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0 꿈의 건너편 =========================================================================
두두두두!
수원에서 급히 발진한 소방 헬기가 C몰 상공에 도착했다. 헬기는 속도를 늦추며 호버링을 취했고, C물을 향해 좌측면을 드러냈다.
헬기 측면에 걸터앉은 소방관이 라이플을 들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공기총을 개조해서 만든 칩셋 전용 라이플로, 일반 실탄 대신 소방 칩셋이 장착된 고무 탄두를 발사하는 모델이다.
멀리서 안전하게, 그리고 정확히 칩셋을 투척하기 위해 만든 전용 라이플이었다.
사격 훈련을 받은 소방관은 조준을 마친 뒤,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고무 탄두가 치솟는 연기를 뚫고, C몰의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몸집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악, 하고 희미한 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불길이 사그라졌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연기의 양도 눈에 띄는 속도로 줄어들었다.
새로이 생성되는 연기가 아니라, 내부에 고여 있던 연기가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뿐이었다.
연기가 어느 정도 걷히고 시야가 확보되자 대기 중이던 구조대원들이 즉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들것 가져와!”
“중상자가 다수 있습니다! 무너진 철근에 깔렸어요! 꺼낼 수가 없어요!”
“의사! 의사를 불러!”
비명과 신음이 교차하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구조대원들은 침착하게 한 명 한 명 구조했다. 외부에서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확성기 방송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여기는 현장 구조본부입니다. 화재는 완전히 진압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질서정연하게 피신해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화재는 완전히 진압했으니 안심하시고 질서정연하게 피신해 주십이오.」
아직도 건물 내부에 갇힌 채 패닉에 빠져 있던 이들은 반복되는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성을 되찾았다. 불길이 전혀 보이지 않고, 연기도 완전히 빠져나가자 공포와 불안함도 많이 가라앉았다.
―J-35 구역에 생존자 35명 확인.
―P-3 구역에 사망자 5명 확인.
―A-29 구역에 생존자 3명, 사망자 1명 확인.
그 와중에 컨트롤 타워는 놀라운 마법을 부렸다.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에게 실시간으로 생존자와 사망자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한나절 전과는 전혀 다른 통제 능력에 구조대원들도 신기해하면서 충실히 지시를 따랐다.
그리고 그 시각, 컨트롤 타워에서는…….
“이, 이런 곳까지 직접 나오실 것까지는 없었는데요.”
“아닙니다. 저라도 한 손 거들어야지요.”
비밀리에 헬기를 타고 온 한서진 때문에 컨트롤 타워는 난리가 났다.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보고를 받고 있는데, 한서진이 직접 나올 줄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그와는 관련이 없는 일 아닌가.
여느 때라면 주요 인물의 방문에 컨트롤 타워가 발칵 뒤집혀져서 제 구실을 전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서진이 등장하자 모든 게 달라졌다.
통제직원들은 구조대원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리면서도, 속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대로라면 오늘 안으로 구조 작업이 모두 끝나겠어요.”
“정말 대단해. 처음에는 가뜩이나 일손 부족한 판국에 저 분까지 왜 와서 방해하나 싶었는데…….”
“안 오셨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어요.”
한서진은 빈손으로 와서 훼방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큰 선물을 들고 왔다.
생명반응 스캐너.
에테르 스캐닝 기능을 이용해 C물 내부에 존재하는 생존자와 사망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실시간으로 구조대원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또한 당장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위급한 생존자와 그렇지 않은 생존자를 나누고, 다시 위급한 생존자들 중에서 위치와 진입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효율적인 구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진짜 저 분, 마법사 아니에요? 이런 식의 구조가 가능할 줄은 미처 몰랐어요.”
컨트롤 타워에 근무했던 직원들은 그렇게 한서진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다.
밤샘에 걸친 구조작업은 새벽에 이르러서야 모두 끝났다.
테러 당시 C몰에는 2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문을 한 상태였다. 그 중 900명이 넘는 이들이 사망한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중상자는 1,500여 명에 달했으며, 그 중 1천여 명은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경찰은 오늘 인천공항에서 밀항을 시도하던 테러 용의자들을 체포했습니다.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의 일원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C몰 인근과 건물 내부 CCTV에 이들의 모습이 다수 포착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C몰은 이슬람 무장 세력의 테러 공작에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실은 국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사실상 최초로 외국 테러 조직이 국내에 테러 공작을 한 것 아닌가.
그것도 서울 한복판, 일일 유동인구 1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종합쇼핑전시몰이 당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미 해외 테러 조직들은 우리나라를 미국과 동일시하고 있다! 근데 우리나라의 대테러 안보 능력은 형편없다!’
테러의 충격과 공포가 채 걷히기도 전에, 서울시장 이철준의 과오가 매스컴을 또다시 뒤흔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테러보다 더 큰 분노가 국민들을 일깨웠다.
