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55화 (455/609)

00455  배후는 어디에  =========================================================================

헬기 추락은 사고로 발표되었다.

여론은 의심의 시선을 보냈으나, 감히 한국 땅에서 한서진이 탄 헬기를 공격할 수 있는 주체가 누가 있겠느냐는 지적에는 반박할 논리가 부족했다.

한국과 미군이 경호를 책임지는 인물인데, 누군가의 공작으로 헬기가 추락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그런 국가 최고 VVIP의 헬기 정보를 어떻게 했기에 그런 사고가 벌어졌냐는 비판이 일긴 했다. 어떻게 보면 테러였을 경우보다 더 날선 비난이 쏟아졌다.

“한서진 박사가 타고 다니는 전용 항공기가 그 모양인데, 우리 같은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항공기나 선박은 얼마나 위험하겠냐.”

“그러니 빨리 웜홀 게이트를 도입해야 한다.”

우습게도 웜홀 게이트 도입을 서두르자는 여론으로 변질되자, 그런 것을 노린 한서진의 큰 그림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한편, 헬기 조종사가 마지막까지 기체 통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끝내 숨졌지만, 덕분에 한서진을 비롯한 다른 탑승자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는 훈훈한 미담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서진은 장례식장에 직접 조문을 와서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그의 조문 소식이 사전에 알려지자 온 사방에서 앞을 다투어 조문을 하러 몰려들었다. 장례식장은 무수한 근조화환으로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풍문에는 평범한 헬기 파일럿이었던 조종사의 장례식에 조의금만 무려 3억이 넘게 모였다고 한다.

또한 13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보상금이 널리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서진의 ‘법인 집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H컨설턴트는 130억 원의 보상금 책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인이 60세까지 조종사 일을 할 경우 얻게 될 수입은 약 30억 원입니다. 다만 이 금액은 일시불이기에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사망에 대한 고정보상금 100억 원이 추가된 것입니다.”

130억 원은 심지어 세금까지 면제되었기에, 고스란히 유가족들의 통장으로 들어갔다.

“또한 고인의 직계존속과 배우자에게는 사망할 때까지 충분한 생활비가 지급될 것이며, 직계비속은 만 30세까지 생활비와 교육비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지만, 고인을 대신해서 그 가족들을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조종사의 죽음은 유가족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서진이 직접 조문을 와서 위로하고, 어마어마한 보상금과 지원을 약속한 덕분에, 그저 억울한 죽음으로 전락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보상정책에 오히려 대중이 뒤집어질 듯이 놀라워했다.

―130억 원이라고? 미쳤다…….

―일실소득을 사망 당시 연봉으로 계산하는 게 어딨냐. 통이 커도 너무 크다.

―노부모와 배우자는 죽을 때까지 생활비 걱정할 일은 없겠네. 자녀들도 성인 되고 결혼할 때까지 아무 걱정 없고.

―솔직히 130억 원에서 이미 모든 게 끝남. 그런데 생활 양육 교육 지원까지 추가로 해주겠다니, 진짜 한서진 박사가 제대로 크게 쓰는구나.

오죽하면 조종사의 유가족들을 부러워하는 여론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헬기 조종사가 한서진 박사로 치면 개인 차량 기사나 다름없을 텐데, 아니 그보다 못할 텐데. 그런 큰돈을 챙겨주다니.

―재벌 회장 중에 교통사고로 자기 기사 죽었다고 저렇게 챙겨주는 사람 있냐? 없을 걸.

―근데 다르게 생각하면 한서진 박사한테 130억 원은 돈도 아니지. 금 소행성만 따져도 이미 자산이 50경 달러, 아니 50경 AU이야! 금 소행성 하나만으로 지구 전체를 사고도 남을 걸?

그런 인물이 탄 헬기가 정비 불량으로 추락을 해서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으니, 여기서 또 한 번 대중이 분노했다.

“미군 놈들, 일 제대로 하는 거 맞냐?”

한서진이 이용하는 이동 수단의 일체 정비 책임을 공동으로 관리감독하는 주한미군은 여기저기서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한국측 정비팀과 공동으로 책임지는 입장에서 자신들만 욕먹는 게 억울할 수 있으나, 여론은 ‘어차피 쟤네한테는 기대도 안 했어! 너희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잘해야지!’라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한국은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어서 기뻐해야 하는지, 없는 것 취급을 당해서 언짢아해야 하는지, 웃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테러?”

신문을 쥐던 주름진 손이 멈칫했다.

카이어 유쉘 로스차일드, 가문의 최고 어른이자 결정권자인 백인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비서를 노려보듯 주시했다.

“사고가 아니라 테러라고?”

“저희쪽 라인으로 CIA 내부에 그런 시각이 상당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게.”

“40 대 60 정도로 테러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합니다.”

카이어의 눈썹이 가볍게 꿈틀거렸다.

40, 결코 낮은 비중이 아니다. CIA 내부에서 그 정도로 무게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면, 테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한서진과 자신들은 한 차례 큰 싸움을 벌였다가 강화 협정을 맺은 바가 있다. 대형은행 두 개와 연방은행의 통제권을 사실상 미국 정부에 빼앗겼다.

지구상에서 한서진 때문에 가장 큰 손해를 꼽으라면, 두 말할 나위 없이 자신들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카이어의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한서진이 테러를 당했다면, 가장 큰 의심을 받을 입장에 처해 있으니.

