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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86화 (486/609)

00486  재편  =========================================================================

‘저거다!’

한서진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틀림없다. 해수면을 향해 부상하고 있는 저 물체는, 바로 신살검의 부러진 반쪽이었다.

길이는 약 40미터쯤 될까. 신살검의 다른 한쪽과 완전히 합쳐지면 아마 80미터쯤 될 것 같았다.

그 검의 조각이 멈추지 않고 떠오르고 있었다.

‘기다려!’

한서진은 검을 뒤쫓아 해수면을 향해 부상했다. 심도가 높아지며 심해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깊은 바다에 점점 물고기 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래 무리가 검의 조각을 향해 헤엄쳐 왔다. 신기한 듯이 주변을 빙글거리며 함께 부상한다. 당연하겠지만, 고래 무리는 한서진의 의식체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순간 검이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고래들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금 무리를 지어 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눈부신 검의 광휘 주변을 춤추듯 감싸는 고래 무리의 모습이 신비해 보인다.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풀어진 미소를 띠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바로 그 순간, 검의 조각이 태양처럼 환한 빛을 뿜어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시력을 상실할 만큼 강한 빛이다. 그러나 BII 시스템을 통해 영상 정보를 직접 제공받는 한서진은 그런 눈부심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고래 무리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빛에 휘말리고, 검의 조각이 뿜어내는 빛이 모든 생명을 하얗게 태워버리는 것을.

‘……아!’

빛이 완전히 사그라진 후, 검의 조각은 상승을 멈추고 다시금 해저를 향해 가라앉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던 한서진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검의 조각을 쫓아갔다.

검의 조각은 본래 있었던 위치에 내려앉았지만, 그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해저 바닥을 파고들었다.

‘안 돼!’

한서진은 급히 뛰어들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것은 BII가 실제 광경을 그의 의식에 전달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화면일 뿐, 실체가 아니다.

그의 손은 검의 조각을 허무하게 통과했고, 검의 조각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해저를 파고 내려갔다.

‘효진 씨! 한 번 더요! 녀석을 불러요!’

―알겠어요!

그는 급히 신효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후 검의 조각이 뿜어내는 에테르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 나갔다. 파동의 위치를 보고, 그는 검의 조각이 이미 상당히 깊이 내려갔음을 깨달았다.

도망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신효진의 부름에 대답을 하면서도, 오히려 땅속 깊숙이 내려가고 있다니?

한서진은 검을 따라 해저 지면으로 내려갔다. 마치 유체가 된 듯이 단단한 암석을 아무렇지 않게 파고들며, 해저 밑바닥의 환경을 생생히 확인했다.

‘효진 씨!’

―지금 하고 있어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했다. 더 이상 검의 조각이 뿜어내는 파동이 보이지 않는다.

녀석이 더 이상 신효진의 부름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왜?’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기껏 신살검의 다른 한쪽을 찾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 버리다니.

「그만 놓쳐버렸네요. 신살검의 다른 파편을 겨우 찾았는데…….」

“죄송해요. 이젠 제가 아무리 불러도 반응하지 않네요.”

「효진 씨 잘못이 아닙니다. 뭔가가 잘못 됐어요.」

한서진의 음성에는 짙은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신효진은 마치 자신이 그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잘 되기를 빌었는데.’

한서진이 신살검의 파편을 찾았을 때만 해도 그녀는 속으로 내심 환호했다. 이제 다 잘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신살검은 수면으로 떠오르다 말고, 주변의 모든 생명들을 소멸시키는 빛을 뿜어내더니, 그대로 해저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그나저나 확실히 알았어요. 신살검은 무서운 병기입니다. 정말 이 지구를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지구뿐만이 아니라 태양계 전체를 없앨 수도 있겠죠.」

“설마요. 그 정도로 대단하겠어요?”

「태양을 폭발시키면 되죠. 그럼 태양계는 멸망할 겁니다.」

“아…….”

신효진은 오싹 소름이 돋아서 몸을 떨었다.

신살검에 그 정도로 막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신살검이 어떤 원인에서 부러졌는지는 모르겠군요. 아서 왕이나 스칼린 왕비가 고의로 부러뜨린 건지, 아니면 최후의 전쟁에서 패배해서 부러진 건지…….」

“부러진 조각은 그럼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지구 중심 가까이 파고 내려간 것 같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타르타로스로도 찾을 수가 없어요. 에테르 스캔에 일절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부러진 조각을 다시 불러볼게요.”

「부탁합니다. 현재로선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에요.」

전화를 끊고, 신효진은 신살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오래 전 부러진 채 바다로 가라앉았고, 수십 년 전 손잡이 부분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야 검날 부분이 존재를 드러냈다.

‘여기 있는 반쪽을 찾아 돌아오려고 했던 게 틀림없어. 그런데 왜…… 다시 멀리 떨어진 거지?’

혹시 검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다른 무언가의 간섭이나 제한 때문일까?

신효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서 빨리 아버지를 찾아야 해.’

스칼린은 용을 타고 즈롯 산맥을 향해 떠났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왕과 함께였다.

처음에는 신하들은 물론이고 그녀도 반대했다. 왕과 왕비, 둘이 동시에 왕성을 비워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대가 무슨 일 때문에 친부를 찾는지는 모르나, 보통 범상치 않은 일 때문인 건 알고 있소.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드니 나도 함께 가야겠소.”

그렇게 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부부 여행이 되었다.

즈롯 산맥에 도착한 부부는 수색대가 알려준 노신하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곳에서 무언가 중요한 마법 의식을 치렀군.”

