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9 진정한 엘릭서 =========================================================================
한서진 부부는 어렵사리 구청을 탈출했다.
처음에는 정지원이 SNS에 자기 이야기를 올린 건가 하는 생각해도 봤다.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여기가 한국이라지만 자칫 경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짓을 할 리가 없으니.
그리고 최초 SNS를 확인하고 이유를 깨달았다.
“날 알아본 사람이 있었네.”
그날 구청을 방문한 민원인들 중에 먼발치에서 한서진을 알아본 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멀리서 몰래 한서진을 카메라로 촬영해서 SNS에 사진을 올렸다.
「이거 한서진 박사 아닌가요? 여기 XX구청에서 발견! 다른 분들은 어떤가 봐주세요.」
한 장의 사진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인터넷 공간에 널리널리 뻗어나갔다.
「한서진 박사 맞는 거 같은데요. 저 영롱한 에테르 워치는 분명히 고급형이 분명함. 개당 최소 2조 원짜리 물건.」
「아무래도 혼인신고 하러 온 듯. 한서진 박사 얼마 전에 결혼했잖슴.」
「혼인신고 말고는 한서진 박사가 직접 구청까지 올 만한 일이 없다. 혼인신고 백퍼 맞을 듯.」
「근데 와이프 되는 분은 왜 안 보이지? 경호 때문에 미처 못 찍었나?」
「아무튼 지금 XX구청으로 가면 한서진 박사를 볼 수 있다는 거지? 반차 내고 지금 출발합니다!」
「나도 출발한다. 운 좋으면 싸인 받을 수 있겠지.」
SNS를 대강 확인한 한서진은 기가 막혀서 쓴웃음을 지었다.
“대단하다. 그 와중에 날 알아보다니.”
처음에는 타르타로스 3를 이용해서 지울까 생각했다. 녀석의 성능을 이용하면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 단말기의 정보를 삭제할 수 있으니까.
“이거 삭제해버릴까?”
“그냥 놔둬요, 오빠. 어차피 오빠 얼굴은 알려질 만큼 알려졌는데요. 지금 삭제하면 괜히 음모론만 또 나올 거예요.”
“음모론 같은 건 별로 상관없는데. 신경 안 써.”
“그래도 오빠 이미지도 있고. 안 돼요.”
송하나가 만류하자 한서진은 마음을 돌렸다. 사실 그렇게까지 그 사진을 삭제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만약 송하나 얼굴까지 나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알겠어. 그럼 놔둘게.”
인파는 어느새 도로까지 장악한 상태였다. 길을 막고 있어서 좀처럼 리무진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봐서였다.
악의를 가지고 품은 군중들이라면 적극적으로 대응했겠지만, 하나같이 한서진의 ‘팬’이다 보니 경호원들도 그들을 몰아내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무작정 힘을 써서 될 일이 아니니까.
약 40명 정도였던 경호원들은 어느덧 200명 넘게 불어나 있던 상태였다. 일이 커지자 거리를 두고 있던 대기 자원들까지 모조리 투입된 것이다.
“오빠, 경호원이 이렇게 많았어요?”
“그러게. 나도 몰랐네.”
평소 눈에 보이는 경호원은 30~50명 정도였다. 한서진은 자신을 위해 실시간 상주 중인 경호원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교대 자원까지 생각하면 그럼 경호원이 몇 백 명이나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경찰들까지 나서서 적극적으로 군중을 통제하며, 겨우 리무진이 나아갈 수 있는 진로를 만들 수 있었다. 그제야 리무진은 조금씩 속도를 붙이며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느덧 리무진은 교통통제가 시작된 대로에 진입했다. 다른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선두 차량의 뒤를 따라 리무진은 경쾌하게 속도를 올렸다.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혼인신고가 됐네. 그렇지?”
“맞아요. 재미있었어요.”
신혼여행과 혼인신고까지 마친 한서진은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레노지안 문제를 매듭짓고 나니 다소 의욕이 빠진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신살검을 보며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레노지안은 끝없이 힘과 지식을 탐하다가 멸망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될 거야.”
지켜야 할 게 너무 많다. 그 중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다.
태양계와 지구의 기원, 태양과 상부 맨틀의 정체.
그것을 아는 이는 지상인들 중에서 현재 오로지 자신과 신효진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한서진은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신살검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현재 신살검은 황금 원반의 중심에 꽂혀 있었다. 황금 원반, 미스릴로 된 메인보드는 어느덧 직경 500미터에 도달했다.
미스릴 보드는 신살검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기본 제어 장치, 즉 보조적 부품에 불과하다. 신살검의 힘을 현대 과학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인 것이다.
신살검에서 끌어낼 수 있는 파워는 미스릴 보드의 출력의 상한선으로 결정된다. 그 이상의 힘을 끌어내려고 하면 미스릴 보드가 타버리고 만다.
“신살검의 진짜 힘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어.”
그러나 직경 200미터의 미스릴 보드로도, 전 세계 테러 조직을 소탕하는데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십 억 인구의 개별성을 일일이 스캔하고 정의한 뒤, 표적을 선별하고 인격을 개조해 싸움과 피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그랬는데, 직경 500미터에 도달한 지금은 얼마나 큰 파워를 낼 수 있을까. 한서진도 섣불리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제 보드 확장은 그만해야겠다.”
