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60화 (460/609)

00460  애국의 길  =========================================================================

“연준위를 통한 화폐발행권 지배는 그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득이었습니다. 그걸 사실상 빼앗겼는데, 그들과 저 사이에 진정한 화해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요?”

“박사님.”

“쿨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 배포를 지닌 자들이라면 애초에 그런 과욕을 부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페이 차일드는 한서진이 품고 있는 분명한 의도를 읽었다.

헬기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가 아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였다.

하물며 여명의 빛 프로젝트가 통제 권한이 분산되면서 일어난 불운의 사고라는 점은, 그를 제지할 수 있는 마지막 브레이크마저 풀어버린 것이다.

“오로지 돈만을 위해서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 전쟁, 그리고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는 이들이라면, 차라리 완전히 몰락하는 게 미국 입장에서도 낫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페이 차일드는 CIA의 이상과 가치를 떠올렸다.

요원들이 첩보를 수집하고 해외 공작을 실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

이런 판이 벌어진 상황에서, 진정으로 미국을 위하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페이 차일드는 질문했다.

“미국을 아예 휘어잡으시렵니까?”

한서진은 미국 최고의 셀럽이자 보물이지만, 지금까지 미국 정계에 영향력을 직접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워싱턴의 큰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게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 더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페이 차일드는 한서진이 그런 위대한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보았다.

아쉬운 것은 그가 미국 출신이 아니라는 점. 개헌을 하지 않는 한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박사님…… 변하셨습니다.”

페이 차일드는 솔직한 감상을 토로했다.

그는 분명히 변했다.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묘한 부분이지만, 그 차이점이 이전의 그와 지금의 그를 현저하게 나누고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욕심, 그것이 느껴진다.

“미국을 위해서라도…… 박사님을 테러한 배후는 그들이 되어야겠군요.”

“그들의 미래까지 짓밟을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더 이상 미국과 세계의 미래에 자리를 차지할 수만 없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매우 자비로우십니다.”

페이 차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최초의 웜홀 설치 지역을 놓고, 한미 여론은 뜨겁게 들끓어 오른 상태였다. 한서진 헬기 추락사고(대중에는 줄곧 사고로만 알려져 있었음)에 대한 관심마저 한순간에 돌려놓을 정도로 매우 뜨거웠다.

특히 한국은 첫 지역 선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영구 웜홀을 처음으로 설치하는 지역이 장차 한국을 대표하는 웜홀 허브의 중심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웜홀 구역을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다.

웜홀 구역을 유치할 수만 있다면, 그 지역은 장차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물류 허브의 중심지역이 될 수 있으니.

―SJ게이트는 각 국가마다 웜홀망을 구성하고, 그 국가들의 메인 허브끼리 다시 묶는 방식으로 전 세계 웜홀 허브 망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쌍의 웜홀이 서로 폐쇄적인 이동형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피라미드식 구성은 어쩔 수 없을 것.

―한국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는 많은 웜홀이 필요 없다. 때문에 메인 허브를 차지하는 지역이 장차 한국의 물류를 대표하는 지역이 될 듯.

예를 들어 A라는 도시에 메인 허브 지역이 있다고 가정하자. A에는 전국으로 이어지는 모든 웜홀이 존재하게 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A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부산으로 연결된 웜홀을 타고 이동한다. 이런 방식이다.

당연히 허브로 선정된 A 지역의 가치는 폭등하게 된다. ‘환승역’이 있는 지역의 땅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경제 원리니까.

“양심적으로 서울, 경기는 경쟁에서 좀 빠집시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인구 절반을 쓸어 담은 주제에, 거기서 뭘 더 해먹으려고 그러는지?”

“물류하면 부산 아닌가? 당연히 부산이나 인근 지역을 허브로 선정해야 한다!”

“무슨! 당연히 우리 인천을 택해야지!”

“지역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 강원도를 허브망으로 선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오.”

“행정수도인 세종시를 키웁시다!”

지방단체들은 사활을 걸고 나섰다. 어떻게든 메인 허브로 선정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최초는 어느 영역에서든 중요한 법, 하물며 한 번 허브로 선정되면 반영구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적 허브 지역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경쟁에서 밀려선 안 된다. 그런 초조함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토박이 주민들의 의욕까지 불태웠다.

많은 논란 속에, 첫 웜홀을 개방할 장소가 선정되었다.

그 역사적인 장소는 바로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한국의 평성 지역(평양보다 다소 북쪽에 위치)으로 결정이 났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창 건설 중인 종합 첨단연구공단, 즉 H월드에 포함되는 지역이었다.

평양 바로 근처에 짓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럼 한서진의 사택 주변이 너무 혼잡해진다는 지적 하에, 한국의 웜홀 허브가 다소 북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웜홀 허브가 H월드에 포함되자 많은 이들이 허탈해했지만, 특별한 반론은 없었다.

“어찌 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지. 그냥 마음을 내려놓자.”

“근데 왜 국내 연결망이 아니고 한국―미국 연결망이 우선적으로 결정난 거지?”

