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56화 (456/609)

00456  배후는 어디에  =========================================================================

「러시아 실행 가능성 9.8%」

「일본 실행 가능성 13.5%」

「프랑스 실행 가능성 5.2%」

「미국 실행 가능성 92.5%」

한서진은 주모니터에 떠오른 결과를 조용한 눈으로 응시했다.

헬기 테러 경위를 타르타로스 2가 자체적으로 수집한 데이터에 의존해 분석한 결과였다.

실행 가능성이란 테러를 저지를 의사나 동기, 이유를 불문한 채 테러 행위 자체를 성공적인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지만을 따진 것이다.

실행 가능성이 낮게 나온 국가들은 테러에 대한 의지와 별도로, 헬기에 가한 공작 행위를 성공으로 마칠 가능성이 무척 낮게 나왔다.

여기에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한서진을 제거해야 하는 의욕까지 따져 보면, 그들이 헬기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테러를 성공시킬 가능성 자체가 너무 낮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헬기 테러를 한국대 반도체 공학부 수석 합격에 빗댄다면, 러시아를 위시한 다른 나라들은 합격할 실력 자체가 없다. 합격을 원하는 의지와 별개로, 공부를 못한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은 유일하게 합격을 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합격을 원하는 의지와는 별개다.

「미국 첩보 기관의 개입 가능성 98.5%」

부가 결론에 한서진은 팔짱을 낀 채 이마를 찡그렸다.

미국이 테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첩보 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CIA 같은 기관이 유리하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은 미국뿐…….’

그리고 미국에는 충분한 동기마저 있다.

바로 화폐 자본가들, 자신 때문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 정지원의 말처럼 웜홀 실용화로 뒤쳐질 것을 두려워한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부족했던 테러 의욕에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까.

‘정말 이게 전부일까?’

대강 보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하지만 한서진은 찜찜한 몇 가지를 끝내 떨치기 어려웠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적대했어야 했느냐는 의혹이다.

아무리 사람이 욕심과 복수심에 눈이 먼다 해도, 이렇게까지 어리석은 짓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하물며 소수가 아닌 다수의 집단이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또 철저히 모든 것을 은폐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게 멍청한 놈들이라면 사전에 이미 걸렸을 텐데. 첩보 기관이든 나에게든.’

페이 차일드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헬기 테러 공작은 예술의 정점에 가깝다. 아름다울 만큼 치밀하고, 철저하게 모든 실행과 책임이 분산되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한 박사님.”

한서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사색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자 페이 차일드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부르셨습니까.”

“앉으세요.”

페이 차일드가 자리에 앉자 한서진은 몸을 살짝 내밀며 이야기를 꺼냈다.

“제 생각도 요원님 견해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제가 당한 테러, 그것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미국만이 유일하죠. 다른 나라들은 못합니다.”

“억울하게 여겨야 합니까, 뿌듯하게 여겨야 합니까.”

“뿌듯하게 여기셔도 될 겁니다. 저는 미국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니까요.”

“모든 미국인들이 같은 뜻과 목표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 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압니다. 미국 내에서 저를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요. 특히 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반대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겁니다.”

한서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필이면 그 극소수가 미국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요.”

화폐 자본가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페이 차일드는 어색한 미소로 다른 점을 지적했다.

“미국의 중추 위인들 중에는 박사님을 지지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 점 역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한서진은 팔짱을 끼며 말을 꺼냈다.

“요원님은 헬기 테러 공작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하셨지요.”

“정확히는 저의 의견이 아니라, 우리 CIA 조사부의 감상입니다. 암살 공작으로서는 정점을 넘어서는 치밀함과 예술성을 겸비한, 그야말로 오랜 인내와 정교한 계획 끝에 이뤄진 하모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테러의 배후는 매우 머리가 좋은 자들이겠군요. 끈질긴 인내심과 손익을 철저히 구분할 줄 아는 합리적인 두뇌를 지녔을 테고요.”

“그렇겠지요.”

“사소한 물질적인 원한이나 보복심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를 정도로 어리석은 이들은 아니겠지요.”

페이 차일드는 한서진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슬슬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박사님을 공작할 능력이 되는 이들은, 애초에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로 합리적이고 능력 또한 갖춘 이들은 저를 적대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훨씬 합리적이지요. 당장 크렘 회장님을 보십시오. 저와 함께 하면서 그분은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나요?”

“…….”

“저는 그 점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썩 개운치가 않습니다.”

한서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듯이 덧붙였다.

“이 테러…… 저 때문에 크게 손해를 본 자들이 CIA 내부 세력과 결탁해서 벌인 거라고 보면 앞뒤가 적당히 맞아 떨어지긴 합니다. 하지만…….”

“모양만 그럴싸하다는 겁니까.”

“뭔가 다른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군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페이 차일드의 표정은 어느새 완전히 바뀐 채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듣고 보니 박사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저 역시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드는군요.”

