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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82화 (482/609)

00482  재편  =========================================================================

홀로 수행을 떠난 대마도사 코르비우스를 찾는 작업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왕국은 동원 가능한 모든 힘을 끌어다가 코르비우스를 찾는데 소모했다. 그의 행적을 수소문하고, 그가 머물 만한 장소를 수배했다.

기사들은 용을 타고 온 대륙의 명산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으며, 마법사들은 촘촘한 에테르 감지 마법진을 펼치고, 혹시라도 대마도사가 펼칠 에테르 공명을 잡아내기 위해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바다에 걸친 대수색 작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가 있었다.

“왕비 전하! 코르비우스님의 흔적을 찾았다고 하네요!”

간절히 바라던 보고가 들어왔다. 스칼린은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대전으로 달려갔다.

대전에서는 먼지투성이 기사가 무릎을 꿇은 채 왕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폐하!”

“왕비, 진정하시오.”

“아버님을 찾았다고요?”

“정확히는 그분이 거처하시던 흔적을 찾아냈소.”

스칼린은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가라앉혔다. 왕좌에서 일어난 왕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기사를 돌아보고 명했다.

“일어나서 왕비에게 직접 말하라.”

“예, 폐하.”

벌떡 일어난 기사는 왕비 앞에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자세한 내용을 보고했다.

“즈롯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그분이 거처하시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즈롯 산골짜기……?”

그 말을 들은 순간 스칼린은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지명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기사는 얼른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포렌 산악지대에서 북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작은 돌산입니다. 그렇게 유명한 지역은 아닙니다.”

“……알아요.”

“예? 앗, 실례했습니다! 왕비 전하!”

스칼린의 조용한 중얼거림에 기사는 순간 당황했다가 얼른 거수경계를 붙였다.

왕은 손짓으로 조용히 기사를 물러가게 하고는, 물끄러미 왕비를 바라봤다.

“왜 그러시오?”

“…….”

“나는 처음 듣는 지명이건만. 뭔가 짚이는 게 있소?”

스칼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차분히 생각을 되짚어 나갔다.

‘즈롯 산골짜기…….’

이곳 레노지안에서는 중요한 의미 없는, 별 것 아닌 지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칼린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는 곳이다.

현실에서 초라한 공장 근로자였던 신효진이 마법과도 같은 기적을 시작한 곳이니까.

즈롯.

바로 신효진이 처음 꿈을 시작한 장소였다.

신살검은 오직 신효진만이 들 수 있다.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일일이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한서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더 이상 검증해볼 필요도 없었다.

다만 신효진 외의 인물들도 신살검을 운반할 수는 있다. 여기에는 일정한 제한이 따른다.

직접적으로 만져서 운반하는 것은 당연히 안 된다. 어디까지나 도구나 차량 등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운반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또한 자신이 신살검을 운반하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제대로 가리는 녀석이군요.”

니트론은 그런 결론에 도달한 뒤 혀를 내둘렀다.

상식적으로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현상 아닌가. 대관절 어떤 물리법칙으로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500g도 안 되는 금속 덩어리가 수십 만 톤 화물선을 움직이지 못하게 무력화시키다니. 그것도 겨우 배를 조종하는 이가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확실한 건 인류의 문명을 훨씬 뛰어넘은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거요.”

“기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마법이라고 부르고 싶군요.”

“마법…… 동감합니다.”

니트론은 신살검과 신효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살검은 우주에서 떨어진 이후, 오랫동안 태평양 해저에 가라앉아 있었소.”

“…….”

“그러던 녀석이 수십 년 전 별안간 떠오른 것은, 아마도 자기 주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주인이라고요…….”

신효진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쥐고 있는 신살검을 내려다봤다.

검날이 부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매끈한 광택을 자랑한다. 그러나 부러지면서 힘도 잃어버렸는지, 하늘을 뚫어버릴 힘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날 알아보겠어?’

그녀는 신살검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 순간 손잡이에 박힌 보석이 아주 조금이지만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신효진은 눈을 자세히 뜨고 살폈으나, 보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응?”

“어?”

바로 그때, 니트론과 한서진이 움찔해서 서로 돌아보았다.

“교수님, 방금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한서진은 곧바로 타르타로스에 연결된 태블릿을 통해 무언가 간단히 확인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지진계 기록을 봤는데 조금 전 전국적으로 약한 지진이 있었나 봅니다. 금방 가라앉았고요.”

“전국적으로요?”

“예, 별로 강한 지진은 아니었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던 신효진은 의아해서 갸웃거렸다. 그녀도 조금 전 약한 흔들림을 느끼긴 했다.

‘그냥 우연이겠지?’

신살검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던 그 순간, 분명히 진동을 느꼈다. 신효진은 왠지 마음에 걸렸으나, 그냥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거라고 치부했다.

“어쨌든…… 아카식 블레이드는 아마도 효진 양을 주인으로 선택한 것 같군요.”

“교수님…….”

니트론의 덤덤한 말에 신효진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카식 블레이드는 효진 양이 갖고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그렇게 쉽게 정할 일이 아닙니다.”

한서진이 살짝 놀라서 나섰다.