그러나 자신이 알기로 가문 내에 그런 움직임이 일어난 적은 없다. 일단 자신은 지시를 한 적이 없다.

‘다른 가문에서?’

화폐 자본 세력에서 로스차일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연방은행은 어느 하나, 혹은 소수의 가문이 독점하기에 너무 거대한 과실이다.

다른 가문에서 은밀히 나선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그럴 리가 없다.

한서진이라는 거물을 치기 위해서 힘을 긁어모아도 모자랄 판에, 로스차일드라는 큰 축을 빼놓는다?

‘도대체 누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카이어는 보이지 않게 비틀거리며 신음했다.

말이 판정패지, 한서진은 이미 넘을 수 없는 산이자, 부술 수 없는 바위였다. 화폐발행권을 사실상 빼앗긴 이후, 카이어는 그와 적대하는 것을 포기했다.

차근차근 힘을 쌓아서 훗날의 기회를 노리면 모를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너무 거대해져 버렸다.

그런데 어느 어리석은 이가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아니, 저질렀으면 마무리라도 확실하게 할 것이지, 무서운 맹수를 화나게 해버렸다.

카이어는 서둘러 다른 가문 수장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았다.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오히려 자신 이상으로 당황스러워했다.

그런 모의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도 저번의 판정패 이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진로를 틀었다. 한서진을 적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때문에 입은 손해를 다른 분야에서 벌충하고 있었다.

‘대체 누가?’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카이어는 어이가 없었다.

한서진에게 그런 공작을 할 만한 힘을 지닌 주체라면 러시아나 영국, 프랑스, 독일 정도다. 그 국가들은 한서진에게 우호적이거나 혹은 그를 적으로 돌려서 얻는 손해가 훨씬 크다.

그렇다면 미국뿐인데, 미국 내에서 그런 짓을 할 만한 이는 자신들이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로 예술입니다.”

CIA는 전방면에 걸쳐 한서진 테러 사건을 수사했고,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사건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혀를 내둘렀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테러를 기획한 이의 솜씨는 그야말로 거장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기획력과 연출력으로 이뤄져 있었다.

“공작의 실행과 책임의 분산이 가히 경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임 분산?”

“예를 들어서 한 박사를 암살하기 위해서 가장 짧은 루트는 그의 주치의를 매수해서 직접 독약을 주입하는 겁니다. 그럼 실행과 책임이 한 명에게 집중되죠. 당연히 그 부담이 큰 만큼, 그는 제안을 거부하게 될 겁니다.”

CIA 프로파일링 전문가는 입에 침을 튀기며, 이 테러 공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역설했다.

“다음으로는 의료진을 매수해서 주치의가 처방하는 약을 독으로 바꿔치기 하는 겁니다. 그럼 매수자는 단지 바꿔치기만 하고 직접 실행은 하지 않으니, 심적 책임이 경감되죠. 물론 여전히 암살 작업을 담당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먹히지 않을 겁니다.”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예, 실행자, 아니 실행 세력은 암살 공작이라는 행위를 수십 가지 이상의 실행과 책임으로 분산해서 나눴습니다. 개별적으로 얽힌 이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이 거대한 암살 공작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움직였습니다.”

프로파일링 전문가는 주먹까지 불끈 쥐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들 개개인은 모두 평소 하던 것처럼 했지만,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어긋남만을 첨가했을 뿐입니다.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톱니바퀴지요.”

“……음.”

“그게 모이고 모여서 이번 테러를 만들어낸 겁니다. 불량 부품을 오랫동안 몇 번씩 납품한 업체도, 납품을 담당한 직원도, 그리고 검수를 맡은 업체도, 오래 된 윤활유를 갖다 놓은 직원도, 상시 헬기 정비를 맡은 직원도, 윤활유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주입한 직원도,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가 한 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공작 세력에게 이용당했다는 거군.”

“예, 맞습니다.”

테러 조사를 맡은 책임자 테일러 차장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는 왜 예술이라고 표현했는지, 그 이유를 납득했다.

“결코 일개 천박한 테러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상임이사국 이상의 국력을 지닌 강대국이 오랫동안 치밀한 작전과 노하우 인프라를 바탕으로 시도했을 때, 성공을 기대할까 말까 한 일입니다.”

“그럼 러시아는 어떤가?”

그는 주저 없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왜? 방금은 그런 국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시도할 수 있는 것과 성공할 수 있는 건 다릅니다. 러시아는 한국 내에 첩보 자원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공동 감시를 뚫고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으리라 보지 않습니다. 다른 상임이사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월드클래스 수준의 축구 실력을 가진 팀이라고 반드시 월드컵 우승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공작의 예술성을 따져 보면 그런 나라들만이 할 수 있는 극히 정교한 실행 행위, 그러나 미국의 감시 체제를 뚫고 그런 일을 벌이는 건 불가능하다.

테일러는 차분히 물었다.

“혹시 서클이 앙심을 품고…….”

“단독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전문 요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미국 내 전문 공작기관과 손을 잡는다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CIA 같은.”

============================ 작품 후기 ============================

“배후는 대체 어디에에에!”

“니 안에, 나 있다.”

저번주 모 전시회에서 놀고 있었는데 카메라 터지는 소리가 들려서 바라보니 공유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농담 안 하고 제 1미터 앞을 스쳐서 지나갔네요.

그리고 몇 분인가 뒤에 누가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기척을 느껴서 흘끗 돌아봤는데 한효주가 지나가더군요 ㅡㅡ;;;;;;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떨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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