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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59화 (459/609)

00459  애국의 길  =========================================================================

여명의 빛은 수없이 많고 작은 다양한 작전 매뉴얼과 경우의 수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서진의 포용’이라는 유일 명제 하에 다양한 대명제가 존재하고, 그 대명제들 아래 또다시 중명제가 존재하며, 중명제는 다시 소명제로, 소명제는 또다시 소소명제로 갈리는 등 정교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각각의 매뉴얼은 때로는 서로 수직적, 때로는 수평적으로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며, 궁극적으로 미합중국 전체가 유일 명제를 수행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유일 명제의 존재 및 의의를 알고 있는 것은 실바토르와 로베르토 부국장이었다.

제아무리 살아 움직일 수 있게끔 구성한 공작 매뉴얼이라 해도, 최종적인 통제권만큼은 인간이 다뤄야 하기 때문에, 로베르토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한서진 박사는 미국의 품으로 완전히 들어왔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네. 불과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지.”

“…….”

“자네는 유능한 요원이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했을 걸세.”

페이 차일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한서진이 귀화함으로써 여명의 빛은 끝났다.

그러나 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반환점일 뿐이었다. 한서진을 온전한 미국 시민으로 붙들어두기 위한 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화폐 자본가들, 끊임없이 그를 원하고 러브콜을 보내는 타 강대국들, 그를 둘러싸고 움직이는 첨예한 경제의 흐름…….

“결혼식을 올렸다고 다 끝이 아니지. 백년해로하기 위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야.”

“…….”

“그러나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네. 나는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신임 부국장은 여명의 빛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만.”

“지속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겼다고 했지, 그게 한 명이라고 하지는 않았네.”

페이 차일드는 퍼뜩 든 생각에 흠칫 놀랐다.

“설마 최종 권한을 여러 개로 쪼갠 것입니까?”

“분산된 권한을 세 명에게 넘겼네. 신임 부국장은 그중 한 명일 뿐일세. 다른 두 명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맡은 권한의 실체적 형태를 알지 못하네. 그저 특급 기밀 작전의 하나인 줄로만 인식하고 있지.”

“…….”

“어쩔 수 없었네. 온전한 권한을 넘긴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한서진 박사와 우리 미합중국의 관계를 마음대로 파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그런 절대적인 권한이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것은 막아야 했네.”

“아까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하지 않으셨습니다.”

페이 차일드는 분명히 물었다.

어째서 한서진을 수용하기 위한 매뉴얼이 오히려 한서진의 목숨을 노린 것이냐고.

매뉴얼의 내용을 수정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게 한서진을 위협한 것인가.

“혹시 실바토르는 뭐라고 하던가?”

“여명의 빛의 내용이 직접 수정된 게 아니라면, 아마 사고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도 사고라 생각하네.”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렇게 정교한 첩보 공작 매뉴얼이 그런 얼토당토않은 사고를 일으킨단 말입니까?”

페이 차일드는 옅은 조소를 담은 채 반문했다.

예술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첩보 공작이라고 했으면서, 정작 권한이 분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표적 자체를 착각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로베르토는 쓴웃음을 지으며, 페이 차일드가 보여준 조사 자료의 어느 한 부분을 짚었다.

“바로 이걸세.”

“설명해 주시죠.”

“한 박사의 헬기에 가해진 이 공작…… 이것은 여러 단계의 실행과 책임의 분산을 거쳐, 마치 재수 없는 사고들이 맞물려서 일어난 것처럼 위장하게끔 되어 있지. 그 준비 기간도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확실하지.”

“…….”

“이건 바로 여명의 빛의 하위 공작 카테고리 중의 하나일세. 그리고 이 공작의 목적은 ‘한서진 박사의 헬기’이지, ‘한서진 박사가 탄 헬기’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장난 같지도 않은…….”

페이 차일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반문하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한서진의 헬기. 한서진이 탄 헬기.

그 두 서술에 담긴 유의미한 차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설마 헬기에 대한 공격의 진짜 표적은 한서진 박사가 아니라 화폐 자본가들이었습니까?”

“정확히는 한서진 박사와 미합중국의 사이를 훼방 놓는 적을 표적으로 삼는 공작이었네. 이번에는 화폐 자본가들이 그 역할을 맡았을 뿐.”

페이 차일드는 비로소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화폐 자본가들의 사주로 헬기에 테러 공작이 가해지고 그것이 발각되면, 한서진은 그들에게 분노를 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쓸어버릴 명분을 얻는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톱니바퀴 하나가 어긋난 거지.”

“하필 한 박사가 탑승했을 때 최종 스위치가 눌려진 건가요.”

“원래라면 탑승 전에 주한미군 정비팀의 감시망에 의해 당연히 발각되어야 하는 게 맞네. 그런데 미군의 감시망이 여명의 빛의 설정된 예상보다 촘촘하지 못했던 것 같네. 아마 그래서…….”

