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1 또 하나의 땅 =========================================================================
지구상 모든 테러 조직의 비무장화.
인명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타르타로스 3의 성능을 테스트하기에 조금 과한 명령이었을까, 아니면 적당한 명령이었을까.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가 입력된 명령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실행할지 그 일련 과정이 궁금해졌다.
‘먼저 테러 조직을 정의해야겠지.’
테러 조직을 정의하기 위해서 녀석이 취할 수단은 과연 뭘까.
어떤 조직은 선진국에는 테러 조직이지만 그 나라에서는 해방을 위한 선구자일 수도 있다. 보편성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개별 특수성을 고려할 것인가.
‘비무장화는 어떻게 목표를 설정할까?’
비무장화.
비무장이라는 단어 자체는 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정의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장을 해제할 것인지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것을 타르타로스 3의 능력으로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가장 극단적인 비무장화는 싹 쓸어버리는 것이지만.’
혹시라도 그런 결과를 야기할까 봐 일부러 단서를 넣었다. 인명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이라고.
예를 들어 타르타로스 3가 테러 조직을 스캔하고, 에테르 자극을 통해 관련 구성원들의 뇌에 아주 조그마한 물리력만 행사해도 그들은 죽는다.
의사가 아무리 살펴도 원인을 찾아낼 수 없다. 갑작스럽게 뇌의 주요 생명유지 기능이 정지했다는 것 정도만 알아낼 수 있을 뿐이다.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가 곧 보일 다음 움직임을 기대하며, 팔짱을 낀 채 뚫어져라 살폈다.
“…….”
째깍째깍…….
얼마 전 스위스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대형 기계식 벽걸이 시계 초침 회전하는 소리만 어렴풋하게 울렸다.
“왜 반응이 없지?”
방금 전 지구를 한 차례 스캔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이 없었다.
광역 스캔으로 정보를 수집했으면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아직 연산 처리 중인가?’
이제 갓 태어난 타르타로스 3에 있어, 0과 1로 치환하기 어려운 명령은 다소 어려운 것이었나?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건가?
어쩌면 겉보기에는 잠잠해도 안에서는 맹렬히 연산 회로를 돌리고 있을지 모른다. 테러 조직의 뜻을 정의하고, 비무장화의 종류와 영역을 설정하는 등…….
“뭐야?”
타르타로스 3 시스템 활동량을 확인한 한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녀석은 대기 모드 상태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이 밀려 왔다.
“시작부터 파업이냐.”
아무래도 세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당분간 밤샘 작업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송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나야, 미안해. 오늘 들어가려고 했는데 못 들어갈 것 같아.”
「T-3가 말썽을 부리나 봐요?」
오늘 첫 기동일이라고 말해두었기 때문에, 송하나는 어떻게 된 건지 대강 짐작했다.
“응, 아무래도 초기 세팅 작업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전혀 말을 안 들어요?」
“가동은 되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큰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한서진은 한숨을 쉬며 침묵을 지키는 타르타로스 3를 바라봤다.
CIA 중동, 시리아지부.
시리아는 다시 발발한 내전으로 한창 혼란스러웠다. CIA도 감시의 눈을 떼지 않은 채, 내전이 어디까지 번져 나가는지 관망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죽어나간다. 간혹 큰 교전 사태가 벌어질 때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내전은 군인보다 민간인의 피해를 더욱 강요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정부군과 반군의 사상자들을 구하러 다닌 국제민간구조대도 그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반군 사상자를 치료하다가 반군 세력에 붙잡힌 구조대가 처형당하는 영상이 보도되자, 국제적인 비난이 들끓었다.
오전 보고 내용을 검토한 지부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지 모르겠군. 과연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
“미국이 타국에 진정한 평화를 세워준 건 한국이 최초이자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리고 한국은 한서진이라는 걸출한 천재를 배출하여 미국에 넘겨주었다. 그것 하나만 생각해도, 과거 한국 전쟁 때 미국이 흘린 피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우리도 이만 철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안가가 너무 전진해 있습니다. 교전 지역이 더 확장되면 자칫 우리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부에서 연락이 왔다. 여기 안가를 정리하고 다음 안가로 이동하라는군. 지금부터 바로 실시한다.”
“예.”
요원들은 절도 있게 대답하고, 곧바로 안가를 폐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통신 시설 및 전산 자료 등, 이곳에 CIA가 존재했다는 일체의 증거를 파기해야 한다.
그때였다.
“지부장님, 이상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뭐가?”
“정부군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영상 들어온 게 있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지부장은 급히 영상을 확인했다.
잠입 요원이 원거리에서 비밀리에 촬영한 영상, 그 안에는 정부군 병사들이 총과 칼을 앞을 다투어 내던지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무슨 의식이나 집결처럼 한쪽에 가지런히 쌓는 게 아니다. 마치 총과 칼에 독이라도 묻은 것처럼 기겁하듯이 그 자리에서 벗어서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명의 예외 없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정부군 병사들이 갑자기 왜?”
“……다른 부대! 다른 부대도 빨리 확인해 봐! 서둘러!”
