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94화 (494/609)

00494  꿈의 건너편  =========================================================================

―하루 전.

피켓을 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도로를 차지하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그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철준을 죽여라!”

“원혼들이 지켜보고 있다!”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한은 어떻게 풀 셈이냐!”

―11시간 전.

“거, 이철준도 많이 반성하고 있잖소. 다들 이제 그만 좀 합시다.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철준 처벌하라고 쪼아댈 게 아니라 관련법을 만들라고 쪼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이철준이 무죄 선고 받은 것도 처벌 조항이 없어서 그런 건데.”

시위의 목소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8시간 전.

“아악! 니 새끼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알아!”

“이런다고 변하는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이 나라는 안 변해! 안 변한다고!”

어느덧 둘로 나뉜 인파는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 시작했다.

통제를 위해 나온 경찰 병력도 그들을 말리다가 엉겁결에 말려들어갔고, 혼잡은 더욱 커졌다.

거리에는 부서진 티켓, 찢어진 현수막, 주먹다짐을 하며 흘린 피가 나뒹굴기 시작했다.

―3시간 전.

“리무진이다!”

“앗! 한서진 박사 차다!”

“한서진 박사한테 부탁하자! 한서진 박사라면 이철준을 죽여 줄 지도 몰라! 그럴 힘이 있는 사람이잖아!”

인파의 일부가 저 멀리 신호에 걸려 정차한 방탄 리무진을 알아보고,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다른 인파도 그것을 발견했다.

“저길 봐! 저 놈들이 한서진 박사 차를 테러하려고 해!”

“안 돼! 못하게 막아!”

먼저 달려간 자들을 오해한 이들이 막기 위해 급히 따라 나섰고, 그들은 곧 다시 엉키며 혼란이 커져갔다.

커진 혼란은 빠르게 군중을 잠식했고, 몇 번의 탈피를 거쳐 완전히 모습을 바꿔버렸다.

“누구야? 누가 왔다고?”

“이철준이래! 이철준 이놈이 지금 저기 와 있대!”

“무슨 소리야? 이철준이는 지금 구치소에 있잖아?”

“돈 써서 보석으로 풀려났대! 지금 출국하려고 공항 가는 길이래!”

“뭐? 그럼 저 사람들은 그거 막으러 간 거야?”

사람들은 눈이 뒤집혔다.

흥분과 패닉이 잠식한 군중들 사이에서, 한서진이 다른 이로 둔갑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막아라! 막아!”

“이철준이 도망 못 치게 막아라! 죗값을 치러야지 이 나라만 뜬다고 다냐!”

―2시간 40분 전.

흥분한 시위대는 방탄 차량을 완전히 포위했다. 어떤 이는 차 천장에, 어떤 이는 앞범퍼에 올라가서 방방 뛰었다. 피켓을 들고 유리창을 내리치기도 했고, 야구 방망이로 뒷좌석 문을 사정없이 때리기도 했다.

한서진의 차량인 걸 아는 이들은 기겁을 해서 그들을 물어뜯었고, 한서진의 차량인 걸 모르는 이들은 더 크게 화를 내며 반발하고, 차량을 부수려고 했다.

이미 통제 불가능한 혼잡은 군중들 심층에 깊은 뿌리를 내린 뒤였다.

다들 눈이 벌게진 채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너 새끼! 뭐 하는 거야! 한서진 박사님 차에서!”

“이철준이 놈을 옹호하는 너희 같은 새끼들은 싹 다 죽여 버려야 해!”

경찰 병력은 기겁해서 달려왔지만, 이미 시위대에 둘러싸인 리무진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수십, 수백 명 정도면 어떻게 뚫고 들어가 보겠지만, 이미 리무진 차량은 수만 명이 넘는 인파로 단단하게 둘러싸인 뒤였다.

“문 열지 마! 지금 나가면 안 돼!”

“하지만 박사님이!”

