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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51화 (451/609)

00451  잠겨버린 꿈  =========================================================================

“저기서…… 사고가 난 것 같은데요.”

신효진의 떨리는 목소리에 한서진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번개처럼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자신은 꿈을 통해 아서 왕의 권능을 얻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더 적극적이고 생생하게 꿈을 누렸던 그녀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한서진은 재빨리 인터폰을 들고 지시를 내렸다.

“지금 근처에 사고 난 거 있는지 알아봐줘요. 빨리!”

「네, 알겠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보고 전화가 걸려왔다.

「T로터리 부근에서 다중 충돌 사고가 있었습니다. 아직 사고 초기라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트럭 기사가 음주 운전을 한 것 같습니다만. 사망자가 적어도 두 명 이상 발생한 것 같고…….」

“헬기 준비해요, 지금 바로. 현장으로 갈 겁니다.”

한서진은 뒤를 더 듣지 않고 지시를 내린 뒤, 신효진을 돌아보았다.

“같이 가실 거죠?”

“네? 아, 네.”

“바로 준비합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헬기가 준비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한서진이 어디에 있든 헬기 등의 이동 수단은 항상 대기 중이기에, 그저 시동 거는 시간만 기다리면 그만이다.

한서진 일행은 이착륙장에 있는 헬기에 올라탔다.

송하나와 신효진이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에 한서진이 단독으로 앉았다.

그는 신효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효진 씨가 정말…….’

스칼린의 권능을 얻고 있나? 그렇다면 레노지안은 아직 무사하다는 건가?

권능을 얻는다면, 어떤 것일까? 보아하니 신효진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헬기는 어느덧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한서진은 위치를 가늠하고는 가볍게 신음했다.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 약 3km 떨어진 곳, 도저히 인간의 시력과 청력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

게다가 방음이 잘 된 실내, 사고 소리 같은 게 들릴 리가 없다.

이건 알아차린 게 더 이상한 것이다.

“세상에.”

신효진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사고 현장에서 느껴지고 보이는 끔찍함이 또렷해지던 중이었다. 현장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다중 추돌 사고에서 직접 전해지는 사람들의 공포와 비명이 머리를 아득해지게 했다.

‘틀림없어!’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비로소 확실해졌다.

이것은 스칼린의 감각, 정확히는 여전사로서 그녀가 지닌 전투 감각이 극대화된 상태와 똑같았다.

바로 전장에서 적을 파악하기 위한 것. 적어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큼은 스칼린과 똑같아진 상태였다.

그녀는 한서진을 쳐다보다가, 그만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도, 박사님처럼……!’

신효진은 가슴이 점차적으로 두근거렸다.

그녀는 한서진이 아서 왕의 권능을 얻는 것을 늘 부러워했었다. 권능 그 자체의 가치보다는, 고귀한 신분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도 비슷한 권능을 접했다.

‘혹시 나중에는 스칼린처럼 엄청 세지는 걸까?’

그녀는 무심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스칼린의 육체라면 지구상에서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다. 기관총이나 전차, 미사일 정도는 전혀 무섭지 않다. 생화학 무기류도 마찬가지다. 핵무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한서진과 같은 곳에 나란히 섰다. 그 사실이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때, 내내 말이 없던 송하나가 차분히 물었다. 그제야 한서진은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을 생각해냈고, 조금 당황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두 분, 저한테 말 안 하신 거 있죠?”

송하나는 재차 물었다. 톤의 높낮음이 없는 평온한 목소리, 하지만 대답을 요구하는 의도가 강력했다.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신효진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끄덕였다.

‘전 괜찮아요.’

그녀의 의사가 또렷이 느껴졌고, 한서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먹을 쥐었다.

누가 봐도 이상하게 여길 상황이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했다.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도 없거니와, 말을 한다고 해서 그녀가 믿어주기나 할런지 의문이다. 상황만 더 복잡하게 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하나야. 실은…….”

입을 떼려는 찰나, 갑자기 헬기가 요동을 치며 급격히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마디 비명 소리와 검은 연기를 위로 흘리며, 헬기는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시간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그녀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풍경이 마치 멈춘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신기해…….’

신효진은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겁에 질린 송하나, 크게 놀란 한서진이 정지해 있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게 느껴졌다.

저 둘은 자신에게 있어 언제나 큰 사람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놓이니 뭔가 우습기도 했다.

극대화된 ‘스칼린’의 감각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는 신효진이 아니라 스칼린이었다.

충만한 감각과 기운이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락하고 있어.’

그녀는 헬기 로터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를 확인했다. 잘은 모르지만, 기체에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했다.

‘전부는 못 구해.’

그녀는 과감히 조종사를 포기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스칼린이라 해도 팔은 두 개 뿐이다.

