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4 재편 =========================================================================
지하 아주 깊은 곳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진동, 그것을 분명히 느낀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한서진을 쳐다봤다.
“교수님, 잠시만요.”
한서진은 다급히 태블릿 PC를 꺼내 뭔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니트론을 돌아보며 외치듯이 말했다.
“저번과 같은 반응입니다! 에테르 에너지가 지구 전체를 강타했어요!”
“설마 또 에테르 스톰입니까?”
“다행히 위험한 수준은 아닙니다. 에너지 절대량은 크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어 밀도는 매우 낮습니다. 지표면에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요즘에는 에테르 스톰이 비교적 뜸했는데 이렇게 며칠 사이에 연달아 일어나다니……. 그래도 피해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 형태는 처음이라 몹시 신경이 쓰이네요.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이미 두 번이나…….”
한서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데이터 화면을 살폈다.
며칠 전, 전국적으로 발생한 약진. 그러나 그것이 한국과 일본 전체에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그는 따로 타르타로스로 조사를 했었다.
그 결과 지구 전체에 거의 동일한 세기의 지진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테르 스톰에 의한 지진이긴 했지만, 그 정도가 미약했기에 재해 예보 시스템도 딱히 경보를 발동하진 않았고.
그러나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조짐인가? 가만, 그러고 보니…….’
미약한 세기지만 지구 전체를 흔든 지진, 이것이 발생한 게 신살검이 작아진 이후가 아닌가?
‘에이, 우연이겠…….’
무심코 얼굴을 들던 한서진은 신효진과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게 깨문 입술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교수님,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아, 그래요.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말해주고요.”
“예.”
한서진은 신효진을 데리고 그 자리를 나왔다. 그녀는 신살검을 품에 안듯이 들고는 그를 따라 나왔다.
방탄 리무진에 오르자 한서진이 물었다.
“효진 씨, 뭔가 걸리는 게 있나요?”
“잠시만요. 그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요. 박사님, 에테르 지진이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계측이 가능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잘 봐주세요.”
신효진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신살검을 향해 또렷이 말을 걸었다.
“네가 한 거지?”
―구웅!
바로 그 순간, 놀랍게도 지진 그래프가 반응을 했다. 아까와 똑같은 세기, 그리고 지구 지표면 전체에 동시에 가해진 파동 에너지였다.
한서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녀와 신살검을 번갈아 바라봤다.
“효진 씨? 이거, 설마…….”
“너, 내 목소리 들리지? 나한테 반응한 거 맞지?”
―구우웅!
다시 한 번 지구 전체가 흔들린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센 울림이었다.
마치 자신을 불러준 것을 기뻐하는 듯하다. 신효진은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효진 씨,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지금 신살검이 지구를 흔들고 있는 건가요?”
“왠지 그런 거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혹시나 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한 것 같네요.”
“이럴 수가…….”
한서진은 맥이 빠진 신음을 흘리며, 신살검을 노려보듯이 주시했다.
지진의 세기는 약한 편이다. 그저 사람이 땅이 흔들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지구 전체에 골고루 퍼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물리 에너지가 가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엄청난 에너지를 신살검은 아무렇지 않게 뿜어냈다.
겨우 신효진의 부름에 대답하기 위해서.
“역시 행성병기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요! 신살검은 자기 스스로 주인을 결정하는 검이라고 했어요.”
“효진 씨, 아니 스칼린 왕비를 알아보는 걸까요?”
“그럴 지도요.”
한서진은 정신을 집중하고, 통찰안을 개방했다. 그리고 신살검을 자세히 살폈다.
‘역시 안 보여.’
결과는 같았다. 무언가가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신살검이 품은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내가 모자라나?’
아니면 레노지안 최강의 무기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한서진은 애써 실망감을 감추려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만요, 효진 씨. 한 번 더 이 녀석한테 말을 걸어 보시겠어요? 아무거나 좋으니까요.”
“네? 아, 네.”
신효진은 목청을 가다듬고, 신살검을 향해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그때마다 신살검은 막강한 에너지를 내뿜어 지구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람이 느낄 만한 진동을 지구 전체에 퍼뜨리는 것은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메가톤급 핵탄두를 터트려도 지구 반대편까지 진동을 전하진 못할 것이다.
그 막대한 에너지를 골고루, 지구 전체에 퍼뜨리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뭔가, 뭔가가…….’
한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태블릿 PC에 떠오른 3차원 그래프와 신살검을 번갈아 살폈다.
그래프에는 실시간으로 지구 전체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에테르 파동이 잡히고 있었다. 바로 타르타로스 2가 측정한 결과물이었다.
‘이상해. 아무것도 안 보여.’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은 한서진은 신음했다.
신살검의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록 통찰안의 권능이 미약하여 신살검이 거부한다 하더라도, 녀석이 내뿜어내는 에테르 파동만큼은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여긴, 태평양?’
동심원을 그리며 지구 전체를 뒤흔드는 파동 에너지. 그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한서진은 급히 위치 좌표를 추적했다. 타르타로스에 몇 가지 명령어를 입력하자, 곧바로 결과가 나타났다.
