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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15화 (515/609)

00515  소유한다는 것  =========================================================================

결혼식은 스몰 웨딩으로 하기로 했다.

정말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만 하객으로 초청해서 작은 규모의 호화 웨딩을 하기로 한 것이다. 축의금 상자 같은 것은 당연히 두지도 않았다.

결혼 장소는 제주도에 있는 송하나 소유의 별장으로 정했다.

교통편이 여의치 않은 하객들에게는 따로 비행기편을 제공하기로 했다. 전용기를 보내서 일괄적으로 태우고 오거나, 혹은 비행기 티켓을 제공했다. 그리고 서귀포시에 있는 특급 호텔을 하나 통째로 대관해서 하객들 숙소로 이용하기로 했다.

“오빠, 클레이튼 커린 전 대통령님은 꼭 초대해야 할 것 같아요.”

“존 캐롤 의원도 초대해야지. 각별한 인연인데.”

“아부다비의 안슐 왕자님은요?”

“해야지. 그 분도.”

“니트론 교수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박효산 교수님도 초대해야지.”

“학과에서는 누구누구 초대할까요? 그래도 오빠나 저나 친한 사람 꽤 있잖아요.”

“걔들도 빠뜨릴 순 없지. 한 명이라도 빼놨다가는 나중에 많이 상처받을 거야.”

“회사 임원들 중에서도 일부 초대해야 할 것 같고요.”

“주요 임원들은 해야지. 김범석 사장 같은 사람들은.”

“맞다! 칼 루이스 부사장님 빼먹을 뻔 했어요.”

“아참. 큰일 날 뻔했네. 아, 그리고 크렘 회장님도…….”

머리를 맞대고 초대장을 보낼 하객들 명단을 정리하다가 문득 한서진은 혀를 내둘렀다.

“내가 이렇게 인맥이 넓었나? 이러다가 스몰 웨딩이 스몰 웨딩이 아니게 되게 생겼는데?”

“그나마 스몰 웨딩으로 해서 이 정도인 거예요. 아니라면 돔 야구장이라도 빌려서 해야 했을 걸요?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 결혼식을 관전하는 형태로요.”

하객들이 관중석에 앉아 결혼 장면을 관전하는 결혼식이라니? 뭔가 나름대로 의미는 특별할 것 같은데?

“오빠와 저 하객들은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고…… 친인척들은 어떻게 할까요? 아빠가 물어보시던데.”

한씨 집안에 어른이 없다 보니 현재 한서진은 여동생과 함께 둘이서 혼주 노릇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인척인데 초대할 사람은 초대해야지. 근데 우리는 초대할 사람 한 분도 없어.”

원체 친인척이 없고, 있다 해도 아주 오래 전에 끊어진 인연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몇 년 간 친인척임을 내세워 접근을 시도한 사람들이 몇 몇 있었다. 물론 전부 거부당했다.

수십 년 넘게 단절 상태였는데, 이제 와서 이쪽이 잘 되었다고 연락 오는 것은 뻔하지 않은가. 굳이 이어갈 필요는 없는 인연이었다.

“하나 네 오빠 언니들 초대하는 것 때문에 그러시나? 아무래도 회장님 혈육이시니까…….”

한서진은 말끝을 흐렸다.

백철중은 현재 막내인 송하나를 제외한 모든 자녀들과 손주들을 제주도에 유배 보낸 상태였다.

과거 백철중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장남 백형진을 비롯한 그의 자녀들은 성진그룹과 연계하여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복남매이자 나이 차이도 까마득한 송하나에게 그룹 계열사가 넘어가는 걸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진그룹 부회장은 백철중의 전처이자 자녀들의 친모였기 때문에 그런 유착관계 형성이 가능했다.

그리고 엘릭서로 병을 떨치고 일어난 백철중은 모든 전말을 알고, 자녀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그 벌로 제주도 유배를 내렸다.

‘다시는 그룹에 발을 들일 생각을 마라!’

엄중한 마음에서 나온 처벌이지만, 그래도 가족 결혼식에는 초대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가. 한서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초대하고 싶지 않아 하세요. 지금도 그쪽 가족들하고는 사적으로 연락 한 번 안 하세요.”

“그럼……?”

“제가 초대하고 싶어요.”

“네가?”

한서진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송하나가 어렸을 적부터 그들에게 받은 상처는 상당히 크다. 당연히 얼굴도 보기 싫을 텐데, 자기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니?