“리무진은 탱크가 밟아도 끄떡없는 방탄 차량이야! 오히려 차안이 더 안전해! 성난 군중 앞에 괜히 나섰다가는 피해만 더 커진다!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히 있어!”

수십 명의 경호원이 괜히 밖으로 나가봤자 좋을 일이 없기에, 경호실장은 차 안에서 대기할 것을 명령했다.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를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 완전 방탄이라서 안심이기는 한데…….’

경호실장은 질린 표정으로 창밖을 둘러보았다.

쉴 새 없이 창을 두드리는 손들 때문에, 정작 사람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차문을 열고 나가면 살점 하나도 남기지 않고 뜯어 먹힐 것만 같다.

으슬으슬한 공포가 온몸을 휘어 감는다.

경호실장은 바로 옆에 비치된 자동 소총을 저도 모르게 어루만졌다. 손안에 흥건한 식은땀이 고여 축축했다.

부디 이 총을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그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때였다.

‘어?’

차창을 쉴 새 없이 두드리던 손길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마치 처음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완전히 동시에.

경호실장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손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멀어지는 뒷모습만 보인다.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성난 군중은 일제히 폭동을 멈춘 채, 포위를 풀고 차량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아!’

그 순간 경호실장의 일에 옛날 일이 떠올랐다.

100만 군중 해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그리고 지금.

“서울 시민들의 대역죄인, 이철준이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절대로 살려두지 마라! 저놈을 죽이고 정의를 구현하자!”

수십만이 넘는, 어쩌면 백만에 근접할지 모르는 무수한 군중들이 호송 차량을 포위했다. 차량에는 재판을 위해 호송 중인 이철준이 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둘러싸인 호송 차량은 꼼짝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야 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교도관들은 군중의 기세와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차문을 열고 말았다.

강제로 끌려나온 이철준은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뒹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겁에 질린 그의 주변으로, 눈시울이 벌겋게 충혈 된 이들이 에워쌌다.

그들의 어깨 틈 사이로, 가라앉는 석양이 보였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태양이었다.

「성난 서울 시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처단.」

「이철준, 사망.」

충격적인 보도가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이철준을 엄벌하라는 시위대가 나라를 그만 어지럽히라는 다른 인파와 부딪쳐 충돌했고, 그것은 대규모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폭동으로 변질했다.

하필 근처를 지나던 한서진의 리무진 행렬이 폭동에 휩쓸려 습격을 받았다.

폭동자 대다수는 그 차에 한서진이 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철준이 보석으로 풀려나 출국하러 가는 길이라고 오해했다.

조금만 냉정하게 차를 살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흥분한 군중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차의 주인이 한서진이라는 게 알려졌고, 흥분한 군중은 그제야 커다란 부끄러움에 처했다.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인 군중은 그대로 이철준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호송 차량을 습격해서 그를 끌어내서 때려 죽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뉴스가 보도한 ‘사실’이었다.

―진짜야? 진짜 이철준이 맞아 죽었어?

―그렇대. 100만 군중 손에 맞아서 죽었다더라.

―와……. 이런 식으로 정의가 구현될 줄이야.

―그럼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백만 명 전원을 집단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하는 거냐?

―제대로 된 사법처리가 가능하려나 모르겠네.

이철준의 죽음에 국민들은 경악했고, 통쾌하게 여겼으며, 한편으로는 불안해했다.

―교도관하고 경찰관들은 다친 사람 하나 없다는 게 더 놀랍고 대단하다. 100만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철준이만 노렸다는 거 아니야?

시민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이철준을 처벌한 것에 관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 각국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렸다.

소수의 행위는 일탈이다. 그러나 다수의 행위는 주권자의 의지가 된다.

100만 군중의 행위는 과연 어느 쪽에 속하는가?

숫자만 많은 소수 폭동의 일탈 범법 행위인가, 사전 요건만 갖추지 못한 다수 주권자의 의지인가.