그 정도로 치밀한 이들이라면 암살이 아닌, 좀 더 안전하고 쉬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낫다. 페이 차일드는 그 점을 진지하게 상기했다.

페이 차일드는 외부 교섭 임무를 주로 담당하는, 신분이 노출된 화이트 요원이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정보를 취합해서 분석하는 데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위험한 필드 임무 대신, 안전한 후방에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동시에 공식 활동을 맡아 하는 것이다. 그는 CIA의 귀중한 두뇌였으니까.

한서진의 테러에 관련해서 속속들이 모이는 정보를 취합할수록, 그는 섬세한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들은 그야말로 프로 중의 프로였다. 유의미한 흔적을 결코 남기지 않았다.

남아 있는 흔적을 필사적으로 추적한 결과,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문을 어렴풋하게 향하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페이 차일드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화폐 자본가들을 향한 흔적은 눈속임일 뿐이다. 녀석들의 몸통은 깊이 감춰진 채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정말 미합중국 정보기관의 공작인가?’

미국에는 CIA, NSA, DHS 등 첩보를 취급하는 다양한 기관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정보기관이 아니고서는, 한국에서 한서진을 상대로 이런 공작을 성공시킬 수 없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꼽으라면, 전문 요원이 분석한 것처럼 CIA를 들 수 있었다.

‘우리 CIA 내부에 배신 세력이 있다.’

지금까지는 추정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확신 상태에 이르렀다.

모든 정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물증, 남을 설득하기 위한 증거만을 아직 못 찾았을 뿐이다.

오싹 소름이 돋는다.

CIA는 거대한 기관, 그 안에는 당연히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파벌이 존재한다. 국익 수호라는 명제를 가지고 움직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데에서 저마다 스탠다드가 조금씩 다른 법이다.

한서진을 해하는 것만이 진정한 국익 수호라 생각하는 이들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한서진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그가 미국 내에서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먼 우려지만, 미국이 구축한 민주주의 질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거듭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다만 한서진으로 인해 얻는 이익이 분명히 막대하기에, 그를 반대하지 않는 것뿐.

침묵하는 소수 중에 한서진의 제거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들이 과연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페이 차일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만약 정말 CIA 내부에 적이 있다면, 누구를 믿고 의논해야 하는가?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다.’

동료를 의심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일의 사안이 막중한 만큼, 철저히 신중해져야 했다.

십 년 넘게 함께 해온 절친한 동료가 속으로는 한서진에 대한 칼을 품고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페이 차일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인물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은퇴한, CIA의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 정보 분석 능력과 대공작을 세우는 데 있어 가히 신의 경지라 불리는 설계 능력을 지닌 사람.

실바토르 브리아탄.

“어서 오게.”

마이애미의 어느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던 실바토르는 웃는 얼굴로 페이 차일드를 맞이했다. 60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정정했다.

“오랜만에 보는군. 내가 은퇴하고 처음이지, 아마?”

“은퇴하기 전보다 혈색이 더 좋아지셨습니다. 당장 현역으로 복귀하셔도 무리가 없겠는데요.”

“아아, 내 시대는 이제 저물었어. 이제는 자네들의 시대지.”

실바토르는 낚싯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실은 선배님의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네, 비공식적으로. 당연히 외부에 알려지면 전 징계입니다. 내부 정보를 흘린 셈이 되니까요.”

“흐음,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네가 나서다니……. 혹시 한서진 박사 일인가?”

역시 전설은 그 위명답게 눈치가 빨랐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자네가 은퇴한 나를 찾아올 정도면 CIA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이야기일 테고…… 속 터놓고 이야기를 할 사람이 얼마 없나 보지? 뭔가 확신하는 바는 있는데 물증은 찾지 못한 모양이군. 최근 한서진 박사에 신변에 생긴 큰 사건이 그러고 보니…….”

자신이 비공식적으로 찾아온 것 하나만 가지고도 벌써 많은 것을 유추해내고 있다. 페이 차일드가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별안간 그의 얼굴이 굳었다.

“혹시 전의 그 헬기 추락, 사고가 아니라 테러인가?”

“예, 맞습니다.”

“……설마 CIA 내부 소행인가?”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중입니다.”

실바토르의 안색이 새파랗게 경직되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서 불을 피워 물었다. 페이 차일드는 차분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네.”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작전명 ‘여명의 빛’이 실행된 것 같네.”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에 페이 차일드의 안색도 굳어졌다. 얼핏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여명의 빛 작전이라고요?”

“바야흐로 4년 전……. 맥플과 H반도체가 ‘비글’ 반도체를 개발했을 때부터 세워진 작전이었지.”

“비글이라면…….”

오래 전에 은퇴해서 이제는 까마득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래, 최초의 에테르 반도체. CIA가 그 존재를 감지했을 때부터 수립되기 시작한 작전일세.”

============================ 작품 후기 ============================

오래전부터 자네를 쭉 지켜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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