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3 꿈의 건너편 =========================================================================
이철준은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고, 3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내어놓았다.
“저의 행동이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범죄사실을 형성치 않는다 하더라도, 남은 평생 동안 저의 대죄라 여기고 속죄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호송 중에 폭탄선언을 남긴 이철준은 곧바로 그 자리에 엎드려서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머리를 땅에 쿵쿵쿵 세게 박았다.
좌우에서 연행하던 교도관들도 당황해서 그를 말릴 생각도 못했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그 모습을 남김없이 담았다.
“야, 특종이다! 빨리 찍어!”
“머리로 땅 내려치는 거 봐. 엄청 아프겠다.”
“피 철철 나는 거 봐. 장난 아닌가 본데.”
한참 후에야 이철준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이마는 형편없이 뭉개진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미간을 따라 흐르는 피가 코와 뺨을 적히며 입술을 거쳐 턱까지 내려온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은 차라리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만큼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듯이 보였다.
이철준의 깜짝 선언, 그리고 사죄 행위는 실시간으로 특종 보도를 타며 최고 조회수를 찍었다.
여론 반응도 다양하게 갈렸다.
―쇼하고 있네, 쇼. 무릎 꿇고 머리 좀 땅에 몇 번 박는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나? 불구 된 사람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나?
―아주 그냥 가증스럽다. 퉷!
―역겨워 죽겠네. 저 벌레 어떻게 구제 안 되나? 그냥 속 좀 시원하게 한서진 박사가 지그시 눌러서 터트려 죽여줬으면 좋겠는데.
그가 무엇을 하든 경멸의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건가?
―300억이면 얼마야? 이철준이가 신고한 재산이 350억 정도 되던가?
―그 정도면 거의 전 재산 내놨다고 봐야 하나? 그래도 도리는 아는 놈이네.
―설마 재단 같은 거 만들어서 이사진으로 자기 측근들 박거나 그러진 않겠지?
―그럼 재산 내놓는 게 아니지. 어떻게 하나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
―현실적으로 처벌 불가능한 행위인데 이런 식으로라도 피해자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배상이 되면 좋겠다.
냉정하게 사태를 재단하려는 이들도 있었고.
―불쌍하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아니, 시청에 난 불 끌려고 소방 칩셋 쓴 게 대체 왜 욕을 먹을 짓인가요? 물론 C몰 테러 때 쓸 수 있는 칩셋 재고분이 없어서 피해가 커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이철준 시장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맞아, 맞아. 칩셋이 하필 다 떨어진 건 운이 나빴던 거지, 이철준 시장님 죄가 아니지.
―시청 화재에 칩셋 쓴 거 알고 보니 이철준 사장님 지시도 아니었다면서?
소수에 불과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이철준을 지지하고 믿는 신자들까지.
논란은 쉬지 않고 격렬히 달아올랐다.
유족과 피해자들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항의하고 나섰다.
“그 많은 사람이 자기 때문에 죽었는데 돈 몇 푼 내놓고 머리 몇 번 찧으면 다인 줄 아냐!”
“이철준이를 잡아서 목을 매달아라!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안 생긴다! 일벌백계로 삼아서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철준이는 수백 명을 죽인 살인자나 마찬가지다! 사형에 처해야 한다!”
“우리 딸을 살려내!”
이철준을 향한 엄벌론, 현실론, 동정론 등 다양한 관점이 맞물리면서, 세상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서로 다른 의견과 관점이 제각각 부딪치면서, 어느 정도 흐름의 대세가 잡히기 시작했다.
60%의 현실론, 그리고 30%의 엄벌론으로 그 색깔이 나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철준 시장을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매일같이 서로 물어뜯는데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슬슬 이쯤에서 정리했으면 하는데.”
“죽을죄를 지은 건 맞지만 법에도 근거가 없고……. 이철준도 최선을 다해 반성하고 있고……. 그냥 이제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소모적인 다툼에 다들 너무 지쳤다.”
“언제까지 칩셋 논란을 봐야하는지 이제 좀 지겹다. 그보다는 우리 테러에 뚫린 안보망을 더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이철준 때문에 도원패 정부는 욕 하나도 안 먹고 비껴가고 있는 거 알지? 도원패 정부가 그 뒤로 테러 경계 어떻게 하겠다고 전망 내놓은 거 있나? 없잖아!”
“수상해. 도원패가 이철준한테 어그로 몰아놓고 자기는 어물쩍 여론 심판 넘어가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니야?”
이제 한국은 테러 안전국이 아니라는 것. 또한 더 이상의 칩셋 무단 사용 논란은 실익이 없다는 것.
더 이상의 다툼은 피곤하지 않을까?
그런 공감대가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늦은 오후, 김시형 검사는 한서진의 방문을 받았다.
한서진의 전용 방탄 리무진이 수행 차량을 거느리고 방문하자 검찰청은 발칵 뒤집혔다.
냄새를 맡은 취재진이 달려들었지만 굳건한 인의 장벽에 막혀 조금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먼발치에서 버둥거리는 것만이 전부였을 뿐.
검찰청은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전방 부대 생활관처럼 바짝 긴장한 채 그를 맞이했다.
“어쩐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습니까.”
김시형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청을 직접 찾아온 것은 대외적인 퍼포먼스가 분명했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갔다. 그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있을까?
“이걸 보시죠.”
한서진은 두 장으로 요약된 서류를 내밀었다. 내용을 훑어본 김시형의 눈이 커졌다.
「이철준 개인 자산 총액 : 약 950억」
김시형은 사실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질문했다.
