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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54화 (454/609)

00454  배후는 어디에  =========================================================================

“무력시위요?”

이미 한서진의 배에 승선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크리스 대통령은 찔끔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다른 자리였다면 표정을 감췄을 텐데.

한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 넘겼다.

“아, 농담입니다.”

“……그렇군요. 놀랐습니다.”

안심이라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서진은 그런 태도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정곡을 찔렀다.

“이미 효진 씨에 관해서 꽤 많은 것을 파악하고 계시군요.”

“그 여성분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백악관을 침투해서 저의 명줄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박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무력시위란 말에 찔끔 놀란 태도를 보고, 세계 최강대국이란 지위는 포커 쳐서 따낸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페이 차일드가 신효진을 언급한 것에서 예상했지만, 미국은 이미 그녀의 위력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게 분명했다. 대통령 암살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걸 보면.

어차피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은’ 미국을 위해서 바쁜 와중에도 전용기를 타고 온 것이다. 한서진은 크리스를 차분히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미국 정보부가 짐작하는 그대로입니다.”

“……!”

“저는 에테르를 이용해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초인, 히어로, 그렇게 묘사하는 게 미국인들 입장에서 이해가 빠르겠지요. 효진 씨는 기관총이나 전차, 미사일 정도로는 죽거나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30cm 특수 합금강철판도 맨손으로 파괴할 수 있지요.”

한서진이 신효진을 상대로 여러 가지 측정 실험을 벌인 것은 미국도 파악하고 있었다. 현재 정보부는 그것을 한서진이 보내는 메시지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들으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초인이로군요…….”

“비밀로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독자적으로 파괴병기를 만들어낸 주제에 대통령에게 태연히 비밀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그가 가지는 지위다.

크리스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대단히 민감한 연구를 해내셨군요. 혹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번에 제가 겪은 헬기 테러 같은 것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대통령님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서클은 주도권을 되찾아왔다고 축배를 들었겠지요.”

테러라는 말에는 대통령도 당연히 할 말이 없어졌다. 정보부도 그가 그 명분을 내세울 것이라 생각했고, 미국은 그 명분을 꺾을 힘이 없었다.

“아니면 저도 토니 스타크처럼 청문회에 서서 슈트를 국가에 귀속시키라는 호통을 들어야 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누가 감히 한 박사님을 청문회에 세울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는 땀을 흘리며 변명처럼 대답하다가, 자신 없는 음성으로 덧붙였다.

“서클이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만한 동기와 힘이 있는 곳은 서클뿐이지 않습니까? CIA도 강한 의심을 품고 있는 듯 하던데요.”

“하지만 서클 내부 분위기는 이번 테러에 관해서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

“이건 CIA도 섣불리 알 수가 없죠. 서클의 비밀 모임은 도청이 불가능합니다.”

서클의 정회원으로서 비밀 모임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크리스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서진은 잠시 바라보다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서클이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건 아닙니다. 서클 내부에도 가담자나 방관자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클 자체가 주도적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대통령님의 생각이라면 충분히 검토해야겠군요.”

“CIA를 포함해서 미국의 모든 첩보 기관이 이번 사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스 신 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과 자원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선천적인 자질, 아니 체질이라고 하지요. 그게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에테르에 감응하는 능력이 일정 수치가 되어야 합니다.”

“저런…….”

그 말에 크리스는 대놓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강화인간을 공장 양산품처럼 마구잡이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미국의 헤게모니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진다. 모든 미군을 신효진 같은 사람으로 채운다면, 미군의 위력은 수십 배로 증강될 테니.

“저도 감응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오래 전부터 찾아다녔고, 결국 찾아낸 게 그분입니다.”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는 그분을 지금까지 곁에 두신 거군요. 몰랐습니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크리스는 소리 내며 감탄했다.

그간 한서진과 신효진의 관계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다. 그녀는 지금 송하나와 친구이긴 했지만, 먼저 인연이 닿은 것은 한서진이었다.

처음 정보부는 세컨드라 판단했지만, 둘은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측은지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묘했다.

그런데 그 자그마한 의문이 지금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다.

“그럼 그런 감응 체질을 가진 사람이 전체 인간 중에서 몇 %나 될까요?”

“효진 씨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요?”

“그렇습니다.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제2, 제3의 미스 신을 찾아내는데 미국의 모든 힘을 동원하겠습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명백하다. 미국은 강화인간 군단을 꾸리고 싶은 것이리라.

신효진 같은 사람 몇 명만 있다면, 중동 등의 분쟁지역을 평정하는 데는 아무 일도 아니니. 소모 물자도 극단적으로 적고 희생자도 없을 것이다.

