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2 배후는 어디에 =========================================================================
강화 인간 프로젝트는 미군에서도 오래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특수 약물을 병용한 훈련으로 신체적 능력을 극대화하고, 외골격 슈트로 병사 개개인의 무력을 한층 높이는 것.
때문에 크리스 대통령은 ‘신효진 인간병기설’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도 혼자서 해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걸 그저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인가…….’
크리스 대통령은 신효진의 구출 영상이 반복되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으로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특수 약물 등으로 그녀의 신체 자체를 강화했든, 나노 슈트 등의 다른 외부적 요인으로 해결했든, 어쨌든 신효진이 보인 무위는 인간을 초월한 것이었다.
저걸 한 명의 인간이 혼자서,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해낸다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긴. 에테르 반도체도, 재해 예측 시스템도, HAMC도, 치료제 H시리즈도 전부 따지고 보면…….’
크리스는 지금까지 한서진이 이룬 성과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것들 하나하나만 따져도 한 명의 인간이 이뤘다기에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업적이다. 그런데 겨우 강화인간 따위에 이렇게 놀라서야 될까. 원래 까마득하게 높았던 금자탑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인데.
“혹시 목격자가 있습니까?”
“현장에서 자세한 정황을 파악 중입니다.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CIA는 다행히 눈치가 빨랐다.
한서진이 사사로이 강화인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식으로든 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인체를 상대로 한 생체 실험, 그것은 도덕적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으니.
자세한 건 알아봐야겠지만, 미국은 이런 위대한 발명을 겨우 도덕성 논란 때문에 묻히게 할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한서진은 미국 시민 아닌가.
그의 힘은 곧 미국의 힘이다.
“그건 그렇게 처리하면 되겠고…… 그런데 왜 헬기가 고장을 일으킨 겁니까?”
크리스 대통령은 잠시 밀어두었던 의문을 꺼냈다.
한서진이 타는 모든 이동 수단, 차량, 헬기, 항공기는 엄격한 이중삼중 감시 속에서 관리감독을 받는다.
멀쩡하던 헬기가 특별한 조짐 없이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만약 정비 감독을 허술히 한 거라면 옷을 벗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자세한 건 기체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영상을 보면 로터에 불량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체를 수거하는 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겠습니다.”
위대한 금자탑을 쌓아 올린 사람인만큼, 악의를 품고 노리는 이도 많은 게 당연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한서진과 송하나는 미군의 호위 속에 지정병원으로 급히 후속되었다. 연락을 받은 주치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간단한 검진을 받은 뒤, 곧바로 정밀 검진에 들어갔다. 혹시라도 눈에 띄지 않는 부상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정밀 검진 결과는 큰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가벼운 찰과상 정도만 입었을 뿐이다.
신효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서진과 함께 했고, 미군도 그녀를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는 눈치였다.
셋만 남게 되자 송하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효진 씨, 아까는 어떻게 된 거죠?”
“그건 저보다는 박사님께 직접 듣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신효진은 자연스럽게 공을 한서진에게 넘겼다. 묘한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에 송하나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빠, 말해줄 수 있어요?”
“효진 씨가 근력 강화에 관심이 있었어. 나도 흥미가 생겨서 간단히 연구를 해봤는데, 임상 적용 과정에서 부작용이 좀 생겼어.”
“부작용이요?”
“약효가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났던 거지. 아까 효진 씨가 했던 일을 생각해 봐.”
추락하는 헬기의 문을 부수고, 두 사람을 끌어안은 채 날렵하게 뛰어내린 것. 송하나는 의구심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듯했지만, 마침내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서 두 분, 요즘 가까이 붙어 다녔던 거군요. 저 몰래 그런 인체 실험이나 하고.”
“인체 실험이라니요, 그런 건 아니야.”
“인체 실험 맞잖아요. 하긴, 제가 할 말은 아니네. 저도 이미 한 번 먹었으니까.”
H-3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내심 걱정하고 있던 한서진은 순순히 넘어갈 듯한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은 추궁은 없을 모양이다.
송하나는 신효진에게 물었다.
“그럼 효진 씨, 오빠 비밀 경호원이라도 하시는 거예요?”
“뭐, 그렇죠.”
“어쩌죠. 이제는 비밀이 아니게 됐네요.”
“전 괜찮아요. 비밀을 지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박사님을 지키는 게 목적이니까요.”
“뭔가 의젓하고 단단해 보여요. 제가 알던 효진 씨하고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어머, 그렇게 보여요?”
신효진은 밝게 미소 지으며 키득거렸다.
누가 봐도 정제된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한서진은 그녀가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스칼린 왕비…….’
아니, 아니다. 눈앞의 그녀는 스칼린의 힘을 얻었을 뿐, 어엿한 신효진이다.
다만 신효진은 왕비의 힘을 얻은 데만 그친 게 아니라, 힘에서 기인하는 자신감 또한 함께 얻은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퇴원하자마자 한서진은 곧바로 신효진의 신체 조사에 들어갔다. 비밀서약을 받은 최고의 의료진의 감독 속에, 그녀는 하루 종일 온갖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검사 결과 대부분의 신체 기능 수치는 일반인에 비해 특별할 것 없는 정상 수준을 나타냈다.