신살검은 미국이 몇 개 주하고도 바꾸지 않는다고 일컬어지는 국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니트론이 한 말은…….

“아카식 블레이드의 소유권이 미국에 있다고 하지만, 칼이 스스로 주인을 정한 거라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박사?”

“…….”

“미국은 주인 없는 점유이탈물을 잠시 보관해왔을 뿐이에요. 진정한 주인이 나타났다면 돌려줘야 옳겠지요.”

“7인 위원회에서 찬성하지 않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카식 블레이드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녀석은 효진 양을 자기 주인으로 선택했어요.”

“…….”

Table A. 아카식 블레이드에 담긴 비밀을 연구하여, 인류의 부흥을 꾀하고자 구축된 조직.

신살검은 Table A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그런 조직의 수장이 골랐다기에 믿어지지 않는 결정 아닌가.

“한 박사도 잘 알겠지만…… 나는 사실 Table A 팀장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한 명의 과학자일 뿐이지요. 어쩌다가 이런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만, 그저 이름만 올려 두고 있을 뿐이에요.”

“키신 부팀장이 찬성하지 않을 텐데요.”

“그 친구는 실무 책임자, TA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입니다. 하지만 TA의 진정한 설립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요. 경영자의 한계지요.”

Table A의 설립 목적.

그것은 미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진리 그 자체를 끝없이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선택은 그릇된 게 아닙니다. 물론 워싱턴의 정치가들은 싫어하겠지만요. 미국의 이익에 반하니까요.”

“다른 위원들은…….”

“모두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니트론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만 입을 다물면 누가 알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신살검의 행방을 알고 있는 것은 그를 포함한, 이 자리의 세 사람뿐이다.

“나는 아카식 블레이드한테서 주인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녀석에게 못할 짓이지요.”

“교수님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두 분이 어떤 결정을 하든, 난 그냥 한쪽 눈을 감겠어요.”

니트론은 ‘신살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것은 미국의 국익에 반할지언정, Table A의 설립 취지를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과연 다른 6인의 위원들도 그와 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 그것은 한서진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위원들에게는 당분간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분간’이 ‘영원히’가 될 수도 있지만, 한서진은 그것까지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니트론이 돌아갔고, 한서진과 신효진 둘만 남았다.

그녀는 검을 반쯤 껴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

“스칼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어요. 즈롯 산악지대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됐대요.”

“다행이군요.”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뭔가요?”

“즈롯 산악지대는 제가 처음 레노지안을 시작한 곳이에요.”

덤덤한 말투였고, 그래서 한서진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처음 시작한 곳이라고요?”

“네, 아마 예전에 스치듯이 말씀드렸을 거예요. 저는 꿈을 처음 꿨을 때 그곳에서 눈을 떴어요. 그리고 여행을 하다가 동료들을 만나고, 포렌 산악지대에서 아서 왕을 만나게 됐지요. 그 뒤는 박사님도 잘 아실 테고요.”

“노신하, 아니 코르비우스 대마도사의 마지막 흔적이 그곳에서 발견되었고요?”

“네. 이건 그냥 우연일까요?”

노신하는 꿈에 관해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는 중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수행을 핑계 대고 잠적한 장소가 하필이면 신효진이 처음 꿈을 시작한 곳이라고?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예사롭지 않다.

“그곳에 어떤 특별한 게 있습니까?”

“전혀요. 역사적 의미나 마법적 이로움 같은 게 일절 없는, 그냥 평범한 산이에요. 대마도사가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한 수행 장소로 선택하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죠. 풍경이 좋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포렌 산악지대가 근처에 있긴 하지만, 그것뿐이에요. 그 어떤 것도 없죠. 심지어 마수조차 거의 출몰하지 않는, 지명을 들어도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평범한 지역이에요.”

한서진은 신효진이 무언가 결심을 정했음을 느꼈다.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아버지를 찾으러 가려고요. 찾아내서 물어봐야지요. 그분이 아는 모든 것에 관해서.”

“효진 씨, 만약…….”

“알아요. 아버지가 아서 왕에게 저주를 건 인물이라면 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신효진은 하얗게 웃으며, 단단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레노지안에서 스칼린은 무적이에요. 누구도 위해를 가할 수 없어요.”

“괜찮겠습니까?”

“스칼린이 가진 마법 저항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면 놀라실 걸요. 아버지를 제압하진 못해도, 아버지한테 당할 일도 없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한서진은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저주를 걸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아마…… 우리가 짐작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즈롯 산으로 그 분이 향하신 데에는.”

“…….”

국토부, 지진관측부서.

“과장님, 이걸 좀 보시죠.”

“뭔가?”

“세 시간 전에 일어났던 지진 말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전체를 뒤흔들었던.”

“아, 그 약진? 몇 초 잠시 흔들리고 말았잖나? 피해도 전혀 없었고. 근데 그게 왜?”

“여기 기록을 보면 그 시각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거의 비슷한 약진이 있었다는데요? 뿐만 아니라 캐나다, 남미도 마찬가지랍니다.”

“……자세히 조사해 봐.”

============================ 작품 후기 ============================

힘든 공직에서 은퇴하고 싶은 노과학자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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