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0 또 하나의 땅 =========================================================================
웜홀 설치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추진되면서 국내의 갈등 역시 본격적으로 심화되었다.
설치에서 최하순위로 밀린 서울을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특히 강남 상권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재고해줄 것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반발은 비단 시위의 형태로만 표출되지 않았다.
강남 상권에 지분을 가진 이들은 정치권에 로비를 하거나 협상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길을 추구했다.
웜홀이 서울에 설치되면 전국의 상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대통합을 맞는다. 그 혜택은 특히 강남 상권에 집중적으로 쏟아질 것이다.
물리적 제약이 사라지면 유동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상가 임대료 및 부동산 가치 상승 등 상권의 엄청난 발달도 뒤따르게 된다.
전문가들은 서울이 기형적인 초거대 상업도시로 변하는 것을 우려했지만, 반대로 서울의 그런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도 넘쳐났다.
“서울의 가치는 우리 시민들의 손으로 사수해야 합니다!”
“옳소! 정당한 이유 없이 서울만 역차별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정부는 서울에도 동등한 웜홀 설치를 보장해라!”
강남 상궘을 중심으로 서울의 도시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나갔다.
여기에 의외이게도 지방 사람들의 지지도 가세했다.
“솔직히 젊은 사람들 놀기에는 서울이 좋은데. 다른 도시들은 후져서 놀 데도 별로 없잖아.”
“서울에 웜홀 설치되면 매일 놀러갈 수 있을 텐데. 타임스퀘어하고 C몰에 매주 출근 도장 찍으려고 했는데. 아, C몰은 이제 없어졌지, 참.”
“돈 없고 시간 없어서 서울 못 가는 지방 사람들 위해서라도 서울에 웜홀 설치 좀 하자. 나도 서울에서 자주 좀 놀고 싶다.”
심지어 지방 사람들이 서울 웜홀 후순위 조치를 더 크게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 우리나라가 서울공화국인데 정작 서울에 웜홀 설치 안 하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모든 경제권이 서울을 중심으로 편제돼 있는데.”
“인구 완화 정책? 지역 균등 발전 정책? 다 좋다 이거야. 근데 당장 크게 불편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우리 지역 상권이 죽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난 그냥 서울 편하게 갈 수만 있게 해주면 된다.”
지방 상권이 서울에 흡수될 것이라는 부르짖음은 정작 지방 거주민들에게서 가장 큰 외면을 받았다.
여론 조사 결과 서울 웜홀 설치 제한을 반대한다는 여론은 70%를 넘어섰다.
서울 시민들은 도시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지방 시민들은 편안한 서울 왕래를 위해, 설치 제한을 비난하고 나섰다.
서울 집중 심화를 막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조치라는 전문가들의 논평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서울에 웜홀 설치 안 한다는 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군요. 덕분에 우리 쪽에는 여론이 관심도 안 주네요.”
후배 검사의 말에 자료 폭탄에 파묻혀 있던 김시형은 쓴웃음을 보였다.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하겠다는 거잖아.”
“그게 그거죠.”
“…….”
“뭐, 조금 불편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생각해요. 만약 서울부터 웜홀 설치했다가는 지금 강남 부동산 시세가 다섯 배는 더 뛰어오를 겁니다. 지방 상권은 그냥 망할 거예요.”
“우리는 검사지 경제 전문가가 아니야.”
“그나저나 이철준 사망 사건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글쎄.”
용의자만 100만 명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그중 이철준을 직접적으로 사망케 한 게 누구인지 물리적으로 입증할 수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철준에게 구타를 직접 가한 이들을 추려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CCTV 판독 등으로 용의자를 추려내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일 경찰에서 체포한 이들, 그리고 차후 CCTV 등으로 추적하여 검거한 이들의 수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군중 외곽에 있던 이들이라 이철준을 직접 폭행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군중의 중심에서 실질적으로 이철준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게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수사는 흐지부지 상태로 잔류 중이었다.
천재지변처럼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은 채로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것이다.
“한서진 박사가 집단 세뇌를 했다는 말이 있던데, 그럼 그 사람을 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말로 집단 세뇌를 한 거라면 뭐라도 나올 텐데요.”
“…….”
이해할 수 없는 100만 군중 봉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한서진의 저택을 덮쳤던 100만 군중이 그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해산되었던 일과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인터넷에서는 이미 그럴 듯한 음모론이 떠돌고 있었고, 한서진이 100만 군중을 동원해 이철준을 처벌한 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중요한 건 검찰에서도 그런 음모론을 반쯤 믿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한서진 박사라면 100만 명을 집단 세뇌해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지 몰라.’
그가 지금까지 이룩한 게 워낙 대단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검찰 인사들조차 선명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의심이 들면 어쩔 건데? 영장 청구해서 한 박사를 수사라도 할 거야?”
“…….”
“법원에서 영장 승인 받아낼 자신 있어? 아니, 그보다 한 박사가 불쾌하게 여기고 미국으로 떠버리면?”
설령 진짜 한서진이 한 짓이 맞다 해도, 실질적으로 처벌은 불가능하다.
공권력도 결국 힘이 있어야 휘두를 수 있는 법.
만약 한서진이 정말로 유죄 선고를 받는다 치자. 과연 그에게 실질적인 형 집행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은 또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김시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철준이 죽은 건…… 그냥 천벌이라고 치는 게 속이 편하겠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것. 범죄의 실체는 존재하나 그것을 밝혀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더 강했다.