해당 좌표를 3차원으로 나타난 수치 및 3D 지도를 확인한 한서진은 가볍게 신음했다.
“태평양 해저?”
정부가 제출한, 법인세 증가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계류 중이었다.
이에 많은 이들은 개정안에 찬동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우려를 나타냈다.
“부자 증세는 찬성이지만 법인세를 너무 올려 버리면 기업들이 너도 나도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을까?”
“떠날 놈은 떠나겠지. 하지만 대기업들은 못 떠나. 사업 기반 자체가 우리나라에 뿌리박혀 있는데 무슨 재주로. 세금 많이 내기 싫어서 사업 자체를 때려 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데.”
“그거 언제적 재벌들이 만든 거짓말이냐. 아직까지 속아주는 것도 참 용하다, 용해.”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오히려 다른 부분을 걱정했다.
“재벌들 반발이 장난 아닐 텐데. 그들이 가만히 두고 보기나 할까 모르겠다. 나라가 엄청 시끄러워지겠어.”
“절대 그냥 안 넘어갈 걸. 어떤 식으로든 들이받을 거다.”
“한서진 박사가 좀 나서주면 좋겠는데…… 역시 어렵겠지?”
“옥황상제께서는 원래 하계의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신다. 몰랐냐?”
한서진은 국내 정치나 사회 문제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행동할 뿐이다.
한서진을 추종하는 이들은 그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해 국가를 직접적으로 이끌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김시형 검사를 지지하는 것 외에,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사회적 활동은 없었다.
“차라리 한서진 박사님께서 군사 혁명이라도 일으켜서 이 나라를 확 휘어잡아 주시면 좋을 텐데.”
“큰일 날 소리 한다. 민주주의를 대체 뭐로 보는 거야?”
여러 논란이 오가는 중에, 재벌들의 움직임을 두고 많은 우려가 일어났다.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개정안의 무효화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움직임이 고요했다. 경제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재계의 조용함에 의외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 때, 별안간 진성그룹에서 폭탄선언이 있었다.
「연간 수억을 버는 개인도 일 년에 40% 가까이 되는 세금을 내는데, 연간 수백억을 버는 회사가 일 년에 22% 밖에 안 되는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진성그룹은 이번 세법 개정안을 지지하며, 국민 여러분 앞에 적극적이고 정직한 납세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진성그룹 회장 이서나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세법 개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여론과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H그룹을 제외하면, 기득권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성그룹이 가장 먼저 찬동하고 나서다니. 그것도 자신들이 가장 큰 출혈을 감당해야 할 일에.
―역시 이서나 회장이다. 내가 호텔에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창용 회장이 진짜 잘한 건 이용무 부회장을 후계자에서 내리고 이서나 회장을 후계자로 삼은 거다.
―이서나 회장이야말로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지.
H그룹은 반쯤 한서진의 소유물로 여겨져 있어, 언젠가부터 재계 순위에서 잘 거론되지 않는다. 영원한 0순위라고 해야 할까.
실질적인 재계의 맏이라고 할 수 있는 진성그룹이 법인세 인상을 적극 찬성하자, 재계는 난리가 났다.
진성그룹 회장실에는 재벌 총수들한테서 온 연락 때문에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였다.
“실장님, CS그룹 회장님 비서실에서 온 연락입니다.”
“겨우 비서실에서? 무시해.”
“미래그룹 부회장님께서 직접 연락을 하셨어요! 어, 어떡해요?”
“나한테 바로 연결해 줘. 내가 직접 받는다.”
“KI그룹 회장님께서 회장님하고 어떻게든 통화하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실장님! 전화가 또……!”
이서나가 개인 전화를 꺼버리고, 측근들 전화 연결도 거부하자 회장 비서실로 전화가 쏠렸다. 비서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자기들 선에서 정리를 하려 애썼다.
「이서나 고년한테 똑똑히 전해! 자기만 정부에 잘 보이겠다고 이딴 식으로 나와서 좋을 거 하나 없어! 그렇다고 도원패 그놈이 뭐라도 챙겨줄 거 같아!」
「진성그룹은 재계의 맏이 아닌가? 어떻게 맏이가 다른 형제들 뒤통수를 깔 수 있나? 면목이 없으면 전화라도 받아서 해명이라도 하던가, 무턱대고 피하기만 하면 다인가?」
이서나는 비서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연락을 회피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녀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게 최선이겠지요?”
“네, 이게 최선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지금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어요.”
“정말 한서진 박사 밑으로 들어간 걸까요?”
“소문에는 백철중 회장님과 비밀리에 독대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사실인지, 그리고 사실이라면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만약 법인세 인상이 한서진 박사측의 뜻이라면…….”
이서나는 생글거리던 송하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긴, 세금 때문에 이제 많이 힘드시겠구나.
―진짜 모르셨구나. 법인세 이번에 오른대요.
―오빠는 그런 거 일절 신경 안 써요. 에테르학 연구에만 몰두하시는 분인 걸요.
―대통령이 칼을 뽑기로 했나 봐요.
‘혹시…… 하나, 고년이 부린 수작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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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삐진 노년 정치인의 심술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