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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21화 (521/609)

00521  진정한 엘릭서  =========================================================================

거리에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천을 덮어쓰고 얼굴을 가린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수단은 얼마 전까지 극심한 내전과 정치적 혼란, 그리고 빈곤과 기아로 고통 받던 국가였다. 타르타로스 3의 테러조직 비무장화 실험으로 어느 정도 문제가 해서되긴 했지만, 처참한 과거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다.

“일단 비교적 온전한 시신부터 찾으면 되죠?”

“네, 여기서는 3구 이상 시험하진 않을 겁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됐을수록 더 좋아요.”

한 마을에서 대량으로 사람이 살아나면, 아무리 수단의 행정시스템이 낙후되었다 해도 불필요한 의심을 사게 된다.

한서진은 엘릭서의 존재가 노출될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찾았어요.”

신효진은 어렵지 않게 한 구의 시신을 찾아냈다.

10살도 안 된 듯한 어린 아이였는데, 피골이 상접한 게 아마도 영양실조로 죽은 모양이었다.

“제가 법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죽은 지 한나절도 채 안 된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통찰안을 통해 똑똑히 확인한 한서진은 신효진의 말에 가만히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아이는 죽은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사인은 영양실조에 폐렴.

엘릭서를 꺼내서 아이의 입가에 갖다 대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진정한 엘릭서를 써보는 건 처음이구나.’

죽은 사람마저 부활시킨다는 레노지안 전설의 비약, 엘릭서.

이미 그 효능을 알고 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색다른 긴장감이 따른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처음 자신의 몸에 시험했을 때 이상으로 벅찬 전율이 멈추지 않는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흘려 넣자, 놀랍게도 엘릭서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목구멍을 향해 들어갔다. 단 한 방울도 입가에 흐르지 않았다.

병을 완전히 비운 순간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온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박사님?”

“잠시만요!”

한서진은 아이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통찰안을 통해, 아이의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똑똑히 보였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생물의 활동이 갑자기 억제된다. 부패 활동이 중지되며, 내부에 차오른 부패 가스가 코와 입, 항문 등의 체외 경로를 통해 순식간에 배출된다.

고약한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지만, 한서진은 코를 틀어막지 않았다. 그런 것에 정신을 빼앗기기에,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너무나 신비했다.

굳어버린 세포들이 천천히 활동을 재개했다.

망가져버린 세포벽이 복구되고, 세포의 생체 시냅스가 하나하나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런 세포의 변화는 손끝에서부터 머릿속 뇌세포까지 온몸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엘릭서의 힘……!’

전기가 온몸을 타고 짜르르 흘렀다.

죽은 세포가 일제히 살아서 활동을 재개하는 것, 그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것은 설명하기 힘든 벅찬 감동을 주었다. 아마 지구상에서 이와 같은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이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아이의 몸을 감싼 빛이 잦아들며, 체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경직되고 끊어진 온몸의 혈관, 림프, 신경망, 근육이 다시금 연결되며 꿈틀거림을 앞두고 있었다.

두근.

마침내 작지만 아주 커다란 한 걸음이 고요한 박동을 일으켰다. 그 작디작은 소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소리보다 크고, 고결하게 느껴졌다.

두근. 두근.

박동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응고된 혈액은 어느덧 생명의 기운을 완전히 되찾은 채, 느리지만 힘찬 순환을 시작했다.

그리고.

“……후. ……후. ……후.”

작지만 분명한 호흡소리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효진은 얼른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아이의 목에 손을 댔다. 따뜻한 맥박이 분명하게 느껴지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놀라서 반사적으로 손을 뗐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

비록 레노지안에서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그 경이로운 기적에는 그녀 역시 몸을 바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데도, 직접 눈앞에서 목도하니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전류처럼 핏줄을 타고 흘렀다.

한서진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벅찬 열기로 상기된 채 그녀를 올려다보였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마주쳤지만, 이 순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엘릭서는…… 정말 대단하네요.”

“레노지안이 대단한 거죠.”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한된 에테르의 지식만으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가능했던 문명이다. 하물며 에테르의 진정한 힘을 취하게 된다면 무엇이 또 가능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한 게 뭔지 찾아보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아서…….’

아주 한순간이지만, 어째서 레노지안의 사람들이 그토록 태양에 목말라 했는지 이해될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순간적인 욕심의 조각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으니까.

그는 그런 미련을 억지로 누르고, 일어났다.

“자, 어서 이동합시다.”

그날 밤을 꼬박 돌아다니며 한서진은 엘릭서의 효능을 실험했다. 그 결과 엘릭서의 정확한 효능을 특정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은 경이로운 수준이지만, 온전하지 않은 시신에는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몸통이 동강이 났거나 머리가 없거나 하는 시신은 효능이 없었다.

세포들이 살아나려고 반응을 보이다가도 끝내 모든 게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다.

부패가 지나치게 진행된 시신의 경우에도 통하지 않았다. 많은 세포들이 새 생명을 얻고 어떻게든 신체를 복원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게 눈에 보였지만, 결국은 사그라졌다.

