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1 재편 =========================================================================
“이거 혹시……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겁니까?”
니트론이 진지한 눈빛으로 신살검을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다. 한서진은 장난기를 거둔 얼굴로 조용히 끄덕여 보였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아마 효진 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한서진은 경호부대가 격납고에 들어왔을 당시, 미군들이 신살검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들지 못한 것을 설명해주었다.
“저울에는 반응을 했다는 건가요?”
“네, 효진 씨가 직접 저울에 올렸습니다. 그래서 450g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거고요.”
“450g……. 정말 가벼운 무게인데, 아무리 힘을 써도 들어 올릴 수 없다니. 혹시 조금 전 효진 씨가 일부러 탁자를 기울인 건?”
“네, 맞습니다. 탁자에 고정돼 있지 않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서였죠.”
“혹시 한 박사도 직접 해봤습니까?”
“네, 저도 이미 해봤습니다. 꼼짝도 안 하더군요.”
“이 배 외부로 유출한 적이 있습니까?”
“네. 테스트를 위해서였죠.”
“차를 이용했겠지요? 혹시 차를 타고 있는 내내 효진 씨가 들고 있었나요?”
“제 방탄 리무진을 이용했습니다. 효진 씨는 그냥 옆에 내려놨었고요.”
“흠…….”
니트론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서진이 차분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혹시 좌표 고정 같은 것은 아닐까요? 예컨대 칼이 선택한 사람만이 검의 3차원 위치 좌표를 제어할 수 있다는 그런 거 말입니다. 그 물리 수단이 검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행해지든 간에 말이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절대 좌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지구는 자전과 공전 중이니까.”
“교수님, 그 절대 좌표의 범위를 지구에 한정한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흠……. 그런 식으로 설정을 제한한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지만……. 한 박사, 혹시 우리가 대전제를 너무 쉽게 정의를 내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인가요?”
“칼이 선택한 사람만 쥘 수 있다,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니트론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칼이 선택한 존재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칼이 선택하지 않은 존재도 움직일 수는 있다.”
“그게 그거잖습…… 아! 그렇군요!”
한서진은 반박을 하려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탄성을 지르며 끄덕였다. 니트론도 눈을 똑바로 마주본 채 말을 이었다.
“차를 이용했을 때, 어떻게 했다고 했었지요?”
신효진이 검을 쥐지 않고, 리무진 바닥에 그냥 내려놓은 것을 말한 것이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두 손으로 탁자를 쾅 하고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스트해봅시다!”
“실험해보자구요!”
신효진은 아까부터 한 마디도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신효진으로부터 도움을 얻어, 즉시 ‘검을 다룰 수 있는 조건’을 알아내기 위한 테스트에 들어갔다.
“가장 좋은 건 칼과 심층 면담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이나 조건, 제한을 세세하게 듣는 거지만요.”
“칼에 인공지능이나 자아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니 귀납 실험을 통해서 유추할 수밖에 없겠지요.”
“……두 분,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대체 뭘 하시려고요?”
“실험을 하는 겁니다, 실험.”
일단 신효진 외의 사람이 직접 검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그건 구태여 해볼 필요는 없다.
“칼이 놓인 책상이나 받침을 기울여서 떨어뜨리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군요.”
“책상을 옆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군요.”
칼만 떨어뜨리거나, 혹은 칼을 태운 채로 책상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다. 마치 검이 책상을 붙잡고 그 위치를 사수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책상째로 움직이는 것은 안 되면서, 배째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군요.”
배에 출항 지시를 내리자, 배는 어렵지 않게 항구를 벗어나 해역을 한 바퀴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책상째로 움직이려고 했을 때와는 정반대였다.
“그렇다면 검을 태운 물체의 규모에서 오는 차이일까요?”
그들은 검을 대형 화물차에 실었다. 물론 화물차까지 들고 간 것은 신효진이었다. 그리고 니트론이 운전대를 잡았다.
―부아아앙!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차바퀴가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지면과 미끄러진 것이다. 바퀴는 계속 헛돌기만 했고, 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이건 그냥 헛돈 게 아닙니다. 이 바퀴 표면에 열나는 거 보세요.”
“이건 꼭 마치 뭔가가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억지로 제자리에 고정시켜둔 것 같군요.”
바퀴는 헛돌았지만, 마찰계수가 0이 돼서 헛돈 게 아니었다. 굉장한 마찰로 타이어와 지면에서 강한 열이 뿜어지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수십만 톤 이상의 배가 싣고 움직이는 것은 되지만, 몇 톤짜리 화물차에 싣고 움직이는 것은 안 된다?”
“음, 정말 검이 놓인 받침의 규모에서 오는 차이점일까요?”
둘은 잠시 고심하다가, 거의 동시에 신효진에게 시선이 향했다. 지루한 듯이 하품을 하고 있던 신효진은 한꺼번에 두 남자의 시선을 받자 깜짝 놀라서 움츠렸다.
“저, 저는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효진 씨, 운전대 잡아요.”
“네? 하지만 전 이런 대형 화물차는 못 몰아요.”
“페달 몇 초만 밟았다가 멈추면 되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신효진은 떠밀리듯이 운전석에 올라서 페달을 밟았다. 놀랍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물차가 움직였다.
“됐어요! 이제 멈춰요!”
“…….”
황당한 표정이 된 신효진을 뒤로 한 채, 두 과학자는 다시금 고민에 빠져 들었다.