지금 낼 수 있는 힘만으로도 신 행세를 하고도 남는다. 이미 미합중국 대통령한테도 신이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아봤다.
더 이상 힘을 쌓아봐야 금자탑만 끝없이 높아질 뿐이다. 이제는 이 힘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효과적일 듯하다.
“진짜 엘릭서나 만들어볼까?”
자신이 과거 만든 엘릭서는 진짜 엘릭서에 비하면 가짜라고 칭해도 당연한 조잡한 것이었다.
그 조잡한 성능으로도 모든 병의 치유가 가능하다.
단순한 질병뿐만 아니라, 유전자 이상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치병조차 치유가 가능했다.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을 일반인으로 돌리는 것조차 쉬운 일이었다.
진짜 엘릭서와 가짜 엘릭서의 차이점은 단 하나, 바로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사망한 뒤에도 시신이 어느 정도 온전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했지.’
그 단 하나의 차이 때문에, 가짜 엘릭서는 진짜 엘릭서에 비하면 조잡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야말로 금단의 영역, 하지만 레노지안에서는 이미 실현 가능한 기적이었다.
“좋아, 해보자.”
통찰안의 위력은 지난 몇 년 간 특별히 발전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진실을 보고, 그것을 통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창조를 해낸다.
처음에는 물질의 구조, 화학 공식 따위를 볼 수 있는 게 통찰안의 가장 큰 이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한서진은 생각이 바뀌었다.
“에테르의 흐름 그 자체를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장점이지.”
에테르는 현대 기술로는 검출 불가능한 에너지원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여러 기술강국에서 국가와 민간기업, 대학이 힘을 모아 에테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기업들도 에테르를 검출하지는 못했다.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실체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에테르는 한서진과 스탠포드, 미국이 짜고 치는 거대한 세계적 사기!’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나라에서도 미스릴 반도체가 탑재된 전자제품, 에테르 지식 기반으로 만들어진 의약품 등은 매우 잘 팔렸다. 그래서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하는 멍청한 것들.’이라는 비꼼을 받기도 했지만.
에테르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통찰안.
그리고 신살검의 힘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타르타로스 3.
그 두 가지가 결합하면?
“쉽게 성공했네.”
맥이 빠질 만큼 너무 쉽게 성공해버렸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최초의 시도만으로.
한서진은 푸른빛이 일렁거리는 반투명한 액체를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엘릭서를 만들었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기대, 불안으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기 힘들었다.
‘조합 성분에 왕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에테르를 활용하지 못했던 당시, 현대 제약기술로 엘릭서를 조합하기 위해서는 왕의 피에 담긴 특별한 힘이 필요했다는 것을.
어디까지나 변칙적인 제조법이었기에, 진정한 엘릭서가 되지 못하고 치유력만 담은 반쪽이 되고 만 것이다.
‘아서가 봤으면 웃었겠지.’
물론 아서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선캄브리아대에 이미 사망했으니까.
“이게 진짜 엘릭서인가요?”
신효진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엘릭서를 바라봤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소망할 약, 이거 하나만 있으면 막대한 부를 쥘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별다른 탐욕 따위가 없었다. 비록 이번 생에 부부로는 맺어지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미 한서진과 운명공동체니까.
“예,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어려웠겠네요.”
“아니오, 오히려 생각보다 쉬워서 맥이 빠질 정도였어요.”
“죽은 사람까지 살려낸다니…….”
신효진은 조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알면 난리가 나겠어요. 이제까지 박사님이 하신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업적이에요.”
“언제는 난리 안 난 적이 있나요?”
“……방금 그 말, 조금 얄미웠던 거 아세요?”
신효진이 가볍게 눈을 흘겨보자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니, 일이 커지긴 하겠죠. 엘릭서 마이너 버전도 그런 이유에서 세상에 공개를 하지 않은 건데.”
“진짜 종교단체에서 비밀결사단이 파견 나오는 거 아니에요? 신의 섭리를 건드렸다느니 하면서.”
“그런 비밀결사단 같은 건 없습니다. 있다 해도 미군 일개 분대만도 못할 걸요.”
“그런데 박사님, 이 약 효능은 시험해보신 건가요?”
“사실 아직 시험은 안 해봤습니다. 시험을 하기에 마땅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어떻게 성공했다고 확신을 하시는 거죠?”
“보면 압니다. 통찰안이 원래 그런 힘이거든요.”
“…….”
신효진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맥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두 손을 위로 향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 남자가 그런 말을 했으면 저도 덩달아 뿌듯했을 텐데, 이제 남의 남자가 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왠지 얄밉네요.”
“……묘한 뼈가 느껴지는데요. 제 오해겠죠?”
“오해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아닌 것 같은데.”
“편하실 대로 생각하세요.”
신효진은 눈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엘릭서가 든 병을 가볍게 쥐며 물었다.
“그럼 제가 한 번 시험해볼까요?”
“네? 효진 씨가 어떻게요?”
“하려면 다 방법이 있죠.”
“그야 마음만 먹으면 시험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만, 잘못 하다가는 소문 퍼집니다. 그럼 감당할 수 없어요.”
“괜찮아요. 소문 안 퍼지게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정 불안하시면 박사님도 따라오실래요? 제가 경호는 확실하게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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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라면 그 미인계에 기꺼이 넘어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