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9 또 하나의 땅 =========================================================================
SJ게이트는 본격적인 웜홀 구축망 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구축 계획이 공고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서울이 최하 후순위로 밀려나다니! 엄연한 한국 최대, 최고의 도시이자 수도인 서울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생각할 수 있나? 진짜 정부 관계자들 머리를 열어서 들여다보고 싶다. 안에 뇌가 아니라 우동이 들어있는 거 아니냐?”
“서울 거주 인구는 그렇다 치고 유동 인구가 얼마인데…… 정작 서울에 웜홀을 설치 안 하겠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웜홀을 가장 먼저 설치해야 할 곳이 서울인데? 서울 말고 다른 곳에 웜홀 설치해서 무슨 이득이 있어?”
시민들은 조금도 납득하지 못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상식 밖의 결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쓸 웜홀 설치설비가 1기뿐이고, 하나 설치하는데 2개월씩 잡는다고 치면, 다른 도시들끼리 다 설치하고 난 다음에야 차례가 돌아오는 거냐? 대충 2년은 지연되겠네?”
“공고 내용 제대로 안 봤구나. 10대 도시끼리 연결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각 도시 내부 웜홀망 설치한다더라. 1번대 넘버링 웜홀 말이야. 2년 기다려서는 턱도 없어.”
“아니, 하나 설치하는데 2개월씩 걸린다는데 그럼 어느 세월에 다 설치한다는 거야? 그리고 왜 2개월씩이나 걸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에너지 모으고, 사전 점검하고, 장비 이동하고 뭐 그러는 시간 다 고려해서라는데? 그리고 설치설비는 차차 늘릴 계획이래. 지금은 제조단가가 높고 만들기도 엄청 어려워서 일단 하나로만 운영하는 거고.”
“그러니까 왜 서울이 가장 마지막이냐고! 하다못해 10대 도시 연결 끝나고 1, 2년 뒤에라도 설치를 해야 할 거 아냐! 왜 다른 도시들 1번대 넘버링 웜홀까지 다 하고 나서야 서울에 설치를 해주겠다는 건데!”
“이건 아무리 봐도 철저한 역차별인데. 서울 집값 잡겠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기냐? 하, 도 대통령 진짜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히 막 나가는구나.”
사람들은 하나둘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을.
「이와 같은 정부의 결정은 오래 전부터 포화 상태를 넘어선 서울의 인구 밀도를 조절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아울러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 부동산 가격의 거품 조절 기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가들이 앞을 다투어 그런 분석을 내놓았다.
요컨대 인구 완화 및 발전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한 핸디캡을 서울에 주었다는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당연히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반발이 거셌다.
인구 완화 정책이니 뭐니 하고 있지만, 결국 서울의 도시 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뜻 아닌가.
서울 및 수도권에 거점을 둔 이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 그럼 앞으로도 일산에서 강남으로 매일 출퇴근해야 해?”
“웜홀 도입되면 서울 출퇴근 쉬워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이렇게 무참히 짓밟는 게 어딨냐.”
“아니, 상식적으로 서울에 웜홀을 설치해야 진정한 인구 완화가 이뤄지는 거 아니냐? 이동 문제만 해결되면 누가 서울에 집을 구하려고 하겠어? 죄다 집값 싼 지방에 구하겠지.”
“이거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냐?”
의견 대립의 골은 깊어졌다.
인구 완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단이다, 인구 완화를 위한다면 오히려 서울에 웜홀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서로 나뉘어 격론을 벌였다.
엄밀히 말해 웜홀 게이트는 민자사업이었지만, 그 욕은 행정부가 뒤집어썼다. 사람들은 당연히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팽창을 억제하겠다는 의도만큼은 확실하네.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서울에도 웜홀을 설치하면 결국 사람들은 서울에 더 몰리게 될 거라고 보는데. 물론 주소지야 집값 싼 지방으로 옮기겠지만 유동인구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날 걸? 그럼 서울 부동산 진짜 답 없어진다.”
“서울 주택은 몰라도 상가 빌딩 가격이랑 월세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거다. 지방에서까지 손님들이 몰려들 텐데.”
서울은 문화 인프라가 넘쳐난다. 자연 경관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지역도 그 지위를 넘보지 못한다.
그런데 지방 소도시나, 머나먼 산골 지역에서도 손쉽게 서울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주거 인구는 감소할지 몰라도, 유동 인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할 것이다.
“타임스퀘어는 평일에도 사람들로 넘쳐나겠네. 지방에서도 손님들이 원정 올 테니.”
“커피 한 잔 마시자고 서울까지 올라오는 애들도 있을 걸?”
“아이맥스 영화관 미어터지겠네. 아이맥스 극장 없는 지역 애들이 서울로 죄다 몰려들 테니까.”
“서울 백화점들은 살 판 나겠네. 지방 부자 손님들까지 죄다 긁어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예상 변화는 하나의 결론으로 치달았다.
“지방 상권은 완전히 말살되겠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전문가들도 그런 비관적인 미래 예측에 적극 공감하고 나섰다.
