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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18화 (518/609)

00518  소유한다는 것  =========================================================================

한서진과 송하나의 결혼식은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역사에 거론될 만한 세기적인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장 부유한 남자가 선택한 여자가 누군지 사람들은 궁금히 여겼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인터넷 파파라치들이 대거 나섰음에도, 송하나의 신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한국대학교 반도체공학부 재학, H그룹 상속녀.

그런 굵직굵직한 사실 외에, 그녀의 사생활을 캐낸다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일상 사진 몇 장 정도쯤은 건질 수 있으련만, 인터넷 파파라치들은 단 한 장의 사진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세기의 대결혼, 지구 역사상 제일 부유한 남자가 선택한 미인.

과연 그 미모는 어느 정도일까 많은 이들이 궁금하게 여겼고, 파파라치들은 목숨을 걸고 그녀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사진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SNS를 뒤지면 꼭 본인이 아니라 주변인들이 올린 사진이라도 있을 법한데, 단 한 장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하다. 사진 한 장 정도는 틀림없이 나올 텐데. 이렇게 꼭꼭 숨어 있을 리가 없는데.”

“이건 꼭 누가 온라인에 있는 사진을 죄다 지워버린 것만 같네.”

“말도 안 돼.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해?”

결국 그들은 잠입을 통해 직접 사진을 건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결혼식장 주변은 철옹성이었다. 외부인은 전혀 접근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먼 곳에 진을 친 채, 신랑신부의 모습을 담아낼 순간만을 노렸다.

결혼식이 끝나면 결국 언젠가는 별장을 나올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몇 날 며칠 동안 잠입했어도, 그들은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몹시 원망하시는 눈치였습니다. 눈물을 보이시더군요.”

여성 경호팀장의 보고에 한지혜는 칵테일을 든 채로 시큰둥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게 도망갈 때 오빠 돈이라도 좀 놓고 갔으면 오죽 좋아. 그럼 이렇게까지 모질게는 안 했을 텐데.”

“…….”

“심각한 건 아니죠? 예를 들면 자살 기도를 한다던가.”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근래 들어 상실감이 부쩍 느셨는데, 그것이 이번 결혼식에 참가를 못한 것 때문에 더욱…….”

“신경 잘 써줘요. 엉뚱한 짓 못하게.”

“알겠습니다.”

경호팀장은 정중히 목례하고 물러갔다.

혼자가 된 한지혜는 칵테일을 홀짝 거리면서 맛을 음미했다. 조금 전 나눈 대화 내용은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이.

“내 취향이 아니네. 역시 난 맥주파라니까.”

모처럼 격식 있는 블랙 투피스로 멋있게 차려입었는데 캔맥주를 벌컥거리기도 남들 보기에 민망했다.

주변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비록 한서진과 송하나의 결혼식이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었다.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취향과 맞지 않는 칵테일의 맛을 음미하는 척했다.

‘제발 좀 드루와라, 드루와.’

주문처럼 속으로 외워보지만, 거리를 둔 남자들의 시선은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투명한 울타리가 주변에 쳐져 있는 것처럼,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무슨 남자들이 이렇게 용기가 없어? 응?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먹이가 혼자서 얼쩡거리고 있잖아?’

한지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니, 왜 생긴 건 다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제대로 용기도 못내?

“혼자신가요?”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품격을 갖춘 미모, 흰 드레스를 입은 이서나를 보고 한지혜는 표정을 풀었다. 오라는 것들은 안 오고 엉뚱한 아줌마만 다가오다니.

‘내 팔자가 이렇지, 뭐.’

“안녕하세요, 이서나 회장님.”

“쓸쓸해 보여서 말 걸어봤어요. 제가 실례를 한 건 아니죠?”

“아니에요. 안 그래도 울적했는데, 잘 와주셨어요.”

“다행이네요.”

이서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나갔다.

“지혜 씨 심란한 건 이해돼요. 하나뿐인 오빠가 다른 사람과 새로 가족을 꾸렸으니, 혼자가 된 기분이겠죠. 나라면 어떤 기분일지 잘 상상이 안 되긴 하네요.”

“다른 여자의 가족이 되었어도 제 오빠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죠. 그리고 하나하고 저도 무척 친하고요.”

“저도 하나한테 지혜 씨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럼 결혼해서도 셋이 같이 살겠네요.”

“에이, 그래도 비켜줘야죠. 아무리 집이 넓어도 시누이는 시누이인데.”

한지혜는 웃는 얼굴로 칵테일을 홀짝이고는, 다시 이어서 말했다.

“다행히 지금 사는 집에서 영영 나가진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평성 저택 완성되면 오빠가 지금 집은 저더러 살라고 했거든요. 정말 다행이죠.”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은 아니고 살게만 해주는 것이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지금으로서는 딱 세 달만 호텔 신세 좀 졌다가 다시 들어올 생각이거든요.”

“오, 호텔에서 머무를 계획이에요?”

“한 채 살까 생각했는데 별로 마음에 드는 매물도 없고, 관리하기도 귀찮고 해서요. 어차피 세 달 정도만 나가 있을 건데 호텔에 있죠, 뭐.”

“그럼 우리 호텔로 와요.”

“정말요? 싸게 해주시나요?”

이서나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친구에게 요금을 받을 순 없죠. 얼마든지 와서 지내도 좋아요. 펜트하우스 비워놓을게요.”

“앗, 그럼 오늘 당장 가야겠다.”

한지혜는 이서나와 즐겁게 대화를 나눴고, 그녀 주변을 맴돌던 남자들은 아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는 용기도 없는 것들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던 것도 새카맣게 잊었다.

