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20화 (520/609)

00520  진정한 엘릭서  =========================================================================

“엘릭서를 시험한다고요? 대체 어떻게요?”

“다 방법이 있어요.”

한서진은 신효진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의문을 감추기 힘들었다. 치료제로서 엘릭서의 효능은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자부활의 효능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게 분명한 실험이기에, 한서진도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지 시험하고자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한서진이야 통찰안을 통해 엘릭서의 효능을 확신한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무리 한서진이 지금껏 이룩한 게 많다 해도.

“제3세계 국가만 가면 지금 이 순간에도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사람들을 상대로 시험하면 박사님 양심에도 가책이 덜하지 않을까요?”

“……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런 간단한 수가 있었나.

한서진은 가볍게 탄성을 질렀지만, 곧 표정이 조금 어둡게 변했다. 신효진이 눈치를 채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로 내키지 않으신가 봐요?”

“비록 그들의 비극이 제 책임은 아니지만, 타인의 생명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분명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네요.”

“그러니 조용히 몰래 하자는 거죠. 어차피 박사님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에게 손해는 아니잖아요.”

한서진은 한참을 고민 후 마침내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보죠.”

한서진은 비밀 실험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그가 택한 곳은 아프리카의 국가 중 하나인 수단이었다.

출국 자체는 비밀이지만 공식적인 절차를 갖췄다. 아프리카 난민 구호 지원을 위한 탐방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A380 전용기에 경호원과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그는 한국을 출발했다. 수행원 중에 신효진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었다.

공항은 이미 먼저 파견 나온 미군이 샅샅이 수색을 마치고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반경 50km 내에는 무장 세력이 일절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망을 구축했다.

여기에 공항에서 수도 귀빈궁까지 가는 길 주변을 완전 장악하여, 한서진의 호위에 조금의 빈틈도 없게 만들었다.

한서진의 방문에 수단은 발칵 뒤집어졌다. 몇 십 년째 정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은 부리나케 공항까지 달려와서 한서진을 영접할 준비에 나섰다.

“외국 손님이 방문하는데 오히려 그 나라 대통령까지 포함된 영접 일행이 수색을 받아야 하다니.”

“누가 보면 황제가 직할령 방문하는 줄 알겠어.”

쓴웃음이 섞인 우스갯소리가 가끔 나오기도 했다.

사실 자국민 입장에서는 냉소가 나올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현 대통령이 오랫동안 독재를 해왔고, 그에 따른 반군 세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아무리 내전국이라지만, 외국 손님이 입국하는데 오히려 대통령과 그 수행원들이 수색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무사르 군의 움직임은 어떻지?”

“조용하던데.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

수단에는 반군 세력이 여럿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큰 세력을 결집한, 무사르 장군이 이끄는 군 외에는 일절 남아 있지 않다.

반군 약소 세력은 미국의 제압 약물 실험 때문에 전투력을 잃고 피와 전투를 두려워하도록 변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유일하게 정부군에 맞설 수 있는, 정규군이나 다름없는 편제와 군기, 위상을 지닌 무사르 군은 여전히 건재했다.

전용기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한서진은 미군 장교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공항과 반경 50km 이내 주변의 모든 수색을 마쳤습니다. 이동 경로의 안전성도 확보했습니다. 다만 수단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고려하여, 가급적 대중 앞에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삼가시는 어떠실지…….”

“그렇게 하죠.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반군은 어떻습니까?”

“지난 ‘실험’ 이후로 움직임을 멈추고 계속 자중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군도 엄중히 경계하고 있지만, 특별히 박사님께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사르 장군은 나름 진중하고 야망 있는 인물이니, 박사님을 건드리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자그마한 쓴웃음이 입안에 맴돈다.

타르타로스 3는 테스트 실험 당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테러 조직을 인격 개조를 통해 비무장시켰다.

그때 표적이 된 이들은 대형 갱단, 그리고 일정한 세력을 갖추고 학살을 자행하는 반군 등이었다.

비록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이라 해도 일정한 군기와 영토, 안정성을 갖추고 국가에 준하는 체제를 갖추었을 때에는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실제로 무사르 군은 반군이기는 하지만 수단의 정규군과 국지적인 전투를 치르며 소강상태를 유지할 뿐,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약탈을 저지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아직 국제 세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 무사르 군은 한 나라나 다름없는 체제를 갖추었던 것이다.

‘녀석도 자기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는 거네.’

어떤 기준을 기반으로 테러 조직을 정의했는지, 나중에 한 번 알고리즘을 뜯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수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접을 나와 있던 대통령이 성대하게 맞이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미국 대통령과 의회 전원이 일제히 방문한 것보다 더 중요한 행사였다. 한서진의 말 한 마디에 따라서 당장 내일 아침 수단이 지도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서진은 웃는 얼굴로 늙은 수단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전용기에 실어서 가져온 대형 방탄 리무진에 함께 동승하여, 수도를 향해 이동했다.

수십 대의 호위 차량이 앞뒤로 따랐고, 이동 행렬 좌우로 수많은 수단 국민들이 늘어서서 박수갈채로 환영했다.

어느덧 행렬은 한서진을 위해 준비해놓은 귀빈궁에 도착했다. 그곳도 이미 미군이 수색을 마친 뒤 엄중한 경호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대단하군요. 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다 해도 이 정도 위세는 아닐 겁니다.”

