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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03화 (503/609)

00503  또 하나의 땅  =========================================================================

한서진의 존재는 근래 미국의 국가 기본 정책을 수정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이런 식으로 논평을 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정책에 있어, 일본이 열 개쯤 된다 해도 그의 비중에 비하면 모자라다고.

그는 앞으로 미국의 천년 헤게모니를 다듬어줄 유일한 사람이었고, 미국은 그를 다른 어떤 이익과도 타협할 수 없었다.

과거 중국이 그를 납치했을 때, 이미 그가 죽었다고 알려진 뒤에도 미국이 전쟁을 불사하고 일으키려 했을 정도다.

지금은 북한이 사라졌지만, 만약 그가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면? 미국은 하루아침에 평양과 북한군을 초토화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을 시켜줬을 것이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불필요한, 미국의 최대 주요 인물.

워싱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그를 잃는 것보다 대통령과 상하원 전체를 열 번쯤 잃는 게 더 낫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 그의 이름 앞에 불필요한 수식어를 몇 개쯤 더 추가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당신은 신입니까?”

경외심이 담긴 물음에 한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진지한 눈빛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신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미합중국 대통령께서 하실 만한 발언이 아닌 듯 싶습니다만. 신의 힘이 아니라 그저 과학일 뿐입니다.”

“과학…… 이런 것도 정녕 과학인가요?”

그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선진 과학 문명을 지닌 국가의 통치자가 저런 말을 하다니. 한서진은 그 점이 조금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자신조차도 타르타로스 3의 성능은 놀라웠으니까.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지구상 80억 모든 인간들을 스캔하고, 성향을 확인하고, 그리고 뇌신경을 건드려 인격을 바꿔버렸다.’

창조주인 자신조차 인간의 뇌 구조는 완전히 알지 못했다. 의학 코스를 속성으로 수료하고, 통찰안을 통해 현대 의학을 뛰어넘었지만, 아직 여기가 한계다.

그런데 타르타로스 3는 자신조차 가뿐히 뛰어넘었다.

만약 타르타로스 3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활동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거 관리 엄청 잘해야겠는데.’

일단 대통령부터 진정시켜놓고.

“무기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진지한 물음에 한서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했다.

“가능할 것 같네요. 뇌혈관 몇 개만 건드리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어요.”

“오, 맙소사. 역시…….”

대통령은 주먹을 쥔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키보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앉은 자리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거군요.”

“그런 것쯤이야 지금 대통령도 하실 수 있는 일 아닙니까?”

백악관에서 핵미사일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지역을 몰살시킬 수 있다. 한서진은 그걸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핵과는 전혀 다른 힘이지 않습니까.”

“원리와 과정이 다를 뿐, 할 수 있는 결과는 동일합니다. 제 경우는 사람 외에 피해가 없다는 장점이 있겠군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치부하는 그 태도가, 대통령의 눈에는 더 대단해 보였다.

한서진은 자신을 숭배하는 듯한 그 눈빛이 조금 우습기도 했고, 살짝 염려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은 제가 그런 힘을 지닌 게 전혀 걱정되지 않으신가 보군요.”

“박사님의 행보가 말해주니까요. 힘을 결코 함부로 쓰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너무 속편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박사님이 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

“박사님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품든, 그것은 우리 미국의 자랑이자 자존심입니다. 전혀 걱정을 할 일이 아니지요.”

대통령은 자부심이 넘치는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신…… 박사님이 신이든, 신을 만드셨든, 뭐든 좋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우리 미합중국이 위대한 영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모든 미국 시민들이 똑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그 힘을 국가에 귀속시키라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국가가 그 힘을 통제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요?”

앉은 자리에서 명령어 하나로 사람의 인격을 바꿔버린다.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미국 시민, 아니 인류 전체의 목숨을 쥐고 흔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호전적인 대통령이라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한서진을 겁박하거나, 혹은 무력으로 이곳을 강제 소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그런 쪽이 아니었다. 물론 CIA 등 정보기관의 분석과 예측도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만약 한서진 박사를 두려워하고 적대하여 그 힘을 빼앗으려 할 때, 어떤 결과가 야기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함. 최악의 경우 미국 자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음.

―그의 지난 행보를 보면, 그는 정의 질서에서 벗어난 방향으로 힘을 남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 시리아에 벌어진 결과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음.

―차라리 그가 지니게 된 초월적인 힘을 인정하고, 그를 존중하는 게 미국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하고 합리적임.

한서진이 구축한 힘의 한계가 어디인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괜히 그의 힘을 뺏기 위해 심기를 거슬렀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지면?

그러니 모든 것을 인정하고 놔두는 게 낫다. 더군다나 그는 악한 목적으로 힘을 남용한 적도 없지 않은가.

“크리스 대통령이 사임하고 얼떨결에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워싱턴에서도 허수아비 대통령 취급을 받으며 갈피를 잡지 못했었지요.”

