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88화 (488/609)

00488  꿈의 건너편  =========================================================================

H컨설턴트는 한씨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대중이 그에게 가지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원래 소유주는 한서진이었는데 최근에 개편 작업을 하면서 에스코너로 소유주가 변경되었다. 물론 에스코너가 100% 한서진 소유이니, 소유 형식만 조금 바뀐 것뿐이다.

최고경영자는 한지혜지만 직함이 그러할 뿐, 그녀는 실제로 경영자보다는 대주주 노릇을 한다.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바로 김범석 부사장이었다.

H컨설턴트는 대중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민들은 H반도체나 SJ인더스트리, 제약업체인 영원그룹 등을 통해 한서진이 국내외에 가지는 영향력을 실감했다.

오히려 H컨설턴트가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반인들의 삶에 밀접하게 관여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전체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컨설턴트가 지원하던 시민단체에서 추진되던 법안 개정 운동이 마침내 성과를 거뒀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침내 보편적 소비자 집단소송제가 생겼습니다.”

“사법부가 결국 양형 기준을 엄격히 강화하는 방침으로 노선을 틀었습니다. 김현성 씨의 오랜 투쟁이 마침내 성과를 거뒀습니다.”

“김현성 씨라면, 몇 년 전 십대 딸이 같은 반 동성친구들한테 억울하게 살해당한……?”

“네, 맞습니다.”

회사는 고르고 고른, 빈약하지만 깨끗한 비영리단체나 시민 조직을 골라 적극적인 후원 사업을 펼쳤다.

불량 가습기 살균제로 어린 자녀를 불행히 잃은 이들은 회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소송을 걸 수 있었고, 주요 경영진의 무기징역 선고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이들도 회사가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의 도움으로 끝까지 투쟁할 수 있었고, 가해자가 중한 선고를 받게끔 사법부에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저번 분기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지원 사업으로 20조 원을 지출했습니다. 이번 분기에는 방학이 끼어 있는 만큼 추가로 1천 억 원을 지출할 계획입니다. 방학 기간 굶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외부에서 끌어온 후원금은?”

“여러 기업과 관공단체, 독지가 및 개인을 통해 500억 원의 후원금을 끌어왔습니다. 저번 분기 기준입니다.”

김범석이 보고서를 훑어보고는 한마디 했다.

“자체적으로 돈을 많이 쓰는 것도 좋지만,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외부 후원자들을 꾸준히 늘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우리 회사가 지원금이 많다지만, 혼자 드는 것보다는 맞드는 게 무조건 나으니까요.”

“염려 마십시오. 외부 홍보 역시 적극적으로…….”

“아직 정기후원 결제 방식이 반드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보이던데요?”

김범석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지적하자, 자선사업부장은 당황해서 반문했다.

“예? 부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어제 정기후원 결제하려고 했는데, 여러 절차 거쳐서 가장 마지막에 결제하려고 보니까 인터넷 브라우저가 호환이 안 된다고 오류가 났습니다.”

“…….”

“내 PC에 없는 다른 브라우저를 설치해야 결제를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브라우저 호환 문제가 중요하면 처음부터 표기를 했어야지, 다른 절차 다 끝나고 마지막에 안 된다고 창이 닫혀버리면 이건 사람 놀리는 게 아니고 뭡니까?”

“그, 그건…….”

“훌륭한 후원 권유 컨텐츠에 감동받아서 기껏 후원하려는 마음을 먹었던 사람들이 막판에 얼마나 짜증났겠어요? 브라우저 다른 거 새로 설치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얼마나 빡쳤을까요? 그중에는 짜증나서 기껏 후원하기로 한 마음을 철회한 사람도 많을 겁니다. 안 그래요?”

“죄송합니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결제 방식을 간단하고 쉽게 만들던가, 아니면 결제가 안 되는 브라우저는 처음부터 미리 표시를 하던가 해요. 둘 다 하면 더 좋고.”

H컨설턴트 자선사업부는 자체적으로 사업비용을 지출하기도 하지만, 외부 후원금 역시 적극적으로 끌어와 시너지 효과를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도 노력한다.

자체적으로 지출하는 사업비만 연간 100조 원 가까이 되다 보니, 어느덧 H컨설턴트 자선사업부는 국내에서 가장 큰 복지기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인터넷 악플 비방자 안내문 발송 건이 31만 3,816건으로, 반년 전에 비하면 50%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안내문을 송달받은 악플러들의 80% 이상이 그 뒤로는 악플을 달지 않았고요.”

“역시 인생이 실전이라는 걸 알려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죠. 근데 비방자들은 대부분 어떤 사람들입니까?”

“초극성 비방자들 중에는 취준생이나 퇴사자들을 포함해서 무직자가 가장 많았고요, 보통 비방자들 중에서는 실제로 평범하고 별로 튀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물론 좋은 학벌, 좋은 직업을 가지고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사는 사람도 꽤 있는 편입니다.”

여론 관리, 원래 한서진을 비방하는 자들을 솎아내서 그들이 한서진으로부터 어떤 직접, 간접접인 혜택을 입지 못하게 방지하는 작업이다.