‘진짜’ 스칼린이라면 세 명이든 네 명이든 구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을 낼 수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뜯어내며, 힘껏 문을 열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풍경이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가 싶더니, 몸 전체에 둔탁한 충격이 밀려들었다. 마치 엄청난 속도로 공기 중을 이동하는 듯한 충격파에 맞닥뜨렸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숨을 헉헉거리는데, 문득 헬기 밖인 것을 깨달았다.

“괜찮아요?”

신효진의 걱정스러운 음성이 그의 정신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뒤늦은 현기증과 메스꺼움이 밀려오자, 한서진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신효진은 왼팔로 송하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168cm의 여리여리한 체격의 그녀가 170이 조금 넘는 송하나를 한 팔로 아무렇지 않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효진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려던 순간, 한서진은 붉은 화염과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는 헬기를 발견했다. 기체가 추락한 지점에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차량의 부서진 잔재가 형편없는 몰골로 흩어져 있었다.

“죄송해요. 모두 구할 수는 없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저, 아무래도 스칼린의 힘을 각성한 것 같아요. 박사님이 그랬듯이요.”

그제야 한서진은 신효진의 온몸을 차분히 훑어보았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효진 씨가 우리 둘을 구했군요.”

“스칼린의 힘 덕분이죠.”

스칼린, 대륙에서 가장 강맹한 여전사.

모든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을 가진 아서왕조차, 기사로서의 무력에서만큼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준다. 적어도 육체적인 능력에서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이는, 레노지안 대륙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부인지 일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기분 같아서는 맨손으로 콘크리트도 찢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신효진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말의 내용과 표정이 전혀 매치되지 않는 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지만 왠지 웃겼다.

문득 신효진이 조금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사람이 많이 죽었네요. 안 그래도 큰 사고가 났는데, 헬기까지 그 위에 떨어졌으니. 설상가상이란 게 이런 걸까요?”

“…….”

한서진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 때문에 참사가 더 가중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어떡해요?”

“뭐가 말입니까?”

“미군들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헬기가 추락할 때부터 체크했던 것 같은데. 저 어떡하죠?”

한서진은 어디를 이동하든 항상 미 대통령을 능가하는 엄중한 경호를 받는다. 헬기가 고장 났을 때부터 호위부대는 이미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다.

신효진이 둘을 데리고 구출하는 장면 역시 찍혔을 게 틀림없다. 카메라 프레임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면 모르겠지만, 그랬다가는 한서진과 송하나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그건 제가 잘 둘러대죠.”

“앗, 정말요?”

“그냥 제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되는 게 편할 것 같군요.”

“그럼 이제부터 제가 박사님 피실험체가 되는 건가요?”

자신감이 넘치는 웃음, 한서진은 눈앞의 그녀가 조금 낯설었다.

분명히 신효진이 틀림없는데,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위화감이 전달되고 있었다.

‘스칼린…….’

그녀는 신효진일까, 아니면 스칼린일까.

한서진이 탑승한 기체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발견된 순간, 주한미군 전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긴장감은 즉각 바다 건너 워싱턴에까지 전해졌고, 미 대통령은 진행 중이던 일정을 즉시 중단하고 한국 내의 상황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이 모든 것은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뤄졌으나, 그 일 분 안에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한 박사가 탄 헬기가 추락했다고요?”

크리스 대통령은 새파랗게 경직돼 있었다.

한서진은 공개적으로는 미국의 최고 주요 인사, 그리고 사적으로도 크리스 대통령의 ‘멘토’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이들에게는 비밀이지만.

“네, 다행히 한 박사는 무사합니다. 경호부대가 즉각 개입해서 한 박사님을 안전한 지정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지금은 안정 중이십니다.”

“헬기가 추락했는데, 무사하단 말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저희로서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직접 영상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고자는 그리고 바로 영상을 틀어 주었다. 고성능 카메라로 원거리에서 선명히 촬영한 영상이었다.

추락하는 헬기가 보인다. 로터에서 검은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이미 균형을 잃은 채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어떤 그림자가 번개 같은 속도로 뛰어나왔다.

“재생 속도를 50배 정도 늦추겠습니다.”

속도가 느려지자 모든 게 더 분명히 보인다.

한 가냘픈 여자가 한서진과 송하나를 양팔에 낀 채, 헬기에서 그대로 땅으로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그녀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땅에 착지하는 순간 두 발을 안정적으로 굽히며 충격을 자신의 다리에 집중시켰고, 동시에 둘을 안은 팔을 스프링처럼 연동하며 대부분의 충격을 뒤로 흘려보냈다.

크리스 대통령은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한서진과 송하나의 절친으로, 비상 상황을 대비한 한서진 구출 프로그램에 등재된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어찌 된 노릇이란 말인가?

“저 여자…… 어떻게 된 겁니까?”

“한 박사가 비밀리에 양성한 인간 병기 같습니다. 아마 위장 근접 경호원이겠죠.”

크리스 대통령은 자그마한 신음으로 감탄을 대신했다.

============================ 작품 후기 ============================

한미 멘토링은 다행히 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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