“역시 모든 사람을 다 살려낼 수 있는 건 아니로군요.”

“많이 아쉬우신 거 같아요, 박사님.”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죠.”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기적인데…… 박사님, 너무 욕심이 많으신 것 아니에요?”

신효진의 농담에 한서진은 슬쩍 웃기만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거죠?”

“팔다리처럼 생체 활동에 무관한 부위를 제외하고 신체가 온전한 사람…… 적어도 머리와 몸통은 어느 정도 온전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부패가 일정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부패가 일정 이상 진행되지 않아야 한다면, 어느 정도를 말하시는 거죠?”

“사흘…… 아마 그게 한계인 것 같네요.”

두뇌 등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주요 장기가 온전할 것, 그리고 죽은 지 사흘 정도를 넘기지 않을 것.

그것만 해도 엘릭서의 효능은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한서진은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생전의 기억까지 복원하지는 못하는군요.”

엘릭서는 죽은 사람을 살려냈지만, 생전의 기억을 완벽히 복원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복원되는 기억의 양은 사람마다 큰 편차를 보였다.

아마 엘릭서 자체의 효능보다는, 사후 상태에 따라 기억의 보존양이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죽은 이들이 살아서 돌아갔지만, 워낙 낙후된 지역이다 보니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와 남편, 딸이 알고 보니 숨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다들 기뻐할 것이다.

생전의 기억이 일부 소실된 게 문제긴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테고.

카메라 같은 것도 거의 없는 지역이니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기적이 옮겨질 것이고, 오해가 조금씩 덧칠되면서 그럴 듯한 거짓으로 뒤덮일 것이다.

엘릭서로 행한 실험은 어렵지 않게 감출 수 있다.

“앞으로 매년 2,000억 AU을 투입하셔야 하는데, 그 값은 충분히 치른 것 같은가요?”

“충분하고도 남는 것 같네요. 다른 곳에서는 시도도 못해볼 시험일 테니까요.”

“그럼 이제 돌아가요.”

신효진이 먼저 등을 돌렸다.

한서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새삼 그녀의 육체적 무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제아무리 먼 곳에 사람이 있어도 어렵지 않게 찾아냈고, 그들의 시선을 따돌릴 길을 찾아냈다. 다른 이들에게 들키겠다 싶으면 소리 없이 접근해서 기절시켜버렸다.

그야말로 일인군단 그 자체다. 만약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미국을 괴멸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고 의원이고 주지사고, 속속들이 암살을 해버리면 그 혼란을 어찌 감당할까.

귀빈궁으로 돌아올 때도 그녀는 들키지 않게 다시 잠입했다.

그가 묵는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두었기 때문에, 경호원들은 그가 빠져나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신효진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그라도 다른 이들을 따돌리고 나갔다 오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씻고 거실로 나왔을 때, 이미 그녀는 본래의 단정한 수행원 복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박사님, 엘릭서는 어떻게 활용하실 거예요?”

“활용이요?”

“세상에 공개하실 거예요?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비밀로 하고 혼자만 활용하실 건가요?”

“…….”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마이너 버전의 엘릭서는 철저히 숨겨왔다. 세상에 드러내기에는 너무 큰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뻗어올 탐욕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진짜 엘릭서를 공개한다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박사님께서 엘릭서를 공개하고 그 효능을 입증하면 신 비슷한 취급을 받을지도 몰라요.”

“사이비 교주가 되는 겁니까.”

“아니죠. 신앙 그 자체가 되는 거죠.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는 거잖아요. 전 지구가 박사님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칠지도 몰라요.”

한서진은 가만히 쓴웃음만 지었다. 신효진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레노지안도 없겠다, 신 놀음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공개하시겠어요?”

“해본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바라지 않아요.”

한서진은 덤덤히 말을 이어 나갔다.

“엘릭서가 널리 보급되면, 애초에 그럴 수도 없지만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의 균형은 무너지고 말 겁니다. 기존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거예요.”

“…….”

“전 그런 혼란을 제 손으로 빚고 싶지는 않네요.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짐입니다.”

“아서라면, 기꺼이 감당했을 텐데.”

“그래서 멸망했지요.”

“…….”

“지금까지 제가 알게 된 것들만 해도, 저에게는 버거운 것들입니다. 이만 해도 충분해요. 더는 필요치 않습니다.”

한서진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물었다.

“효진 씨는 모든 걸 공개하길 바라세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박사님이 아서처럼 절대적인 왕으로 우뚝 서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었어요. 그뿐이에요.”

“저는 왕이 될 마음이 없습니다.”

“하긴, 이미 왕이나 다름 없으시니까요.”

신효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풀썩 웃었다.

“지구에서는 지금 같은 위치가 더 편하실 수도 있겠어요.”

============================ 작품 후기 ============================

“저희 회사에서는 계약자가 사망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1시간 안으로 급속냉동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입니다. 자, 저희 회사에 투자하시죠.”

“그보다는 엘릭서를 하나 사서 상시 구비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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