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04화 (504/609)

00504  또 하나의 땅  =========================================================================

시리아 사건은 결국 미국의 외계인 고문설에 위업 한 줄을 더 추가하는 선에서 수습되었다.

미국이 주장한 정신 제압 약물은 일반 대중 사이에 거부감 없이 자리 잡았다.

‘미국이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지.’

그런 인식이 무사히 뿌리를 내린 데에는, 미국이 CNN 등 메이저 매스컴을 통해 막강한 홍보 파워를 발휘한 공도 컸다. 국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했으니까.

어떻게 한날한시에 전 지구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했는지에 관해서 여전히 의혹이 존재했지만, 미국의 홍보 능력은 충분히 그것을 덮어버릴 수 있었다.

한서진이라는 개인에 대한 의혹과 두려움을, 미국이라는 연막으로 가려버린 것이다.

“테러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이 이룩한 업적에 세계는 열광하느라 바빴다.

IS 등 테러 조직은 사실상 와해된 채, 그 위협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테러의 위협에 떨던 선진국은 완전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국제군이 와해된 테러 조직원들을 체포하는 모습이 매일같이 보도되었고, 시민들은 환호를 보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적을 해낸 미국을 찬양했다.

미국인들이 국가에 가지는 자부심은 더욱 고양되었고, 인권단체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며 앞을 다투어 미국 정부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시리아 사건은 역사의 한 챕터를 독차지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지만, 한서진은 다행스럽게도 그 주역으로 지목받지 않았다.

만약 그가 주역으로 떠올랐다면 사람들은 찬양 대신 두려움을 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다행스럽고 미국에는 이익이 되는, 서로가 승리할 수 있는 결과였다.

“난 대체 뭘 만든 거지?”

타르타로스 3 시스템 로그를 전부 살피고 난 뒤 한서진이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시리아 사건, 타르타로스는 전 지구에 에너지를 투사해 테러 조직원의 인격을 강제로 개조했다. 목표 명제를 설정하고, 전 지구의 모든 인간들을 스캔한 뒤, 목표물을 선별하여 인격 개조를 완료하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당신은 신입니까?

미 대통령이 괜히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니다. 타르타로스 3가 한 일은 신에 필적하는 위업이었고, 그런 타르타로스 3를 만든 한서진은 신 중의 신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서진이 지금 놀란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0.1%도 안 된다고?”

그 놀라운 일을 실행하는 동안 시스템 점유율은 0.1%를 넘어서지 않았다. 참고로 점유율 0.1% 미만은 그냥 0.0으로 표시된다.

“이건 진짜 신이나 다름없잖아.”

얼마 전 정지원에게 우스갯소리로 자신 있게 한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신을 만들어볼까 한다던 그 장난스러운 포부가 이렇게 이뤄질 줄이야.

온몸에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타르타로스 3 한 기만 갖고 있으면, 그야말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전 세계를 자신의 앞에 무릎 꿇리고, 영원한 복종을 맹세케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화폐 자본가들과 가볍게 실랑이를 했던 일은 우습고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힘 아닌가.

“겨우 절반으로도 이 정도인데…….”

심지어 그 절반의 성능조차 온전히 낸 게 아니다.

미스릴로 이뤄진 메인보드는 타르타로스 3의 코어인 신살검을 제대로 뒷받침 못하고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시스템 확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가능하겠어.”

한서진은 잠시 일본을 떠올렸다.

현재 한일간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완전히 봉쇄된 상태였다. 한서진의 위상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미국이 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면서부터 일본은 한국에 거는 모든 자극을 멈췄다.

잊을 만하면 우익 언론에서 독도를 물고 늘어진다던가, 신사 참배라든가 하는 행위를 잠정적으로 멈춘 것이다.

그렇다고 전향적으로 과거를 반성하거나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과거 역사, 그리고 한일 간의 갈등 자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 그친 것이다.

손해는 원치 않지만 자존심을 굽히는 것 역시 않은 일본으로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한서진의 위상 증진을 이용해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민간단체의 움직임은 꾸준히 활발했지만,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은 모르쇠 전략을 유지했다. 그냥 두 귀를 닫고 무시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한서진 박사는 친일이다! 얼마든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있으면서도 모른 체 방관하고 있다!”

“백철중 회장이 일본 혈통이라서 그렇다! 한서진 박사의 처가에는 일본의 피가 흐른다! 그래서 일본을 편들어주는 거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물론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매도와 비난에 관해서는 H컨설턴트가 블랙리스트 처리를 하고 있었다.

백철중은 일본과는 전혀 관련이 없거니와, 한서진이 한일 역사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빴으니까.

할 게 너무 많은 몸이었고, 레노지안이라는 가장 큰 문제가 오랫동안 그의 신경을 갉아먹어왔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도 심신의 피로를 달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외교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본의 만행에 관해서는 한국인으로서 공분했지만, 사실 외교 기사 같은 것은 읽어볼 시간이 없었다.

“일본 우익의 정신을 개조해버리면 간단히 끝나려나? 전부 집단 할복하게 만들면…….”

장난처럼 그런 상상을 하다가 픽 웃었다.

“초룡 잡는 칼로 계란말이 써는 꼴이잖아.”

사실 해결하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그저 미국 정부에 한 마디만 전하면 된다.

