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05화 (505/609)

00505  또 하나의 땅  =========================================================================

“출력 5%.”

직경 수백 미터의 황금 원반에 희미한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보안경을 쓴 채, 제어 장치에서 손을 떼지 않고 섬세한 조율을 해나갔다.

“출력 30%.”

모니터에 떠오른 수치를 읽으며, 한서진은 다시금 제어 명령을 수정해서 입력했다.

원반이 머금은 빛이 더욱 강해지며, 중심에 꽂힌 신살검을 향해 몰려들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출력 90%.”

어느덧 보안경 없이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빛이 강해졌다. 마치 태양을 직시하고 있는 듯한 밝기, 한서진은 덤덤하게 주시하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100%.”

그래프 수치는 100%에 도달했다.

타르타로스 3가 낼 수 있는 최대 한계까지 시스템 점유율을 가동시킨 것이다.

시리아 사건, 지구의 모든 테러범의 인격 개조를 일으키는 데에 0.1%도 안 되는 시스템 할당량으로도 충분했었다. 헌데 지금은 무려 100%의 시스템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

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니, 오싹 끼친 소름이 팔뚝을 뒤덮는다.

그리고 더 두려운 사실은…….

‘어디까지나 시스템 출력이 100%라는 거지, 신살검이 내는 출력이 아니야.’

현재 신살검은 타르타로스 3의 코어 역할을 하고 있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출력은 미스릴로 이뤄진 메인보드의 한계를 말한다. 성능이 떨어지는 메인보드가 신살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무제한으로 미스릴 보드를 확장 중이지만, 신살검의 한계치에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

한서진은 신살검에서 눈을 떼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미리 세팅해준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명령어를 입력하자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로딩되었다. 동시에 신살검이 푸른 광휘에 휩싸였다.

몇 차례 플래시가 뿜어지듯 타르타로스 3에서 강력한 에테르 파동이 뻗어 나갔다.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파동이지만 통찰안을 발동시킨 한서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모니터에 지구의 3차원 입체도가 떠올랐다.

어느 한 지점을 확대하자 순식간에 배율이 높아지며 그 부분이 선명하게 보였다. 에테르의 선으로 이뤄진 단일 색감이지만, 확대한 지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생생하게 보인다.

“런던인가. 축제 중이군.”

런던의 어느 거리에서 벌어지는 축제 현장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품고 있는 감정의 파동까지 고스란히 스캔되어 실시간으로 재생된다.

명령을 새로 입력하자 3차원 입체도의 다른 부분을 비추었다. 바로 서울의 홍대거리였다.

“역시 젊음의 거리야. 이 시간에도 바글바글하네.”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순간 홍대에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서 그들 전부의 건강까지 검진할 수 있으리라.

“대단하다.”

마치 지구 전체를 손바닥 안에 놓은 듯하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만약 지구를 관할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신.’

아직 신살검의 모든 출력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신과 다름없는 감각을 느낀다.

레노지안의 신비와 현대의 과학을 결합시킨 것만으로, 이런 위대한 힘을 창조한 것이다.

한서진은 정신없이 지구 곳곳을 탐구했다. 구름 위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것만 같은 황홀감, 그것은 마약보다 심한 중독이었다.

그는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갈등, 화합, 다툼, 번영, 생동,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간단한 명령어 몇 개만 치면, 그 모든 이들의 삶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도 있으리라.

핵미사일 버튼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능함이 지금 손안에 쥐어져 있다. 그런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이럴 때가 아니지.”

한서진은 두 손으로 뺨을 가볍게 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신이라도 된 듯한 감각에 취해, 타르타로스 3를 만든 본연의 목적을 잠시 깜빡 잊고 있었다.

그는 타르타로스 3에 다른 명령을 입력했다. 3차원 입체도는 곧바로 지구 표면이 아닌, 내부를 향해 확대를 거듭해나갔다.

그러나 상부 맨틀에 다다르는 순간 확장은 곧 막혔다.

그 아래에는 짙은 암흑이 존재할 뿐, 더 이상 시야를 전진할 수 없었다.

「성분불명의 물질막이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변이층을 정밀 탐색합니다.」

타르타로스 3는 곧바로 100%로 발휘한 출력을 전부 상부 맨틀 스캔에 집중시켰다. 황금 원반에서 뿜어지는 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곳곳에서 진공음이 뿜어져 나온다.

‘타르타로스 2로는 성분 파악 자체가 불가능했었지.’

상부 맨틀이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정체불명의 물질로 이뤄진 차단막이라는 것을 간신히 알아냈을 뿐이다.

상부 맨틀 내부에 웜홀 게이트를 개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타르타로스 2에 있어 그곳은 미지, 불가능의 영역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타르타로스 3는 어떨까?

허공에 떠오른 3차원 입체도가 어지럽게 일그러지며, 탐색 대상의 실체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보안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물질의 형태는 마침내 인간의 시각이 인지할 수 있는 모습으로 뒤바뀌었다.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상부 맨틀의 정체가 오롯한 입체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것은 거대한 황금색 구체였다. 매끈하고 반듯한 표면은 질서정연한 색감의 통일성을 보이며, 마치 금으로 빚어낸 듯한 구슬 같은 모습을 지녔다.

