 비리가 드러나서 격침되는 일이 잦았으며, 한 지역에서 재보궐 선거가 연달아 열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근데 나라꼴이 진짜 개판이네.”

“도원패 정부가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데, 이래서야 행정력이 완전히 바닥이잖아? 국책 사업 하나 추진하려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네.”

“진짜 도원패는 임기 내내 사정 칼만 휘두르다가 대통령직에서 내려올 셈인가?”

“뭐, 작정하고 적폐만 때려잡겠다는 대통령이 한 번쯤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지도…….”

사실 도원패 정권의 행보는 거의 대부분 ‘때려 부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는 일의 90%가 사회 사정 작업이라고 해도 좋다. 심지어 영역을 가리지도 않는다.

“한서진 석유법 통과시키려고 야심차게 추진한 건 좋은데, 정작 정부가 휘두른 칼 때문에 그 법안을 통과시킬 정족수가 모자라니…….”

“이거 올해 안, 아니 이번 임기 안에 통과될 수나 있을까?”

“할 수야 있지. 일단 재보궐 선거로 아무나 대강 뽑아놓고 법안 통과시키면 되잖아.”

누군가가 내놓은 그 말은 과연 현실이 되었다.

한시적이지만 정부와 검찰이 정치권을 향한 칼날을 잠시 내려놓은 것이다. 구속 중이던 정치인은 일단 풀려났고, 재보궐 선거에 임하는 후보들에게도 어떠한 공격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고요함은 정부가 원하는 바를 거두기 위한 숨고르기에 지나지 않음을.

그렇게 정족수가 무사히 갖춰졌고, 국회에 계류 중이던 한서진 석유법이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9월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기업이나 대리점, 주유소 등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충분한 예비 기간을 준 것이다.

정유업계는 한바탕 큰 혼란에 빠졌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정부의 결정은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명분까지 있었다.

“근데 지금 정유사와 유통사들이 비축해놓은 기름들은 다 어떻게 하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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