현재 미국 정부는 한일 관계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꿋꿋이 침묵을 지키고 더 이상 자극 행위도 하지 않는데, 구태여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서진이 ‘일본 반성 안 하는 거 마음에 안 드네요.’라고 한 마디 한 것도 아니고.

“생각난 김에 그것도 처리해야겠다.”

한서진은 미 대통령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잠시 내용을 생각하다가 그는 최대한 온화하게 적었다.

‘한일 역사 문제가 진정한 동아시아의 화합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미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다.

표현은 무척이나 공손하고 정중하지만, 철저히 한서진과 한국의 입장에서 그 문맥을 해석할 것이다. 과연 미국은 화합이란 단어를 어떤 식으로 해독하고, 포장하려 할까?

“타르타로스 3로 또 뭘 할 수 있을까?”

뒤늦은 한일 문제 해소 참견에 타르타로스 3까지 투입할 필요는 없다. 생각난 김에 미국에 문제를 떠넘긴 한서진은 새 장난감을 얻은 ‘얼리어댑터 키덜트’답게, 이 기적의 도구를 어디에 또 ‘테스트’해볼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무언가 유일하게 타르타로스 3만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문제…… 그리고 사회에 무조건적인 공익만 되는 그런 문제…… 그런 거 어디 없나?”

열심히 생각을 해봤지만 막상 떠오르는 게 없다.

부의 집중 현상 문제 해소? 그런 사회적인 갈등은 타르타로스 3와 크게 어울리지 않는다.

만능 의약품 개발? 이미 엘릭서가 존재하고 있는 판이라 영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유전자 지도 수집 및 해독? 엄연한 개인 사생활 침해라서 별로 안 내킨다. 시리아 사건은 보편적인 거대 공익을 우선시한 예외로 치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타르타로스 3의 성능에 어울릴 만한 스케일, 그리고 시리아 사건처럼 인류에게 오직 긍정적인 이익만 줄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절대 부작용 같은 건 없어야 하고…… 대체 뭐가 있지?’

결국 그는 타르타로스 3의 존재와 대략적인 성능을 알고 있는 정지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만 있자. 그러니까 타르타로스 3를 한 번 마음껏 갖고 놀고 싶은데,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거지?」

“갖고 논다는 건 좀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뭘 해보면 좋을까요?”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

상기 나열한 조건들에 걸맞은 ‘테스트’를 하려니, 좀처럼 생각나는 게 없다.

타르타로스 3만이 할 수 있는 대규모, 그러면서 인류에 절대 해악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대체 뭐가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한국에서 인수한 어떤 대기업 계열사에 문제가 발생했었지.」

“대기업 계열사요?”

한서진은 듣는 순간부터 맥이 빠졌다.

한국 대기업 계열사, 아무리 생각해도 타르타로스 3와 어울리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몰카가 발견됐거든. 그래서 난리가 났었어.」

“그게 어째서요?”

「마침 네가 연락했을 때 보고서에서 그거 읽고 있었거든. 그래서 생각난 건데, 지구상의 모든 성범죄 몰래 카메라 데이터를 삭제해보는 건 어때?」

“…….”

한서진은 조금 전 느낀 실망감을 잊은 채,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정지원이 제안한 테스트의 규모가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감이 퍼뜩 온 것이다.

「생각해 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적 DB에 기록된 영상 자료를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해킹, 아니 스캔해야 돼. 암호화가 되어 있다면 그것도 풀어야지. 그리고 그 영상이 ‘불법적으로 몰래 촬영된 성범죄 영상’인지도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해.」

“원래 인간의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주관적 판단이 더욱 어려운 법이죠.”

「괜찮을 것 같지 않나? 피해자는 없고 오롯이 구제되는 사람만 나오는 건데. 아, 물론 수사 중인 사건의 증거 자료는 놔둬야겠지만.」

“추가로 자기도 모르는 동영상이 떠도는 피해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서 증거 자료로 건네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가해자 인적사항도 함께요.”

「Z7 수천억, 아니 수 조 대가 있어도 엄두도 못 낼 일이야.」

“T-3 놈에게 한 번 시켜보겠습니다.”

심지어 합법적으로 생산 유통되는 자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며, 시스템이 그것을 구분할 만한 인지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서진은 자신했다.

이미 시리아 사건을 통해, 타르타로스 3가 인간에 버금가는, 아니 뛰어넘는 인격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이 증명되었으니까.

그는 곧바로 세세한 조건을 작성해서 명령을 입력했고, 다시 한 번 타르타로스 3가 내뿜은 빛이 지구 전체를 훑었다. 전보다 더욱 찬란하고 강력한 빛의 파장이었다.

“좋아.”

한서진은 자신의 실험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공했는지 판별하기 위해 손수 검증에 나섰다. 그는 다른 일반 컴퓨터를 켜고, 불법 성인사이트를 찾아 접속했다. 그리고 검색어를 넣고 열심히 자료 탐색에 나섰다.

“……오빠. 지금 뭐 찾으시는 거예요?”

“응? 하, 하나야! 아, 아니야! 이, 이건 그런 게 아니야!”

“……세상에. 오빠가 어떻게.”

“아, 아니야! 아니래도!”

어쨌거나 타르타로스 3의 성능은 완벽했다.

상부 맨틀 그 자체와, 그 아래에 존재하는 레노지안을 찾아나설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 작품 후기 ============================

갓갓한 신상 제품입니다. 메이드 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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