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79화 (479/609)

00479  재편  =========================================================================

신살검이 작아졌다.

신효진은 바닥에 떨어진, 딱 사람이 쥐기 알맞게 줄어든 신살검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상상도 못한 뜻밖의 일을 당해서인지 머리가 멍했다.

‘신살검이 작아지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신살검을 쥐는 시늉을 하면서, 작아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긴 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과 시늉을 시도하자마자 정말로 검이 작아져 버리다니.

단순한 우연일까? 원래 검이 작아지려고 했는데 하필 그 순간 자신이 앞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그런 상상을 품은 것에 신살검이 반응을 보인 것일까?

신효진은 왠지 후자일 듯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기적이 우연일 리가 없다. 더군다나 자신은 레노지안에서 신살검을 쥘 자격이 있는, 왕가의 반려자다.

그런 혈통의 자격을 느끼고, 녀석이 자신의 상상에 반응한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쥐어지기 위해서.

다리를 굽힌 그녀는 천천히 신살검을 쥐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부러진 검날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살폈다.

그때였다.

―위잉! 위잉! 위잉!

요란한 경보음이 쩌렁쩌렁하게 사방을 울렸다. 그녀는 퍼뜩 놀라서 밖을 내다보았다.

격납고에는 여전히 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지만, 외부에는 밝은 조명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육중한 합금문이 강제로 열리며, 무장한 미군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미군 병사들은 신효진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조준 자세를 취하며 총구를 겨누었다.

“꼼짝 마! 손들어!”

친절하게도 한국어였다. 신효진은 엉거주춤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녀는 여전히 신살검을 쥐고 있는 채였다.

미군들은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 지금은 그저 저들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게 유혈을 피하는 길이었다.

아마 격납고에서 전기가 나가자 비상이 걸려서 외곽 경비 중인 미군 병력이 급히 들어온 게 틀림없다.

“이쪽으로!”

미군들은 ‘침입자’가 가녀린 미인이라는 점에 상당히 놀랐지만,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곧이어 미군 병사 두 명이 그녀의 뒤로 돌아가 신살검을 압수하고, 두 팔에 결박을 채우려고 했다.

그때였다.

깡!

신살검이 아래로 떨어지며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검을 뺏던 미군 병사가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마이클, 뭐 하는 짓이야? 똑바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마이클이라 불린 병사는 당황해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신살검을 다시 주워들려고 했다. 그러나…….

“꼬, 꼼짝도 안 합니다!”

“뭐하는 짓이야? 지금 장난하나?”

“이 칼, 너무 무겁습니다! 꼼짝도 안 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여자가 한손으로 들고 있었는데…….”

분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섰다. 그리고 마이클을 밀어내고 신살검을 들어올리려고 했다.

한심함과 자신만만함이 뒤섞여 있던 표정이 곧 일그러졌다.

얼굴이 벌게지며, 목에 핏줄이 곤두섰다. 분대장은 아예 두 팔로 검을 쥔 채 끙끙거리며, 어떻게든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초강력 본드로 바닥에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이,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혹시 바닥에 붙어버린 거 아니야?”

다른 분대원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힘을 합쳐 들어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건장한 남자 수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신살검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신효진은 두 팔이 결박된 채, 당황한 눈빛으로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때였다.

“앗, 효진 씨?”

“왜 효진 씨가 거기에 있나요? 미군이 대체 왜?”

뒤늦게 들어선, Table A 소속 연구원 둘이 신효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미군 현장 지휘자는 당황해서 그들을 돌아봤다.

“아시는 분입니까?”

“한서진 박사님 최측근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프로젝트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시죠.”

“그, 그 말씀은…….”

“네, 여기 관계자입니다.”

지휘자는 얼굴이 급격히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

“죄송합니다! 결박 풀어드려! 어서!”

“예, 써!”

상황을 파악한 미군 병사 둘이 서둘러 신효진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가볍게 손목을 풀며, 미군 병사들을 제치고 신살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간단히 들어올렸다.

“…….”

“…….”

“아니,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방금 전까지 신살검을 들어 올리겠다고 매달려 있었던 병사들은 바보스러운 표정을 짓고 멍하니 바라봤다.

저걸 혼자서 들어 올렸어? 그것도 아주 가볍게?

“으, 으아악!”

기묘한 어리둥절함은 잠시였다.

신살검이 원래 고정되어 있던 지지대를 확인한 두 연구원들은 폐가 찢어져라 놀란 고함을 내질렀다. 한 명은 아예 사색이 된 채, 빈 지지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벌벌 떨었다.

“사, 사라졌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큰 물체를 빼돌리려면 격납고 중앙 통관문을 개방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중앙 통관문은 열린 적이 없다.

그런데 신살검이 사라져 버렸다.

“저…….”

신효진은 신살검을 손에 든 채 난감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지? 아니, 그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서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나중에 조용히 한서진만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효진 씨! 여기 있던 AB,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설마 효진 씨가 여기 올 때부터 없었나요? 어떻게 된 건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세요?”

AB, 보는 눈이 많다 보니 차마 아카식 블레이드라고 하지 못하고 돌려 칭하는 것이다.

“그게…….”

신효진은 엉거주춤 신살검을 든 자세로 머뭇거렸다. 이렇게 바로 눈앞에 있는데 왜 알아보지 못하지?