타르타로스 3의 탐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입체도의 아래를 거침없이 뚫고 들어가, 그 내부에 존재하는 미지에 발자국을 남겼다.

100% 출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에테르 에너지는 방사선처럼 상부 맨틀이 빚어낸 공간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진짜 지구’의 내부 모습이 3차원 입체도로 투영되었고, 그 신비한 실체를 처음으로 목격한 한서진은 아무 말도 못하고 손가락만 떨어뜨렸다.

“이것이…… 레노지안.”

그곳은 하나로 이뤄진 거대한 대륙이었다. 생명이 찬란히 빛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오롯한 죽음으로만 이뤄진 대지.

끝없이 널린 생명의 뼈는 그 비밀의 대륙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꿈을 통해 본 광경과 똑같다. 신효진이 말한 것과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오랜 세월에 퇴색된 뼈는 한 곳으로 그 흐름이 집중되고 있었다. 뼈로 이뤄진 거대한 인골산, 그리고 그 위에 초연히 앉아 왕관을 쓰고 있는 백골이 보인다.

백골이 쓰고 있는 금관은 마치, 대륙의 삶과 죽음이 지닌 무게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십 수억 년의 세월 동안, 패배의 책무를 홀로 짊어온 그 모습에 한서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

한서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보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아서 왕이…… 고개를 움직인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다. 오래 전에 죽은 시체이지 않은가.

한서진은 급히 영상 기록을 확인했다. 이질감을 느끼기 전과 후로 나누어 각 영상을 비교했다.

“말도 안 돼! 진짜 움직였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착각이 아니라, 아서 왕의 백골이 미세하지만 분명히 움직였다.

스스로 움직인 것일까? 아니면 부식 작용으로 흔들린 것을 착각한 것일까?

한서진은 얼어붙은 채로, 모니터에 표시된 에테르 영상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착각이겠지만, 죽은 아서 왕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백골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 실로 절묘했던 것이다.

왕은 제단에 꽂힌 검을 쥐었다.

오랜 세월의 묵직함이 손끝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왕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손잡이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깊은 무저갱 속에서 거대한 힘이 끌려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무겁고, 벅차다.

왕가의 오랜 한, 신민들의 묵은 소망이 이 한 자루 검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그 커다란 중압감은 왕관의 무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침내 왕은 검을 뽑았다.

손안에 감긴 감촉은 언제 그렇게 버거웠느냐는 듯이 가볍고, 가뿐했다. 마치 검과 자신이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검날에서 뿜어지는 푸르스름한 빛이 기이한 황홀감을 전달해준다. 세상 모든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넘친다.

왕은 제단 아래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손에 쥔 검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태양의 광명을 반드시 되찾으리라!”

“국왕 폐하 만세! 국왕 폐하 만세!”

“킹 아서, 만세! 만세!”

왕은 검을 더욱 높이 치켜드는 것으로, 백성들의 환호에 말없이 대답했다.

그때였다.

‘……!’

저 멀리서, 뭔가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까 제단을 오르기 전에 느꼈던 기척이다.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아서 왕의 몸을 거듭 훑었다.

―언젠가 위대한 왕이 출연해 신계를 되찾을 그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찬란한 빛과 힘을 얻게 되리라.

왕은 기도하듯이, 속으로 예언을 읊었다.

자신은 신화 속의 예언을 실현해야 할 고귀한 책무를 짊어진 군주다. 혹시 옛 배반자인 신이 하늘에서 경계하며 관찰하고 있는 것인가?

왕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신…… 당신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얼마든지 훔쳐봐도 좋다! 당신 따윈 두렵지 않다! 당신은 우리와 다시 싸울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겁쟁이일 뿐이니!”

“와아아아! 국왕 폐하 만세!”

“하늘의 신 따윈 두렵지 않다! 살아있는 신, 위대한 군주 아서를 찬양하라!”

“성전! 성전! 성전!”

무수한 백성들의 환호에 반응하듯, 하늘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왕은 눈을 부릅뜬 채 검에 정신을 집중했다. 검에 깃든 힘이 그의 영혼에 공명하듯 은은한 떨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검을 힘차게 휘둘러, 하늘을 베듯이 그었다.

검에서 뿌려진 광휘의 칼날이 크게 번져나가며,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갈랐다.

그러나 하늘을 드리운 암흑은 그의 공격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조그만 물방울을 튕겨내는 거대한 암석처럼, 덤덤히 어둠을 넓히고 있을 따름이었다.

“성전이다!”

에테르 영상 속, 백골은 더 이상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한서진은 결국 풍화 작용으로 인한 흔들림을 자신이 착각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타르타로스 3에 웜홀 개방 명령을 입력했다. 좌표를 설정하고, 안정성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실행을 지시했다.

웜홀 설치장비는 타르타로스 3의 보조를 받아, 상부 맨틀 아래로 에너지를 투사하기 시작했다.

무수히 실패했던 웜홀 작업이 너무나 간단히 끝났다.

“성공이다.”

한서진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연구실 한쪽에 열린 웜홀을 주시했다. 그 안에는 지구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땅, 레노지안의 암흑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췌장암에 걸려 해고당한 불우청년은 근 500화 만에 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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