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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78화 (478/609)

00478  재편  =========================================================================

“재정감시 TF팀을 언제까지나 임시로 둘 수도 없고 해서 이번에 하나로 합쳤어. 어차피 H컨설턴트와 목적이 겹치기도 하고. 합병 작업도 이제 완전히 다 끝났어.”

“잘했어. 블랙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 중이지. 참, 도원패 대통령은 그럼 이제 어떻게 해?”

“…….”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도원패는 과거 의원 시절 자신을 적대한 것 때문에 한지혜가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지금 그는 자신을 따르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삭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표시되지 않도록 하던가.”

“표시되지 않게 할게. 오빠 말곤 아무도 볼 수 없게끔.”

한지혜는 그러면서 풀썩 웃었다.

“사람 일 참 어떻게 될지 몰라. 도원패 대통령이 오빠 앞에서 그렇게 꼬리를 흔들 줄 누가 알았겠어?”

“너, 오빠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그 얘기가 아니라, 도원패 대통령이 애초에 그런 주변머리가 있는 사람 같았으면 국회의원 시절부터 처신을 잘했겠지. 그래서 대통령 돼도 영영 타협 못할 줄 알았거든.”

한지혜는 팔짱을 낀 채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으며 물었다.

“오늘 저녁에 기획재정부 정책 세미나 간다며?”

“어, 그렇게 됐어.”

“가서 뭐라도 한 마디 해주려고? 아니면 그냥 오빠의 찬란한 깃털 자랑만 좀 하다가 오려고?”

“그건 사람들 하는 거 봐서.”

정치나 경제 등 연구 외의 영역에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던 그가, 요즘에는 제한적이나마 직접적으로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GK그룹의 납품비리.

불량 지뢰탐지기로 불구의 몸이 된 장병들을 본 이후, 그의 행보는 분명한 변화를 겪었다. 연구 외에 일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기재부 장관 심장이 쪼여들겠네. 자기네 행사에 이 나라 왕이 친히 행차하시니 말이야. 그것도 말도 없이 갑자기.”

“내가 무슨 왕이냐? 말해두는데 난 왕 노릇 따위는 할 생각이 전혀 없어.”

“에이, 아무리 싫어도 이미 오빠는 사실상 이 나라 왕이지. 왜 오빠 혼자만 부정해?”

“부정하는 게 아니고, 귀찮아서 그런다. 인정해버리면 이것저것 따르는 책무가 크잖아.”

몇 년 전 멸망한 북한 정권은 말 그대로 세습 왕권제였다. 왕이라고 표기하지만 않을 뿐, 누구나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한서진은 그 이상 가는 왕의 지위를 사실상 누리고 있었다. 국민들도, 해외 선진국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알겠지? H컨설턴트에서 농담으로라도 내가 왕이니 뭐니 하는 그런 말이 퍼져 나오면 안 된다. 골치 아파.”

“걱정하지 마. 애초에 H컨설턴트를 만든 목적이 뭔데?”

“한씨 가문의 명예 빛내기?”

“그러니까 굳이 왕가랍시고 잘난 체 할 마음 없어. 지금은 그게 더 역효과 나거든.”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떠날 기세다. 한지혜도 팔짱을 풀고 급히 따라나섰다.

“어, 오빠. 합병식 뒤풀이는 참석 안 해?”

“내가 참석하면 직원들 불편해서 밥이나 들어가겠냐.”

“그래도 오빠가 아예 자리에 없으면 오히려 의기소침해서 밥맛이 안 날 걸? 이런 큰 잔치자리에 주인이 안 보이면 얼마나 맥이 빠져.”

“맞아요. 잠깐만이라도 참석해요.”

옆에서 송하나까지 거들고 나서자 한서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았어, 진짜 잠깐만이다.”

잠깐만, 이라고 못을 박은 게 어느덧 와인 세 병을 비우게 되었다. 그러니까 혼자서 비운 것만 세 병이라는 소리다.

중간에 송하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며 살피니, 저 멀리에서 회사 직원들과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스럼없이 잔을 부딪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근데 오빠, 신효진 씨하고는 대체 얼마나 친한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술이 확 깨게 만드는 질문이다. 정색을 하고 바라보니 한지혜는 실실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여동생이 취한 눈빛으로 저렇게 웃고 있으니 한 대 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 둘이 너무 가까운 거 같아서. 하나가 뭐라고 안 해?”

“하나도 효진 씨하고 친해.”

“그거야 오빠 때문에 효진 씨하고 일부러 친해진 거지. 그래야 남들이 오빠하고 효진 씨 보기에 안 이상하잖아.”

“…….”

“오빠는 그런 눈치도 없어? 너무하네.”

한서진은 쓰게 웃었다.

신효진과 자신의 관계는 제3자가 보기에 확실히 이상하다. 그녀는 젊고 매우 아름다우면서, 착하고 순수한 여자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끌릴 수밖에 없는.

송하나와 절친 관계라는 사실만 뺀다면, 누구라도 자신과 그녀의 사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둘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을 해명할 수는 없다. 레노지안은 다른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었으니까.

차라리 신효진이 남자친구를 만든다면 그런 불신의 요소가 완전히 소멸할까?

‘왠지 아닐 것 같은데.’

오히려 위장이라고 더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

그리고 신효진이 다른 남자친구를 만든다고 상상하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녀를 특별히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꿈속에서는 부부가 아닌가.