수단 대통령은 기분 좋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고등적인 비꼼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경외심이었다.

“이미 개인적인 영향력은 미합중국 대통령을 넘어섰죠. 경호 실무 가이드라인은 박사님이 대통령을 훨씬 능가합니다.”

외교 협의를 위해 따라온 미군 대사가 대신 말을 받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미 대통령이 움직인다 해도 이 정도까지 엄중한 경호 인력이 붙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개 항모 전대가 인근 해역에서 언제든 병력을 투사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군대든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죠.”

“정말 대단합니다.”

늙은 수단 대통령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으로 한서진을 돌아봤다.

귀빈궁에는 이미 만찬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한서진은 만찬의 손님이자 주인으로서 분위기를 이끌었다. 신효진은 정장 차림으로 그의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현재 저는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시민들의 미래를 위한 구호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일단은 수단을 거점으로 시험 삼아 제 뜻을 조심스레 펼쳐보려 합니다. 일이 잘 풀린다면 구호사업을 아프리카 전역으로 넓혀 나갈 생각입니다.”

“오, 아주 뜻 있는 일을 하시려는 거군요. 우리 수단도 적극적으로 박사님의 뜻을 돕겠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한서진의 방문 목적은 아프리카 빈민 구호사업에 있었다.

‘얼마나 돈을 쓸 생각일까?’

수단 대통령은 술잔을 입에 댄 채, 탐색하는 눈으로 한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SJ인더스트리의 기업가치만 해도 100조 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기업가치가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시중에서 그만한 액수로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SJ인더스트리는 한서진, 크렘, 칼 루이스, 정지원, 이렇게 네 명의 주주 체제를 이룬 후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우주에서 희토류를 채굴하여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러시아의 HAMC도 100% 한서진의 소유다.

여기에 금으로만 이뤄진 100억 톤짜리 소행성까지.

그의 자산 중 굵직한 것만 따져 봐도 너무 천문학적이라 수치로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이 구호사업에 한두 푼을 내놓으려고 아프리카까지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1,000억 AU를 내놓겠습니다.”

“1,000억 AU…… 대략 1,000억 달러인가요. 천문학적인 거금을 내놓으시는군요. 놀랐고, 감탄했습니다. 아프리카 전체를 대표하여, 박사님의 고귀한 뜻에 감사드립니다.”

수단 대통령은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애개?’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1,000억 AU, 지금 미화 시세로 환산하면 대략 1,050억 달러 정도 될 것이다. 달러의 가치가 소폭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아프리카 전체 구호산업을 위한 기금으로는 많이 모자란 감이 있다. 특히 한서진의 위명을 생각하면…….

“수단의 구호산업을 위한 1/2분기 사업자금입니다. 일단 1분기가 끝나면 아프리카 전역으로 범위를 확장해볼까 합니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수단 대통령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000억 AU가 총액이 아니라, 반년 어치 자금이었어? 그리고 아프리카 전체가 아니라 수단에서만 쓸 금액이라고?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수단 대통령은 놀란 눈으로 한서진을 주시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 듯했다.

미 대사가 옆에서 재빠르게 거들었다.

“한서진 박사님은 생색내기 식으로 할 바에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박사님은 진심으로 아프리카 빈민들이 기아와 가난을 극복하고, 발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수단이 그 꿈을 위한 첫 단추로서 훌륭한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 순간 수단 대통령은 다른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국민들을 위한 구호자금 2,000억 AU가 매년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전율하는 것 외에는.

“엘릭서 효능 시험 테스트 비용으로는 너무 비싸게 치른 거 아닌가요?”

외출 준비를 마친 신효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미 잠행 준비를 마친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치러야 제 마음의 부담도 한결 덜어질 것 같아서요.”

“그래도 너무 비싸요. 아프리카 전체로 확대하려면 일 년에 적어도 수 조 AU는 쏟아 붓겠네요.”

“어차피 무의미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제3세계 구호사업도 슬슬 시작하려고 했어요.”

“역시 돈을 스스로 찍어내시는 분은 다르네요.”

남들은 아프리카 구호산업을 위한 방문으로 알고 있지만, 진실 된 목적은 다르다. 바로 엘릭서의 효능을 시험하기 위한 것.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에서도 시험 자체는 할 수 있지만,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험 횟수도 만족스럽게 치를 수 없다.

반면 행정시스템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제3국에서는 사자가 부활한 큰 사건도 미신으로 치부하는 등 얼마든지 세상의 눈을 감추기 편리하다.

“자, 가요.”

한서진은 신효진을 따라 몰래 귀빈궁을 나섰다.

미군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신효진은 그들을 피해 어렵지 않게 돌파로를 찾았다. 기계적 감시장치는 한서진이 해킹으로 일시 무력화했다.

나름 선진국 흉내를 낸 수도를 벗어나자 을씨년스러운 빈민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리 곳곳에는 거적을 덮어쓴 채 누워 있는 시신들이 보였다.

기아와 빈곤을 상징하는 듯한 처참한 거리의 풍경에 한서진의 얼굴도 굳어졌다.

신효진은 손에 든 가죽 케이스를 열어서 한서진 앞으로 내밀었다. 안에는 푸른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그럼…… 시작하죠.”

============================ 작품 후기 ============================

이제 와서 네크로맨서로 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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