“그만큼 여명의 빛이 철저했다고 봐야 하는 겁니까?”

“어느 쪽이든 간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건 사실일세. 실바토르 그 친구가 끝까지 관리했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았을 테지.”

실바토르, 로베르토, 두 권한자의 연이은 은퇴. 그리고 정지되지 않은 채 분산된 책임 권한.

그런 악재가 겹쳐서 이런 있을 수 없는 사고를 낳았다.

페이 차일드는 차분히 노려보다가 발음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물었다.

“진정한 이유가 뭡니까? 화폐 자본가들이 정녕 한 박사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습니까?”

“…….”

“아니면 한 박사가 그들을 공격하게끔 동기 부여를 해주기 위해서였습니까?”

화폐 자본가들은 당장 한서진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명의 빛은 그들을 훗날의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한서진이, 미국이 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난 설계자가 아닐세. 그 이후의 일까진 알지 못하지. 그리고 실바토르의 손에서도 오래 전에 떠난 일이고.”

두 권한자의 책임을 떠난 계획. 그리고 책임실무자들은 그 진정한 실체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계획.

“일개 첩보 작전이…… 말 그대로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군요.”

로베르토 전 국장과 헤어진 페이 차일드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고뇌를 거듭했다.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첩보 프로젝트, 그리고 책임자의 궐석으로 어긋난 오류, 그로 인해 야기된 사고. 이것이 바로 이 사건의 본질이었다.

‘여명의 빛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사고가 생긴 셈인가.’

여명의 빛은 미군의 감시망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미국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첩보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기에 가한 공작이 사전에 발각되어야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한서진 박사가 화폐 자본가들을 쓸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페이 차일드는 자꾸만 그런 상상이 들었다.

한서진의 행보에 방해만 되는 세력, 그들을 쓸어버리게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그런 수작을 부린 것이라고.

통제권자가 없는 무형의 매뉴얼이 그런 목적 하에 움직인 것이라면,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굳이 상부에 보고할 필요는 없겠지. 안 그런가?

로베르토가 조소를 지으며 남긴 당부가 페이 차일드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실바토르와 로베르토. 그 둘은 악인도, 배반자도 아니다.

진정한 미합중국의 미래를 위해서, 한서진과 결코 떨어지지 않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이라면 그게 누구든 간에 해롭다고 여기는 것뿐이다.

여명의 빛은 그 둘의 사상을 소름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오랜 번뇌 끝에 그는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세연동 저택 정문을 넘을 때,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슴이 떨렸다.

“오셨습니까?”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한서진은 반가운 태도로 그를 맞아 주었다.

“소득이 있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결론을 말하자면 테러가 아니라, 테러로 위장하려고 했던 사고입니다.”

페이 차일드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한서진은 아무 표정의 변화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페이 차일드의 가슴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설명을 하면 할수록, 좋지 않은 예감이 가슴을 스쳤다.

“……이상입니다.”

모든 말을 마쳤지만, 한서진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한서진은 조용히 일어났다. 독한 증류주를 가져온 그는 잔을 두 개 꺼내어 따랐다. 그리고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요원님, 제가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정도로 치밀한 테러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 자들이…….”

“박사님을 끝까지 적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더 큰 손해를 낳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지요.”

“연준위를 잃은 자들이 억하심을 품고 오랫동안 준비한 테러라고 보면,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다는 말도 했었지요.”

“네, 기억납니다.”

“저도 그동안 나름대로 조사를 했었습니다. 다만 저는 디지털은 몰라도 아날로그 정보 수집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어, 요원님처럼 정확한 표적까지 닿지는 못했습니다.”

한서진은 술을 반잔쯤 마셔버리고는, 서늘한 눈으로 페이 차일드를 주시했다. 그 무덤덤한 눈빛에서, 페이 차일드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마치…… 미국 내에서 저를 적대하는 부호 세력들을 당당히 쓸어버리라고 깔아준 판이 아닐까 하고요.”

“…….”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요. 저는 정말로 죽을 뻔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원님께서 지금 그 어긋난 조각 하나를 제대로 맞춰 주셨군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주변 공기를 휘감았다.

한서진, 그의 눈동자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조그맣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페이 차일드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손끝이 떨리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사님, 제가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고 박사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러 온 것은…….”

“제가 서클을 짓누르기를 원해서가 아닌가요? 서클의 존재는 결국 미국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까요.”

페이 차일드는 천천히 끄덕이며, 그의 말을 인정했다.

오랫동안 화폐 발행권을 미국과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해온 화폐 자본가들. 그들의 탐욕은 한서진이라는 거대한 벽을 만나 잠시 좌초했을 뿐, 결국에는 다시금 그 욕망의 꽃을 피울 것이다.

그래서 페이 차일드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한서진이 그들이 재기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한서진은 완전한 조각이 맞춰지기도 전에, 이미 자신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실바토르의 큰 구상?’

============================ 작품 후기 ============================

“아니, 원래 내가 짠 계획은 맞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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