한서진은 묘한 조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신효진 씨 같은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대략 250억 분의 1 정도 될까요.”

“……예?”

크리스 대통령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25억도 아니고, 250억 명 중에 한 명이라고? 지구 전체 인구가 100억 명도 안 되는데?

“확률을 말한 것뿐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평범한 인간을 강화인간으로 바꾸는 기술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군요.”

크리스는 순간 한서진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의 입장에서는 서브 카드가 언제나 잔뜩 준비되어 있다고 어필하는 게 유리할 테니.

어차피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미국은 정황을 파악할 능력이 못 된다. 에테르는 한서진의 고유 영역이니까.

“저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명예시민이자 영웅이고, 그녀는 저를 지켜줄 방패입니다. 그게 바로 팩트지요.”

한서진의 명쾌한 정리에 크리스도 조금 밝은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미국을 방문한 목적, 바로 안심시키는 것.

소기의 목적은 어렵지 않게 달성했다.

“사실 전용기를 타고 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럼요?”

“웜홀 기술은 이미 완성됐어요. 항공기나 배를 타고 다닐 이유는 없는 거지요.”

한서진과 신효진은 워싱턴 시내를 한가하게 걷고 있었다. 경호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호 중이었고, 시민들은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 왜 웜홀을 이용하지 않으신 거예요?”

“지금 세계는 웜홀이 언제 실용화되나 긴장해서 지켜보고 있죠. 그런데 사적인 용도라 해도 제가 웜홀을 이용하는 순간, 이게 모든 게 변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겨우 지탱 중인 고삐가 끊어져 버리는 거죠.”

무수한 경주마들이 출발선에 서서, 실용화라는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서진이 개인적으로 웜홀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곧 거대한 신호탄이 된다.

무분별한 질주가 시작되고, 세계 경제는 혼란에 잠길 것이다.

그에 대한 충분히 대비나 준비 없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요?”

“아마도요. 그리고 또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겠죠. 원래 인류는 그렇게 발달해왔습니다.”

“정말 없어진 만큼 만들어질까요? 뉴스 같은 걸 보면 물류 쪽 일자리는 지금의 1/50 이하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던데요.”

“……그렇다고 웜홀 기술을 사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웜홀 게이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기술이다. 이미 전 세계에서는 하루빨리 웜홀을 실용화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듯 쏟아지고 있다.

웜홀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타격을 받는 이들. 정작 그들조차 웜홀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한 자신들의 손실을 보전해줄 것을 요구하는 데 시위의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웜홀 게이트 이용 그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정말 부자들이 웜홀 때문에 박사님 헬기에 그런 짓을 했을까요?”

신효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스칼린 왕비가 아니라 예전의 신효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능성은 충분하죠.”

“이해가 안 돼요. 그런 이기적인 욕심들이……. 레노지안은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는데.”

“…….”

“이곳 지구도 언젠가는 그런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을까요?”

슬픈 듯이 돌아보는 신효진의 얼굴에는 레노지안을 향한 진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가라앉은 눈빛 속에는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 엿보인다.

압도적인 힘이 생긴 뒤로 그녀는 예전에 가지지 못한 단단한 자신감을 함께 얻었지만, 레노지안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처럼 예전처럼 연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꿈에 들어가지 못한 지도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이제 지쳐가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완전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효진 씨, 효진 씨는 지금 스칼린 왕비의 힘을 얻었어요.”

“아직 완전하지 않아요. 스칼린 왕비의 진정한 힘은 이 정도에 비할 바가 못 돼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더 많은 힘을 얻게 될 겁니다. 저는 레노지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아낼 거고요. 그때 우리가 가서 레노지안을 도와야 합니다.”

한서진은 열띤 태도로 말을 이었다.

“레노지안은 분명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도와줄 수 있을 거고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노지안을 돕는다…… 그 날이 오긴 할까요?”

“올 겁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웜홀은 이론적으로 우주 어디든 갈 수 있다. 게이트를 여는 좌표 통제 기술을 정교하게 다듬고, 레노지안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만 한다면.

물론 레노지안을 찾는다 해도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지구에는 레노지안에 없는 것들이 잔뜩 있지.’

지구의 기계 문명과 레노지안의 마법 문명을 완벽하게 융합할 수 있다면, 아서 왕이 상상하지도 못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먼 미래에 레노지안을 멸망시킬 신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카식 블레이드 분석을 완전히 마치는 게 우선이다.’

============================ 작품 후기 ============================

(소근) 거기 실은 이미 오래 전에 망했부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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