“이상하군요. 운전수가 바뀐 것만으로 이렇게 간단히 움직일 수 있다니.”
“규모의 차이가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자가 운전대를 잡아서 거부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아까 배가 움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
“…….”
둘은 말없이 서로의 눈빛만 쳐다보다가, 별안간 동시에 깨달은 듯이 소리를 질렀다.
“맞아!”
“바로 그겁니다!”
“까, 깜짝이야!”
비명에 가까운 두 남자의 외침에 신효진은 화들짝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남자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화색이 되어서 서로 손을 움켜잡았다.
“칼이 알고 있는 겁니다! 지금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강제로 자기 위치를 이동하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검의 위치를 변경시킬 목적으로 페달을 밟았고!”
“아까 연구함은 전혀 그걸 모르고 출항을 했어요! 왜냐면 선장은 아카식 블레이드를 모르니까요!”
“갑시다! 증명하러!”
두 과학자는 후다닥 이동 준비를 했고, 신효진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검을 품에 안고 따라갔다.
배에 돌아온 그들은 재빨리 선교로 향했다. 한서진이 신효진을 돌아보며 외쳤다.
“효진 씨, 갑판에 대충 던져두고 오세요!”
“네? 그러다가 없어지면 어떡해요?”
“그 칼을 들 수 있을 정도로 고결한 사람이 도둑질 같은 건 하지 않을 겁니다!”
“…….”
농담이야, 진담이야?
신효진은 왠지 맥이 빠져서, 갑판에 검을 대충 던져두고 터덜터덜 그들을 따라갔다.
“출항하세요. 지금 당장.”
“네? 아, 네.”
갑작스런 출항 명령에 선장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배를 움직였다. 초대형 선박이라 그런지 항만을 이탈하는 작업이 아주 천천히 이뤄졌다.
배가 넓은 해역으로 천천히 전진하는 동안, 한서진과 니트론은 깨달음을 얻은 듯이 끄덕이고 있었다.
“음, 그랬군.”
“역시 그런 설정이었군요.”
“자, 한 박사. 이제 해봅시다.”
“네, 교수님.”
“…….”
신효진은 둘이 나누는 대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일들에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한서진은 선장에게 질문했다.
“이거, 배를 어떻게 움직입니까?”
“네?”
미 해군 출신의 60대 선장은 바짝 군기가 든 채 반문했다.
“박사님, 이런 초대형 선박은 그렇게 간단히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초보자가 잘못 다루면 배가 전복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주 조금만 전진할 거니까요. 그것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러시다면야…….”
선장은 머뭇거리면서도 배를 전진시키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한서진이 키를 건네받은 순간…….
“어엇!”
갑자기 배가 미미하게 흔들린 듯했다. 동시에 그들의 몸이 앞으로 쫙 쏠리면서 넘어질 뻔했다. 마치 자동차가 급정거를 한 것처럼 말이다.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난 선장은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이게 어찌 된…….”
“선장. 이 배, 지금 파도와 바람을 거슬러서 전진하던 중이었나요?”
“그렇습니다만…….”
선장은 니트론의 질문에 기이한 불길함을 느끼고 조심스레 대답했다.
니트론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 번 갑판에 나가서 확인해 보시겠소?”
선장은 머뭇머뭇하면서도 갑판으로 나갔다. 잠시 후,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사색이 된 선장이 돌아왔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후후. 어떻던가요?”
“배가, 배가 파도에 떠내려가고 있어요! 스크류가 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스크류가 힘껏 회전하면서 물을 밀어내 추진력을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추진력이 모두 무효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배가 파도와 바람에 떠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현상에 선장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박사님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호, 혹시 이 배에 지금 귀신이라도 붙은 겁니까?”
“귀신 따위가 아니오. 그저 파도와 바람이, 한서진 박사가 차지한 선교보다는 좀 더 고결할 뿐이지.”
“……예?”
“아, 농담입니다. 자, 선장. 나를 따라 오시오.”
니트론은 반신반의하는 선장을 데리고 선교를 나섰다. 상부 갑판으로 향한 그는 갑판 한복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신살검을 보여 주었다.
“저거 때문이라오.”
“네? 무슨 말씀이시죠?”
“한 박사가 이번에 만든 발명품인데…… 저 쇳덩이가 사람 손길을 엄청 탑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 사람이 자기를 움직이는 건 용납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금 전 배가 전진하지 못하고 파도에 떠내려갔던 겁니다.”
“…….”
선장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니트론은 어깨만 으쓱했다.
“자, 아무튼 다시 돌아갑시다.”
선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신살검을 보여준 게 아니다. 선장이 신살검을 인식하게끔 만들기 위해서 보여준 것이다.
둘은 다시 선교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신효진 차례였다.
“효진 씨, 이리 와요. 그리고 이렇게…….”
한서진은 신효진을 불러서 몇 가지를 설명한 후, 그녀를 위해 조타장치를 비켜 주었다.
신효진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선장은 한 번 더 기절초풍하게 된다.
“배가, 배가 다시 전진하고 있습니다!”
“고결한 이가 선교를 차지해서 그런 거라오, 선장.”
마지막으로 선장이 다시 조타 장치를 잡았을 때…….
“으아악! 배가 다시 떠내려가고 있다!”
“역시 선장도 고결하지 못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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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모태솔로만이 나를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