“오빠하고 결혼하는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잖아요. 저한테 상처 준 친오빠와 친언니, 친조카들…… 그 사람들에게 제가 얻게 된 행복을 과시하고 싶어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 한서진은 그녀가 어떤 마음에서 그들을 초청하고 싶은지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잡고 속삭였다.

“그래, 그 사람들 전부 불러다 놓고 제대로 보여주자. 자기들이 옛날에 대체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려주고 열등감 폭발도 하게 만들어주고.”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고요, 그냥 저 엄청 잘 산다고 자랑이나 하고 싶은 것뿐인데요…….”

싫은 사람이란 자신이 열세에 있을 때는 얼굴조차 보기 싫은 법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우세에 있을 때는 자신의 위치를 적극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결혼식 날짜는 2월로 정해졌다.

원래는 5월 경에 하자는 의견이 대세였으나, 결국 백철중의 완강한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별장 울타리에 바람막이 공사하고 난방 장치 잘 꾸며 놓으면 하나도 안 추워! 뭐한답시고 결혼식을 5월까지 질질 끌어? 그냥 하기로 했으면 후딱 해치워야지.”

“한 서방이 이해해요. 이이는 내일 당장이라도 유럽 공주가 한 서방을 채갈까 겁나서 이러는 거니까요.”

“……그럴 일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유럽 공주입니까?”

잠재적 경쟁자를 신경 쓴다고 하지만, 그 대상이 너무 구체적인 것 아닌가?

“아, 몰랐구나. 이이, 젊은 시절에 모나코 공주한테 반해서 간이고 쓸개고 다 갖다 바치려고 한 적 있었거든요. 혹시라도 한 서방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그러는 거죠.”

“당신은 왜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장인어른께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에 한서진은 흥미진진해졌다. 옆을 슬쩍 보니 송하나도 몰랐던 이야기 같다.

백철중은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 난처해서 시선을 피했다.

“이름이 뭐더라? 카를리너스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빨간색이 은은하게 도는 금발이 매력적인 미인이었죠, 아마?”

“아무튼!”

어쨌거나 백철중의 고집대로 결혼식은 최대한 빨리 서두르기로 했다.

2월의 제주도면 한창 추울 때다. 아무리 남쪽이라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면 위치의 이점은 아무 소용없다.

백철중은 별장 울타리 전체를 높이 20미터의 투명한 바람막이 벽으로 감싸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그러나 한서진이 가로막고 나섰다.

“전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한 서방, 자네는 내륙에만 살아서 제주도의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몰라서 그러는데…….”

“에테르의 힘이란 전능하죠.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에테르?”

한서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내보였다.

“제주도 크기의 섬의 기온을 일시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죠. 물론 제주도 거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으니 별장에만 국한해야겠지만요.”

“자네, 설마?”

“오늘 테스트를 해볼 겁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백철중은 즉시 전용기를 타고, 결혼식이 치러지기로 한 제주도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 정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섬 지역 특유의 겨울바람이 그날따라 유난히 매서웠고, 덕분에 잠깐 차에서 내려서 걷는 동안 옷을 더욱 여며야 했다.

그러나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는 자신의 오감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저 정문 안으로 한 걸음을 떼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도저히 야외 지역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온도 변화였다. 난방과 습도 관리가 잘 된 건물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허어…….”

백철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혹시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돔형 천장 같은 것을 설치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시험 삼아 작은 돌을 던져 보니, 울타리를 넘어 바깥에 떨어졌던 것이다.

백철중은 별장 구석구석의 온도를 꼼꼼히 확인했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어 닥치는 바깥과 달리 이곳만 봄을 맞은 듯 따뜻하고 쾌적한 느낌만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나 별장일세.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별 거 아닙니다. 에테르의 힘을 적당히 응용한 겁니다. 그 정도 면적에 기온 조작을 일으키는 거야 매우 쉽죠.」

“자네 설마, 신은 아니겠지?”

「…….」

한서진은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신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우리 하나 버리고 떠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지? 응?”

「저 신 아닙니다. 그저 과학일 뿐입니다.」

“자네가 신이어도 상관은 없는데, 우리 하나는 끝까지 꼭 책임져야 하네. 알았지?”

「장인어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케인 대통령, 그리고 백철중 회장.