「서울에 웜홀 게이트 설치가 완료되면 주택 가격 하락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오프라인 상권이 서울로 쏠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서울 상권 지역의 임대료와 토지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택 가격 하락 예상 수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승률을 보일 것이다.」
「지방 상권은 말살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서울에 흡수될 것이다. 지방의 젊은이들은 기왕이면 서울의 번화가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시간을 보내려고 할 테니까.」
「서울은 어마어마한 유동 인구를 자랑하는, 전례가 없는 기형적인 상업 도시로 변하게 될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내놓은 예측안은 대동소이 했다.
서울은 주거 기능이 감소하고 대신 상권 기능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서울에 상업용 빌딩 등 상권을 가진 이들의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사라지고 그로 인한 일자리 감축은 비교도 되지 않을 충격이었다.
「이는 서울이 가지는 무소불위의 문화시설 등의 인프라에서 야기되는 변화이며,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서울 웜홀 설치를 최대한 후순위로 미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단이다.」
서울 곳곳에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어림잡아도 수백 개는 족히 넘어갈 만한 수였다.
―서울 웜홀 규제를 반대한다!
―서울이라고 역차별하는 게 어딨는가! 이게 무슨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서울에도 다른 도시와 똑같은 설치우선권을 보장해라!
그들에게 웜홀 설치로 인해 말뿐인 서울공화국이 아닌, 진정한 서울국가로 거듭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웜홀 설치가 완료되기만 하면 자신들의 재산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증대하리라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웜홀 설치장비는 실제로 10기가 존재한다.
워낙 섬세한 장비다 보니 만들기가 무척 까다롭다. 공산품처럼 막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주선처럼 제조 공정 하나하나마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혹 오류가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테스트를 해야 했다.
20개를 만들면 10개는 불량 판정을 받고 폐기되고, 다시 9개가 출력 불안정을 이유로 폐기된다.
10기의 웜홀 설치장비를 만들기 위해서 폐기되어 사라진 물량이 190여 개나 된다는 뜻이다.
장비 하나를 제조하는데 들어가는 공정비용은 약 1조 원, 여기에 한서진이 직접 관리감독하는 인건비는 계산하지도 않았다.
즉 굳이 따지자면 웜홀 설치장비 10기의 가격은 200조 원 이상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숫자가 부족하면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속 편한 소리지. 이게 무슨 컨베이어벨트에서 찍혀 나오는 양산품인 줄 아나.”
초기형 모델이다 보니 한 번 운용하는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웜홀 생성은 그냥 도로 깔고 지하철역 건설하듯이 뚝딱 되는 게 아니다.
유인 화성탐사선을 발사하는 것처럼 매번 세심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대충 작업했다가 웜홀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형 사고로 번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웜홀 설치장비 1기가 웜홀 하나를 설치하는데 걸리는 간격을 1개월에서 2개월로 잡고 있었다. 물론 이동 시간 등도 고려한 결과다.
총 10기의 설치장비 중에서 8기는 한서진이 개인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당장 웜홀 프로젝트에 투입하지는 못한다.
“어때요?”
또 한 차례 테스트를 마치고, 신효진이 초조한 듯이 물었다. 한서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돌아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번에도 막혔네요.”
“……아.”
그녀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떨어뜨렸다.
한서진도 미간을 찌푸리며, 눈앞에 늘어져 있는 8기의 웜홀 설치장비를 훑어보았다. 방금 구동을 마친 장비들은 숨을 고르는 경주마처럼 잔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레노지안이 상부 맨틀 아래 존재하며, 지각은 레노지안을 가둔 천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신효진은 눈에 띄게 초조함을 보였다.
아주 먼 우주나 다른 차원이 아닌, 바로 자신들이 딛고 있는 땅 까마득한 아래에 존재했다니. 마치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듯이 가까운 느낌에, 그녀는 이전보다 여유를 잃었다.
“그 아래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현재로서는 어떤 스캔 반응도 잡히지 않아요.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상부 맨틀이 모든 것을 튕겨내고 있습니다.”
“그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에요? 레노지안마저도…….”
“아뇨, 레노지안은 그 아래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한서진은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요. 십 수억 년 전에 멸망했을 테니까요.”
“…….”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합니다. 아서 왕이 남긴 게 무엇인지 찾아야 해요.”
한서진이 추진하는 수단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타르타로스 3를 개발하여 상부 맨틀을 파훼할 힘을 갖추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웜홀 마법을 이용하여 레노지안과 지표면 간의 통로를 뚫는 것.
그러나 8기의 웜홀 설치장비를 가지고 수백 번이 넘게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상부 맨틀, 레노지안을 가둔 벽은 그 어떠한 종류의 힘이나 탐색도 거부했다. 철저히 반사했으며, 튕겨냈고, 거절했다.
웜홀 마법은 타르타로스 1의 정밀한 제어를 통해 시전된다. 설치장비는 그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타르타로스 2는 신살검 해독에 모든 리소스를 쏟아붓고 있어, 다른 운용이 어려웠다.
‘상부 맨틀을 뚫기에는 아직 타르타로스 1의 연산 능력이 부족한가? 타르타로스 3가 완성되어야 하나?’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지저 세계에 존재하는 거대한 벽, 그것을 뚫기에 자신이 가진 마법 지식은 아직 미천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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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화입니다.
연재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가 바뀌었고, 500화를 코앞에 두고 있으며, 실탄프로덕션의 제작비는 오래 전에 고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