이철준의 죽음은 그렇게 여러 모로 충격적인 의미를 남겼고, 그것은 끝나기는커녕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서늘한 공기가 볼에 와 닿는 감촉이 느껴진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희미한 수면등의 조명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에 익은 천장에 한서진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나 낯익은 풍경이 보인다. 바로 세연동 저택 침실이었다.

뚜뚜, 거리는 고주파 소리에 돌아보니 바이탈 사인을 측정하는 기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실시간 그래프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제야 한서진은 소파에 길게 누워 잠이 든 송하나를 발견했다.

“하나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통증을 뚫고 거짓말처럼 뇌리가 맑아지며, 잠시 잊고 있던 모든 게 기억났다.

‘왕명.’

방탄 리무진을 빈틈없이 에워싼 채, 끊임없이 두드리고 소리치던 사람들. 차창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계란을 보고 이성의 끈이 끊어진 나머지, 뭐라고 외쳤던 것 같다.

어리석은 짓 말고, 진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했던가. 기억이 조금 흐릿하다.

짜릿한 감촉이 목구멍에서부터 손끝까지 단숨에 질주한다.

끊어진 이성을 딛고 내뱉은 그 말은 절대적인 명령이 되어, 군중을 휘감고 통제했다.

“오빠?”

어느새 눈을 뜬 송하나가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몹시 걱정했는지 안색이 초췌했다.

“걱정했잖아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주치의는 뭐래?”

“과로 때문에 가벼운 탈진 상태인 것 같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했어요. 오빠, 그러니 일 좀 적당히 해요. 아직 젊은데 벌써 몸이 상하면 어떡해요.”

“시위대…… 우리 차 덮친 그 사람들은?”

“…….”

송하나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한서진은 뭔가 일이 터졌구나 하고 직감했다.

“이걸 보시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혹시나 해서 제가 정리해놨어요.”

“고마워.”

그녀가 내민 태블릿 PC를 받아들고, 심호흡을 한 뒤 내용을 확인했다.

큼지막한 타이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철준 사망.」

「100만 군중, 집단 폭력으로 사망케 해.」

「초법률적인 주권행위로 해석해야 하나? 사면초가에 빠진 사법부.」

각종 기사들이 주르르 나열돼 있었다. 한서진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이철준이 죽었어?”

“네, 우리를 덮쳤던 시위대가 갑자기 빠져나가더니 곧바로 이철준 전 시장 호송차량을 덮쳤나 봐요.”

“…….”

“오빠가 쓰러지자마자 시위대가 돌아섰어요. 참 다행스러운 우연이지 않아요?”

한서진은 긴장감이 곤두섰다. 혹시 송하나가 그때 자신이 한 말을 들었을까?

‘들었겠지, 아마도.’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다. 모르는 체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직 밤이에요. 더 쉬세요.”

“너는?”

“잠시 씻고 올게요. 난 쇼파에서 잘게요.”

송하나가 욕실을 향하고, 한서진은 태블릿을 내려놓은 채 이불을 꾸깃 쥐었다.

‘왕명이 원인이다.’

정확한 발동 조건도, 효과도 뚜렷이 알지 못하는 왕의 권능.

그것이 기적적으로 발동되며 시위대를 물리쳤다. 물리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철준까지 잡아먹게 만들었지만.

바로 그때, 저 구석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지는 것이 보였다.

퍼뜩 놀라서 바라보자 빛의 발원물이 스르르 떠오르며 그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신살검?”

한서진은 당황스러웠다. 연구소에 있어야 할 신살검이 왜 여기에? 신효진 외에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을 텐데?

신살검이 더욱 바짝 다가왔다. 코앞에서 춤을 추듯 빙그르르 회전한다. 멍하니 바라보던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손잡이를 쥐었다.

그 순간 검을 감싸고 있던 빛이 폭발적인 광채를 뿜었다.

손안에 감기는 감촉은, 마치 이 세상 물질이 아닌 듯 사뿐하고 가벼웠다.

============================ 작품 후기 ============================

“오직 모태솔로만이 나를 들어 올릴 수…… 응? 님, 뭐임? 안 내려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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