“네, 알겠습니다!”
안가 이전이 문제가 아니다.
지부장이 오랜 첩보 생활을 토대로 얻은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뭔가 커다란 일이 벌어지려 한다고.
지시 사항이 하달되고, 여기저기서 곧바로 보고가 들어왔다.
“C-3 지역 정부군도 마찬가지랍니다!”
“Z-25 지역 정부군도 똑같습니다! 미친 것처럼 무기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분명합니다! 무기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K-15 지역입니다! 순찰 중이던 35명의 정부군 병사들이 모두 기절했습니다!”
지부장은 짧게 스치는 의심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지적했다.
“기절한 원인은? 그 장소에 뭐가 있었나?”
“특별한 것은…….”
“짚이는 대로 말해 봐. 판단은 내가 할 테니.”
“순찰 경로 앞 나무에 불탄 반군 시체 3구가 목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습니다.”
잔혹함으로 다져진 35명의 정부군 병사들이 대낮에 목 매달린 시체 3구를 보고 기절했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이지만, 지부장은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런 교전도 보고되지 않았지?”
“앗,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까지 아무 일도 없이 조용했다.
정부군이야 드러난 정황만 봐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반군은 얼마든지 게릴라 습격을 할 수 있지 않은가?
“혹시 반군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겠나?”
“위험하지만…… 그럴 가치는 있을 겁니다.”
“무조건 요원의 안전을 중요시하라고 전하게.”
“옛, 지부장님!”
지시를 마친 지부장은 초조한 마음을 억누른 채,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함을 달랬다.
이미 상부가 내린 안가 이전 지시 따위는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지고 없었다.
오랜 경험이 쌓은 감이 말해준다. 조만간 큰 폭탄을 바리바리 싸안은 보고가 쏟아질 거라고.
예감은 당연하게도 빗나가지 않았다.
“반군 부대도 확인했습니다! 정부군과 똑같은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날, 시리아를 뒤덮은 총성이 완전히 멈췄다.
보고가 올라가자 상부에서는 안가 이전 지시를 철회했다. 대신 다른 지시를 내렸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상황을 파악할 것.」
시리아 지부는 보유한 전 자원을 총동원해서 상황 조사에 나섰다. 정부군도, 반군도,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린 아기의 목을 비틀며 잔인하게 웃던 병사들은 하루아침에 병아리 목도 제대로 비틀지 못하는 겁쟁이로 변해 있었다.
정부군도 반군도 예외는 없었다. 계급에 따른 예외 역시 마찬가지로 없었다.
시리아를 총성으로 뒤덮은 이들은, 하루아침에 전투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들은 총과 칼을 두려워했으며, 피를 무서워했고, 시체를 보면 기절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지부장은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나서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지부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의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혹시 심신에 변화를 일으키는 항정신성 약물 같은 게 퍼진 것은 아닐까요? 가스 같은 형태로 말입니다. 정부군이나 반군에서 상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살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왜 정부군과 반군 둘 다 저 모양이 됐나?”
“…….”
“그리고 하루아침에 시리아 전체에 효과가 퍼지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제대로 된 설명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런 항정신성 약물을 시리아 반군이나 정부군이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미국이 나선다 해도 그런 약물을 개발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영원그룹이면 몰라도…… 잠깐?’
무심코 그 생각을 하던 지부장은 소스라치게 굳었다.
“한서진 박사?”
“네? 그 분 이름이 갑자기 왜 나옵니까?”
“한서진 박사라면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항정신성 약물을 만들어 살포하든, 정부군과 반군의 정신을 세뇌하든, 어느 쪽이든 가능하지 않겠나?”
“그분 능력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거 같긴 한데…… 어, 정말 이거 그분이 한 일일까요?”
갑자기 안가 분위기가 크게 술렁였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한서진이 개입했다면?
CIA는 이미 100만 군중 해산과 100만 군중이 이철준을 응징한 배경에 한서진이 개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가 분명히 뭔가 했으리라는 것은 정황상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에테르를 이용한 집단 세뇌, 한서진은 그 방법을 개발하고 보유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다만 에테르에 무지하다 보니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짐작할 수 없을 뿐이다.
시리아 병사들에게 일어난 변화도 혹시 그런 거라면? 앞뒤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더 정보를 수집해! 더! 더!”
요원들이 발 벗고 뛰어다니며 며칠을 소진한 결과,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보강되었다.
일단 싸움과 피, 시체를 두려워하게 된 이들은 다른 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지능이 감소하거나 기억을 잃지도 않았다. 건강이나 신체적 기능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딱 하나의 변화만 꼽자면, 흉악성과 비인간성이 완전히 마모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 하나만 표적으로 삼아서 사람의 성격을 바꿔놓을 수가 있을까?
믿어지지 않는 기적에 지부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시리아는 시작에 불과했다.
며칠이 더 지나자 지구 곳곳에서 동일한 내용의 변화가 관측되었다는 보고가 워싱턴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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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 : 제가 첫째형과 둘째형에 비하면 좀 잘나긴 했습니다. 에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