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3 소유한다는 것 =========================================================================
한국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수도권은 웜홀 설치 차별 문제로 인해 시민들이 반발이 엄청났고, 정계에서는 매일같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재계는 한서진이 펼치는 사업에 전혀 발을 걸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대고 있었다.
건설 쪽은 대부분의 인력들이 북한 재건 사업으로 쏠리는 바람에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회사 자격으로 건설 사업에 참여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도급받아서 일을 하는 거라 남겨먹을 게 없었다.
관행처럼 해오던 비리를 저지르면 즉시 발각돼서 영구적으로 퇴출되었기 때문에, 다들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실제로 이미 몇 개 건설회사가 북한 재건 산업에서 영구적으로 쫓겨나기도 했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한서진이 자신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개발해줄 것을 매일같이 요구했다.
반도체 업계는 한서진이 미스릴 판매를 중단하고, 모든 미스릴을 끝없이 빨아들이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 컴퓨터 제품을 전혀 출시할 수가 없으니. 그로 인한 소비자의 원성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일부 과격한 시민 단체는 한서진이 국내 정치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한서진 공화국으로!”
“차라리 왕정제로 회귀하자!”
“그냥 한서진 박사님께서 우리나라 최고 존엄이 되셔서 우매한 것들을 통치해주셨으면.”
극단적인 체제 변환을 요구하는 목소리였지만, 기이하게도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물론 실현될 수는 없는 이상이겠으나.
한서진의 존재는 지난 몇 년 간 한국 사회를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만들어놓았다. 그 동안 모든 것을 잃은 이도 있고, 많은 것을 얻은 이도 있었다.
재계는 한서진이 H그룹과 맺어진 것을 오히려 안도했다.
그가 자신들과 같은 우산을 쓰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물을 끼얹는 것만큼은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실제로 H그룹의 재계 영향력이 극대화되었고, 진성그룹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으나, 재계라는 생태계 자체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안도는 마침내 깨졌다.
“뭐? H컨설턴트가 왜 갑자기 우리 그룹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는 건데?”
“드디어 한서진 박사가 국내 시장 장악을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호가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매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H컨설턴트는 증시 대란 때 국내 대기업 지분을 대량으로 확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라고 여겨졌다.
실제로 H컨설턴트는 지분을 보유하기만 할 뿐, 경영권 행사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H컨설턴트가 증시 시장에서 벌이는 일은, 그때와 전혀 차원이 달랐다.
시중에 풀린 물량은 물론, 지분을 쥐고 있는 대주주 기관들을 직접 찾아가 협상을 벌여서 주식을 넘겨받기도 했다.
재벌 기업들이 두고 있는 백기사들은 H컨설턴트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대부분 주식을 넘겼다.
주식 양도 제안 뒤에 있는 한서진의 존재감을 웃어넘길 수 있는 기관은 없었던 것이다. 프리미엄을 듬뿍 받았기에 금전적으로도 훨씬 이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터졌다. 그 시발점은 바로 미래자동차였다.
―H컨설턴트, 미래자동차 경영 장부 열람 요청!
―대대적인 물갈이 예상, 경영권 넘어가나?
―백기사들은 진작 두 손 들고 항복!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최고를 달리는 미래자동차의 지분을 일정 이상 확보한 H컨설턴트는 곧바로 임시주총을 소집했다.
또한 경영 장부를 열람하고, 불성실 경영을 이유로 들어 고소와 고발, 해임까지 동시에 진행했다.
H컨설턴트는 재정 감시 시스템을 통해 관련 비리 자료를 모두 확보해둔 상태였다. 다만 한꺼번에 터트리지 않고 순차적으로 검찰에 제공해왔을 뿐이다.
비리 자료가 일제히 공개되자 오너 일가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백기투항에 나섰다.
‘배고픈 맹수가 마침내 동굴을 나섰다!’
‘한서진 박사, 국내 대기업 사냥에 나서!’
‘전례 없던 초유의 거대 그룹이 탄생할 것.’
마침내 미래자동차는 H컨설턴트의 산하로 편입되었다. 지분율 95%를 달성한 H컨설턴트는 남은 주식을 전량 소각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미래자동차는 H컨설턴트가 소유권 100%를 가지는 산하 기업이 되었다.
굴지의 거대한 자동차 기업이 단시간 내에 강탈당하는 것을 본 재벌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몇 년 간 잠자고 있던 맹수가 드디어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첫 사냥에서 거대한 먹이를 꿀꺽 삼켰음에도, 아직 배가 부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0대 대기업들은 필사적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섰지만, 해일 앞에서 인간의 힘이란 본래 무력한 법. H컨설턴트의 공격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H컨설턴트는 정면에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타르타로스 2를 통해 확보한 비리 자료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협박과 회유를 곁들여, 백기사와 임원, 오너 일가의 의중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순순히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면 괜찮은 가격을 쳐서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차후에 위해를 가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제안을 거절한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자료들을 공개하고,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싸움에 들어갈 겁니다. 제법 지루한 공방이 예상되는군요.”
합법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지 않은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지난 수십 년 간, 대기업들은 너무 많은 오물을 몸에 묻혔고, 그 중 일부만 문제 삼아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으니까.
