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02화 (502/609)

00502  또 하나의 땅  =========================================================================

“시리아 지부에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이라크 지부에서…….”

“멕시코입니다! 멕시코 갱단들도 유사, 아니 동일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흉악했던 이들이 총과 피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과거 저지른 만행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동일한 종류의 보고가 워싱턴에 쏟아져 들어왔다.

부통령에서 크리스의 사임으로 승계 된 대통령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이 모든 현상은 한날한시에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약물 같은 것으로 꾀한 변화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초월적이고, 더 즉각적인 힘의 영향력으로 발생한 변화입니다.”

대통령은 미간을 구기며 추궁하듯이 물었다.

“민간인한테는 일절 영향이 없었다는 게 확실한가?”

“정확히 말하자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으로 한정해야합니다. 그 변화는 지구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시리아 정부군도 동일한 변화를 겪었네. 그렇다면 현장에 주둔 중이던 우리 미군은?”

“미군은 아무런 영향이 없었습니다.”

인격 변화가 일어난 이들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활동 중인 테러조직, 갱단, 그리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지역에서 교전 중인 정부군과 반군 등으로 추릴 수 있었다.

마치 전쟁의 신이 존재하고, 그들에게서 피를 흘릴 자격을 영구히 박탈한 것 같지 않은가. 그 피가 타인의 피든, 그리고 본인의 피든 상관없이.

교전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선진국 군대는 아무런 영향을 입지 않았다. ‘테러 조직’이 아니기 때문일까?

CIA는 ‘전쟁의 신’이 어떤 밑그림을 원하고 이와 같은 일을 벌였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비난의 여지가 없는, 완전한 평화.’

평화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대중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금 일어난 이 기적은 어떠한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완전한 평화를 구축해냈다. 약자를 해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심지어 그들의 목숨까지 수호하면서 처분했다.

국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동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걸 과연 인간이 해낼 수 있는가?’

한서진, 그는 정녕 인간인가? 이런 게 가능하다면 응당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는가?

“한서진 박사님께 질의하는 게 가장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직속 부하들이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CIA는 이미 한서진이 무언가를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 타국 첩보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인격 변화 현상은 인위적인 개입이 틀림없었고, 그것이 가능한 인물은 지구상에서 단 한 명뿐이니까.

“그분에게 질의한다고 그분이 제대로 긍정하시겠나?”

“하지만…….”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미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그분을 제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루아침에 지구상의 흉악한 질서교란자들의 인격을 모두 바꿔 놓았다. 더 이상 그들이 타인을 해하고 질서를 어지럽힐 수 없도록.

그것은 동시에 미국 주요 인사들, 나아가 미국 시민들의 인격까지 바꿔놓을 수 있음을 뜻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를 제재할 수도 없거니와, 제재를 해서도 안 된다.

“박사님은 가장 평화적이고, 피를 흘리지 않는 온건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셨네. 그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박사님의 성향이 선에 머물러 있다는 걸 뜻하지. 그런 사람을 단지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재할 수 있겠나?”

테러국이 가진 핵은 제재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로운 선진국이 가진 핵은 제재할 수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백악관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의 소관은 아니야.”

한서진은 미국인이며, 그의 힘은 미국의 힘이나 다름없다.

그의 힘이 미국 내부를 향해 투사되는 게 아닌 한, CIA가 그를 견제할 이유는 없었다.

“이것은 정치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일세.”

피곤을 풀기 위해 한숨 자고 일어난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 설계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작업 개시 전, 그는 은밀한 방문을 받았다.

“대통령.”

놀랍게도 크리스의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현 미국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제가 평성을 방문한 것은 대외비입니다. 그만큼 시급한 일이라서 모든 정무를 팽개치고 날아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시치미 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박사님이 이룩한 성과의 위대함과, 그 힘을 결코 남용하지 않으시는 절제된 영웅심에 큰 경외를 품고 있습니다. 이는 미합중국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

한서진은 어리둥절해서 대통령의 표정을 살폈다. 이 사람, 아침 일찍 갑자기 찾아와서 다짜고짜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대통령이 이해한다는 듯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주변을 함부로 믿지 못하시는 경계심, 이해합니다. 민간 과학자가 그런 큰 힘을 소유하시게 되었으니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평화와 생존을 위해 과감히 칼을 휘두르신 영웅심을 존경합니다.”

“대통령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시리아 내전이 종결되었습니다. 박사님께서 하신 것 아닌가요?”

“……네?”

“시리아뿐만이 아닙니다. 중동, 이슬람, 심지어 러시아와 남미의 테러 조직들까지 붕괴했습니다. 평화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한 자들이 모두 갱생했습니다. 우리는 박사님이 큰 결심을 품고 그와 같은 일을 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한서진은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뒤를 살폈다. 합금벽 너머에 있는 타르타로스 3를 바라보듯이.