“그거야 국내에는 아직 관련법이 제정되지 않았으니까. 북쪽 지역은 특별법으로 관리되는 지역이니 특별히 다른 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 웜홀 이론이 발표된 게 언젠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아직도 관련법 제정을 안 했대? 미국 의회는 옛 저녁에 발 빠르게 움직였더만.”

평성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드디어 첫 웜홀이 설치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평성에는 한서진과 도원패 대통령이, 그리고 캘리포니아에는 주지사와 크리스 대통령이 직접 참관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과 기업인, 그리고 학계 관계자들이 귀빈으로 참석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에서도 참관을 원하는 자들의 신청수가 폭주를 일으켰다.

역사적인 날, 평성에 모인 사람은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시작합니다.」

진행을 맡은 연구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멀리까지 크게 울렸다.

기계를 작동시키자 웜홀 주문이 새겨진 반도체가 에너지를 내뿜었고, 곧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찢어지며 눈부신 섬광이 튀어나왔다.

그 현상은 캘리포니아의 공터에도 동시에 일어났다.

허공이 찢어지며 똑같은 틈이 만들어지고, 그 틈으로 양국의 풍경이 겹치며 통과하는 모습이, 취재진에 의해 전 세계에 낱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마침내 웜홀이 완전히 개방되자,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양쪽 참관자들은 세상이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를 교환하며, 9천km가 넘는 거리가 0으로 줄어든 것에 찬사를 보냈다.

―시청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첫 실용화 웜홀이 드디어 개방되었습니다!

―SJ게이트 측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웜홀은 반영구적으로 유지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이번 웜홀은 전의 실험 웜홀과 달리, 보다시피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이등변삼각형 같은 형태입니다. 이는 차량이나 사람의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함이며, 웜홀 통제 장치를 통해 크기나 형태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합니다.

―최초의 영구 웜홀은 아쉽게도 당분간은 민간 활용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웜홀 자체의 보안과 경비, 그리고 테러나 밀수의 위험성을 확실히 걸러낼 수 없다는 점 때문인데요. 당분간은 미군이 양쪽 웜홀을 엄격하게 통제 및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최초의 영구 웜홀을 통과한 한서진은 크리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그 모습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이미 웜홀 이론 발표에서 처음으로 웜홀을 공개한 적이 있지만, 세계인들이 받아들이는 심정은 그때와 달랐다.

머나먼 미래가 생생한 현실이 되어 자신들의 옆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벅찼다.

“앞으로 양국을 지리적으로 이어줄 빛의 길이 탄생한 것을 축하하며, 한미 양국의 진정한 화합을 기원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서진이, 미국에서는 크리스 대통령이 나서서 짧은 축사를 읊었다.

인류 문명이 커다란 변혁의 흐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선언하는 축사였다.

카이어 유쉘 로스차일드는 세기적인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채, 자택에서 TV를 통해 지켜봐야만 했다.

로스차일드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그는 본래 저곳에 당연히 초청받아야 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가문의 다른 이가 귀빈석 한 석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SJ게이트는 가문 인사, 그리고 가문과 관련된 투자기관 일체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로스차일드뿐만 아니라 록펠러 등 과거 화폐발행권을 쥐락펴락했던 가문과 그 관계자들은 일절 초대받지 못했다.

측근들은 연준위 사건 때 남은 어색함 때문일 것이라며 위로했지만, 카이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경고다. 앞으로 있을 거대한 해일을 미리 예고하는.

“설명하게.”

카이어가 돌아보며 지시를 내리자, 중년의 백인 남자 비서는 송구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CIA가 우리를 의심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라면,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가?”

“연준위 지분을 잃은 모든 가문입니다.”

“…….”

“CIA 내에 닿아 있던 우리측 라인이 움직인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미스터 마르틴과 간신히 연락이 닿아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르틴. 그는 CIA의 부국장 바로 아래급 인물로, 로스차일드 재단의 장학생 중 한 명이었다.

“재단측 라인이 한서진 박사 테러에 관계된 정황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확실한 물증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CIA가 의심을 굳히기에는 충분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르틴은 앞으로는 더 이상 도와주기 어렵겠다고 했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냐, 자중해야 할 시기에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거냐, 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들었지만, 비서는 그것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CIA 등 정보 조직에 오랫동안 구축한 인맥이 붕괴하려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계 인사들도 슬슬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는 로스차일드에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FBI가 차티스 은행을 털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차티스 은행을?”

이미 연방은행 외에도 두 개의 대형 은행을 빼앗겼다. 그리고 차티스 은행은 현재 가문이 미국 내에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은행이었다.

“내부자 거래, 불법 예치금 운용, 투자자 기망행위 등 여러 가지로 걸고넘어질 것 같습니다.”

“결국 다시 싸우자는 거군.”

카이어는 신음을 흘렸다.

한 차례 전쟁 후 맺은 강화 협정이 파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자신들은 전쟁에 나설 만한 힘을 쌓지 못했다.

그는 TV를 주시했다. 미소 짓고 있는 크리스 대통령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서클이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최후의 무기.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고양이 귀를 물어뜯을 때가 왔군.”

============================ 작품 후기 ============================

“대통령, 드디어 당신이 나설 때요!”

“OK.”(철컥)

“으아아악! 왜 나를!”

“퐈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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