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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74화 (474/609)

00474  왕의 검  =========================================================================

법인세 증가안을 놓고 여론은 둘로 나뉜 채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세수 확보 및 개인세와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법인세 증가에 찬성한다는 쪽과, 기업을 보호해야 나라가 산다고 반대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향후 한국의 경제 정체성을 결정하게 될 중요한 토의였다.

그러나 청와대의 진실은 유권자들이 품고 있는 그런 설전과는 전혀 달랐다.

‘보호해줄 필요가 없지.’

도원패는 과거 한서진과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 재벌 기업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 것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더 가소로운 것은, 한서진과 사이가 해소된 것으로 알려지자 그들이 다시금 손을 내밀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법인세 증가 정책을 툭 내던진 이후에는 몸이 잔뜩 달아오른 채 접촉하려 애썼다.

도원패는 법인세 증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그저 웃길 뿐이었다.

세원 형평성? 경제 정체성 재확립?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웜홀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세수 확보가 필요하고, 마침 꼴도 보기 싫은 기업들에게 그 폭탄을 떠넘긴 것뿐이다.

“보좌관님, 법인세 증가는 이 나라 산업에 있어 결코 좋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특히 국제화 시대에서 어느 특정 국가가 법인세를 올려버리면, 자연히 기업은 그 국가를 회피하게 됩니다.”

“본사 이전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물론 저희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만, 앞으로 그것까지 고려하는 기업들이 나올 겁니다. 부디 이 점을 고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기업의 대관 작업팀은 발 벗고 나서서 대통령 측근들에게 접근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의지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눈과 귀, 그리고 손발들은 그런 노력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본사 이전할 거면 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사업 기반이 다 국내에 있으면서 본사 이전은 무슨.”

“보좌관님. 그건…….”

“자금 뺑뺑이 돌려서 세금 회피하시겠다? 어차피 재정감시 TF팀이 그런 건 귀신같이 잡아낼 겁니다. 자신 있으시면 어디 해보시던가.”

“…….”

“VIP의 의지는 확고하십니다. 이 나라 대기업들은 그간 국가의 혜택을 너무 많이 입었습니다. 이제는 좀 되갚을 줄도 알아야지요.”

“그, 그래도!”

“일 년에 몇 억 버는 개인사업자도 38%를 세금으로 내는데 몇 백억씩 벌면서 22%만 세금을 내는 건 말이 안 되죠.”

대통령 측근도, 그리고 대기업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법인세 증가는 부족한 세수를 간단히 확보하면서 동시에 미운 놈들도 엿 먹이려는 대통령의 보복이라는 것을.

과연 대통령은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을까?

세수 확보? 아니면 사적인 보복?

대통령이 등을 돌려버린 지금, 기업들을 건져줄 수 있는 동아줄은 없었다.

일반 국민들이야 법인세 증세에 당연히 찬성할 테고, 한서진 역시 무관심으로 대응할 것이다. 막대한 국채를 지닌 그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국내 세수가 증가하는 것이 채무 담보에 있어 이점이 될 테니까.

연간 이익이 150억 미만인 기업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니, 그들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기업들은 이번 증세 개정안이 최상위 대기업들을 타겟으로 잡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진성그룹 등 상위 10대 대기업은 그야말로 발등을 도끼가 내려찍은 상황이었다. 임원들은 벌써 며칠째 퇴근도 못하고 회사에 눌러앉아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이게 증세 개정안이 시행됐을 경우 우리 그룹이 입게 될 손해 예상치인가요?”

이서나는 핏발이 선 눈으로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며 임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겨우 세금 십 몇 프로 올랐다고 손해가 십조 원 이상이 왔다갔다하는군요.”

“법인세로 나가는 액수만이 손해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상실하게 될 투자 및 사업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다들 대책은 마련하고 있나요? 제가 말했죠. 증세를 저지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방안, 실패하더라도 우리 그룹이 최소한의 손실로 그칠 수 있는 방법 등 모든 변수를 상정해서 대책을 만들어두라고요.”

임원들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이서나는 한숨만 쉬었다.

“정치권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특히 청와대를 반드시 설득해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습니까? 방법을 찾아야지요.”

“대통령의 마음을 직접 돌리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 대통령은 재계에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신빙성이 매우 높습니다.”

“…….”

“…….”

대통령이 재계에 반감을 가졌다는 것. 여기 모인 임원들은 모두 공감하는 바였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한서진과 사이가 틀어졌을 때, 재계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거리를 두었으니까. 당시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봐서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다.

물론 상대 후보의 밋밋함과 선거 진영의 자멸로 큰 이유였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한서진이 아무런 훼방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가 낙선할 것이라 여겼던 재계는 크게 당황했다.

한동안 숨을 죽이고 청와대를 지켜보았지만, 다행히 도원패 대통령은 자기 보전을 하는 것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특별히 나서서 뭔가 일을 벌이려고 하지 않았다.

평양 대참사 때 그나마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재계에 손해를 끼칠 일은 아니었다. 그마저도 한서진이 나서서 해치우는 바람에, 정부는 한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도원패 정권은 곧바로 조기 레임덕에 빠졌고, 재계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도원패는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청와대만 지키다가 물러날 것으로 여겼다.