그런 태도에 대통령은 알겠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다시 한 번 간곡히 말했다.

“박사님이 하신 일 아닙니까?”

“…….”

“박사님께서는 이미 100만 군중을 두 번이나 집단 통제하신 적이 있지요. 혹시 그것은 시험이었습니까?”

100만 군중 통제.

미국은 그간 그 일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해왔다. 미국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한서진에게 직접 그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음모론으로만 떠돌았을 뿐이다.

100만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집단 세뇌 능력, 그것은 미국이 대놓고 거론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른 체 불문에 붙여왔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처음으로 그 금기를 깼다.

한서진은 당황함을 지우고,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머리를 가볍게 짚고 생각에 잠겼다가,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합니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한 박사님.”

“지금 대통령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확인을 한 뒤 다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무턱대고 이 자리를 모면하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잠시면 됩니다.”

한서진은 곧바로 타르타로스 3 통제실로 들어와서 사실을 확인했다. CIA 등 각국 첩보 기관들의 자료를 흔적 없이 뒤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뉴스에는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게 가능해?’

그는 질린 듯이 타르타로스 3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전쟁 등 참혹한 인명 사상에 관계된 조직 구성원들은 한 명의 예외 없이 강제 인격 개조를 당했다. 그것도 한날한시에.

시간을 확인하니, 자신이 테스트 명령을 내려서 타르타로스 3가 에테르 스캐닝 빛을 뿜어낸 바로 그때였다.

‘스캔과 동시에 모든 처분을 끝냈었구나.’

그 경이로운 성능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기동에 문제가 생겼던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이 내린 명령을 그 자리에서 모두 끝내버린 뒤였다니.

한서진은 시스템 로그를 자세히 살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명령을 이행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내린 명령과 조건은 간단했다.

―지구상 모든 테러 조직의 비무장화.

―인명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타르타로스 3는 먼저 테러 조직을 ‘경찰 치안력의 통제를 벗어난,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을 갖추어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집단’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 반군까지 테러 조직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유럽 및 러시아, 미국 마피아, 그리고 남미의 갱단까지 포함되었다.

‘인명에 영향을 끼치지 말라고 해서 인격을 아예 바꿔버렸군. 나름대로 온건한 방향을 택한 건가.’

타르타로스 3는 목표물을 모두 죽이거나, 혹은 백치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명에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그들이 싸움과 피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싸움이나 살인 등의 범죄에 얽매이지만 않으면, 그들은 평생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들의 인생을 직접 처분하지 않고, 더 이상 타인의 생명에 관여하지 못하게끔만 손을 쓴 것이다.

‘인격 개조를 했다는 건…… 타르타로스 3가 인간의 뇌 신경망을 완벽하게 해부했다는 증거 아니야?’

뇌 신경 구조를 완벽하게 꿰뚫지 않고서야, 이런 정확한 성격 수정을 가할 수가 없다.

뇌 의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신을 만난 듯한 충격에 빠질 것이다.

타르타로스 3가 한 일은 신이 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손이 닿은 피조물의 능력을 넘어섰다.

그리고 시스템 로그를 살피자 더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맙소사. 1순위 안은 인격 개조가 아니었어?’

비무장화. 타르타로스는 인격 개조를 통해 목표물들이 정신적으로 무장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전에, 타르타로스는 목표물들이 보유한 모든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고려했던 것이다. 시스템 로그에 분명히 남아 있었다.

목표물들이 가진 미사일, 폭탄, 탄두에 내장된 화약에 성분 변화를 가해, 파괴력을 잃게 만든다. 소총, 박격포, 전차, 전투기 등에도 마찬가지 조치를 취해 고철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무기 생산 시설까지 무력화해서, 말 그대로 그들이 권총 한 자루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타르타로스가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 제거는 영구적인 조치가 아닌,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함.

무기를 일시적으로 없애는 것은 완전한 비무장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인격을 개조해버린 것이다.

전투와 피를 두려워하게 된 목표물들은 제아무리 훌륭한 무기가 손에 쥐어져도, 이제 다시는 싸울 수 없다.

타르타로스 3가 도달한 결론, 그리고 실행 완료한 결과에 한서진은 그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한서진은 다시 대통령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인정했다.

“확인해보니 제가 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새로 만든 에테르 수퍼컴퓨터가 한 짓 같군요.”

“맞는 것 같다, 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아, 성능 테스트한다고 시험 명령을 내렸거든요. 지구상 모든 테러 조직의 비무장화, 대신 인명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이렇게요.”

“…….”

대통령은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박사님은 신입니까?”

============================ 작품 후기 ============================

미국은 통제와 간섭 대신 숭배를 선택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게 속이 편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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