“하나가 현명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거 알지?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말라고 자기가 먼저 나서서 효진 씨도 적극적으로 챙겨주고. 솔직히 하나 입장에서 효진 씨가 뭐가 이쁘겠어? 혹시라도 자기 약혼자 채갈지 모르는 경쟁자인데?”

“…….”

“그러니까 절대로 선 넘지 마. 알겠어?”

“동생아, 참견은 눈물 나도록 고마운데,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될 수도 없어. 동업 관계니까.”

“동업? 무슨 동업?”

“그런 게 있단다. 그러니까 너는 네 연애사업이나 신경 써라. 그리고…….”

한서진은 조금 말끝을 흐렸다가 이내 덧붙였다.

“하나만한 여자 없다는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굳이 강조할 필요 없어.”

잔을 들어서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또다시 생각이 든다.

‘만약 레노지안이 미래, 혹은 과거라면…….’

어쩌면 자신과 신효진은 아서 왕과 스칼린 왕비의 전생, 혹은 환생이 되는 게 아닐까?

신효진도 당연히 그걸 의식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둘 사이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아서 왕과 스칼린 사이에서 생긴 아이 이야기를 할 때라던가.

‘차라리 하나가 스칼린 왕비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무의미한 상상을 그렇게 머릿속에 남기며, 한서진은 술잔을 마저 비웠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은은한 감시 조명만이 켜져 있는 공간에 대낮과도 같은 밝은 불빛이 켜지며, 모든 풍경이 드러났다.

검은 정장을 입은 신효진은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조형물처럼 매달린 거대한 검을 주시했다.

검날의 절반이 부러지고 없는, 손잡이 부위와 일부 검날만이 남은 형태.

지구에서는 아카식 블레이드, 레노지안에서는 신살검이라 불리는 무기.

부러지고 남은 부위만 무려 40미터에 달한다. 아마 온전했다면 그 크기는 80미터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신효진은 신살검의 온전한 모습을 보았기에, 정확한 원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만했었지, 아마…….’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두 손으로 신살검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아마 160cm?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레노지안의 측정 단위는 지구와 다르기에, 자신이 어렴풋하게 느낀 가늠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신살검이 이곳 지구에서는 무려 80미터(완전한 형태일 경우)에 달한다. 5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럼 나, 아니 스칼린 왕비는 이곳 기준으로 대체 얼마나 크다는 거야?’

50배니까 대략 85미터 정도 될까?

‘레노지안이 거인족인 걸까? 아니면…….’

신살검, 그리고 용의 뼈가 차원을 넘어 이곳 지구에 떨어지면서 커졌다거나.

신효진은 신살검을 높이 올려다본 채, 손을 뻗어서 손잡이를 쥐는 시늉을 했다. 멀찍이 시야를 가늠하며, 검을 쥐는 손짓을 해보였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장난처럼 그렇게 손짓을 하고 있으니, 왠지 검 손잡이가 잡힌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효진아,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니.”

대마도사 아버지를 찾는 작업이 수월하지 않다 보니 심란해졌나 보다. 이런 엉뚱한 짓이나 하고.

신효진은 등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서 느껴지는, 미세하게 웅웅거리는 낮은 공명음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멈칫했다가, 그대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검에서 보이지 않는 파동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타탁, 하고 타들어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며 내부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비상 조명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의 전기계통장치가 완전히 먹통이 된 듯했다.

빛이 사라지고, 감시 카메라의 센서마저 꺼져버린 완전히 어둠의 공간.

그 속에서 부러진 신살검이 희미하지만 선명한 은색 광채를 찬란히 발산하고 있었다.

어둠 속의 은빛 섬광.

그 대조된 광경은 꿈속의 한 장면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신효진은 우두커니 선 채 멍하니 신살검을 바라봤다. 전기 계통 고장으로 바깥에서 난리가 났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홀로 고고히 빛나는 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부러진 채 세월에 빛바랜 그 형태마저도 고결하다.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신살검을 향해 한 발자국, 두 발자국씩 다가갔다. 그녀의 접근에 반응하듯 검이 퍼트리는 은은한 떨림이 조금씩 진해지며, 주변에 전달되는 파동이 커져 간다.

그녀는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그에 인사하듯, 검의 모습이 투명해져간다. 그럼에도 빛은 더욱 밝게 변한다.

기이한 환각이 보인다.

검이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자신을 향해 스르르 다가오는 듯한 환각이었다. 은빛을 발하는 투명한 형태가 환각에 더욱 진한 세뇌감을 심어주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눈앞에 떠 있는 손잡이의 환영을 그대로 쥐는 시늉을 했다. 홀로그램처럼 투명한 형태, 아마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고 허공만 스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분명한 감촉이 손안에 쥐어지며 딱딱하게 변했다. 단단하면서도 뜨거운 금속의 감촉이다.

그 선명한 감각에 신효진은 화들짝 놀라며, 몽환에 머무르고 있던 의식이 깨어났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풀어진 채, 급히 뒤로 물러났다.

깡, 하는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뭐, 뭐야?”

겨우 정신이 든 그녀는 눈앞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검을 보고 더욱 기겁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쥐고 있었던 검이, 더 이상 반투명한 형태가 아닌 선명한 모습을 한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신살검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수십 개의 고정 장치와 수백 개의 센서에 에워싸이듯이 고정되어 있던 신살검,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떨어져 있는,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길이의 부러진 검. 이 정황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작아졌어.”

============================ 작품 후기 ============================

“사모님, 저 잡으려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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