왕은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 남겨진, 거대한 마법진의 흔적을 자세히 살폈다. 마법을 잘 모르는 스칼린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마법진이었다.

“이럴 수가…….”

한참 동안 꼼꼼히 마법진을 살피던 왕이 별안간 신음에 가까운 탄성을 터트렸다. 스칼린은 긴장해서 물었다.

“리온, 왜 그래요?”

“이 마법진……. 마력이 아닌 에테르 그 자체를 통제하는 마법진이오.”

“그게 왜요?”

“마력을 다루는 건 쉽소. 하지만 에테르를 다루는 건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일이오.”

에테르는 만물을 형성하는 우주의 근원이다. 엄밀히 말해 ‘마력’이란 에테르가 일정한 마력적 형태로 결합한 것을 말한다. 에테르가 원자라면 마력은 분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특히 이런 초대형 마법진으로 에테르를 통제하는 것…… 그것도 마도사 일인이 단독으로 실행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오.”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거지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오. 이건 아직 인간의 마법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거요. 그런데 코르비우스 경이, 그대의 친부가 해냈소!”

왕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마치 자신이 해내기라도 한 듯이 기쁨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대단하오! 이런 대업적을 이루다니!”

스칼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땅에 그려진 마법진의 흔적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엄청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잘 가늠이 되진 않았다.

“이것 때문에 경이 짐에게 잠시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던 거로군.”

“그럼 이건 무슨 마법이에요?”

“그건 모르겠소. 아마 경을 만나면 말해줄 테지. 어쩌면 이미 왕성에 돌아가 있을지도 모르겠소.”

스칼린은 마법진 주변을 천천히 거닐다가, 왕의 모습을 흘끔 살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채, 마법진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흡사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보여서 조금 질투도 났다.

무의 극한을 이룬 자신과 달리, 왕은 검과 마법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두루 능통했다. 그것도 뛰어난 정도가 아닌, 각 영역 전부가 대륙 최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대마도사인 친부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왕도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니, 친부의 마법 수준이 너무 대단해서 부족해 보이는 것뿐, 왕의 마법 실력도 대륙 최상위 클래스라고 할 수 있었다.

지루해서 구경하던 스칼린은 조용히 일어났다.

왕이 마법진의 해독에 빠져 있는 사이, 잠시 산맥 주위를 둘러볼 참이었다. 운 좋게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고.

‘참 신기해.’

스칼린은 산맥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며, 마음속으로 옛 과거를 상기했다.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당시 그녀는 꿈이 아니라 잠자는 사이 어딘가로 납치된 줄로만 알았다. 꿈이라기에는 모든 게 생생했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지닌 경이로운 무력을 깨닫고,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고달픈 신효진의 삶을 잊어버린, 즐거운 모험의 나날이었다.

용감한 모험가 동료들과 함께 탐험에 나서고, 괴수를 무찔러 현상금을 받고, 그리고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꿈속의 남편과 현실에서까지 인연을 맺었다. 그저 얼굴이 닮은 줄만 알았는데, 그도 자신과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

‘참 신기한 운명이야.’

아주 가끔, 송하나 대신 자신이 그의 옆에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을 억누르지 못할 때 초라한 질투심이 뒤따라 고개를 들기도 한다.

조금만 더 빨리 그를 만났으면,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그를 독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시기심이.

‘박사님은 어떨까?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현실의 ‘신효진’은 송하나에 전혀 비할 바가 못 됐다. 지적 수준, 학력, 가문, 재력, 등 모든 것이 상대가 안 됐다. 그나마 견줄 수 있는 것은 여자로서의 외모뿐이었다.

그래서 그를 향한 마음을 억지로 누른 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난 군대도 이길 수 있어.’

스칼린의 힘을 얻은 신효진은 그곳 지구에서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존재. 재산이나 집안 같은 조건으로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희소성을 지닌다.

지금의 신효진이 과연 송하나에게 밀릴까? 그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신효진. 하나 씨가 지금까지 잘해준 것들을 한 번 생각해 봐. 네가 그러면 안 돼…….’

손톱을 깨물며 욕망을 억눌러 본다. 그럼에도 꿈과 현실의 그를 모두 갖고픈 마음이 자꾸만 삐져나온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결국 이곳까지 찾아왔구나.”

귀에 익은 목소리에 그녀는 퍼뜩 놀라 몸을 돌렸다.

커다란 나무가 만든 그늘 사이에서 익숙한 모습의 노인이 나타났다.

“아버지?”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불렀다가 멈칫했다.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아버지에게서 따뜻한 호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가면을 쓰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봐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잘못이라…….”

코르비우스는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고, 초탈해 보이기도 했다.

“딸아.”

“……네, 아버지.”

“너 때문에 모든 게 헝클어졌다.”

“제가 뭘…….”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너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했다.”

코르비우스는 서글픈 미소를 짓고, 수정 지팡이를 가볍게 들어 땅에 내리쳤다. 지팡이가 땅이 부딪친 부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파동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고, 스칼린은 저도 모르게 빳빳하게 굳었다.

“이, 이건……?”

그제야 그녀는 발견했다.

자신과 아버지가 밟고 서 있는 땅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마법진을.

동시에 그녀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아버지는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디 너의 세상으로 돌아가 다오.”

수정 지팡이가 눈부신 빛에 휘감겼고, 마법진이 그에 공명하듯 환한 섬광을 내뿜었다.

============================ 작품 후기 ============================

< 현재 서버 인원초과 >

< 25,106,356,001 / 25,106,356,000 >

“봤지? 너 때문에 서버 터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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