「특보! 이철준 시장의 공권력 남용,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져.」
「테러 이틀 전 시청 화재, 굳이 소방 칩셋을 써가면서까지 진압했어야 했나?」
「이철준 시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어.」
서울에 소방용 마력 칩셋 재고가 모두 떨어진 마의 이틀, 그 사이에 발생한 테러에 피해는 속수무책으로 커졌던 것이다.
전문가들의 그런 지적이 잇따라 보도를 타자 시민들의 분노는 단숨에 임계점에 달했다.
주요 언론사에서 재난 전문가와 집중적으로 취한 인터뷰가 보도되며, 분노의 정점을 찍었다.
“비극의 1차 원인은 우리나라의 허술한 테러 방비 시스템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방용 마력 칩셋이 제때 투입되었다면 희생자 수를 더욱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불길과 연기가 잡히지 않아 피신 및 구조 작업이 어려웠고, 그 결과 900명이 넘는 사망자와 1,500여 명의 중상자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중요한 마력 칩셋이 이틀이나 재고가 전혀 없었다는 게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요?”
“사실 재고가 늘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소방용 칩셋은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죠.”
칩셋은 현재 딱 생산에 필요한 비용만 받고 미국과 한국에 공급하고 있다. 마진이 전혀 없는데다가 만드는 시설을 유지하고 시간을 쏟아야 하니, 만들면 만들수록 한서진에게는 재정적으로 손해다.
양산에 성공한 덕분에 한서진이 직접 수작으로 만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생산량이 늘었다.
그러나 값비싼 생산설비라는 한계 때문에, 양산 중이라 해도 미국과 한국이 원하는 물량은 맞추지 못했다.
“재고가 부족한 건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재고를 허투루 소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으로 써야 합니다.”
“서울시장의 공권력 남용이 문제라는 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흘 전 발생한 서울시청 화재는 소방용 칩셋을 굳이 사용할 필요까지는, 아니 말을 잘못했군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화재였습니다.”
“어째서죠?”
“소방 칩셋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은 피난을 완료했고, 불길은 잡히고 있었으니까요. 재산 피해 정도로만 그칠 수 있었던 화재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청 시설이 소각되는 것은 행정력에도 큰 피해를 주는 것 아닌가요?”
“그 소방 칩셋이 서울시에 남아 있던 마지막 재고분이라는 게 가장 중요하죠.”
“…….”
“불탄 재산은 다시 채워 넣으면 되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당시 소방 칩셋을 사용한 건 시청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애완조로 키우는 암탉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과오 때문에 C몰에서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권위 있는 재난 전문가의 단독 인터뷰가 보도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뚫고 하늘까지 치솟았다.
특히 시장의 애완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유에, 시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차라리 깊은 허탈함에 빠졌다.
“대구 시장의 재림인가.”
“서울 시장하고 대구 시장하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던데. 한국대 나온 놈들은 다 그러나?”
“같은 한국대 나온 한서진 박사는 C몰 참사 현장에 나와서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던데. 달라도 어쩜 그렇게 다르냐.”
과거 최시중 대구 시장은 개인 사택에 난 불을 진압하는데 소방 칩셋을 썼다. 그리고 칩셋 하나는 관리부서에서 어딘가로 빼돌렸다.
그 결과 밀집 상가에 발생한 화재를 제때 진압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정계에서 물러난 그는 현재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은 그때와 지금이 다를 게 뭐냐고, 달라진 게 전혀 없다며 분노를 터트렸다.
―칩셋이 한 개만 있었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장애를 가지지 않을 수 있었어!
―한서진 박사가 조금만 더 노력해서 칩셋을 많이 생산했으면 될 문제였는데…….
―뭔 개소리야? 이게 왜 한서진 박사 잘못이냐? 닭대가리 하나 구하자고 칩셋 써버린 시장놈 잘못이지!
―……소름 끼친다. 저런 벌레랑 같은 하늘을 공유한다는 게 역겹다. 한서진 박사님이 제발 저런 놈들에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보여주시면 좋겠다.
진상이 밝혀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서울 시장을 향해 쏠렸다.
도원패 정권은 테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국민들은 테러를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방첩 능력의 미미함보다는, 닭 한 마리 살리려고 귀중한 소방 칩셋을 낭비해버린 시장에 대해 분노를 집중했다.
여론의 포화에 시달리던 서울 시장이 마침내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며칠 동안 제대로 시달렸는지, 그의 안색은 무척 초췌해져 있었다. C몰 참사가 발생하고 사흘만이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 시민 여러분. 저는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애완동물을 구하기 위해 귀중한 소방 칩셋을 썼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당시 현장 구조팀에게 어떤 지시를 내린 적도 없습니다.”
잠시 말을 마치고, 그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모든 것은 서울 시장인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시장으로서 저의 부족한 점을 이번에 새삼 깊이 느끼고, 뼈저린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송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 시장은 마침내 눈물을 보이며, 기자회견의 마침표를 찍었다.
“부족하고 모자란 저는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시장직을 내려놓고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겠습니다.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성실히 받겠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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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진이 노오오력을 안 했기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