정치권과 법조계의 힘을 빌려서 이 사태를 벗어난다는 선택지도 불가능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공평하고 공정한 룰을 토대로 제안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몸에 묻은 오물이 너무 많은 탓에, 그 공평한 룰조차도 숨을 멎게 하는 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금 100억 톤을 가진 남자, 그의 무한대인 재산은 조그마한 나라의 대기업 몇 개쯤 사들이는 것은 아무런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미래 그룹을 시작으로 해서 SKK그룹, LP그룹, 라테그룹, 뉴월드그룹, KC금융그룹 등이 차례차례로 넘어갔다. H컨설턴트는 10대 기업 쇼핑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웠다.
―40대 대기업 집단, 업종을 불문하고 H컨설턴트에 전부 넘어가!
―H컨설턴트 김범석 대표, 인수한 계열사들의 사명 변경은 앞으로도 없을 예정.
―소유와 경영의 완전 분리? 그러나 각 계열사의 지분은 100% H컨설턴트 소유!
―마침내 초거대 대기업 그룹 집단 탄생!
역사에 다시없을 어마어마한 인수합병이 믿어지지 않는 단시간 안에 이뤄지고 말았다. 오직 진성그룹만이 그 피 터지는 전쟁의 포화를 간신히 비껴갔을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서나와 송하나의 친분 관계를 고려한 작은 배려 덕분이었다.
진성그룹 관계자들은 회사가 넘어가지 않은 것을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시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훗날 이서나가 경영진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그때에는 가차 없이 집어삼킬 것이다.
한서진은 오랜만에 백철중과 독대를 가졌다.
예비 사위를 대하는 백철중의 눈에는 대견함과 흐뭇함, 그리고 신기함이 버무려져 있었다.
“자네 소식은 잘 듣고 있네. 여전히 바쁜가 보군.”
“여러 가지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도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이제 여유가 좀 나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 사냥에 공을 들이는 건가?”
한서진은 피식 웃기만 했다. 백철중이 은근한 어조로 계속 물었다.
“솔직히 놀랐네. 자네가 돈이 많은 거야 알지만, 그런 스케일로 일을 벌일 줄은 몰랐어.”
“이왕 하나 경영 체험 시킬 거면 제대로 된 규모로 시켜줘야지요. 장차 세연동 안방마님이 되실 분인데 시시한 구멍가게 운영이나 맡겨서야 되겠습니까.”
“자네를 만난 건 진짜 하나의 복인가 보이.”
백철중은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계속 끌어나갔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왔을 무렵,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내가 한 가지 정말 몹시 궁금한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시리아 사건 말일세……. 정말 약물의 힘인가?”
한서진은 잠시 멈칫했으나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그를 직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늙은이가 주책이지? 하도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회장님이야 제 장인 되실 분이시고 엘릭서의 비밀도 공유하는 분이니 말씀 못 드릴 건 없지요. 약물이 아니라 에테르 파동을 이용한 겁니다.”
“에테르 파동?”
“에테르 에너지를 전 지구적으로 투사해서 뇌신경을 의도적으로 자극하여 개조하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인격이 변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자네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이론적으로는 그런 식으로도 응용이 가능합니다.”
“뇌의 주요 신경 하나만 건드리면 원인불명으로 급사할 테니 흔적도 안 남겠고, 증거도 없고…… 그야말로 완벽한 범죄가 되겠어.”
“그렇긴 합니다. 왜요,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으신가요?”
한서진이 농담처럼 말하자 백철중은 껄껄 웃으며 손을 저었다.
“어허,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말게. 자네가 안 그럴 사람인 걸 아는데도 섬뜩해지니까.”
“아시겠지만 비밀로 해주십시오. 널리 알려져서 좋을 게 별로 없습니다.”
“미국은 어디까지 알고 있나?”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 정도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자네에게 거부 반응을 보이진 않던가?”
“저에게 신이냐고 묻더군요.”
백철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껄껄 웃으며 물었다.
“누가? 설마 지금 대통령이?”
“네, 맞습니다.”
“참 어이가 없어서…… 하긴, 그 정도 과학이라면 신이라고 오해를 받을 법도 하군. 나도 조금 전에 순간적이지만 자네가 사람이 맞나 싶었으니까 말이야.”
“고도로 발달한 과학일 뿐입니다. 마법과 구별이 되지 않는 건 인정합니다.”
“마법, 마법이라……. 에테르학은 정말 마법 같은 힘이로군.”
백철중은 뭐라 그리 즐거운지 계속 웃었다. 잠시 후 그는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그리고 그 미지의 힘은 오롯이 자네 소유고 말이야. 나중에는 하나가 낳을 아이한테 계승되겠지. 그렇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그것만 상상하면 난 너무 즐겁다네.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야.”
자신의 손주, 그리고 그 후손이 대대적으로 지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가문의 주인이 된다. 오랜 재벌의 삶을 살아온 백철중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했다.
“회장님께서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엘릭서 복용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몸까지 너무 젊어져서 큰일이야. 요즘 힘이 남아돌아서 주체할 수가 없다네. 시간이 갈수록 그런 효과가 더욱 강해지는 것 같네.”
백철중은 의자의 손목걸이를 탁탁 치며 즐거워하다가 문득 웃음을 지우고 물었다.
“그런데 자네, 우리 하나는 언제 데려갈 건가?”
============================ 작품 후기 ============================
사실 모든 것은 이 말을 꺼내기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