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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24화 (524/609)

00524  한 걸음  =========================================================================

한서진은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집행위원회에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학교측은 별도의 집행위원회를 두어 한서진의 학위 수여를 위한 절차를 돕고 있었다. 박사 학위를 주기 위해 그의 지식이나 실력을 검증할 필요는 없었다.

남은 것은 최소한의 절차를 밟는 것뿐, 말 그대로 요식적인 행위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가 명분상의 연봉으로 1달러를 통장으로 입금 받는 것처럼, 최소한의 절차만 이수하는 것이다.

방탄 리무진은 십여 대의 경호 차량을 이끌고 학교 정문 앞까지 도착했다. 두 대의 경호 차량만 앞뒤로 리무진을 호위해서 정문을 진입했고, 나머지 차량들은 정문 밖에서 대기했다.

아직 개강을 앞둔 캠퍼스는 텅 비어 있었다.

곳곳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방탄 리무진을 힐끔거리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서진은 이미 익숙한 존재였다.

신기해하며 눈을 떼지 못하거나, 폰을 꺼내 사진 촬영을 하는 이들이 간혹 한 번씩 보이곤 했다. 나이가 어린 것을 보아 아마 신입생들이 개강 전에 방문한 모양이었다.

어느덧 방탄 리무진은 본관 건물 앞에 정차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총장과 수행원들이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미군 출신 경호원이 문을 열고 한서진이 내리자, 총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어서 와요, 한 박사.”

“총장님, 저 지금 박사 학위 따려고 작성 논문 제출하러 온 겁니다만. 아직 박사 아닙니다.”

“요식 절차가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한 번 박사는 영원한 박사지요. 자, 어서 들어갑시다.”

한서진은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매년 모교에 2,000억 원을 기부한다. 인문학에 300억, 그리고 자연과학에 1,700억 원을 꼬박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대학교는 전교생이 100% 장학 수혜를 받는다. 즉 등록금 전액 면제는 물론에다가 따로 장학금까지 받아가면서 학교를 다닌다.

물론 그 때문에 몸살도 많이 앓아야 했다.

다른 대학에서 몹시 시기하여, 등록금 면제를 더욱 넓게 퍼트려야 한다고 요구를 해온 것이다.

“내가 내 돈 가지고 모교에 투자하겠다는데 대체 다들 무슨 자격으로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하는 건지 궁금하다.”

그런 불만들은 한서진이 비공식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냄으로써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여기에 언론과 여론도 한서진을 돕고 나섰다.

―한국대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초일류대학이다. 그런 대학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로 하는 게 학문 발전을 위해 그렇게 무리한 결정인가?

―더군다나 소속 재학생이 자기 돈으로 선후배와 동기들을 지원하겠다는데, 대체 타대학 관계자들은 무슨 염치로 자기들한테까지 돈을 달라는 거냐?

―솔직히 존재의의가 별로 없는 어중이떠중이 대학들에 뭐 하러 돈을 지원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다 재정낭비 아닌가?

―이참에 쓸데없는 대학들 좀 없애버리자!

대학 수를 줄이자는 주장까지 나오자 타대학 관계자들은 앗 뜨거라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한 것이다.

“저번에 학위 취득에 관한 절차가 일부 개정된 덕분에 한 박사가 학위 따기 한결 편해졌어요. 석사를 건너뛰고 단숨에 박사까지 무난히 갈 수 있을 겁니다.”

부총장도 옆에서 얼른 끼어들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노벨상을 몇 번이나 수상한 과학자인데 그런 절차 문제 때문에 정식 학위가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다행히 정치계와 학회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려줘서 살았습니다.”

“오늘 논문만 제출하면 이제 한 박사가 더 해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사실 이렇게 직접 행차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전산이나 우편으로 제출해도 상관없을 텐데, 바쁜 와중에 뭐 하러 직접 왔습니까.”

“그래도 뜻 있는 자리인데 제가 직접 와서 제출하고 싶었습니다.”

한서진은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그런데 만약 논문이 통과가 안 되면 어떡합니까?”

“요식행위니까 괜찮습니다. 막말로 표절만 아니면 됩니다.”

“그래도 논문이 좀 성의가 없고 부실하다고 심사에서 한소리 들을까 봐 걱정은 됩니다만.”

“아이고, 그런 걱정 내려놓으세요.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논문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심사위원들의 지식이 부실해서 그럴 겁니다.”

“총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에테르학 관련해서 감히 누가 한 박사의 논문을 심사하고 평가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논문 주제는 무엇인가요?”

총장의 질문에 부총장은 물론이고 다른 교수들도 빳빳하게 긴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한서진이 연구 결과나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세상은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를 맞이했다. 비록 학위 습득을 위한 요식 절차지만, 그냥 논문 형식만 갖춰서 내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예사롭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테르 관련 테마입니다.”

“오.”

별 것 아닌 대답인데도 총장을 포함함 교수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마치 어미닭을 따라 삐약거리는 병아리떼가 생각나서, 한서진은 표정 없이 속으로만 피식거렸다.

“에너지 관련 주제입니다.”

“에, 에너지?”

교수들의 표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핼쑥하게 변했다.

“네, 생각해보니 제가 에테르를 에너지로 활용하는 연구는 안 했더라고요. 이왕 생각난 김에 박사 논문에서 다뤄보려고요.”

대부분의 교수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싶을 정도였다.

흘끔 뒤를 돌아본 한서진은 몇 몇 이들이 몰래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를 하고 있는 걸 보았다.

‘주식? 매도 중인가?’

갑자기 오늘 어디서 주식 관련 악재라도 터졌나?