한 번이라도 한서진을 향해 패륜 욕설, 악의적인 비방 등을 한 경우에는 무조건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한서진의 명예 관리만을 위한 사업이었는데, 어느덧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제공까지 영역을 넓혔다.

즉 한서진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지만, 인터넷 여론 문화를 깨끗이 정화한다는 취지로 활동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A가 B에서 부모를 들먹이며 욕설을 했다. 억울한 B는 어디에 하소연을 할 데도 없다. 사이버 범죄로 형사 절차를 밟으면 되지만 시간과 비용이 들고, 또 매우 번거로워서 포기하게 된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 H컨설턴트는 인터넷 비방 행위 고발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XX 사이트에서 A라는 놈이 저에게 이런저런 욕설을 했어요! 여기 스샷 있어요!

그럼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답변이 달린다.

―해당 가해자는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입니다. 관련 안내문을 발송했습니다.

H컨설턴트의 중앙 시스템은 타르타로스의 권한 리소스를 할당받아서 구축한 것, 비방자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것쯤은 무척 손쉬운 작업이다.

신고가 들어오고 사실 정황이 확인되면, 가해자는 주거지 우편물, 이메일, 핸드폰 문자, 톡 어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SNS 비밀 댓글 등을 통해 일정한 형식의 안내문을 받는다.

「박xx님께, 귀하는 xx일 yy시 zz분에 A사이트에서 닉네임 쉴드퓨리님께 다음과 같은 욕설을 하셨습니다. ……중략…… 앞으로 반복하지 않길 당부드립니다.」

자신이 별 생각 없이 인터넷 뉴스, 커뮤니티 등에 달았던 비방글을 고스란히 돌려받게 되면, 사람들은 보통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마음껏 내면의 본능을 터트렸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신고가 들어와야만 발송되는 것은 아니고, 여론 관리 시스템이 24시간 운영하는 자체 시스템 필터링에 걸려도 안내문을 송달받게 된다.

오프라인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안내문이 지인들에게 뿌려질까 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 박사님을 무작정 비방하는 여론은 거의 없지만…… 난치병 환자들의 불만이 제법 쌓이고 있습니다.”

“…….”

김범석은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최근 그를 괴롭히는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이러다가 또 대머리 되겠어.’

국내에서 한서진에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은 다름 아닌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 그들은 한서진이 그 무궁무진한 천재성을 자신들이 앓고 있는 질병 극복에 쏟아 붓기를 원했다.

김범석은 그런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갑갑했다.

‘박사님도 사람이시고, 자기가 원하는 연구를 선택할 자유가 있으신 분인데.’

본인 혹은 가족의 목숨이 달린 그들의 처지가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니, 그저 두피의 모낭만 썩어 문드러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은 억눌러서 해결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 설득하는 방법을 고수합시다. 그들이 박사님께 최대한 반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알겠지요?”

“예, 부사장님.”

월간 총회의가 끝나고, 김범석은 피곤한 눈두덩을 지그시 누르며 의자를 돌렸다.

H컨설턴트는 이처럼 비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은 돈을 쓰면서 다양한 이미지 활동을 벌인다.

건강한 사회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막대한 규모의 자선사업을 시행하며, 억울한 약자들을 돕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분 없이 성숙한 시민 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여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H컨설턴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그런 단체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H컨설턴트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한서진은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그렇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자비로운 독지가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신연구소 사옥.

문이 조용히 열리고, 신효진이 들어섰다.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한서진은 그녀의 낯빛이 어두운 것을 알아차렸다.

‘효진 씨가 오늘따라 왜 저러지?’

그녀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 마치 세상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에 잠긴 듯했다.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은 딱 한 번뿐이다.

“박사님, 꿈이 또 닫혔어요.”

“……또요?”

의외로 그녀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차분한 음색이 어두운 안색과 묘한 조화를 이뤄, 더욱 침울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제 아버지, 코르비우스 대마도사가 이상한 마법으로 저를 꿈에서 몰아냈어요.”

신효진은 자신이 꿈에서 겪은 일을 자세히 말했다.

―너 때문에 모든 게 헝클어졌다.

―부디 너의 세상으로 돌아가 다오.

―이곳에서 너의 존재는…… 불행한 일이다.

모든 설명을 마치고, 신효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가에 얼핏 보인 눈물에, 한서진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레노지안은…….”

“이미 멸망했어요.”

“…….”

“제가 본 레노지안의 멸망은 미래에 벌어지게 될 비극 따위가 아니었어요. 이미 까마득한 오래 전에 일어났던 과거였던 거예요. 레노지안…… 그 풍요로운 땅에는 이제 뼈만 가득해요. 수백억이 넘는 백성들이 전부 죽었어요. 기사도, 마법사도, 귀족도, 그리고 왕족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럼 아서 왕이 제 몸으로 깨어나서 활동했던 것은 뭐죠?”

“모르겠어요. 박사님이 아서 왕의 환생이라서, 무의식 속에 전생의 인격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게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깨어나는 게 아닐까요? 마치 다중인격처럼요.”

레노지안은 이미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장 최악의 결말이기도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이 확정되었으니.

‘그럼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한서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상실감에 온몸의 근육이 무거워졌다.

============================ 작품 후기 ============================

뭘 하긴, 노블리스 갑질리제를 하면서 살면 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