한서진은 신혼여행으로 모처럼 14박 15일의 긴 일정을 보낸 뒤 연구실로 복귀했다. 그동안 연구와 레노지안 문제에 몰두하느라 송하나에게 소홀했던 것을 톡톡히 갚아 주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바로 나란히 혼인신고를 하러 구청으로 향했다.

근접 경호원을 거느리지 않았기에 거리의 사람들은 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경호원들은 행인으로 변장한 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호하는 중이었다.

구청에 들어서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채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후 정지원과 니트론 교수가 도착했다.

“다 썼어?”

“예, 이제 두 분 도장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그냥 따로 사람 통해서 도장만 주셔도 되는데…….”

“그냥 직접 한 번 찍고 싶었어. 특별한 신고잖아.”

정지원은 웃음을 지으며 송하나를 돌아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제수씨, 행복하게 사세요. 제수씨라고 불러도 되죠?”

“그럼요. 사모님이라고 부르시면 제가 오히려 서운했을 거예요.”

“저는 그냥 사모님이라고 부르지요. 그게 편합니다.”

니트론이 넉살 좋게 말을 받으며 도장을 꺼냈다.

둘은 각각 증인란에 인적사항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작성을 마치고 난 뒤 정지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구청은 제법 한가하네.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게요. 저희야 좋지만.”

“저기서 커피 마시고 있는 사람들, 혹시 네 경호원? 자꾸 이쪽을 흘끔거리는데?”

“맞습니다.”

정지원은 별안간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 네가 와 있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런 거 싫어서 일부러 조용히 온 겁니다. 여기서 기다려요. 하나야, 가자.”

“네, 오빠.”

둘은 손을 잡고 일어서서 접수처로 향했다. 대기인원이 없었기에 번호표를 뽑을 필요도 없었다.

여성 민원담당자가 친절하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혼인신고하러 왔는데요.”

“신분증이랑 신고서양식은 가져오셨나요?”

“예, 여기 있습니다.”

한서진은 준비한 것들을 내밀었다.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신고서 내용을 살피다가 별안간 굳어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에 가득 찬 채, 천천히 한서진을 향했다가 송하나로 넘어갔다가,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선글라스를 살짝 벗어서, 그녀에게만 얼굴을 보여 주었다. 송하나도 그를 따라 선글라스를 벗어서 얼굴을 보여 주었다.

담당자는 입을 틀어막으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저, 저저, 저저저……!”

“쉿, 너무 놀라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해주시겠어요?”

“아, 아아…… 정말 그 분이 맞아요?”

“네, 맞습니다. 소란 일어날까 봐 조용히 온 거니까 잘 좀 부탁합니다.”

한서진이 작게 웃어주자 담당자의 눈도 더욱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좀처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지만, 다행히 한서진의 뜻을 알아주었다.

둘은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태연히 앉았다. 마치 평범한 신혼부부처럼.

“이, 이제 가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막 일어나려는 순간 담당자가 벌떡 일어나며 그를 붙잡으려는 듯이 손을 뻗었다.

“저기, 저기요!”

“네? 무슨 문제라도?”

“결례가 안 된다면,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될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팬이에요!”

한서진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그럼 저만 찍는 걸로 하죠.”

“고맙습니다!”

담당자는 신이 나서 데스크를 돌아 그들 앞으로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았고, 송하나는 그녀의 폰을 받아서 직접 사진을 찍어 주었다.

다른 직원들이 주변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연예인인가?”

“그런가 보네. 채희 씨가 저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

“근래 결혼한 연예인이 누가 있더라…….”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들은 한서진이 이곳에 와있다는 걸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혹시 제 SNS에 올려도 되나요? 자랑하고 싶어서요!”

“그러세요.”

“진짜 결혼 축하드려요. 사모님도 정말 미인이세요. 행복하게 잘 사세요.”

“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둘은 가볍게 인사한 뒤, 손을 잡고 다시 나왔다. 그런데 대기석에 앉아 있던 정지원과 니트론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셨지?”

“글쎄요. 말도 없이 사라지시다니…….”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는데 별안간 건장한 남자 한 명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사복 차림으로 경호 중인 경호원이었다.

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 사모님, 빨리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한서진은 바짝 긴장했다. 혹시 테러 위협이라도 발생한 건가?

“여기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박사님을 알아본 것 같습니다. SNS에 두 분이 혼인신고를 하러 왔다고 이미 글이 올라왔고, 구청 위치까지 퍼졌습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어서 가죠.”

다행히 테러 위협 같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한서진은 서둘러 구청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저기, 저기다! 한서진 박사님이 저기 계셔!”

“꺅, 하나 언니! 너무너무 예뻐요!”

“싸인 좀 해주세요!”

구청은 이미 수백 명이 넘는 인파로 에워싸여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저 멀리에서 계속 몰려오고 있었다.

수십 명의 경호원들은 재빨리 한서진과 송하나 주변에 인의 벽을 쌓으며 도주로 확보에 나섰다. 한서진과 송하나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뚫고, 겨우 그곳을 탈출해 대기 중인 리무진에 탑승할 수 있었다.

“SNS가 진짜 무섭긴 무섭네. 아니, 그 잠깐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니…….”

한숨을 돌리던 한서진은 그제야 정지원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우리는 먼저 피신한다. 샌드위치 고생하는 건 싫거든.」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너무하네, 이 양반.”

============================ 작품 후기 ============================

“제발 드루와 드루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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