한서진이 논문을 제출하는 그 순간을 기점으로 전 세계 모든 첩보 기관들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가능한 1초라도 빨리 박사 논문의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가 무엇을 연구하느냐에 따라 국제 시장이 출렁거린다. 주가는 널뛰기를 하고 선물 시장은 혼란과 충격에 빠진다.

이미 몇 차례나 그런 일을 겪은 이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논문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박사 논문은 공개적인 연구, 불법적인 수단을 취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하면 된다.

한편 논문 제출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심사위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 이게 다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한 장이라니?”

한서진이니만큼 예사롭지 않은 주제를 다뤘을 게 틀림없다. 에테르의 새로운 향방, 그것도 공개되지 않은 테마를 누구보다 먼저 접할 수 있는 것은 학자로서 큰 행운이다.

그런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본문이 달랑 A4 한 장 밖에 안 되는 논문이라니…….

안경을 노교수가 입을 열었다.

“논문의 분량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 그렇게 아쉬워하지 말고 어서 읽어 봅시다.”

“그럽시다. 한 군이라면 절대 평범한 주제는 다루지 않을 겁니다.”

얼핏 듣기로는 에테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연구 주제를 다뤘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소름과 전율이 온몸을 쫙 하고 뒤덮는 이야기 아닌가.

이제껏 에테르를 이용해 그가 이룬 것들을 보라.

반도체 시장을 제패했고, 자연 재해를 예측하며, 우주를 떠도는 소행성 조각들을 원하는 곳에 떨어뜨려 희귀 금속을 채집한다. 의학 발전과 신약 개발에 사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에너지에 발을 들인다고 한다.

‘세상이 또 한 번 개벽하는가…….’

논문 내용을 가까스로 습득한 각국의 첩보원들도 비장한 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은 앞으로 세계 에너지 패권 구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하고는, 오싹 솟아나는 소름에 한기를 느껴야만 했다.

핵 마피아로 대변되는 다국적 원자력 에너지 사업체들, 그리고 막대한 현금과 영향력을 주무르는 기름 장사꾼들. 러시아가 전 세계에 공급하는 막대한 천연가스와, 에너지 산업으로 먹고 사는 수많은 중간 상인과 그 가족들.

핵 마피아든 기름 장수든 한서진에 대항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로스차일드와 록펠러를 위시한 화폐 자본가들도 한 차례 무릎을 꿇고, 연방 은행에 관한 권리를 미국 정부에 넘겨줘야 했다.

경제적으로 가장 강대한 힘을 지닌 그들조차 맥없이 무릎을 꿇었는데, 에너지 산업계가 과연 의미 있는 저항을 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진짜 죄다 망하는 거 아니야?’

에너지 산업은 극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화폐 산업과는 상황이 다르다.

석유업체는 수많은 회사와 공장, 생산설비, 그리고 근로자들을 상시 거느리고 있다. 그 중간에서 유통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만약 한서진이 말도 안 되는 에너지원을 개발해서 단기간에 상용화해버린다면, 그들이 입게 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웜홀 사태와는 조금 다르다. 비록 웜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처했지만, 웜홀 상용화에는 아직 시간이 걸리기에 어느 정도 대비할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피해 규모도 훨씬 적었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계가 입게 될 피해는 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두려운 마음을 안은 채, 각국 정상들은 긴급으로 올라온 첩보 보고서를 읽었다.

“……응?”

“이게 뭐지?”

한날한시에 ‘에테르 에너지 활용 방안’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된 각국 정상들은 일제히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을 비벼가며 논문을 몇 번이나 확인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에테르 에너지를 이용한 차세대 에너지원이라는 게…… 고작 석유? 그게 무슨 새로운 에너지라는 말인가?”

“완전한 의미의 차세대 에너지원이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에테르를 이용해 기존의 석유를 개량하는 방식을 다룬 듯합니다.”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한서진 박사라면 아예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어서 재래식 에너지를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한서진 박사라 해도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성과를 내기에는 버거웠던 게 아닌지…….”

“100억 톤짜리 금덩어리를 지구 공전 궤도까지 불러들이는 건 그럼 쉬운 거고?”

“…….”

“빨리 알아내! 이 연구가 앞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올지 알아내란 말이야!”

그렇게 아닌 밤중에 불려온 각료들은 화가 난 상사의 시달림을 받으며 야근에 돌입해야 했다.

케인 대통령도 마찬가지,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각료들과 긴급 국정 회의를 열었다.

“그러니까 한서진 박사가 에테르를 에너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아니라, 석유를 개량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요?”

“네, 아마 그런 듯합니다.”

“아니, 왜요? 그분이라면 석유 따위는 얼마든지 시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을 텐데.”

물론 명색이 미 대통령인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서진이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될 텐데, 생각보다 발표 내용이 파격적이지 않아서 당황한 것이다.

“아무래도 시장 안정을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석유가 당장 시장에서 퇴출되면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 이상의 실직자가 나올 겁니다. 그걸 염려해서 연구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뭐, 그렇다 칩시다. 그럼 어떤 식으로 개량하는 겁니까? 석유 에너지 효율이 올라가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효율은 기존보다 2% 정도 떨어지게 됩니다.”

“아니, 그럼 기름값이 더 올라간다는 거 아닌가요? 여기에 에테르 처리 비용까지 하면 2%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올라가겠네. 그게 무슨 개량이라는 겁니까?”

“대신 기름이 연소 후에 완전 분해됩니다.”

“……?”

“환경오염이 제로가 되는 거죠.”

============================ 작품 후기 ============================

원래 독점은 이렇게 시작하는 거죠.

처음에는 이슬비로, 가랑비로, 소나기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폭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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