‘조금 작아졌을 뿐, 모습이 변한 건 아닌데…….’

두 연구원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덕분에 미군 특수부대만 그들의 눈치를 보며, 격납고에서 사라진 뭔가를 찾기 위해 애써 여기저기 수색을 시작했다.

사라진 물체가 40미터짜리 금속 칼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로.

“저, 일단 박사님께 연락하는 게 좋겠어요.”

신살검이 사라졌다.

보고가 올라가자 제주도 미군 기지는 발칵 뒤집혔다. 애꿎은 기지 사령관은 느닷없이 본토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달달 들볶여야만 했다.

―대체 기지 경비를 어떻게 했길래 그런 중요한 걸 분실하나!

신살검의 존재를 알 리 없는 사령관으로서는 억울하고, 또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아닌 밤중에 끌려 나와서 기합 받는 심정이랄까.

사라진 게 뭐냐고 물어보니 특급 기밀이라서 알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차라리 핵탄두를 잃어버렸어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텐데.

미군 기지는 난리가 나서 사라진 신살검을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제주도에 출입한 모든 선박과 항공기를 면밀히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살검을 실을 만한 대형 화물선이나 항공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체크 목록에 올랐다.

“항공기는 왜요? 길이가 40미터가 넘는 금속 구조물이라면서요? 그걸 토막이라도 내지 않는 한 민항기에는 못 실을 겁니다.”

“좌석 싹 다 들어내고 개조해서 실을 수도 있지! 따지지 말고 전부 다 뒤져!”

심지어 40미터짜리 금속 물체를 숨길만 한 공간이 없는 선박도 철저히 조사 대상에 올랐다.

“배수면 아래에 로프로 매달아서 숨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미군들은 잃어버린 물체가 정확히 어떤 건지, 얼마나 중요한 건지도 모른 채, 그저 40미터짜리 금속 구조물이라는 단서 하나만 쥐고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런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는 줄 알 리 없는 신효진은 뒤늦게 한서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수직이착륙기를 타고 한달음에 제주도로 달려왔다.

“효진 씨! 신살……아니, 아카식 블레이드가 사라졌다고요?”

“박사님, 그게요. 놀라지 마세요.”

신효진은 일단 당부의 말부터 꺼내고는, 책상 옆에 비스듬하게 세워놓은 물체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였다.

뭔가 하고 바라보던 한서진은 이내 그 물체의 형태를 알아보고는 표정이 새카맣게 변했다.

“효진 씨,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설마?”

“네, 신살검이에요. 보다시피 이렇게 작아졌어요.”

신효진은 한서진이 저렇게 숨이 넘어갈 듯이 놀라는 모습은 처음 봤다. 언제나 침착하고 차분한 줄만 알았는데,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싶었다.

휘둥그렇게 커진 눈으로 신살검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한서진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신살검이 왜 갑자기 작아진 건가요?”

“모르겠어요. 설마 신살검이 원래 크기로 돌아온 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레노지안은 거인족 차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신살검이 차원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단지 커졌다고 추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서진은 생각이 달랐다.

“이게 신살검의 본래 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신살검이 효진 씨의 에테르 파동에 공명하고 있어요.”

“지금 그게 보이시나요?”

“네, 아주 잘 보입니다. 분명해요. 이 녀석, 지금 효진 씨한테 강하게 반응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마치…… 효진 씨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 같습니다.”

“저를 주인으로요?”

신효진은 신기하다는 듯이 신살검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폈다. 표정에는 어딘지 즐거워하는 기색이 묻어난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아, 그게요…….”

신효진은 어떻게 된 건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낱낱이 설명해주었다. 신중한 태도로 귀담아 듣던 한서진은 그녀의 말이 끝나자 알겠다는 듯이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신살검이 ‘이곳의 스칼린 왕비’의 신체에 맞춰서 자기 크기를 변화시킨 것 같습니다.”

“설마 검이 살아 있다는 건가요?”

“글쎄요, 그래도 자아가 담겨 있는 게 이상하지 않겠죠. 레노지안은 뭐든지 가능한 세상이잖습니까.”

“그런데 레노지안에서도 신살검에 자아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한서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설마 아서도 모르는 신살검의 비밀이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Table A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신살검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입 싹 닦고 모른 체 하고 싶긴 한데…… 그래도 알려줘야겠죠. 협력 관계잖아요.”

“그냥 모른 체 하고 싶다는 말씀…… 그거 농담 같은데 농담처럼 안 들려요. 진짜 같아요.”

“진심입니다. 문제만 안 된다면 진짜 모른 체 하고 우리 둘이서만 독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한서진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탁자 위에 놓인 검을 어루만졌다. 손끝에 닿는 느낌이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

“효진 씨 말고 아무도 들지 못했다고요?”

“네, 그랬어요. 저도 이해가 안 가요. 신살검이 그렇게 무겁지 않은데. 제가 체감하기에는 1kg도 안 될 거예요, 아마.”

“우리가 아닌 다른 인간의 손은 거부하나 보군요.”

한서진은 역시,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나…….

“어, 엄청 무거운데요?”

“박사님?”

============================ 작품 후기 ============================

이유는 간단해. 너는 고결하지 않다는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