‘이철준 때문에 C몰이 그런 비극을 맞은 걸 생각하면…… 그놈은 죽어도 싸.’
김시형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창밖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어지간히 검사로서 자격이 없군.”
법의 논리라면 이철준은 그렇게 죽어선 안 됐다. 그의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 정신을 위배하는 모순으로 차 있으니.
법을 집행하는 검사라면 응당 그런 모순으로 찬 결과에 분노하고, 거부감이 들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냉철한 법의 논리보다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더 앞선다. 이런 심경을 품은 이가 과연 검사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인가.
김시형은 내내 착잡했다.
SJ인더스트리는 무지막지한 기세로 미스릴 물량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시중에 풀리는 물량의 95% 이상이 SJ인더스트리의 저장고로 들어갔고, 많은 미스릴 생산업체가 SJ인더스트리에 인수되거나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현재 대부분의 미스릴은 미국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다. 생산특허를 한서진 그룹의 지주회사 에스코너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미스릴 물량은 평성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한서진이 대관절 그 많은 미스릴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품었다.
처음 미스릴의 싹쓸이로 반도체 물량이 증발하는 바람에 관련 증시는 일시적으로 폭락을 이뤘다. 그러나 물량 증발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지자 주식은 관망세로 돌아섰다. 일부 종목은 폭등세를 찍기도 했다.
‘한서진 박사가 이번에는 뭘 만들려고 저러나?’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들려고 수 조 달러를 들여서 미스릴 물량을 긁어모으는가?’
그런 기대 심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다.
한편, 한서진은 평성 연구소 신사옥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진리의 수정’ 개발을 밀어붙였다.
진리의 수정은 레노지안의 왕실기록소를 보고 붙인 이름일 뿐, 엄연히 다른 종류의 물건이다.
이것은 신살검의 능력을 비파괴적인 목적으로 극대화하여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보조 수퍼컴퓨터니까.
“상부 맨틀은 타르타로스 2의 스캔 능력을 뚫을 수 없다. 하지만 타르타로스 3가 완성된다면…….”
별을 멸하는 무기, 신살검의 능력을 고스란히 이용할 수만 있다면, 상부 맨틀 아래 있는 레노지안의 실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웜홀을 이용해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스릴 매입에 소모된 총 지출 비용이 5조 달러를 넘어섰을 때.
“됐다!”
신살검 분석 작업이 1차로 완료되었다.
완전히 해독한 것은 아니지만, 신살검이 간직한 힘을 어느 정도 제어할 길이 생겼다. 첫 걸음은 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견한 녀석.”
한서진은 세연동 저택에 있을 타르타로스 2를 떠올리며 흐뭇해했다.
기쁜 마음은 잠시, 그의 안색이 곧 진지해졌다.
“이제 세팅해야지.”
미스릴 메인보드, 황금빛 원반은 어느새 직경 300미터가 조금 넘는 크기까지 발전했다. SJ인더스트리가 쓸어 담는 미스릴로 꾸준히 시스템을 확장한 덕분이다.
물론 한서진은 여기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로 신살검을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랄 것이다.
별을 멸하는 무기, 그 성능이 어디까지 닿아 있을지 전혀 가늠이 안 된다.
“좋아.”
한서진은 천장에 달린 로봇팔에 신살검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태블릿 PC로 제어 명령을 입력했다.
자동화된 로봇팔은 모터의 움직임에 따라 스르르 이동하여, 미스릴 원반의 중심에 정확히 위치했다. 그리고 수직으로 떨어지며 신살검을 홈에 고정시켰다.
수직으로 고정된 신살검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황금 바위에 꽂힌 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럼…….”
한서진은 보호경을 착용한 후, 태블릿 PC로 타르타로스 3에 제어 명령을 입력했다.
「타르타로스 3, 시스템 로딩…….」
「코어 모듈을 인식합니다. 연산 체계 동기화 중…….」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원반 보드를 뒤덮은 황금빛 광채가 생동감을 띠었다. 보호경 너머로 보이는 황홀한 자태에 한서진은 순간 말을 잊었다.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타르타로스 3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 채 은은히 휘날리는 에테르의 오로라가.
기동 테스트는 성공적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성능을 측정해야 하는데…….”
뭘 시켜봐야 하나?
1초에 원주율을 몇 자리까지 구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런 시시한 방법은, 마치 자신의 자산을 백 원짜리로 환전하면 창고 몇 개를 채울 수 있을지를 따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인류에 무해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은…….”
잠시 고민하던 한서진은 문득 얼마 전에 보았던 제3세계 국가 내전을 떠올렸다.
“지구상 모든 테러 조직의 비무장화. 인명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엄격한 의미에서 테러 조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특정하고 찾아낼 수 있어야 하며, 인명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비무장화를 마칠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명제를 스스로 생각해서 실행해야 한다. 타르타로스 3의 지능과 성능 테스트를 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았다.
“겸사겸사 테러 조직도 소탕하고.”
인명에는 영향을 끼치지 말라고 했으니까, 성능 테스트로는 괜찮겠지?
명령을 입력하자마자 눈부신 섬광이 아주 짧은 순간 뿜어져 나왔다가 바로 그쳤다.
“…….”
한서진은 순간 생각했다.
방금 그 광경은, 마치 지구 전체를 스캔한 것 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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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정의구현.
타르타로스 3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다음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