정치와 경제에 있어 합리적 지성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똑같이 신 타령을 하다니. 에테르의 힘이 과연 대단하기는 한가 보다.

그 둘이 저럴진대, 만약 일반 대중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서진 종교 같은 게 탄생할지도 모른다.

결혼식 준비는 순탄하게 이뤄졌다.

한서진은 전용기를 타고 직접 돌아다니며 초청장을 건넸다. 그의 초청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흡족해했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혼식에 참여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2월의 제주도면 춥지 않을까요? 게다가 야외인데.”

그들은 자신이 추울 것보다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신부가 추위에 덜덜 떠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봄용 의류를 가져오셔야 할 겁니다.”

“오, 기대하겠습니다.”

인맥망이 워낙에 글로벌하게 뻗어 있다 보니, 초청장을 돌리기 위해서는 전용기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러시아, 미국, 유럽, 아랍 등 초청장을 돌리는 데에만 한 달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한서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유명 인사들이 한국으로 입국했다. 기자들은 제주 공항에 군집을 이룬 채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하객들은 VIP 전용 게이트를 통과해서 기자들이 차지한 지역을 돌아서 공항을 빠져 나왔다.

전용기가 있는 이들은 자기 전용기를 이용했고, 없는 이들에게는 한서진이 따로 전용기나 전세기를 보내서 편안하게 올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혼자 조용히 이동하려는 하객들을 위해서 퍼스트 클래스 티켓도 제공했지만, 대부분의 하객들은 전용기에 모여서 함께 이동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세기의 결혼식! 마침내 열리다!

―로열 중의 로열! 현 미 대통령과 전 미 대통령, 현 러시아 대통령과 유럽국 원수들 줄줄이 입국!

―피로연에서 따로 비공개 G20 회담이 열릴 예정!

하객들은 2월의 야외 정원 같지 않게 훈훈하고 포근한 기온에 다들 깜짝 놀랐다.

밝고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송하나는 자신이 알던 여자가 아닌, 전혀 다른 여자를 보는 듯했다. 그저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는 그 빼어난 자태에 한서진은 또 한 번 마음을 빼앗겼다.

혼약의 맹세를 위해, 둘은 서로 마주 보고 나란히 섰다.

그녀가 입가에 살짝 물고 있는 수줍은 미소는 보고 있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예뻤다.

“네, 신부가 참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지만 신랑 너무 좋아 죽는 거 아닙니까? 부러워죽겠으니까 너무 좋아 죽지 말고 적당히 좋아 죽는 건 어떨까요?”

사회자의 짓궂은 멘트 따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자, 그럼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겠습니다.”

그녀가 수줍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미리 준비한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웠다.

그때였다.

―다음 생에는 끝까지 당신을 모실 수 있도록, 운명이 허락해주길. 나의 주인…….

찌잉, 하고 희미한 저주파음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짧게 스쳐 지나간, 낯선 목소리.

‘뭐지?’

한서진은 당황해서 잠시 멈칫했고, 송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갸웃거렸다. 왜 그러느냐는 듯이.

“네, 신랑이 아름다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다가 그만 감격이 벅차 오른 모양입니다. 이해합니다. 제가 저 자리에 서 있었으면 아마 기절했을지도 몰라요. 자, 이번에는 신부가 신랑 손에 반지를 끼워주겠습니다!”

한서진은 조금 얼떨떨해하며 손을 내밀었고, 송하나는 살짝 갸웃거리면서 그에게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의 눈동자 색깔이 차분하게 돌아왔다.

‘뭐지?’

스칼린은 아니다.

아주 오래 된 듯한 아련함이 담긴, 구슬픈 목소리…….

한서진은 정신을 집중하고, 송하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통찰안은 그녀의 내면을 비추지 못한다.

통찰안이 알려주는 그녀의 진실. 그것은 본래 다음과 같았다.

‘적합, 그리고 반려.’

거기까지는 신효진도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 뭔가가 변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비비며 그녀를 다시 보았다.

「인연.」

============================ 작품 후기 ============================

200화쯤 가면 결혼시켜줘야지.

300화쯤 가면 진짜 결혼시켜줘야지.

400화에는 꼭꼭 결혼시켜줘야지.

5, 500화 전에는 무조건 결혼시켜줘야지ㅠㅠ

이러다가 515화까지 와서 결국 결혼시켜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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