“이걸 굳이 직접 찾아오셔서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철준 시장은 전혀 반성하거나 뉘우치고 있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자료만 봐도 알겠습니다. 결국 자기 전 재산의 1/3도 내놓지 않고, 거의 모든 재산을 탈탈 털었다고 주장하는 거니까요. 사실 저도 공개된 350억이 전 재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봐야 500억 남짓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950억이나 되는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측근들이 자기 애완동물을 구하기 위해 칩셋을 쓰는 걸 알면서도 묵인했습니다.”
“그건 어떻게…….”
“저에게는 고성능 거짓말탐지기가 있지요. 조건이 까다롭긴 합니다만 정확도는 100%를 자랑합니다. 제가 말한 건 모두 사실입니다.”
“…….”
“세상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시형은 입을 다문 채 가라앉은 그의 눈빛을 주시했다.
그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더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저는 검사입니다. 법에 규정되지 않는 사법 행위는 할 수 없습니다.”
“…….”
“저도 이철준 시장을 찢어죽이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을 쳐 죽여도 모자랍니다. 하지만 저는 법을 준수해야 하고, 법은 그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김시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손에 쥔 서류 내역을 다시 한 번 훑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철준 그놈이 실제 재산 내역을 속이고, 피해자와 전 국민들을 기만했다는 걸 폭로하는 것뿐입니다. 덤으로 지금처럼 합법적인 영역 안에서 최대한 괴롭히는 거지요.”
“제가 나서는 건 어떨까요? 그를 알거지로 만들고 패가망신 시킬 수 있습니다. 명령 코드 몇 개만 입력하면 지금 즉시 그의 금융 재산을 털어버릴 수 있는데요. 인생을 망쳐놓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건 안 됩니다. 개인의 사적 처벌을 허용하게 되면 법치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그 점에서는 참 확고하시군요. 그런데 저런 놈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게 놔두는 게, 오히려 법에 대한 신망을 잃게 해 법치 질서를 망치는 게 아닌가요?”
김시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가슴에 남은 심장의 조각은 그의 말 역시 틀리지 않았다고 속삭인다.
“법이 이래서 안 된다……. 그렇다면 검사님이 나서서 바꿔볼 마음은 없습니까?”
김시형은 멈칫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말이, 마음속에 끈적끈적하게 고여 있던 답답함을 제대로 찔러 들어왔다.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한서진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시형은 우두커니 서서 한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슴과 흡사하면서, 머리와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돌아오는 리무진 안에서, 한서진은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거리에는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뒤덮은 이슈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도로 통제 때문에 시원하게 뚫린 길을 달리며, 한서진은 천천히 무릎을 꼬았다.
어느덧 차는 시청을 지났다.
시청 건물은 화재의 여파가 남은 채, 한창 복구 건설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이 나라를 뒤덮은 이슈가 생성된 발원지이지만, 그런 소란과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복구 건설에만 한창이다.
좀 더 달리자 거리를 차지한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피켓과 현수막을 든 채 광장과 도로를 점유한 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간판을 들고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 이들이 보였다.
“오늘 여기에 시위 있댔어요.”
송하나가 옆에서 흘끔거리다가 말을 열었다. 한서진은 그제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랬어?”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차내 인터폰을 향해 손을 뻗자 한서진은 만류했다.
“됐어. 설마 우리한테 해코지야 하겠니?”
“그래도 과격하게 번질 수도 있는데…….”
“괜찮아. 이 차 방탄이야.”
여기서부터는 도로 통제가 되지 않아, 경호 차량과 방탄 차량은 다른 차들과 섞여서 주행해야 했다.
한서진은 저 멀리, 시위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 패로 나뉜 이들이 서로 목청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이철준을 철저히 벌하자는 이들과, 이제 그만 국론을 분열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자들이다.
“시위가 격해지네요. 전 좀 이해가 안 돼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절 몇 번 했다고 이제 그만 됐다는 식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
“그 사람들도 피곤한 거야. 어차피 안 될 거, 계속 논의하고 생각해야 하는 게.”
“당장 피곤하다고 계속 묻어두기만 할 순 없잖아요.”
한서진은 대답 대신 조용히 시위 현장을 살폈다.
답답한 감각이 입안에 고여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때였다.
“어, 사람들이 갑자기 이쪽으로 와요?”
송하나가 당황해서 그를 둘러봤다. 그녀의 말대로, 흥분한 시위대가 한서진의 차를 발견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뛰어난 방음 성능 때문에 뭐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난 시위대는 좀비처럼 방탄 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질 급한 이들은 천장 위로 뛰어 올라와서 방방 뛰기도 했다.
“오빠.”
“괜찮아. 탱크가 깔아뭉개도 이 차는 안전해.”
창문은 차광 처리가 되어 있어,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호 차량과 방탄 차량은 완전히 둘러싸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왜 분노를 이런 식으로 풀지?’
한서진은 차가운 눈으로, 차 밖을 점령한 시위대를 주시했다.
그들이 누구를 옹호하고, 무엇을 주장하는 이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표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자신의 가슴에도 스며들었다는 것.
그때 퍽 하고 계란 몇 개가 유리창에 부딪쳤다.
깨진 껍데기 사이로 흘러내리는 노른자를 본 순간, 한서진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끊어지며 흘러내렸다.
“당신들이 진짜 해야 하는 일을 해. 이렇게 어리석은 짓 말고.”
머릿속이 찌잉 하고 울리며, 현기증이 밀려들어왔다. 다급한 송하나의 외침이 멀어지듯이 울리며, 천장이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앉는다.
한서진은 의식을 잃었다.
그날 오후, 속보가 떴다.
「이철준 전 시장의 기망행위에 분노한 시위대, 호송차 덮쳐.」
「끌어낸 이철준 전 시장, 흥분한 시위대로부터 집단 구타 당해.」
「이철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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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별의 어느 반도에서... 주인님의 포스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