그랬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김시형 검사 파벌과 짝짜꿍이 되어 적폐 청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한서진한테 굴복하고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면서, 재계는 바짝 긴장한 채 사태를 관망했다.

그리고 결국 폭탄이 터진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 엎드려 비는 한이 있더라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는 것 외에 해결책은 없습니다. 아니면 증가한 세금에 적응하고 살던가요.”

이서나가 냉정한 얼굴로 말하자, 임원들은 다들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엎드려 빌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재계 인사는 전혀 만나주지 않습니다. 측근들이 말을 전달해도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호통을 친다고 합니다.”

도원패가 자신을 외면한 재벌들에게 얼마나 큰 억하심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기업가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정치가를 보내야지요.”

“회장님. 설마……?”

“여당 중진과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제가 직접 만나서 설득하겠습니다.”

임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힘든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출신당과도 으르렁대고 있으니까. 여당에서 망신을 당할 것을 무릅쓰고 재계를 도와주려고 할까?

“최대한 빨리 자리를 만드세요. 그리고……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룹 경영 계획을 전반적으로 다시 조정하세요. 어떤 식으로든 세금은 결국 증가한다 가정하고 준비하세요.”

진성그룹은 이서나의 지휘 아래,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신효진은 꿈속에서 스칼린으로 지내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행복한 환경이지만, 결국 멸망한다는 미래를 알고 있지 않은가.

왕의 품속에서 달콤한 행복을 맛보는 순간에조차, 언제 이 꿈이 다시 종결을 맞을지 몰라 불안했다.

‘리미트리스 드림…… 그 비밀을 풀어야 해.’

과연 저주인가, 아니면 축복인가.

만약 한쪽이 틀렸다면 어느 쪽이 거짓인가.

그 단서를 쥐고 있는 것은 행방이 묘연한 자신의 아버지, 코르비우스 대마도사뿐이다.

왕은 온 대륙에 명을 내려 코르비우스 대마도사를 찾도록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기사와 군인, 마법사들이 대륙 전역을 샅샅이 뒤지며 그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그를 찾아낼 조짐은 비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와 연락될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스칼린은 문득 한서진의 음성을 떠올렸다.

―효진 씨는 어디에 살고 있나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조금 먹먹해진다.

그녀를 저도 모르게 멈칫하게 만들었던 기습 공격이자, 레노지안과 지구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것 같은 질문이었다.

스칼린은 정원을 걷다가 문득 어느 돌 조각상 앞에서 멈췄다.

“응?”

기묘한 낯설음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딱히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무언가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돌 조각상을 천천히 살폈다.

사람 키에 달하는 높이를 한, 용을 조각한 상.

날개를 활짝 펴고 두 앞발톱을 높이 세워 움켜쥐고 있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듯 역동성이 넘친다.

겉보기에는 수려한 예술작품, 그 이상도 아니다.

하지만 스칼린은 기억 날 듯 말 듯한 이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뭔가, 내가 놓치는 게 있는 것만 같은…….’

수백 번도 넘게 거닐었던 정원이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혹은 잠시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아름다운 왕비의 삶을 조요히 느끼고 싶을 때, 그럴 때면 언제나 이 정원을 찾았다.

지금 이 용의 석상도 수도 없이 마주치고, 보고, 쓰다듬었다.

그런데 무엇일까?

무심결에 놓치고 있는 위화감이 대체 어떤 것일까?

찬찬히 용의 석상을 살피던 스칼린은 어느 순간 앗 하고 놀란 탄성을 질렀다.

“맞아! 내가, 분명히……!”

그제야 기억해낸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석상의 입 부위를 어루만졌다. 날카롭게 돋아난 이빨 하나하나까지 모두 예리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석상의 이빨을 모두 확인했다.

어느 것 하나 흠집 없이 완벽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박혀 있던 어느 대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용 석상이 그렇게 귀중하다고?

―그렇사옵니다, 왕비 전하. 대륙 제일의 석공 장인이신 휀 리버 경께서 말년에 이르러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왕가에 하사하신 것이옵니다. 그 예술성과 희소성은 그 어떤 석공예품과도 견줄 바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구나. 보존을 잘못하여 석상의 이가 모조리 부러졌다니…….

오래 전, 이 정원에서 시녀와 다과를 나누며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 그 시녀는 분명히…….

―저것은 손상된 게 아니라 본래 휀 리버 경께서 그리 조각하신 것이옵니다. 싸움에 패배한 용의 마지막 발악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녀는 흙빛이 된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몇 번이고 확인해도, 용 석상의 이빨은 어느 것 하나 잘못된 게 없이 건재하다.

그렇다고 석상이 바뀐 것도 아니다. 성한 이빨을 제외하면 생김새도, 위치도, 그 모든 게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명작품이 틀림없었다.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이건…… 내 꿈이 아니야.”

그녀의 꿈에서 석상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을 뛰어넘었다 해도, 본래 부러진 채 존재하던 이빨이 다시 돋아날 리는 만무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조각된 석상이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 다른 누군가의 꿈이야.”

============================ 작품 후기 ============================

응실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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