대통령은 진지하게 표정을 다잡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남은 임기 동안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같습니다. 바로 박사님입니다.”

전 지구적으로 벌어진 이상 현상은 시리아 사건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지만, 시리아에서 제일 처음 발견되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단 며칠에 불과했지만, 지구상의 모든 교전이 멈췄다. 그리고 재교전의 총성은 아직까지 울리지 않고 있었다.

선진국들은 당황했으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은 곧바로 중동지역에 대대적으로 군을 파견해 현장 수습에 나섰다. 반군, 테러 조직이 보유한 모든 무기를 압류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상황 파악이 늦은 다른 선진국들 역시 부랴부랴 병력을 움직여 수습 작업에 들어갔다.

오랜 전쟁으로 초토화된 지역에서 총성이 완전히 멎고, 포화가 걷혔으며, 대대적으로 투입된 구조 인력이 식량과 의약품을 실어 날랐다.

미국에 뒤쳐지긴 했으나, 다른 선진국들도 하나둘씩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민간인을 학살하고 총을 겨누던 병사들이 모두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총과 피를 무서워하고, 시체를 보면 기절합니다.”

“중동뿐만이 아닙니다. 남미 갱단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측되었습니다.”

“마치, 전쟁을 싫어하는 어떤 신이 지구 전체에 평화의 기적을 베푼 것 같습니다.”

선진국들의 의심은 자연히 한서진을 향했다.

이건 분명히 인위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적을 행할 능력을 가진 이는 지구상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미지의 에너지, 에테르를 독점하고 자유자재로 부리는 남자.

“에테르 외에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원인 인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한서진 박사가 뭔가를 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평성 연구소 신사옥에 두문불출하며 뭔가에 몰두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시기상으로도 겹칩니다.”

선진국들은 ‘시리아 사건’에서 유추 가능한, ‘이런 힘으로 벌일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과 경외감에 휩싸였다.

“아마 지구 전체에 한꺼번에 어떤 에너지를 방출하여, 표적들의 정신에 조작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기술을 응용한다면 원하는 사람을 얼마든지 골라서 죽이거나 미쳐버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실로 가장 흉악한 무기를 만든 겁니다! 그리고 시리아 사건은 그 무기의 실험이었습니다!”

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의 반응은 미국과 달리, 경외감보다는 두려운 마음을 더 크게 품었다. 그는 미국인이었으니까.

시리아 사건의 전말이 점점 일반 대중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언론을 틀어막아도 한계가 있었다.

―헐, 이거 정말 사실인가?

―한날한시에 모든 테러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인격 개조를 당했다고? 싸움을 무서워하게?

―이거, 이번에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쓰긴 했지만 다른 식으로 활용하면 최악의 무기가 되는 거 아니냐?

―한서진 박사가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전략무기라는 게 사실?

미국은 자랑스러워 할 일이지만, 타국은 아니다.

그들은 한서진이라는 개인에게 지나친 힘이 집중되는 게 아닌지 두려워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 국무부에서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 미국은 오랜 세월에 매우 효과적인 제압 약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특정 지역과 표적을 선별하여 실전 사용을 한 결과, 이 약물의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약물은 철저히 사람의 폭력성과 반사회성 조절에만 작용하며…….”

제압 약물.

미국은 국무부 발표를 통해 시리아 사건을 자국이 개발한 약물의 실전 사용으로 프레임을 점유하고 나섰다.

“10여 년이 넘은 기간 동안 지지부진했던 개발 작업은 한서진 박사가 연구에 참여하면서 가속이 붙어, 얼마 전에 드디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서진 개인이 개발한 전략 무기? 전 지구적 세뇌 통제 장치?

그런 건 없다. 어디까지나 미국이 개발했고, 한서진이 중간에 도왔으며, 미군 특수부대가 실전에 사용했을 뿐이다.

그것이 미국의 주장이었다.

“거짓말이다! 그럼 러시아, 유럽, 남미 갱단에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했단 말이냐!”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지금 미국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은 즉각 반발 성명을 내며, 미 국무부의 주장을 부정했다.

차세대 정신 제압 약물은 그럴 듯했지만, 지구 전체에 한날한시에 사용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다른 선진국들은 한서진의 존재감을 감추기 위해 미국이 연막을 펼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서진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은 엄청났다.

미국은 여론, 학회 발표, 개발 과정 공개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정신 제압 약물’ 주장에 강한 힘을 실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약물설을 믿게 만들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정신 제압 약물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하나둘씩 믿기 시작했다.

다른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한서진 위험론을 믿거나 인정하기에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들 정부가 말하는 그런 거대한 힘이 오롯이 한 사람의 손에만 쥐어져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었으니까.

여기에 러시아와 일본이 중립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유럽의 주장은 힘을 잃었고, 시리아의 기적은 위대한 미국이 이룩한 하나의 사건으로 정의되었다.

============================ 작품 후기 ============================

큰 힘에는 큰 귀찮음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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