근력, 뇌파, 각종 반응 등 모든 수치가 정상적인 20대 초반 여성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만.”
의료진의 보고에 한서진은 대답 없이 팔짱을 낀 채 손으로 턱을 쓰다듬기만 했다.
푸른 검사복을 입은 채 일어난 신효진은 그의 시선에 쑥스러워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저 어때요, 하는 듯한 당당한 표정. 과거 모델 시절을 연상케 하는 표정이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온몸의 에테르 덩어리야.’
신효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느낀 소감이다.
그녀는 지금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온통 에테르로 충만한 상태였다. 당장 에테르 스톰을 일으켜 서울을 날려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방대한 양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육체를 채운 에테르는 놀라울 만큼 안정되어 있었다.
‘에테르 때문에 신체 능력이 그렇게 강화된 건가.’
현대 의학 장비로는 에테르를 감지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정밀 검진을 해도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결과만 나오는 것이다.
“어떤가요?”
의료진이 잠시 물러간 후, 눈을 직시하며 신효진이 물었다.
단단한 여전사의 눈빛, 그녀가 꿈속에서는 저랬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효진 씨 체내에는 지금 방대한 에테르가 축적돼 있어요. 제 눈에는 분명히 보입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죠?”
“현대 의료기기로는 에테르를 감지하지 못합니다. 에테르가 신체에 작용해서 그런 강화 능력을 보이는 것 같군요.”
“레노지안에서도 그랬어요. 모든 힘과 마법, 권능의 근원은 바로 에테르였지요. 에테르는…….”
“우주 만물의 근원이니까요.”
“맞아요.”
그녀가 새하얗게 웃었다. 한서진은 새삼 그녀의 미소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틀림없이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미모만 놓고 보면 나라를 흔들고 기울게 할 만한 수준, 그러나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무엇인가가 결여되었다고 느꼈다.
그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한서진은 지금 분명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스칼린은 참 강한 여자였군요. 몸도, 마음도요.”
“네, 맞아요.”
“왠지 지금 제 눈앞의 효진 씨는 사실은 효진 씨가 아니라 스칼린 왕비가 효진 씨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어머, 그렇게 보여요? 왠지 기쁘네요.”
그녀는 미소로 여유 있게 받아 넘겼다.
“하지만 저는 스칼린이 아니라 신효진이에요. 박사님이 그건 더 잘 아실 거예요. 통찰안이 있으시니까.”
“물론입니다.”
기존 의학 검사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접근 방법을 바꿔야 했다. 한서진은 남아 있는 의료 검사를 모두 취소시키고, 신효진을 데리고 연구소 신사옥으로 돌아왔다.
“효진 씨가 어떻게 왕비의 힘을 얻었는지는 그에 관한 조사는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어떻게 통찰안을 얻었는지를 따지는 게 큰 실익이 없듯이, 그녀가 어떻게 왕비의 힘을 가졌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특별한 의미는 없다.
“효진 씨의 힘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 파악하는 게 나을 거라고 봅니다.”
“예, 부탁할게요.”
그리고 한서진은 통찰안과 각종 에테르 첨단 측정 장비를 통해, 그녀의 힘을 낱낱이 분석해 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무척 놀라웠다.
“동체시력, 반사 신경, 근력, 충격 방호량…… 모든 게 그저 놀랍기만 하군요.”
한서진은 혀만 내둘렀다.
그녀는 1만 분의 1초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빠른 반응 속도가 가능했고, 근육을 비롯한 신체도 그 반응 속도에 걸맞는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에테르가 보호막처럼 피부와 신체를 보호하며, 충격 에너지를 흘려버린다.
단계적으로 충격량을 증강시켜 최종적으로 측정한 결과, 그녀는 TNT 1톤의 폭발 에너지까지 견딜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고, 그 이상은 아직 검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스칼린 왕비는 정말 괴물이었군.’
한서진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에테르는 정말 전능하지 않은가.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이런 괴물 같은 능력을 지닐 수 있다니.
“이 정도면 세계 최강인데요.”
“그래요?”
“단신으로 세계 정복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각국 수장들을 손쉽게 암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조심해야겠습니다. 적당히 감추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박사님께서 하라는 대로 할게요.”
공손한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묻어나면서, 동시에 한서진을 향한 순종이 섞여 있었다.
왠지 어색한 기분에 한서진은 분위기를 정리했다.
“일단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네. 내일 봬요.”
그녀의 걸음걸이에서 평소와 다른 경쾌함이 느껴진다. 원초적인 힘이란 사람을 바꾸는 마력이라도 있나 보다.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데이터를 정리했다.
그때 벨이 울렸다.
「박사님, 페이 차일드 씨가 찾아왔습니다.」
“들어오시라 해요.”
잠시 후 노크 소리가 울리고, CIA의 화이트 요원 페이 차일드가 들어섰다.
“오랜만이군요.”
“알려드릴 게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뭔가요?”
“본국에서 헬기 잔해를 수거해서 정밀 조사를 실시했는데…… 누군가가 헬기에 손을 쓴 흔적이 나왔습니다.”
한서진은 놀라는 반응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한미 기관이 합동으로 정비 감독을 실시하는데, 그걸 못 찾아냈던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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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저한테 그러지 마시고 실탄피디님한테 가서 따지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